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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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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 orz] ‘샌드위치’ 노동자 콜센터 상담원
③ ‘총알받이’ 내 인생
방송가격·안내정가 “왜 달라?”
고객 분노 받아내는 총알받이
홈쇼핑 직원이니 책임지라지만
실제론 아웃소싱 소속일 뿐
초보상담원 최저임금 주고 고용
관리자 감시 체계로 콜수 유지
못견뎌 나간 자리 저임금 돌려막기
일자리 안정성 없는 ‘짝퉁 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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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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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우리,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이 되어 낮밤을 바꿔가며 일하는 맞교대 노동자의 삶과 일터가 첫 번째 장면이었습니다.
이번엔 ‘사무직 공장’(White-collar Factory)이라 불리는 노동 현장, 콜센터입니다. 70~80㎝ 간격의 좁은 칸막이 사이에 앉아 종일 전화를 받는 상담원들의 삶이, 밀려드는 부품을 꾸역꾸역 조립하는 공장 노동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기 너머 마주하게 되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서울 서남권의 한 홈쇼핑 콜센터가 두 번째 현장입니다.
“당신 회사가 이따위 물건을 판 거 아니냐. 그러니까 당신이 책임져야지!”
지난 3월7일, 헤드셋 너머로 고객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3일 전 보정 속옷을 산 고객이었다. “속옷을 입어봤는데 사이즈가 너무 작다”며 반품을 요구한 고객은, 기자가 “반품비 5000원이 제외된다”고 설명하자 대뜸 소리를 질렀다. 고객은 “홈쇼핑으로 판 물건이니 홈쇼핑 직원인 상담원이 책임지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엄밀히 따지면 고객의 주장은 틀렸다. 기자가 일했던 콜센터의 모든 상담원은 홈쇼핑 회사의 직원이 아니었다. 상담원은 모두 콜센터 전문 아웃소싱 업체 직원이고, 홈쇼핑 회사는 아웃소싱 업체에 콜센터 운영을 위탁한 ‘고객사’였다.
두 명의 고객 콜센터 상담원에게 고객은 둘이다. 하나는 상품을 사주는 고객, 다른 하나는 콜센터를 아웃소싱한 고객사다. 기업들이 직접 콜센터를 운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텔레마케팅 서비스 업체’라고 불리는 콜센터 아웃소싱 전문업체가 하청받아 운영하거나, 기업이 자회사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기업들은 콜센터를 외주로 돌리기 시작했다. 외주화 물결은 민간기업도, 공공기관도 마찬가지였다. ‘콜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공동캠페인단’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자료를 종합하면, 2010년 기준 주요 공공기관 콜센터 7800여개 가운데 직영 비율은 15.7%에 불과했다. 권현지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비용 문제로 서비스업에 대한 광범위한 아웃소싱이 이뤄져 왔는데 콜센터도 그중 하나”라며 “‘콜센터 상담 업무는 단순 업무’라는 인식이 있어 굳이 본사의 정규직으로 고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를 고용한 콜센터 운영업체도 유통, 금융, 통신, 국제기구까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50여곳의 콜센터를 맡아서 운영했다. 기자가 일했던 콜센터의 아래층에는 같은 업체가 운영하는 △△마트 콜센터가 있었다.
상담원은 아웃소싱 업체의 필요에 따라 콜센터를 옮겨 다니기도 한다. ○○홈쇼핑 콜센터에서 만난 조은혜(32·가명, 이하 모두 가명) 언니가 그런 경우였다. 은혜 언니는 □□금융사 콜센터의 비정규직 상담원으로 3개월 일하다 ○○홈쇼핑 콜센터 상담원으로 넘어왔다. □□금융이 외주 계약을 해지하자 같은 업체가 운영하는 홈쇼핑 콜센터로 넘어온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은혜 언니의 소속은 □□금융에서 ○○홈쇼핑으로 바뀌었지만, 정작 은혜 언니의 삶은 달라지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언니는 줄어든 월급에 관심이 있었다. “이전 콜센터보다 업무가 쉬운 것도 아닌데 월급은 적어. 다음 달쯤 그만두려고 하는데 혼자만 알고 있어.” 은혜 언니는 함께 점심을 먹은 뒤 기자에게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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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일했던 콜센터 자리의 모습. 전산시스템과 홈쇼핑 화면 등을 띄워놓는 듀얼 모니터와 전화기, 헤드셋 등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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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같지 않은 정규직 기자는 4주간 콜센터 아웃소싱 업체의 ‘정규직’ 상담원으로 근무했다. 구직 사이트에서 콜센터를 검색했을 때 공고의 상당수가 아웃소싱 업체 소속의 ‘정규직’ 모집 공고였다. 공고마다 ‘정규직/주5일’, ‘정규직/일 쉬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들 업체는 모두 4대 보험과 퇴직금, 연차휴가 등을 강조했다.
그러나 취직을 해보니 콜센터 상담원은 ‘무늬만 정규직’인 경우가 많았다. 우선 콜센터 상담원은 ‘아르바이트’ 수준의 임금을 받았다. 기자가 일했던 홈쇼핑 콜센터에는 200여명의 정규직 상담원과 10명 안팎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상담원이 있었다. 신입 정규직 상담원이나 아르바이트 상담원이나 최저시급을 받았다. 물론 정규직 상담원은 근속연수에 따라 근속수당을 받기도 했지만, 5~10만원 수준이라 임시직에 비해 낫다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콜센터 아웃소싱 업체의 정규직은 고용 안정성도 높지 않았다. 금융, 유통 등 고객사와 1~2년 단위로 위탁 계약을 맺고 콜센터를 운영하다 보니, 고객사와 계약이 해지되면 자연스럽게 상담원도 일자리를 잃는 구조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은 “(아웃소싱 업체 정규직 상담원은) 위탁 계약이 종료될 경우 상담사들의 고용 계약도 자동으로 해지되기 때문에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비정규직의 3대 요소를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고용 불안으로 본다면, 콜센터 정규직 상담원은 비정규직의 요건을 두루 충족하는 ‘짝퉁 정규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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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일했던 콜센터 내부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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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사가 ‘갑’, 상담원은 ‘병’ 이런 구조 탓에 아웃소싱 업체는 상담원을 쥐어짜게 마련이다. 도급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용을 낮춰야 하므로 최저임금만 줘도 되는 초보 상담원을 고용한다. 짧은 교육을 마치고 투입된 상담원의 콜수와 상담 품질을 보장할 수 없으니, ‘큐에이’ 등 이름으로 상담원을 감시한다. 참다못한 상담원이 그만두면 새로운 상담원을 저임금으로 채용한다. ‘저비용 고효율’의 악순환이다. ‘저임금 서비스 노동시장의 젠더 불평등’(권현지 교수 등) 논문은 “고객사는 낮은 비용으로 높은 효율을 내는 콜센터를 운영하길 원하고, 이에 콜센터는 상담원에게 싼 임금을 주며 관리자의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콜수 압박을 넣는다”고 지적했다.
계약 연장의 열쇠를 쥔 고객사는 상담원에게도 두려운 존재다. 고객사에게 가장 불쾌한 일은 상담원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본사로 민원이 넘어오는 일이다. 이에 상담원들은 고객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를 썼다. 기자가 신입 상담원 교육을 받던 3월2일, 교육강사는 이 콜센터에 두고두고 전해져 내려오는 실수담을 전했다. 한 상담원이 업무를 잘못 처리해서 고객이 불편을 겪었고, 이 고객이 이를 조목조목 적어 고객사에 민원 제기하는 바람에 센터가 뒤집혔다는 내용이었다. 교육강사는 “결국 서울에 있는 고객사 직원들이 지방에 사는 고객님 댁까지 찾아가 사과를 했다”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날 교육의 요지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상담을 할 때 관련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자’였다. 하지만 정작 기자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것은 ‘상담원 때문에 고객사가 고개를 숙였고, 그 상담원은 곧바로 쫓겨났다’는 결론이었다.
억울할 때도 있었다. 고객들은 고객사의 과도한 상술에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분노를 받아내는 것은 고객사와 고용관계를 맺지 않은 상담원들이었다. 기자가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항의는 “왜 방송에 나온 가격과 상담원이 안내해주는 가격이 다르냐”는 것이었다. 홈쇼핑 방송에서는 ‘카드·일시불·자동주문’ 등 각종 할인 혜택을 중복 적용한 최저가를 큼지막하게 보여준다. 정가는 그 밑에 콩알만 한 글씨로 쓰여 있다. “당신네 회사 왜 그러냐, ○○쇼핑 직원인 상담원이 책임지라”는 고객의 말에 “죄송하다”,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어쩔 줄 모르는 건 아웃소싱 업체 소속인 상담원의 몫이다.
콜센터 상담원을 ‘총알받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담원은 고객의 분노를 매끄럽게 처리해 분노가 고객사로 향하지 않도록 ‘1차 방어선’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첫 팀 회식이 있던 3월19일, 일반 상담원에서 출발해 콜센터 경력만 20년쯤 된다는 센터장이 해줬던 말은 의미심장했다. “고객사가 갑, 고객은 을, 상담원은 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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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 떠나는 이유 언니들은 이곳을 오래 다닐 직장으로 여기지 않았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을’도 아닌 ‘병’의 지위 등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는 탓이었다. 다른 홈쇼핑 콜센터에서 일하다 이직한 최미영 언니는 월급이 좀 더 많았던 전 직장에서 다시 불러주길 바라며 잠시 머물렀다. 언니는 “전 직장 관리자가 자리 생기면 불러주겠다고 했다”며 “그 회사에서 불러주면 이곳은 바로 그만둘 예정”이라고 했다. 은행 콜센터를 석 달쯤 다녔다던 김진숙 언니도 “어차피 한 달만 지나면 다 그만두고 동기 중에 한두 명밖에 안 남을 것”이라고 ‘예언’을 하더니, 언니가 먼저 그만뒀다. 그리고 진숙 언니의 예언이 맞았다. 콜센터를 다니며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투잡’을 뛸 계획이었던 손정은 언니도, 신입 교육 당시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필기하던 박순정 언니도, 패스트푸드점 매니저를 하다가 온 신이슬씨도, 콜센터에 투입된 첫 주에 기자와 같이 끙끙댔던 이주영 언니도 모두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콜센터 상담원은 저임금을 받으며 하루에 백 콜 이상씩 받는 ‘무늬만 정규직’”이라며 “일자리의 질을 따질 때 단순히 ‘정규직=좋은 일자리’라고 볼 게 아니라 고용의 질, 임금, 업무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권현지 교수는 “콜센터 상담원의 노동조건에 대해 정규직이냐 여부를 이분법적으로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콜센터가 고객과 만나는 접점인 만큼 기업도 단순한 비용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전화기 너머 사람이 있습니다”
콜센터 상담원로 살아본 한달
콜센터에는 늘 상담원이 부족했습니다. 첫 출근을 한 날부터 퇴사할 때까지, 구직 사이트에는 기자가 일하는 콜센터의 구인 공고가 매일 올라왔습니다. 콜센터 내부 회의실에서 면접을 치르는 구직자들을 매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사람이 모자랐습니다. 콜센터엔 매일 그만두는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매일 ‘채용 중’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자는 왜 언니들이 쉽게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8시간 동안 마음 놓고 화장실에 갈 자유도, 폭언하는 고객에게 항의할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전화 받으라’ 독촉하는 매니저, ‘이름을 스타카토로 발음하는지’ 평가하는 큐에이(QA) 강사, ‘화장실 가는 것도 보고하라’는 팀장이 모두 목을 죄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것은 ‘을’과 ‘병’의 전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센터장과 팀장도 콜센터 업무를 위탁한 원청, 고객사 앞에서 철저히 ‘을’이었습니다. ‘최소 비용 최대 효과’를 위한 감시노동은 ‘을’의 생존전략이었습니다. 싼값에 물품을 구매하려다 상담원에게 폭언을 퍼붓고 마는 고객들 역시 진정한 ‘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고객사의 상술에 속은 분노를 ‘총알받이’들에게 퍼부었습니다. 그 어느 곳에도 원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갑’이 사라진 무대, ‘을’과 ‘병’들의 전쟁에 승자는 없었습니다.
“콜센터 상담원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순 없는 일입니다.” 한 독자가 보내온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양한 고객들과 직접 접하고, 그들의 구체적인 요구에 응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공지능 ‘챗봇’과 에이아르에스(ARS) 등이 상담원을 대체하고 있지만, 여전히 급할 때는 ‘상담원과 바로 연결하기’ 버튼을 누르기 때문입니다.
‘저비용 고효율’의 논리가 지배하는 콜센터 업계에 온기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상담원을 간접 고용하는 고객사, 콜센터를 운영하는 아웃소싱 업체 모두 ‘사람’을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무게를 알았으면 합니다. 고객 역시 ‘상담원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도, 이를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전화기 너머 사람이 있다’는 인식일 것입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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