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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3 19:04 수정 : 2006.05.18 01:46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더 나은 대안 더 좋은 사회’

<선진대안포럼> 대토론회 2부 선진을 향한 대안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이 마련한 신년특집 대토론회 2부에서는 미래를 향한 구체적 대안 모색의 길을 고민했다. 진보개혁진영 내부를 성찰한 대토론회 1부(<한겨레>2일치 4·5면)에 이어 계속된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진보의 성장 담론’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올 한해 동안 계속될 고민의 중요한 단초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12월23일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성찰과 대안’을 주제로 7시간 동안 열린 특별대토론회 가운데 ‘진보, 이젠 말할 수 있다’ 부분을 발췌해 싣는다.

한국적 ‘사민주의’ 모델 추구할 때
‘글로벌’에 기죽지 말고 내적 논리로 재구성
노동시장 충분히 유연 ‘안정적 연합’ 묶어내야

양현아= 노무현 정권 아니 이전의 김대중 정권에서부터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적 태도였다. 민주를 외치던 정치 지도자들이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대세’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한국의 사회 속에 뿌리 내리는 데는 수만가지 길이 있을 것임에도 신자유주의의 국내 수용이나 대응이 약했던 것은 이미 노무현 정부 전의 일이다. 촌스럽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
하지만 노무현 정부 역시 그런 관점을 벗어나진 못한 것 아닌가. 국제적인 맥락에서 정치, 경제, 인권 관련 잇슈들이 국제적 맥락에서 제기되고 협상될 때, 한국의 책임자들은 이른바 국제적 스탠다드라는 것을 이미 주어진 것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주체로서 자기 논리를 어떻게 구성해 왔는지 묻고 싶다.

신자유주의 대응도 국수주의적, 국민주의적으로 가자는 게 아니라 20세기 초엽 역사, 식민주의, 분단, 전쟁과 경제개발이라는 전체적 흐름 속에서 전망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 중심, 수익성과 경쟁력있는 산업만 밀어주고 있는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의 기반은 뿌리채 뽑히고 있다. 민중을 돌보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


박명림= 진보는 성장을 고민해야 한다. 다시 역사로 돌아가자. 진보와 성장은 배타적이지 않다. 20세기의 선진국가는 유럽과 미국, 영연방밖에 없었다. 전부 서구국가들이다. 비서구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이밖에 세 나라가 지금 선진국 진입의 경계에 놓여있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다. 선진국가에 진입한 사례들을 보면 중요한 두 가지가 발견된다. 하나는 노동 없는 성장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노동과 자본의 동반성장이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업과 노동이 균형과 타협을 이룬 생산 체제 없이 어느 일방이 과도하게 강력한 조건에서 안정적인 민주주의 발전은 불가능했다. 독점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역사적 경로와 운명을 잘 통찰하자. 그런 점에서 최근 노동의 위기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하다.

둘째 발전국가나 법치국가, 사민주의 모두 옛날 모델들이다. 21세기 발전모델로서 이제 ‘사회적 국가’, 또는 ‘사회국가’ 모델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할 때이다. 경제, 젠더, 빈곤, 노동, 세계화(이주 노동자 포함) 등을 모두 아우르는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사회국가’라는 용어로 재구축해보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많은 수정이 있었지만, 결국은 박정희가 설정한 국가모델을 민주화하였을 뿐 국가모델 자체를 재구성하지는 못했다. ‘87년 체제’는 사실상 ‘민주화된 61년체제’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탈냉전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진행됐다. 그런데도 새로운 국가의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제야말로 한국의 진보는 박정희 체제와 87년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 국가‘ 모델을 제시, 창출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한국의 진보세력, 또는 한국민주주의는 새로운 ‘사회적 국가’모델을 제시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
홍성태= 지금은 전환기다. 고도성장과 민주화라는 거시구조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성취를 어떻게 안정화하고 확장할 것인가가 오늘날 진보세력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 경제와 정치가 이룬 성과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그 동안 진보세력은 이에 대한 비판에 주로 촛점을 맞춰왔지만, 이런 엄청난 성과의 바탕에 민중의 피와 땀이 있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문제를 놓치지 말되, 성과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예전같이 추상적인 구조적 위기론 같은 것으로 성과를 폄하하는 것은 미래와 후손을 위해 잘못된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다.

이제 정권의 민주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기존의 성장 방식을 고수하고자 하는 세력과 이에 맞서는 세력의 대립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이 사이에서 진보와 보수 전선이 크게 변경되고 있다. 성장 문제와 관련해서 우선 성장동력과 성장방식 두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성장방식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다. 이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삼성의 ‘매력있는 한국’이라면, 진보세력은 이에 맞서서 고도성장과 민주화를 통해 쌓은 정치경제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성장방식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성장방식의 문제를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재벌 문제나 양극화 문제 등의 바탕에는 환경파괴의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개혁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선진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환경파괴경제를 환경보호경제로 바꾸는 것은 한국 경제와 사회의 선진화를 위한 핵심적과제다.

재벌개혁은 대기업 노동운동 개혁과 직결돼 있다. 대기업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보다 재벌과 더 가까운 사이인 것 같다. 재벌 문제만큼이나 중요한데 그 동안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문제도 있다. 바로 공사 문제다. 공사는 우리가 여전히 박정희가 만든 사회체계, 곧 ‘박정희체계’ 아래서 살아간다고 말하는 주요한 근거다. 아직도 공사에 의존하는 경제적 비중이 크고, 이것이 한국경제를 여전히 국가자본주의로 보이게 한다. 나아가 공사는 자기이익을 위해 불필요한 대규모 개발사업을 계속해서 벌인다. 새만금파괴사업도 농업기반공사의 자기이익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공사 임직원과 노조가 일심동체가 되어 환경파괴경제를 작동하고 있다. 기존 성장경제의 개혁이란 상당한 정도로 노동운동 자체의 자기 개혁을 요구하고 있어 더욱 이루기가 어렵다.

‘무늬라도 산별이어야 한다’는 김유선 소장의 말씀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한다. 산별이 가져올 수 있는 복지사회 투쟁의 강화 가능성은 절대로 얕봐선 안 된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이익집단화된 거대 노조의 관성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산별을 추진하는 동시에 노동운동의 목표나 노동자 자신의 욕망 자체를 개혁하려는 노력도 강화되어야 한다.

크게 보아서 사민주의적 복지사회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거시구조적 목표로 제시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큰 싸움은 이미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편에는 종래의 박정희체계를 동력만 바꾼 채로 유지하려는 재벌집단과 이 집단에 편승해서 최대이익을 챙기려는 낡은 노동운동 세력이 거대한 개발·성장연대 세력을 이루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이 세력에 맞서서 복지사회, 생태사회, 문화사회 등의 목표를 추구하는 여러 세력들이 사회 곳곳으로 흩어져서 다양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회 곳곳에 흩어져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존재들이 생태사회와 문화사회의 꿈을 간직한 사민주의 복지사회라는 공감대를 명시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면 더욱 커다란 구조개혁의 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진보세력이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거시구조적 과제이며, 성장방식의 개혁은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경제적 과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과연 진보개혁진영 안에 성장 어젠더가 존재하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진보개혁진영은 과연 지속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발전모델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다. 이와 연관된 세계사적 조건을 보면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오늘날 발전 혹은 성장 모델을 구속하는 이중적 조건은 기술과 노동이다. 첫 번째, 기술은 일종의 ‘사슬 풀린 프로메테우스’다. 아무리 기술을 사회적으로 규제하려 해도 그것은 자기발전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그 결과 정보사회는 가속화되고 세계화는 강화된다. 여기에 진보진영의 어려움이 있다. 두 번째 문제는 노동이다. 앙드레 고르가 강조하듯이 오늘날 세계 노동시장의 3분의1은 과잉노동력이다. 노동력의 과잉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시키고 실업율을 증가시킨다. 이 두 가지는 어느 나라도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구체적인 우리 경제의 현실을 보자. IMF 구조조정의 결과 현재 우리 주식시장의 40% 이상은 외국자본이 점유하고 있다. 중국에는 우리 중소기업 3만개가 이전해 있다. 이 규모는 중국 현지에서 90~100만명 정도의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를 갖고 있는데, 20대 대학생들을 고뇌케 하는 청년 실업 문제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과연 우리가 네덜란드, 아일란드, 스웨덴 같은 강소국으로 갈 것인가, 프랑스, 독일, 영국과 같은 강중국으로 갈 것인가. 이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인구 4800만명 정도로, 강소국 보다는 강중국에 가까운 편이다. 그 나라의 인구규모, 경제발전 수준, 지정학적 위치 등이 성장 및 발전 모델을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주목할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 의존적인 경제발전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비롯된 경로 규정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핸드폰, 반도체, 자동차, 컴퓨터, 선박 등이 전체 수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는 이것으로 먹고 산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런 경향을 계속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진보진영이 응답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IMF 경제위기를 맞이해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안전망을 결합시키는 완화된 한국적 ‘제3의 길’ 전략을 추진했다. 제3의 길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영국, 독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클린턴 정부 등 다양한 제3의 길 전략들이 있다. 김대중 정부는 우리 현실에 맞는 제3의 길을 만들었으며, 노무현 정부도 디제이 정부가 추진했던 제3의 길 전략을 대체로 받았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성장 및 발전 모델이 놓여 있는 조건이다.

성장 및 발전 모델에서 어떤 것을 이어가고 무엇을 수정할 것인가. 역사적 대타협에 기반한 성장촉진형 분배, 분배촉진형 성장 모델을 제시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가. 이런 목표 아래 진보개혁진영은 재벌개혁, 중소기업혁신, 비정규직 해소에 대해 국민 다수를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진보진영에 여전히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은 바로 이런 구체적인 대안 제시를 원하고 있다.

김유선 고려대 경제학
김유선= 성장이 분배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고리가 깨어졌음에도 이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복지제도 확충을 통한 사후적 보완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시민사회단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노동시장 내에서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불평등과 양산되고 있는 저임금계층을 방치한다면, 그나마 복지제도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것이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구조를 확립하려면,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제어하고, 최저임금 수준을 현실화하고, 산업별 단체교섭을 촉진하고, 산업별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를 신설하는 등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강소국 모델은 삼성이 주로 제기해 왔다. 핵심은 한국과 같은 대외의존적 소국경제는 몇몇 똘똘한 재벌이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구가 북유럽처럼 5~600만 명이 아닌 5천만 명이다. 강소국보다 강중국 모델이 맞다. 수출만으로 먹고 살 수 없고, 내수가 함께 굴러가야 한다. 비정규직 확대와 저임금 계층 양산은 내수부진과 성장 잠재력 잠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개혁을 통해 저임금계층의 소비수요를 창출하고 내수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성장을 위해서도 긴요하다.

특정 산업에서 성장 동력을 찾고 국가가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은 국가주의적 사고가 투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칫하면 한국 사회에 팽배한 성과주의와 맞물려 커다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황우석 사태가 단적인 예이다. 특정산업에서 성장 동력을 찾는 것은 민간이나 기업에 맡겨 놓고, 국가는 독과점 폐해를 막고 하도급 질서를 바로잡는 등 사회적 규제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산업별 고용구조를 살펴보면 공공행정, 교육, 의료 등 사회서비스업 비중이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밖에 안 된다. 따라서 고용창출은 주로 사회서비스업 일자리를 늘리는데서 찾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은 떼돈을 벌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제조업 수익성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인건비 비중은 9.7%로 77년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노동하기 나쁜 나라’가 실현된 것이다. 이것은 기업이 단기수익 극대화로 치달려 왔음을 의미하는데,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업지배구조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 모델은 하나의 참고 사항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한국 사회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해야 대안은 강구될 수 있다.

신정완=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오이씨디(OECD) 국가 평균 수준보다 조금 높은 정도이다. 성장률을 더 높이는 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유럽 복지국가 형성기에 비하면 한국이 성장률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우선 인구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로 인해 잠재성장률 자체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는 통일비용 문제다. 앞으로 더 대규모로 지출할 가능성이 높다. 통일 문제는 성장률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만, 통일이 준비되는 과정 자체가 한국의 경제정책을 더 자유주의적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커지는 측면도 있다. 만일 탈북자가 대량으로 남한으로 이주한다면 노동시장은 더 유연화될 것이고 임금하락 압력이 강해질 것이다.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될수록 중소기업의 한국 이탈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또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데 중국과 산업적 보완성을 유지하려면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 속도 못지않게 우리 산업구조도 빨리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성장의 질이 나쁘다. 경제, 사회 양극화의 문제다. 성장을 선도하는 부문의 성과가 다른 부문, 예컨대 중소기업, 내수 부문으로 흘러넘치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가 점점 약화되고 있다.

또 고려해야 할 요소의 하나는 한국사회의 계급구성이다. 한국에는 중소자영업자 등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통해 생활조건을 개선시키기는 어려운 반면에 시장여건에는 아주 민감하게 영향 받는 인구집단의 규모가 크다.

세계화 추세가 앞으로 장기지속 된다면 이에 기민하게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flexibility)을 확보해야 할 필요도 커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경제와 사회구성원의 생활조건의 안정성(security)을 확보해야 할 필요도 커진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지지하는 집단과 반대하는 집단을 각기 ‘유연성 연합’과 ‘안정성 연합’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결국 유연성과 안정성을 적절히 결합하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국민경제 여러 분야에서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유연안정성 확보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나라들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은 현재 한국의 실정과 가장 거리가 먼 나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직면한 바와 같은 여러 문제들을 비교적 잘 해결해 낸 나라들이다. 이러한 나라들의 경험을 어떻게 한국적 조건에 맞게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세계화 시대에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적극적 산업정책수단은 줄어든다.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이 어려워지므로, 이제는 인적자원의 질을 향상시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이에 기초하여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주된 경로가 될 것이다. 사회복지제도와 관련해선, 여성과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생애취업기간을 연장시키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사회복지제도가 설계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에서 육아, 평생교육 등 사회서비스(social services)의 비중을 증대시키는 것이 사회복지적 차원뿐 아니라 장기적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사회복지제도가 사회안전망일 뿐 아니라 사회학습망, 고용안전망으로도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설계를 해야 한다.

노동시장은 여성과 고령자 취업에 친화적인 구조로 만들어야 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정도는 산업특성에 맞게 수위조절을 하는 게 필요하다. 아이티(IT) 산업처럼 기민성이 필요하고, 생산요소의 유연한 결합이 필요한 부문에서는 다소 유연한 노동시장질서를 형성하고, 전통적 제조업처럼 노사간의 장기적 신뢰관계에 기초한 점진적 혁신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안정성이 강조된 노동시장질서를 형성하고 다소 집권적인 단체교섭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업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강조하는 것처럼 부품ㆍ소재 부문의 중소기업,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정책이 올바르다. 그런데 노동문제와 관련하여 최대의 현안인 비정규직 처우 개선 문제와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산업정책적 목표 간에 단기적으로는 충돌을 빚을 수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로 중소기업 부문에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중소기업 육성을 병행할 수 있는 정책적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재벌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선 전통적인 총수 중심형 기업지배구조와 순수한 주주자본주의형 기업지배구조 간의 양자택일적 논쟁구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실정에서 고려해볼 만한 대안으로는 노동자대표를 이사회의 소수위원으로 참여시키는 방안, 국민연금이 투자된 기업들에서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발언권을 행사하는 방안, 현행 사외이사제의 내실화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세계화라는 조건 하에서 향후 추구할 만한 경제체제 모델로는 유연성이 고려된 사민주의 모델, 또는 연성(soft) 사민주의 모델 정도를 중기적 목표로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은 유연성 정도가 과도하므로 상당기간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적정 수준의 ‘유연안정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현연 성공회대 정치학
조현연= 각자가 서있는 위치에 따라, 즉 문제제기자냐, 해결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진보 지식인이라면 발칙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모든 전환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현실가능성을 고민해야 되지만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과감한 프로그램을 제기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기도 하다. 유토피아의 꿈을 잃지 않은 발칙한 상상이 필요한 시기다. 현실의 질곡과 모순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유토피아의 꿈에서 나온다. 지속가능성, 현실성에 묻힌다면 발칙한 상상을 할 수 없다. 구사민주의든, 신사민주의든 경로의존성을 감안하면 그 실현이 너무 힘든 것이 한국사회다. 경로의존성만 본다면, 현실적이고 지속가능성만 고려한다면 오히려 한국사회는 친재벌 체제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이 정말 전환적 위기라면 창조적 상상력의 힘으로 한국 사회의 잠재적 가능성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조희연= 진보에서 성장을 이야기하는 경우에도 신연대주의적인 국가개입을 부단히 고민하고 한국적 모델을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우리 경제가 세계 경제에 통합된 역동적 부분이 있고 비통합부분의 단절·단락, 즉 역동적인 부분의 고용과 배제된 부분의 고용이 단락돼가는데, 상당 부분 개입을 통해 보완, 조정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가 추진해오던 혁신클러스터 정책 같은 경우도 모델링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 중요하다. 자본의 실제적 가혹성을 언제나 고려해야 한다. 비정규직 법안도 핵심 부분이 법안에 해고사유 제한해 놓지 않으면 실제에 있어서는 거의 무제한적인 자본의 가혹한 자유가 출현할 것이라는 불신 등이 있다. 성장과 유연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임지봉 건국대 법학
임지봉=북유럽식 사민주의 모델이 미래에 대한 대안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이미 우리 헌법은 이를 모델로 하고 있다. 헌법 119조에서 127조에 이르는 경제에 관한 상세한 조항에서, 사회적 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이미 규정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항상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헌법 23조 재산권 조항도 재산권 보장보다 제한에 더 무게를 두고 많은 조항을 할애하고 있다. 왜 우리 헌법이 이런가. 헌법초안을 작성한 유진오 박사가 건국헌법 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을 탐독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이 유진오 박사를 통해 유럽 사민주의 풍조가 건국 헌법에 많이 들어왔다. 따라서, 우리 헌법은 건국 헌법부터 사민주의 모델을 따왔던 것이다. 당시에 일부 지식인의 체화되지 못한 이상적 사민주의 모델이 헌법에 구현된 것이라면, 진보세력의 사민주의는 한국 실정에 맞게 이를 보다 더 체화시킨 실질적 사민주의 모델로 나아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정리/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다원적 진보 수입해 우리 특수성에 녹여
신연대국가 내와야- 조희연 교수 발제문 요약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신년특별대토론회 2부 ‘선진을 향한 대안’을 위해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발제했다. 아래는 그 요지다.

민주진보세력의 위기는 미래적 비전의 고갈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점차 민주진보세력이 과거를 먹고 사는 집단이 돼가고 있다. 보수세력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진보적 비전을 계발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민주성과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제고됐음에도 불구하고, 계급적으로 더욱 불평등한 사회가 되고 있다. 앞으로는 정치적·계급적으로 서로 다른 미래 프로젝트가 경쟁할 것이다. 이미 상층 계급의 이해관계에 투철한 신보수적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단일한 진보는 없다. 다원적 진보만이 존재한다. 중도자유주의적 프로젝트와 진보적 프로젝트 등 다양한 전망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신연대경제’ 또는 ‘신연대사회’를 고민할 수 있다. 신연대 프로젝트는 북유럽 조합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등으로부터 배우면서도 한국의 시민사회투쟁 및 민중투쟁의 정신을 ‘보편화’하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먼저 정치적 개혁주의에서 사회경제적 개혁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관점전환이 요구된다. 친시장국가, 개발국가, 토건국가에서 신연대국가 또는 사회적 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성장 대 분배의 대결구도에서, 진보는 분배를 대변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고민 지점들이 출현하고 있다. 토건국가적 신개발주의가 아니라, 신연대경제의 틀 내에서 성장동력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은 문제제기형 운동으로서 그 ‘르네상스’를 누렸다. 그러나 이제 단순한 문제제기를 넘어, 보다 책임있는 역할 모델과 개입양식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진보의 동력을 내부화하는 진보의 ‘경계’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의 선도국가 또는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선도자가 되는 노력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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