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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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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 orz] ‘샌드위치’ 노동자 콜센터 상담원
② 내 ‘욕받이 값’은 얼마입니까
‘고객과 다투지 말라’ 촘촘 매뉴얼
전화 끊으려면 세번이나 욕먹어야
“죄송하다면 다야?” “귀 먹었어?”
은근한 비하와 인격모독 일상처럼
감정노동·‘닭장’ 노동 대가는 최저시급
밥값 아끼려 도시락에 자판기 커피
월급은 10년 전부터 계속 내리막
못견뎌 떠났다가 다시 ‘전화지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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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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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우리,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이 되어 낮밤을 바꿔가며 일하는 맞교대 노동자의 삶과 일터가 첫 번째 장면이었습니다.
이번엔 ‘사무직 공장’(White-collar Factory)이라 불리는 노동 현장, 콜센터입니다. 70~80㎝ 간격의 좁은 칸막이 사이에 앉아 종일 전화를 받는 상담원들의 삶이, 밀려드는 부품을 꾸역꾸역 조립하는 공장 노동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기 너머 마주하게 되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서울 서남권의 한 홈쇼핑 콜센터가 두 번째 현장입니다.
3월14일, 콜센터로 출근해 한창 전화를 받고 있었다. ‘따르릉~’ 전화가 연결됐다.
“안녕하십니까 ○○쇼핑 신민정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문하려고.” “네 고객님, 성함과 휴대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십니까?”
“거기 컴퓨터에 뜨지 않아?” “네 고객님, 본인 확인을 위해 한번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고객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사람 피곤하게 왜 그래? 거기 이름 전화번호 뜨는 거 다 아는데 피차 귀찮게 왜 불러달라는 거요? 물건 사러 전화한 사람한테 물건만 팔면 되지 이름이랑 전화번호가 왜 필요해요? 대체 언제부터 고객한테 이름이랑 전화번호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몇 년 전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는지 알아와요!”
팀장에게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언제부터 인입 고객(전화를 건 고객) 이름과 전화번호를 확인했는지 아세요?” 팀장은 ‘고객이 그런 걸 묻냐’고 의아해하면서도 ‘이 홈쇼핑 콜센터 개국 이래 계속해왔다’고 알려줬다. 고객에게 그대로 전했다.
“네 고객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쇼핑에서는 △△△△년 개국 이래 정확한 주문 및 배송을 위해 본인 확인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고객은 잠시 침묵했다. “전에 상담원은 그러지 않았단 말이야. 당신이 잘못 아는 거야!” 전화가 ‘툭’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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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에는 나오지 않는 ‘진상’들 콜센터에 취직한 직후 만났던 교육 담당자는 자신의 상담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넸다. “처음엔 고객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요. 나중이 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게 돼요. 그냥 ‘이 고객은 화풀이할 데가 없는 사람이구나, 불쌍하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고객의 말에 초연해지려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할까. 다행히도 콜센터는 상담원이 자신을 다독이며 모든 것을 감내하도록 방치하진 않았다. 기자가 일했던 홈쇼핑 콜센터는 고객의 갖은 문의에 상담원이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도록 촘촘한 고객 응대 매뉴얼을 갖고 있었다.
욕설 고객에 대한 응대도 있었다. 매뉴얼에는 고객이 욕설을 할 때 “욕설을 하시면 상담이 어렵습니다”라며 1차 경고를 하고, 그래도 또 하면 2차 경고, 그래도 또 하면 3차 경고를 한 뒤 전화를 끊을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전화를 끊으려면 세번이나 욕을 먹어야 하다니…’라고 생각하던 차, 매뉴얼 강의를 하던 강사가 말했다. “근데 만약 상담원이 고객님을 짜증 나게 해서 고객님이 욕을 했다고 가정해 봐요. 거기서 ‘욕설을 해서 상담이 어렵다’고 하면 고객님이 뭐라고 생각할까요? 그러면 안 되겠죠?” 어떤 경우에 상담원이 욕먹을 만한 걸까. 몇몇 수강생은 웃었고, 몇몇 수강생은 웃지 않았다.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탓인지 최근엔 콜센터 고객들 가운데 대놓고 욕설이나 성희롱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은근한 비하나 무시, 인격모독은 일상이었다. 홈쇼핑 상담원은 업무 특성상 고객이 불러주는 주소와 카드번호 등을 입력해야 한다. 이를 한번에 알아듣지 못하면 “아가씨 귀먹었어?” “이런 것도 한번에 못 알아들으면서 어떻게 상담원을 하는 거야?”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런 식이다. “경기도 에레스로…” “고객님, ‘애래수로’ 말씀이십니까?” “아니 이 아가씨 귀가 먹었어? 엘!에!스!로! 엘에스 회사도 몰라? 엘!에!스!”
매뉴얼에 나오지 않는 당황스러운 일도 수시로 마주해야 했다. 옷을 주문하는 고객에게 “이 상품은 상표를 제거하시면 교환 및 반품이 어렵습니다”라고 안내했다. “내가 언제 반품한다고 했냐, 왜 사람을 이상하게 몰아가느냐”라고 소리를 지르는 고객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매뉴얼에는 없었다. “▽▽신용카드를 쓰면 할인이 되느냐”고 묻기에 “해당 카드는 죄송하지만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죄송하면 다냐”고 화를 내는 고객에겐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영양제를 주문하면서 “이 영양제 효과 없으면 죽여버릴 거다”라고 말하는 고객을 응대하는 방법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매뉴얼에는 ‘고객과 싸우지 말라’고 돼 있으니, 그저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쩔쩔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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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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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고객은 모른다. 전화를 받는 상담원의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누구의 엄마이고 누구의 딸인지. 어떤 고객에게 상담원은 자신의 요구를 빠르게 처리해주는 ‘자판기’일 뿐이었다.
고객의 한마디로 마음에 파도가 이는 기자와 달리 최미영(가명. 이하 모두 가명) 언니는 언제나 고요했다. 점심을 먹으며 “어제 드라마 보고 펑펑 울었잖아”라며 눈물을 글썽일 정도인 언니였지만, 일터에서는 맷집이 셌다. 40대 초반인 미영 언니는 이전에 두곳의 홈쇼핑 콜센터에서 13년 정도 일했던 베테랑이다. 아들이 중학교에 막 입학했으니, 언니는 아들이 태어난 직후부터 이 일을 한 셈이다. 언니는 한 홈쇼핑의 재택 상담원으로 10년 남짓 일했다고 한다. 맷집은 세졌지만 그 10년 동안 마음 한구석엔 풀 데 없는 멍울이 생겼다. “맨날 집에 있으니까 옷값 안 들고, 화장품값 들지 않는 건 좋았어. 근데 집에서 벽 보고 전화만 받으니 우울증이 오더라고. 맨날 남편이랑 아들한테 애꿎은 화풀이를 하게 되고….”
미영 언니는 일을 그만두는 대신 출퇴근하는 다른 홈쇼핑 콜센터로 옮겼다. 일과 생활을 분리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목이 부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팀장에게 조심스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출근이 어렵다”고 얘기했다. 팀장은 결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면 사무실에서 (목소리 안 써도 되는) 사무라도 보세요.” 언니는 일을 그만뒀다. 아프다는 직원한테 일단 출근부터 하라는 회사에 미련이 없었다. 미영 언니는 지금 그 선택을 후회한다. “거기가 여기보다 월급이 더 많았거든. 거기 관리자한테 자리 생기면 불러달라고 해뒀어. 거기서 불러주면 여기는 그만둘 거야.”
자식을 키우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중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 대학생 아들을 둔 김진숙 언니도 아들을 키우는 내내 맞벌이를 했다. 50대 중반인 진숙 언니는 콜센터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팀장도, 매니저도, 센터장도 언니보다 어렸다. 진숙 언니는 영업왕 출신이다. 보험과 카드 영업을 했다. 언니는 영업에 수완이 있었다. 억대 연봉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진숙 언니는 “어느 순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데에 지쳤다”고 했다. 불확실한 수입도 문제였다. 성과가 좋은 달은 월급을 1000만원까지 받은 적도 있지만 어느 달은 100만원도 벌기 힘들었다. 그래서 진숙 언니는 적더라도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나이가 많은 중년 여성도 기꺼이 받아주는 콜센터 업계로 들어섰다. 정수기회사 콜센터, 은행 콜센터 등을 다녔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다. 정수기회사는 고객 불만이 많았고, 은행은 상담원에게 점점 더 전문 지식을 요구했다. 진숙 언니는 조금이라도 덜 힘든 콜센터를 찾아 옮겨 다녔고 그렇게 이곳에 왔다. 미끄럼틀을 타듯 저임금 일터로 내려온 셈이다. “전이랑 비교하면 월급은 적지만 일은 확실히 편해.” 언니는 만족한 듯 말했다.
그랬던 진숙 언니도 한달 만에 그만뒀다. 진숙 언니는 “동료 상담원들이랑 친해져 봐야 한달만 지나면 거의 다 그만둘 테니 연락처 교환은 안 하겠다”며 누구에게도 전화번호를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진숙 언니가 왜 이곳을 그만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 콜센터에 원서를 넣었지만 나이 때문에 이곳에 유일하게 합격했다는 언니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진숙 언니는 줄곧 맞벌이했다고 했으니, 또 다른 일터로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콜센터인지, 아니면 언니가 잘했던 영업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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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욕받이 값은 최저임금 콜센터 일은 힘들고 월급은 너무 짰다. ‘이 돈 벌자고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다.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230원 많았다. 최저시급 기준 주5일 하루 8시간씩 일하면 157만3770원를 받게 되는데, 여기 신입 상담원이 한달 만근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57만4000원이었다. 4대 보험과 세금 등을 떼면 143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이 돈으로는 밥 사 먹기가 무서울 수밖에 없다. 콜센터 휴게실에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각각 두 대씩 있다. 냉장고에는 언니들이 집에서 가져온 반찬들로 꽉꽉 채워져 있고, 전자레인지는 늘 바쁘게 돌았다. 언니들은 냉동실에 얼려놓은 밥을 전자레인지로 돌리고, 냉장고에서 오이지, 무말랭이, 김 등을 꺼내 함께 먹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오거나, 컵라면에 날달걀을 넣고 전자레인지로 데웠다. 콜센터가 있는 건물 1층엔 5000원짜리 순두부찌개, 6000원짜리 순댓국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카페의 아메리카노는 1900원이었다. 5000원짜리 밥을 사 먹고 커피까지 마시면 6900원. 한 시간 동안 설움을 견디며 전화를 받은 대가와 맞먹었다. 그래서 언니들은 콜센터 휴게실에서 밥을 먹고 콜센터에서 마련해준 공짜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콜센터 저임금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통계청의 서비스업 조사와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정책자료를 보면, 콜센터 상담원 상용종사자의 1인 평균 연간 급여액은 2014년 기준 2084만원이다. 2007년 1950만원에서 그다음 해 2151만원까지 올랐다가 이후 다시 지속해서 감소해 2014년 2084만원이 된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데도 콜센터 임금 수준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콜센터 종사자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회사도 낮은 급여 수준을 다소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콜센터에 지원할 때 본 채용공고에는 ‘월평균 190만/일 쉬움’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확한 급여를 알게 된 것은 5일간의 교육이 끝나던 3월2일이었다. 교육장 맨 앞 스크린에 월급표를 띄운 센터장은 숫자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입사 후 6개월까지는 이 금액(약 157만원)’을 받게 되고, 1년이 지나면 ‘이 금액(약 162만원)’을 받게 된다”고 레이저 포인터로 화면을 짚었다. “식대를 따로 주느냐”는 진숙 언니의 질문에 “포함된 금액”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둘러 이어진 ‘성과급’ 파트에선 센터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센터장은 “상담원의 콜 수와 콜 품질 평가에 따라 적게는 5만원, 많게는 3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조금만 열심히 해도 최소 5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전 150만원대 월급을 받는 상담원에게 30만원의 인센티브는 월급의 20%에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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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이 되면 잘살 수 있을까 하지만 센터장은 콜센터에서 3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상담원 200여명 가운데 단 한명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단 한명만이 ‘전화 지옥’의 실적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 3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30만원을 손에 쥐려면 얼마나 전화를 받아야 할까. 회사에서 나눠준 성과표를 보니, 센터 상위권인 상담원의 시간당 콜 수는 14.2에 달했다. 기자의 거의 두배(7.5)였다.
다른 콜센터에서 성과급 제도를 경험해본 진숙 언니는 기자에게 “욕심내지 말라”고 했다. “돈 몇 푼 더 받겠다고 욕심부리면 나만 괴로워져. 화장실 안 가고 식사시간 줄여 전화 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기본급은 정해져 있으니까 딱 그만큼 일해서 그만큼만 가져간다고 생각해야지, 욕심부리면 병나.” 한 보험사 콜센터에서 반년 정도 일했다는 박인선 언니도 “그때 내 입사 동기가 센터에서 딱 두명이 받는 에스(S) 등급을 몇 번 받았거든.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니,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밥 먹는 시간 아껴 전화 받았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전화 스트레스를 하도 받아서 퇴근할 때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대”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조언은 조언일 뿐이었다. ‘이왕 고생하는 거 좀더 고생하고 많이 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입사 동기 미영 언니가 그랬다. 언니는 콜 수에 민감했다. 늘 자신의 콜 수와 동료의 콜 수를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언니는 “오늘 유정씨가 나보다 한 콜 더 받았던데?”, “오늘 내가 졌어. 언니가 나보다 더 많이 받았어” 같은 농담을 하곤 했다. 미영 언니는 신입치고 나쁘지 않은 시간당 콜 수(10)였지만 상위권이 되기엔 한참 모자랐다.
미영 언니뿐 아니라 대부분 언니들은 전화를 최대한 많이 받으려고 애썼다. 전화를 끊고 처리해야 하는 후처리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고, 휴게실에서 밥을 허겁지겁 입에 넣은 뒤 다시 워크스테이션으로 돌아가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끝나면 곧바로 다른 전화가 들어오고, 끊으면 숨돌릴 틈 없이 다시 벨이 울리는 ‘전화 지옥’에 자리 잡기를 자처했다. 그렇게 버텨서 몇만원이라도 더 받으면 아이들 반찬이, 교복 브랜드가, 학원이 바뀔 수도 있다. 그렇게 버티다가 몸이나 마음이 아파서 더 견딜 수 없으면 떠났다. 미영 언니가 우울증으로 10년 일했던 홈쇼핑 콜센터를 그만두고 다른 콜센터를 찾은 것처럼, 진숙 언니가 은행 콜센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에 왔다가 다시 떠난 것처럼 말이다.
언니들은 그렇게 그만두고 나서도 “이 나이에 받아주는 곳이 없다”, “당장 취직해 돈 벌 만한 곳이 여기밖에 없다”면서 다른 콜센터에 입사지원서를 넣었다. 언니들이 떠난 자리는 또 다른 언니들이 채웠다. 기자에게 콜센터는 퇴근할 때까지 전화가 끊이지 않는 ‘전화 지옥’이었지만, 중년의 나이에 일자리를 찾는 언니들에게는 기꺼이 손을 내미는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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