1987년, 그 뒤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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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그뒤 20년, 시민운동 어디로]① 보이는 한계, 안 보이는 전망
성명서나 이벤트 위주 되풀이…상근자 절반 가까이 위기상황 인식
시민운동은 ‘87년 체제’가 낳은 기린아였다. 군사독재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꽃핀 민주화 시대에, 시민운동은 한국사회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깨뜨리고 나아가는 선두주자였다. 하지만 어느덧 청년기에 접어든 시민운동은 안팎의 도전에 주춤하고 있다. 쌩쌩 내달리던 1990년대의 ‘호황기’를 지나 조정 국면을 맞은 것이다. 그 원인과 돌파구는 무엇인지, 앞날의 시민운동은 어떤 모습일지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1 “지금 시민단체는 중대한 위기 상황에 있습니다. 과거 화려했던 시기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시민단체에 여전히 거품이 많습니다.”(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
#2 “시민단체가 정말 위기인가요? 시민운동의 위기는 찬란한 성과를 이뤘던 90년대에 견줘 상대적 위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앞으로의 50년을 두고 고민하고 싸워야 할 시기에 있습니다.”(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한겨레>가 지난 7~8일 전국의 시민단체 30곳 상근 활동가 1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48.6%가 현재 상황을 시민운동의 위기로 보고 있었다. 위기가 아니라고 답한 이는 24.3%에 그쳤다.
위기로 보든 아니든, 시민운동이 중대한 한계와 도전에 부닥쳤다는 분석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때의 ‘낙천·낙선 운동’을 정점으로 시민운동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민운동이 갈 곳 모를 어려움에 놓인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사회가 변했다.
1980~90년대 시민운동이 선도해 온 반부패·인권·여성·노동 등의 의제들이 2000년대 이후 상당 부분 제도적 틀 안으로 흡수됐다. 이른바 ‘일감’ 찾기가 쉽지 않게 됐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의 말대로 “시민운동에서 다루던 영역을 정당정치가 가져가고 관련 국가기관도 생기는 등 상황이 변한 것”이다.
시민운동 초기에 풍부했던 ‘전문가 그룹’도 상당 부분 맥이 빠진 상태다.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교수나 변호사 수가 급격히 준 것은 아니지만 ‘열정’은 많이 식었다는 것이다.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은 “다른 매체를 통한 표현 기회가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적 의제뿐만 아니라 인력도 제도권으로 많이 흡수된 것이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처장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개혁, 부패방지법, 공직자윤리법 등과 같은 의제들이 제도권으로 흡수됐다”며 “지금은 모색기이고, 실무자들은 자신들의 역할과 방향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태의연한 운동 방식도 비판의 대상이다.
시민운동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20년째 △성명서 발표 △집회 △농성 △법안 제출 따위다.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은 “성명서 내는 식의 관행은 더 통하지 않는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며 “숨겨진 정보를 찾아 시민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실련의 경우 지난해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을 벌이면서 정부와 지자체, 기업의 관련 자료를 상세히 분석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
언론에 한 줄 나오면 된다는 식의 ‘이벤트’ 중심 운동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진다. 지난해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날마다 촛불집회를 준비했다는 최준영 문화연대 팀장은 “10명이 행사를 준비했는데 시민은 5명만 참석한 경우도 있었다”며 “실망감과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풀뿌리 시민운동’을 모색하고, 인터넷을 활용해 시민들과 만나는 지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김경미 평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밑에서부터 시민운동이 전개되려면 풀뿌리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운동이 중앙집권화돼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조한혜진 환경운동연합 간사는 “온라인 매체 등 시민과 쌍방향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꾼이 빠져나간다.
새해 첫 출근에 나선 시민들이 지난 1월 서울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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