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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01 05:00 수정 : 2018.06.01 16:44

일러스트 이재임

[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 orz] ‘샌드위치’ 노동자 콜센터 상담원
② 내 ‘욕받이 값’은 얼마입니까

고객은 ‘왕’, 원청은 ‘갑’
과잉친절 강요받는 상담원은 ‘병’

8년차 수연 언니 만성두통
10년차 인선 언니 허리통증
정은 언니는 안면마비 경험
“고객 종 취급하면 백약이 무효”

일러스트 이재임
김현수(47·이하 모두 가명)씨는 ‘대구 사투리를 쓰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면 지금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난다. 2008년, 김씨는 한 홈쇼핑 회사의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했다. 일한 지 3개월쯤 됐을 때 대구 사투리를 쓰는 한 여성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홈쇼핑으로 시계를 샀는데 반품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김씨가 해당 고객의 구매내역을 보니 시계는 5년 전에 산 상품이었다. 김씨는 회사 매뉴얼에 따라 “제조업체에 알아보겠지만 반품이 어려울 수 있다”고 안내했다. 고객은 소리를 질렀다. “반품이 왜 안 된다는 거야?”

고객은 종일 김씨를 괴롭혔다. 자신이 건 전화를 김씨가 아닌 다른 상담원이 받으면 “당신 회사에 정신병자 상담원이 있다”며 김씨를 바꿔달라고 요구한 뒤 폭언을 이어갔다. 해당 고객의 통화 녹취를 들어본 관리자는 “상담원 잘못이 아니다. 고객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문제의 고객에게 ‘폭언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는커녕, 김씨를 잠시 업무에서 빼주는 최소한의 조처도 없었다. 분명 뭔가 잘못됐는데 고통은 온전히 상담원 개인의 몫이었다. 김씨는 자리 정리도 못한 채 콜센터에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목에 걸려있던 출입카드도 콜센터 근처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콜센터를 그만둔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여성 고객 전화를 받으면 그때 생각이 나요.” 김씨가 쓴웃음을 지었다.

콜센터 상담원은 폭언과 욕설에 항상 노출돼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3년 상담원 540명을 상대로 조사해 발간한 ‘서비스 산업의 감정노동 연구’를 보면,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68%)이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인격 모독과 성희롱도 잦다.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을 들은 이는 72%, 폭언이나 욕설을 들은 비율은 65%에 달했다. 성희롱을 당했다는 상담원도 10명 중 3명(32%)이었다.

금융사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조은혜(32) 언니도 욕설과 폭언을 일삼는 고객에 데인 경험이 있다. 은혜 언니는 “하루아침에도 투자금이 왔다갔다 하니 민감한 건 이해하지만,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고객의 욕설로부터 자신을 지킬 방법은 없었다. 그곳 콜센터에도 ‘욕설을 하면 상담을 계속할 수 없다’고 세 번 안내한 뒤 전화를 끊을 수 있다는 매뉴얼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한 번은 너무 화가 나서 욕을 한 고객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종이에 적어둔 적도 있었어. ‘여기 그만두면 고소하겠다’는 마음이었지. 근데 결국은 뭐 흐지부지됐어. 잘못하면 역고소를 당할 수도 있겠더라고.” 대부분의 콜센터는 입사할 때 ‘고객 정보를 유출하지 않는다’는 비밀유지 서약서를 쓴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회사의 침묵과 고객의 폭언 속에 그저 버틸 데까지 버티다 회사 문을 나선다.

하지만 콜센터는 ‘과잉 친절’로 심화되는 이런 감정노동을 당연시한다. 기자가 교육받았던 콜센터의 응대 매뉴얼은 “고객에게 ‘감사하다’, ‘죄송하다’라고 응답하라”는 지시사항이 강조돼 있었다. 상품을 배송받을 주소를 불러준 고객에게는 “소중한 정보 확인에 감사드린다”고 해야 했고, 반품이나 교환을 원하는 고객에겐 “기대가 크셨을 텐데 만족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다. 기자와 콜센터 입사동기인 손정은 언니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과 다퉜다는 소문이 들렸다. 정은 언니는 “전에 다녔던 콜센터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안면근육에 마비가 왔고, 그 일로 직장을 그만뒀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던 정은 언니가 참다 못해 고객과 다툰 다음날, 신입 상담원 교육을 담당했던 관리자는 입사동기 상담원들을 모아놓고 “고객이 스트레스 풀 데가 없어서 그런 것이니 고객과 싸우지 말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콜센터의 모든 판단 기준은 소비자였다.

실제 콜센터 상담원 노동자 실태조사를 결과를 보면, 절반 이상(59%)이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들어도 전화를 끊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58%)은 “고객에게 폭언을 들어도 무조건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다. “폭언, 성희롱 등을 당한 뒤에 잠시 쉴 수 있다”는 응답은 54%였지만, “바로 다음 전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응답도 31%에 달했다.(‘서비스 산업의 감정노동 연구’, 한국노동연구원)

권현지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콜센터 업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보니 주로 친절도로 승부를 보려 한다”며 “콜센터의 친절도 경쟁 때문에 고객들도 (고객과 상담원 간 주종관계를) 원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불친절하다고 느끼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손님은 왕’이라는 업체의 수수방관 속에 상담 노동자들의 속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행히 콜센터 상담원 등 감정노동자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높은 편이다. 기자가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던 3월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는 ‘감정노동자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콜센터 상담원이 고객의 폭언으로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생길 것 같으면 업무를 일시 중단하거나 전환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회사가 이를 거부하면 1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법은 지난 3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정은 언니의 사례처럼, 콜센터가 상담원을 ‘고객의 종’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소비자가 왕’이라는 기업의 논리 때문에 상담원이 소비자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지 못하고 오로지 감내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는 상담원의 감정노동을 가중시키는 주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콜센터 방치 속에 상담원들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콜센터에서 몇 년 동안 일한 적이 있는 언니들은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8년차 상담원인 정수연(42) 언니는 몇 년째 만성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언니는 두통의 원인을 ‘심리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감정을 숨기고 일하니까 스트레스가 몸으로 표출되어 그런 게 아닌가 싶어.” 2009년부터 상담원으로 일한 박인선(42) 언니도 스트레스로 인한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전 직장에 있을 때 악성 콜을 많이 받는 날마다 허리가 아프더라고, 그래서 그만뒀어. 근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시 콜센터로 왔네.”

2013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콜센터 상담원 540명 조사 대상자 가운데 43.7%는 우울증을 비롯해 서비스업 6대 질환(하지정맥류, 근골격계 질환, 소화장애, 생리불순, 성대결절)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약 25%는 우울증 의심군으로 분류됐고, 40%는 사회심리적 건강 고위험군이었다.

전문가들은 간접고용 구조인 콜센터 외주업체뿐만 아니라 원청의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객은 왕이고, 원청이 갑’인 상황에서 상담원들은 ‘병’의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찬임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콜센터는 도급계약이 흔하게 이뤄지는 분야이다 보니 콜센터 상담원은 외주업체 소속인 경우가 많다”며 “콜센터를 외주화한 도급사도 콜센터의 운영 방식과 관련이 있는 만큼, 도급사에도 콜센터 상담원의 노동조건에 대해 책임을 지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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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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