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0 특별기획/ 노동 orz]
1부 노동OTL 10년, 다시 찾은 제조업 현장 ③“밤에는 자자”
수면장애·소화불량에 우울증까지
건강 망치고 가족과 관계도 단절
기계가 안쉬니 노동자도 못쉬어
노동시간 단축 앞두고 현장 설왕설래
“월급 줄어들텐데 어떻게 살아가나”
“시간 줄이는 대신 강도 높이려나”
제조업 교대제 사업장 2만261곳 달해
“저임 단순노동자 맞춤대책 고민해야”
지난 9일 저녁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한 야간근무자들이 공장으로 향하고 있다. 안산/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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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 한 공장 앞에 버려진 쓰레기 옆에 큰 캐리어가 함께 버려져있다. 이름표도 찾아볼 수 없다. 인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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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출근이 두려운 9호기…워라밸은 딴세상이었다
화장품 공장 노동자로 살아본 한달 지금으로부터 꼬박 10년 전입니다. 당시 <한겨레21>의 임인택 기자는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난로 공장 노동자로 한 달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아침이 두려운 9번 기계’라 표현했습니다. 10년이 흘러 인천의 한 화장품 제조공장 파견 노동자로 다시 ‘9호기’ 앞에 앉았습니다.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현실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졌습니다. 그때와 달리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일해 ‘저녁 출근이 두려운 9호기’가 됐다는 점만 달랐습니다. 경기도와 인천의 공장으로 출근했던 한 달 내내 최대 관심사는 ‘잠’이었습니다. 특히 야간조로 출근하는 2주일이 그랬습니다. 휴대전화 알람 시계는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맞춰둔 알람 40여개로 그득했습니다. 일할 때 혹여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없는 쌍꺼풀을 만들며 눈을 치켜떴습니다. 아침 퇴근길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상쾌하기보다는 멍하게 느껴질 때, 오늘 몇 시쯤에 잠들어서 몇 시쯤에 깨면 되겠다 생각하며 손가락을 접곤 했습니다. 생체 시계를 단번에 180도 돌려야 하는 ‘주야 맞교대’를 버텨내기 위해, 잠은 항상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었습니다. 무자비한 컨베이어 벨트 공정 스케줄에 저의 생체 리듬을 맞춰야 했던 한 달간, ‘내 시간’을 조종하는 방향키는 내 손에 쥐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잔업이야?”, “아니요, 야간이요.” “야, 좋겠다.” 인천 화장품 제조공장에서 만난 언니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비꼬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좋겠다”는 말 앞에 (돈 벌어서)라는 괄호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야간조에 들어가기 위해선 빠진 자리를 기다리는 ‘대기’가 필요했습니다. 경기도 안산의 제조업 공장에선 티오(TO)가 하나뿐인 야간조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제 앞에만 두 명이 줄 서 있었습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무슨 이유를 대건 결국 최저시급보다 50% 많은 ‘야간 근로수당’을 받기 위해 장시간 야간 노동을 자처하는 언니들에게 유행처럼 떠도는 ‘워라밸’(워크앤라이프밸런스·일과 삶의 균형)이란 말은 딴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2016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05시간이 많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 다만 노동자가 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도 함께 조성되길 기원해봅니다. 하루 12시간을 일터에서 보내지 않아도, 밤샘 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해도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고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 여건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노동자들에게도 자신의 ‘시간 주권’을 지키는 방향키가 쥐어지지 않을까요.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화장품 공장 노동자로 살아본 한달 지금으로부터 꼬박 10년 전입니다. 당시 <한겨레21>의 임인택 기자는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난로 공장 노동자로 한 달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아침이 두려운 9번 기계’라 표현했습니다. 10년이 흘러 인천의 한 화장품 제조공장 파견 노동자로 다시 ‘9호기’ 앞에 앉았습니다.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현실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졌습니다. 그때와 달리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일해 ‘저녁 출근이 두려운 9호기’가 됐다는 점만 달랐습니다. 경기도와 인천의 공장으로 출근했던 한 달 내내 최대 관심사는 ‘잠’이었습니다. 특히 야간조로 출근하는 2주일이 그랬습니다. 휴대전화 알람 시계는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맞춰둔 알람 40여개로 그득했습니다. 일할 때 혹여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없는 쌍꺼풀을 만들며 눈을 치켜떴습니다. 아침 퇴근길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상쾌하기보다는 멍하게 느껴질 때, 오늘 몇 시쯤에 잠들어서 몇 시쯤에 깨면 되겠다 생각하며 손가락을 접곤 했습니다. 생체 시계를 단번에 180도 돌려야 하는 ‘주야 맞교대’를 버텨내기 위해, 잠은 항상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었습니다. 무자비한 컨베이어 벨트 공정 스케줄에 저의 생체 리듬을 맞춰야 했던 한 달간, ‘내 시간’을 조종하는 방향키는 내 손에 쥐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잔업이야?”, “아니요, 야간이요.” “야, 좋겠다.” 인천 화장품 제조공장에서 만난 언니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비꼬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좋겠다”는 말 앞에 (돈 벌어서)라는 괄호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야간조에 들어가기 위해선 빠진 자리를 기다리는 ‘대기’가 필요했습니다. 경기도 안산의 제조업 공장에선 티오(TO)가 하나뿐인 야간조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제 앞에만 두 명이 줄 서 있었습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무슨 이유를 대건 결국 최저시급보다 50% 많은 ‘야간 근로수당’을 받기 위해 장시간 야간 노동을 자처하는 언니들에게 유행처럼 떠도는 ‘워라밸’(워크앤라이프밸런스·일과 삶의 균형)이란 말은 딴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2016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05시간이 많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 다만 노동자가 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도 함께 조성되길 기원해봅니다. 하루 12시간을 일터에서 보내지 않아도, 밤샘 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해도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고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 여건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노동자들에게도 자신의 ‘시간 주권’을 지키는 방향키가 쥐어지지 않을까요.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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