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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5 20:29 수정 : 2006.05.15 20:42

진보 싱크탱크에 ‘새진보’ 길을 묻다

2006년 한국 진보개혁세력은 전망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 탓에 이 시대의 진보란 각자 알아서 도모하는 ‘일상의 일탈’ 이상의 의미가 아니다. 그 대부분은 자본과 국가가 관용을 베푸는 소비의 공간에 대한 것이다. 다함께 인간답게 사는 꿈은 그 뒤켠에서 한물간 구닥다리 취급을 받고 있다. 그 사이 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담론의 지평을 독점해 버렸다. 누군가 그 출구를 알고 있다면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진보개혁세력의 ‘머리’, 싱크탱크를 이끌고 있는 지식인들이다.

창간 18주년을 맞은 〈한겨레〉는 싱크탱크 다섯 곳의 대표를 한자리에 모았다. 장상환 진보정치연구소 소장(경상대 교수), 이병천 참여사회연구소 소장(강원대 교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최원식 세교연구소 이사장(인하대 교수), 김형기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경북대 교수) 등이 인터뷰와 좌담회에 참석했다.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실행위원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사회로 지난 6일 한겨레신문사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박원순 이사는 서면으로 의견을 보냈다. 이에 앞서 주요 현안에 대한 개별 인터뷰도 따로 진행했다. 토론회와 인터뷰 내용을 묶어 쟁점별로 지면에 옮겼다. 이들의 발언은 각 싱크탱크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견해’를 밝힌 것이다.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모두 담지는 못했다. 토론회 전문은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미래를 염려하는 〈한겨레〉 독자들이 이들의 고민에 잠시 눈높이를 맞추며 희망의 실마리를 건질 수 있길 기대한다.

진보개혁 싱크탱크 대표들의 고민은 진보의 ‘재정립’이었다. 국내외의 모든 조건이 불리하다는 위기감은 공통적이었다. 담론-정책-운동을 잇겠다는 도전의 자세도 닮아 있었다. 문제는 2007년이었다. 이를 분수령 삼은 한국의 진보는 어떻게 새로 태어날 것인가?

김형기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는 “2007년 대선은 한국의 미래를 둘러싼 진보-보수 대결의 장”이라며 “진보개혁세력을 사회적 다수자로 만들기 위해 여러 분산적 시도를 결집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상환 진보정치연구소 소장이 반박했다. “진보의 힘은 사회적 약자로부터 나온다. 현재의 한국 정치는 양극화의 피해자들을 대변할 구조가 취약하다. 이를 해결할 진보의 주체적 역량이 중요하다. 구체 정책을 통해 그 요구를 실현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게 싱크탱크의 최대 과제다.”

이 논쟁은 낯익다. 얼핏 80·90년대 ‘비판적지지론-독자후보론’의 재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토론의 함의는 더 깊어졌다. 80년대 후반은 민주화 세력의 공세기였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가로막힌 수세의 상황이다.

“노동·시민세력 새로운 연대로 보수·자유주의 넘어서야”

‘21세기판 신간회’의 필요성을 주장한 최원식 세교연구소 이사장의 말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오늘의 상황에 이른 것은 진보개혁세력이 역대 정부에 분리 흡수됐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이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서로 연대하는 대통합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대목에 대해서도 이병천 참여사회연구소장의 강조점은 달랐다. “어떤 취지든 다시 대동단결론에 기댈 수는 없다. 긴 호흡으로 한국적 진보의 새 활로 개척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이 소장의 고민은 ‘자유주의 세력과 구분되는’ 진보세력의 정립이다. “진보의 독자적 영역을 키우지 않는다면 결국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담론에 끌려갈 것”이라는 우려다. 그 역시 연대를 강조했지만, 핵심은 “노동세력과 시민세력의 자기변신을 통한 새로운 연대”다.


2007년 대선으로 다가갈수록 이 논쟁은 전에 없이 크게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진보개혁세력의 존립에 대한 위기감이 큰 만큼, 역대 중도개혁정부에 대한 실망감도 깊기 때문이다.

어떤 입장이건 앞으로의 진보-보수 구도가 정책대결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은 일치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2007년 대선에선 정책을 놓고 깊이 있는 토론이 벌어질 것”이라며 “(각 후보가) 준비한 정책이 얼마나 시민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것인지가 중요하고, 미리 철저히 준비할수록 국민적 신뢰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의 고민은 오히려 다른 데 있었다. “학자를 데려와 급조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참여정부 시기의 혼란도 여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박 이사는 “생활현장의 경험을 축적하는 싱크탱크에 의한 구체 정책의 준비”를 강조했다. 다른 싱크탱크들도 이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진보적 정책담론을 만들어 대안을 제시하겠다.”(김형기) “‘행복한 나라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희망한국 프로젝트’에 대한 대응이다.”(장상환) “구체적 진보가 필요하다. 보수세력은 이제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한 그라운드 안에서 싸워야 한다.”(이병천)

“학자가 급조한 정책 안돼 생활현장서 구체대안 생산”

장상환 소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의 학생과 노동자는 최초고용계약제를 저지했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법안에 대해서도 별로 참여하지 않는다. 양극화라는 대세를 저지할 대안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기득권에 접근해서 그 국물이라도 얻으려 한다.” 결국 문제는 그들 앞에 내놓을 대안이다.

김형기 대표는 “진보가 우월한 게 아니라, 다수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능력이 우월하기 때문에 진보라고 생각하자”고 말했다. 더 나은 능력을 보여줄 실마리는 있다. ‘사회적 공공성 담론’은 진보개혁세력의 굳건한 버팀목이다. 이병천 소장은 “사회 공공성 담론을 통해 진보세력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고 폭넓게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가지 있다. 분단극복을 지향하는 평화와 통일의 담론이다. 최원식 이사장은 “반세기 이상 유지된 분단의 해체가 평화적으로 연착륙하도록 한반도의 미래를 폭넓게 고민하자”고 말했다. 사회공공성과 분단극복의 담론, 진보개혁 싱크탱크들의 출발선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진보세력 지향점 ‘세갈래 길’

김형기·장상환·이병천 대체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최원식 분단극복 중간국가…박원순 풀뿌리 민주주의

한국 진보개혁세력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미래지향을 물었다. 5개 싱크탱크 대표의 답은 모두 달랐다.

김형기 공동대표는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혁신주도 동반성장 모델’이 대안적 발전모델로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생태의 가치를 통해 새로운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 대표가 말하는 것은 ‘한국형 제3의 길’에 대한 모색이다.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성장을 원하고 재원조달 없이 복지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장상환 소장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제시했다. 미국과 스웨덴 모델을 대비하면서 “내부 문제를 외부 팽창을 통해 해결하는 미국 모델을 우리한테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신 “내부 연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스웨덴 모델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스웨덴 모델에 대해서도 다소 거리를 뒀는데,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보다 더 ‘좌파적’인 지향”이라고 설명했다.

이병천 소장은 ‘시민민주주의와 시민자본주의’를 말했다. “최근 새로운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제3의 길’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도 ‘실행’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소장은 양자를 극복하는 길을 민주주의 이념의 새로운 작동에서 찾고 있었다. “시장에 포섭되지 않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존중하는 ‘다중활동사회’에 기반해 시민적 사회민주주의, 사회생태적 시민민주주의 등을 지향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세 사람의 생각은 현재 한국 진보개혁세력의 이념적 반경을 얼추 대표한다. 왼쪽에는 사회주의의 오류를 고쳐잡고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좌파적으로 해석하려는 흐름이 있다. 오른쪽에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는 제3의 길을 한국에 적용하려는 흐름이 있다. 그 가운데서 시장에 포섭되지 않는 ‘시민’을 주체로 불러내 민주주의 국가 이념을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들과는 ‘인식의 틀’을 달리하는 두 입장이 더 있다. 우선 분단체제론이다. 최원식 이사장은 “사회민주주의가 우리 현실과 맞을지 의문”이라며 “(사민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분단된 사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서 오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분단체제의 평화적 극복을 통한 ‘중간국가’의 건설”을 제시했다. 여기서 중간국가란 “팽창을 위한 대국주의도 아니고 하향평준화된 폐쇄적 소국주의도 아닌, 삶의 질이 높게 보장되는 품격있는 사회”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담론의 자리에 정책부터 차곡차곡 채우자는 입장이다. 박 이사는 “큰 담론이 아니라 지역의 재생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만드는 데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무게중심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에 맞춰져 있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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