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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6 19:33 수정 : 2006.05.18 01:28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⑤ 재벌, 길들여지지 않는 자본권력

‘재벌개혁’은 한국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의제다. 1980년대에는 학생운동·노동운동이 주로 재벌문제를 고민했다. 재벌해체 등의 급진적 구호가 등장했다. 노동권 차원의 큰 담론의 성격이 강했다. 90년대 들어 시민운동이 급성장했다. 경실련·참여연대로 대표되는 시민단체들은 ‘경제 정의’를 중심으로 재벌체제를 비판했다. 증권집단소송제 등 관련법 제·개정 운동, 삼성전자 전환사채발행 무효소송 등 법정투쟁을 펼쳤다. 재벌개혁이 한국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자리잡게 된 데는 소액주주운동으로 상징되는 시민운동의 역할이 컸다.

2000년대 들어 새로운 경제학자 집단이 등장했다. 흔히 대안연대로 대표되는 이들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주목했다. 그 일부는 박정희 체제를 "국가의 재벌통제 시스템이 작동했던 시기"로 긍정평가하고, 시민운동의 재벌개혁운동을 "외국투기자본 앞에 국민경제를 무장해제시켰다”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이에 대한 또다른 비판이 등장하고 있다. 외국투기자본의 위험성을 과장한 결과 오히려 재벌체제 모순을 은폐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주도하는 ‘재벌의 국민경제 기여론’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은 그 고민을 좀 더 진전시키고자 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 대안연대 정책위원인 정승일 국민대 겸임교수를 한자리에 불렀다. 정 교수는 대안연대 쪽 주장을 대중화시킨 <쾌도난마 한국경제>(부키 펴냄)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국의 재벌> <재벌백서> 등을 펴내면서 국내 최고의 재벌연구가로 인정받고 있는 김진방 인하대 교수도 함께 참석했다. 기업과 노동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온 조형제 울산대 교수가 토론을 거들었다. 재벌 정책 및 관련법안의 실제에 밝은 조영철 국회 산업예산분석팀장과 선진대안포럼 실행위원인 이일영 한신대 교수는 서면으로 의견을 보냈다.

지난달 10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김병수 <한겨레> 논설위원의 사회로 열린 토론회 전문은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경영권 승계 막히면 외자에 무방비”
“총수지분 없이도 기업집단 유지돼”

재벌일가 상속 논란

재벌 일가의 상속 문제는 재벌총수 전횡의 상징인 동시에 경영권 장악 문제와 맞닿아 있다.모든 참석자들이 일단 ‘불법 재산 상속’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온도차가 심했다.


“재벌총수가 ‘가족 기업’으로 가고 싶으면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그렇게 하면 된다. 만일 공공기업으로 가려면 (자식이 아니라) 경영 잘하는 사람에게 물려주면 된다. 문제는 무리하게 키워온 덩치를 더 키워가면서 (불법적으로)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시도다.” 김진방 교수의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 정서를 반영하는 지적이기도 하다.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⑤ 재벌, 길들여지지 않는 자본권력
정승일 교수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편법상속이 세금을 아끼려는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집단의 경영권 승계가 막히면 그룹의 지배구조가 와해될 것이다.” 한번 허물어진 재벌체제는 외국펀드의 공격에 무너지고 이들 투기자본이 구조조정과 주식매각을 해 국민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는 게 정 교수가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조영철 팀장이 이를 비판했다. “재벌이 경영권 승계에 실패한다고 곧바로 기업집단의 해체로 이어지거나 외국자본에 넘어갈 것이라는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집단과 독립기업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기업집단 유지가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또 “총수 지분이 없어도 일본처럼 계열사들의 자발적 요구에 의해 기업집단이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산상속이 기업집단 유지의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에 정 교수도 나름의 대안을 내놓았다. 미국의 빌 게이츠 재단, 스웨덴의 발렌베리 재단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재벌 일가가 출자한 재단이 기업집단 전체의 안정적 경영권을 유지하게 하는 모델이다. 재벌 2·3세가 경영일선에 나서는 일을 막으면서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은 보장하는 방식이다. 정 교수는 “최근 삼성이 사회환원 명목으로 내놓은 8천억원에다 더 많은 기금을 보태 사회공익재단을 만들고, 재단의 자산운용은 그룹의 지배구조 안정화를 위해 쓰고 그 수익은 사회공익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가 다시 비판에 나섰다. “한국 재벌의 문제는 5%의 지분을 가진 총수가 그룹 전체를 경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배당만 받는 대주주로 만족할 재벌총수가 과연 있겠는가? 만약 그런 재벌 총수가 있다면 왜 굳이 재단을 설립해야 하나.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김 교수는 “재벌총수 일가가 훔친 돈은 주주의 재산일 뿐만 아니라, 채권자·노동자의 재산이기도 하다. 남의 돈을 훔치는 범죄가 용인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유일하게 남은 재벌 견제장치” “국가핵심사업 보호책은 필요”

격론 벌인 적대적 M&A

참석자들은 적대적 인수·합병(M&A) 문제로 오랫동안 격론을 주고받았다. 재벌 규율·통제의 유력한 수단이라는 지적과,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정승일 교수는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운동이 외국투기자본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비판했다. “재벌개혁이 지금같은 방향으로 나간다면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어진 삼성·현대·에스케이 등에 대한 (다국적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이 가능해진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조영철 팀장은 “적대적 인수·합병은 기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국 재벌들은 높은 내부지분율이라는 경영권 방어장치를 이미 갖고 있고, 그동안 은행 차입 의존도를 급속히 감소시킨 탓에 은행에 의한 재벌 감시도 어렵다”는 게 근거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유일하게 남은 재벌 견제 장치라는 이야기다.

새로운 재벌 규율·통제 수단에 대한 모색도 이어졌다. 김상조 교수는 주주대표소송 등 사후규제의 활성화로 관심을 옮기자고 제안했다. “그동안 재벌개혁의 핵심수단으로 거론됐던 공정거래법은 이제 실효성없는 누더기가 됐다. 사전적 규제인 탓에 자의적으로 기준이 적용되고 정부는 끊임없이 예외조항을 만들었다. 이젠 손해를 입은 이해관계자의 적극적 행동에 의한 사후적 제재가 재벌개혁의 요체다.”

조 팀장은 미국 ‘액슨플로리오 법’의 도입을 제안했다. 액슨플로리오 법은 지난 1986년 일본 후지쓰사가 미 반도체 회사인 페어차일드를 인수하려 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국가전략산업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외국자본의 인수를 금지할 수 있게 한 것이 뼈대다. 조 팀장은 “은행이나 국가 핵심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외국투기자본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제도는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재벌은 여전히 감시·견제를 너무 적게 받는 것이 문제”라며 “종업원 지주제를 통한 내부 견제나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감시 기능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고용창출·국민경제 활성화 가능” “노조·중소기업 파트너 인정해야”

‘사회적 대타협 대안인가’

한국 경제의 막힌 매듭을 푸는 하나의 대안으로 사회적 대타협이 거론되고 있다. 재벌 문제 해결에도 유력한 경로가 될 수 있을까?

정승일 교수는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재벌들이 기업지배구조의 취약성을 강화하도록 도와주면, 안정적 기업지배구조의 효과로 재벌이 하청 중소기업들에게 장기적·협력적 관계를 갖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벌과 중소기업의 ‘상생관계’는 고용창출과 국민경제의 활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비판이 많았다. 이일영 교수는 “투자 촉진,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재벌과 사회적 타협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재벌을 더 많이 관용하고 안도하게 하는 것이 재벌정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는 “삼성이 거액을 사회에 내놓는다면서도 사회적 타협의 핵심인 노사관계에 대해선 아예 언급조차 회피한 것을 보라”고 말했다. “재벌 총수의 자발성에 기댈 것이 아니라, 채권은행·외부 소액주주·노동조합·시민단체 등이 자기권리 행사를 통해 재벌이 사회적 협력의 게임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협력게임에서 이탈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 감독·사법기구가 보여줘야 한다.”

조형제 교수는 “지금 당장 청와대, 재벌총수, 노조위원장이 모여 앉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노사관계를 중심으로 한 ‘중층적 타협’을 또다른 대안으로 제시했다. 재벌이 노동자와 중소기업을 중요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전체 이해관계자를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대타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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