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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7 05:01 수정 : 2018.05.17 11:42

[창간30 특별기획/ 노동 orz]
1부 노동OTL 10년, 다시 찾은 제조업 현장 ③“밤에는 자자”

수면장애·소화불량에 우울증까지
건강 망치고 가족과 관계도 단절
기계가 안쉬니 노동자도 못쉬어

노동시간 단축 앞두고 현장 설왕설래
“월급 줄어들텐데 어떻게 살아가나”
“시간 줄이는 대신 강도 높이려나”

제조업 교대제 사업장 2만261곳 달해
“저임 단순노동자 맞춤대책 고민해야”

“엄마, 나 너무 무서운데…, 지금 와주면 안 돼?”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최미경(50·이하 모두 가명) 언니는 8년 전 걸려온 전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차 오른다. 최씨가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에서 주야 맞교대 노동자로 일한 지 1년이 채 안 됐을 때다. 밤 11시 수화기 너머 열세살 딸의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 방문과 창문, 문이란 문은 죄다 잠그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는데도 무서움이 가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열세살에게 엄마 없는 집은 너무 넓었다. 최씨는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며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최씨는 10년 가까이 일주일마다 낮밤을 바꿔 살았다. 남편과 이혼하고 친정에서도 독립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주야 맞교대는 돈이 됐다. 매일 12시간을 공장에서 보냈다. 주간조 땐 아침 8시50분부터 밤 9시까지 일했다. 심야조 땐 밤 8시50분부터 일해 아침 8시20분에 퇴근했다. 야간 노동과 장시간 노동의 ‘콜라보’였다. 야간 근무를 하는 주엔 수면장애와 소화불량이 극심했다. 최근엔 엄지손가락 힘줄에 염증이 생겨 움직일 때마다 권총 쏘듯 ‘딱’ 소리가 나는 ‘방아쇠수지증후군’으로 병원에 다닌다. “잠은 항상 모자랐어. 기분이라도 좋게 일해야 하는데 심야조로 출근하면 우울함도 심해지더라고. 10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아.”

주야 맞교대의 장시간·야간 노동은 최씨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아이와의 거리도 벌려놓았다. 전화를 붙잡고 울며불며 엄마를 찾던 아이는 머리가 클수록 엄마와 거리를 뒀다. 같은 집에 살아도 얼굴 마주 볼 새가 없었다. 야간조로 일할 땐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최씨가 집을 나섰고, 최씨가 퇴근하면 아이는 학교에 가고 없었다. 주간조로 근무할 때도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엄마를 찾던 어린 딸은 스무살을 넘긴 뒤 집을 나가 따로 산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시작한 일인데 그냥 없이 살아도 애 옆을 지키고 있을걸 그랬나봐….” 언니가 말끝을 흐렸다.

주야 맞교대 노동은 야간 노동, 장시간 노동과 동의어다. 최씨와 같은 주야 맞교대 노동자는 하루의 절반을 일터에서 머물며 적어도 한 달에 2주일은 야간 노동을 한다. 연장 노동 한도(주당 12시간)를 넘는 사례도 잦다. 사용자 입장에선 기계를 24시간 돌리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반도체 등 설비·기계에 투자한 금액이 클수록 공장 가동 시간은 늘어난다. 기계가 쉬지 않으니 노동자도 쉴 수 없다.

지난 9일 저녁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한 야간근무자들이 공장으로 향하고 있다. 안산/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다시 한번 “밤에는 자자” 남들 쉴 때 일하고 일할 때 쉬는 불규칙한 노동 패턴은 노동자의 몸과 삶을 갉아먹는다. 2007년 국제암연구기구(IARC)는 ‘교대 근무’를 납이나 자외선과 같은 ‘2A’급 발암 물질로 분류했다. 가족·친구 등 사회적 네트워크도 단절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야 맞교대를 법으로 제한하는 나라도 있다. 핀란드는 노동시간법(Working Hours Act)으로 야간 노동을 제한한다. 밤 11시부터 아침 6시 사이 최소 3시간 이상 노동하는 경우를 ‘야간 노동’이라고 보는데, 야간 노동이 가능한 직종은 경찰과 병원 등으로 한정돼 있다. 제조업은 새벽 1시 이후 야간 노동을 지시하려면 반드시 3개 이상의 교대조를 운영해야 한다.

한국에선 안전보건공단이 교대 근무를 운영하기 위해 사용자가 취해야 할 조처를 열거하고 있지만 의무 규정이 아니어서 실효성이 없다. 야간 노동의 임금을 가산하기 위한 규정만 있지, 교대·야간 노동을 규제하는 법적 장치 자체도 공백 상태다.

2013년 현대자동차를 시작으로 일부 완성차 공장이 “밤에는 자자”며 주야 맞교대 근무 형태를 개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교대 근무는 여전히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체 사업장의 33.4%는 야간 노동을 포함해 교대 노동이 이뤄지고 있고 ‘주야 2조 2교대'가 가장 높은 비중(40.3%)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교대제 실시 이유로 ‘업무 특성상 교대 근무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다수였지만, ‘설비와 시설을 최대한 가동하기 위해서'라고 답한 비율도 20.7%를 차지했다.(한국노동연구원 2013년 사업체패널조사, 정흥준 부연구위원)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 통계를 보면, 교대제를 운영하는 제조업 사업장은 2만261곳이며 이 가운데 70.7%(1만4320곳)가 2조 2교대(2조 주간2교대 제외)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이니 스마트 시대니 말들은 많지만, 한국의 제조업은 여전히 노동력을 갈아 넣는 낡은 방식의 ‘장시간 저임금 체제’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장시간 야간 노동의 온상인 교대제 개편 논의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활발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2월27일 주당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5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토·일요일 16시간의 추가 근로를 허용했던 행정해석을 바로잡아 노동자에게 52시간 이상의 노동을 요구하는 것이 위법한 행위가 된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룬 것이지만, 노동자가 임금 때문에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주야 맞교대 형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현장에선 “노동 강도 세질라”, “월급 줄어들라” 설왕설래 경기도 안산의 공단에서 만난 김철수(41)씨는 7월만 기다리고 있다. 그가 다니는 자동차 부품 회사는 일주일마다 주·야간을 교대하는데 한 주 평균 노동시간이 70~75시간에 이른다. 그는 지난해 여름 법정 노동시간에 더해 한 달 111시간(오버타임·시간외 노동)을 더 일했다. 같은 기간 156시간의 오버타임을 기록한 동료도 있었다. 일요일 저녁에 퇴근한 뒤 월요일 저녁에 출근하기 전(주간→야간), 일요일 아침 퇴근해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기 전(야간→주간) 등 주간·야간 바뀌면서 24시간 정도 ‘비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 시간이었다. 오는 7월 다가올 변화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7월부터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우리끼리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 365일 24시간 일할 수 있는 회사’라고 말해요. 잔업·특근도 빠질 수 없는 분위기였거든요. 법이 바뀌어서 강제적으로라도 일을 안 할 수 있는 상황이 됐으니, 좋죠.”

그러나 사쪽은 노사 협의를 진행하며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노동 강도를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 사람이 한 개 라인을 담당했다면 두 개 라인을 한꺼번에 보라는 식이다. “저희 노동 강도는 이미 극에 달해 있어요. 협상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요. ‘여기서 강도를 높인다고? 장난해?’ 사람들 반응이 이래요. 저희가 단거리 선수처럼 하루 이틀 전력으로 일하고 말 것도 아니고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노사 협의는 일시 중단된 상황이다.

현장에서 만난 생산직 노동자들은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인천 공단에서 만난 파견 노동자 박수연(31)씨는 잔업·특근이 축소되면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을 내비쳤다. “일하는 시간 진짜 너무 길어. 그런데 이건 공무원이랑 사무직 좋으라고 한 법 아닌가. 우리같이 잔업·특근으로 먹고사는 시급직들은 어떡하라는 거지?”

‘저임금’ 탓에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주장이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전체 노동자 임금 중위값의 3분의 2 미만)는 전체 노동자 중 23.7%로 4명 중 1명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아일랜드와 미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수치다. 청와대 누리집에는 “저녁이 있는 삶보다 먹고사는 삶이 더 절박하다”는 청원이 100건 이상(5월5일 기준) 올라와 있다. ‘노예라고 불러도 좋으니 일을 더 할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도 들린다. “생산직 비정규직은 잔업과 특근 없이는 돈이 안 됩니다. 적어도 월 87만원의 소득이 줄게 생겼습니다. 최저임금 오르면 뭐합니까, 노동시간이 줄어드는데. 저녁을 먹을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저녁거리를 살 수 있도록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 저임금 구조에 대한 보완책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단기적으로 노동시장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지난 9일 오후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 한 공장 앞에 버려진 쓰레기 옆에 큰 캐리어가 함께 버려져있다. 이름표도 찾아볼 수 없다. 인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노동시간 단축이 남긴 질문…현장 실효성 높이는 ‘핀셋 정책’ 노동시간 단축은 노사정이 합의한 대원칙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복잡한 질문을 남긴다. “노동 강도는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임금은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인원은 얼마나 충원할 것인가”, “교대 근무는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당장 원청과 1·2·3차 하청업체 노동자의 처지가 다르다. 완성차 공장의 2차 하청업체 노동자 ㄱ씨는 “원청이 교대제를 개선하면서 하청업체 노동자의 잔업·특근이 절반으로 줄어 당장 월급이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파견 노동자의 경우 노동조합을 구성할 수 없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사 협의는 불가능에 가깝다. 개별 사업장, 개별 노동자에 대한 종합적·다각적 고민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한쪽을 눌렀을 때 나머지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 효과를 낳는다. 현장 노동자들이 정책 실효성을 느낄 수 있는 세밀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은 획일적으로 시행해선 안 된다”며 “노동시간에 비례해 급여를 받는 저임금·단순 노무자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등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또 업종에 따라 휴식권을 강제하는 제도도 고안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오래 일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을 뿐이다. 노동자들이 장시간·야간 노동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 고민은 저임금 노동에 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져야 한다. 김재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노동자의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거래 구조가 확립되는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개별 사업장 사업주나 노동자에게 부담이 모두 전가되면 답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5~49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3년 뒤에 법을 적용받게 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정부 로드맵에 맞춰 ‘최저임금 1만원 연착’과 연동돼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저녁출근이 두려운 9호기…워라밸은 딴세상이었다
화장품 공장 노동자로 살아본 한달

지금으로부터 꼬박 10년 전입니다. 당시 <한겨레21>의 임인택 기자는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난로 공장 노동자로 한 달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아침이 두려운 9번 기계’라 표현했습니다. 10년이 흘러 인천의 한 화장품 제조공장 파견 노동자로 다시 ‘9호기’ 앞에 앉았습니다.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현실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졌습니다. 그때와 달리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일해 ‘저녁 출근이 두려운 9호기’가 됐다는 점만 달랐습니다.

경기도와 인천의 공장으로 출근했던 한 달 내내 최대 관심사는 ‘잠’이었습니다. 특히 야간조로 출근하는 2주일이 그랬습니다. 휴대전화 알람 시계는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맞춰둔 알람 40여개로 그득했습니다. 일할 때 혹여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없는 쌍꺼풀을 만들며 눈을 치켜떴습니다. 아침 퇴근길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상쾌하기보다는 멍하게 느껴질 때, 오늘 몇 시쯤에 잠들어서 몇 시쯤에 깨면 되겠다 생각하며 손가락을 접곤 했습니다. 생체 시계를 단번에 180도 돌려야 하는 ‘주야 맞교대’를 버텨내기 위해, 잠은 항상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었습니다. 무자비한 컨베이어 벨트 공정 스케줄에 저의 생체 리듬을 맞춰야 했던 한 달간, ‘내 시간’을 조종하는 방향키는 내 손에 쥐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잔업이야?”, “아니요, 야간이요.” “야, 좋겠다.” 인천 화장품 제조공장에서 만난 언니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비꼬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좋겠다”는 말 앞에 (돈 벌어서)라는 괄호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야간조에 들어가기 위해선 빠진 자리를 기다리는 ‘대기’가 필요했습니다. 경기도 안산의 제조업 공장에선 티오(TO)가 하나뿐인 야간조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제 앞에만 두 명이 줄 서 있었습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무슨 이유를 대건 결국 최저시급보다 50% 많은 ‘야간 근로수당’을 받기 위해 장시간 야간 노동을 자처하는 언니들에게 유행처럼 떠도는 ‘워라밸’(워크앤라이프밸런스·일과 삶의 균형)이란 말은 딴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2016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05시간이 많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 다만 노동자가 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도 함께 조성되길 기원해봅니다. 하루 12시간을 일터에서 보내지 않아도, 밤샘 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해도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고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 여건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노동자들에게도 자신의 ‘시간 주권’을 지키는 방향키가 쥐어지지 않을까요.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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