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orz]
4부 플랫폼님, 제가 정말 사장님입니까
① 초조한 ‘두바퀴’
<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낮밤을 바꿔 일하는 제조업체 노동자와 감정·감시 노동의 이중고를 겪는 콜센터 노동자,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들의 삶을 전해드렸습니다.
기술 발달로 배달대행 앱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위탁계약’을 맺은 탓에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됩니다. ‘노동orz’의 이번 장면은 두 바퀴에 몸을 의지해 아스팔트 위로 쫓기듯 내몰린 배달대행기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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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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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곳 음식 받아 40분내 배달하려다
중앙분리대 들이받는 아찔한 사고
불안 싣고 질주하는 ‘도로위 사장님’
배달대행 ‘2달만 할게요’ 마다 안해
건당 3천원 받고 3주간 ‘사장님’으로
면접 본 6곳 중에 3곳 산재 미가입
수리비 22만원에 병원비까지 자부담
‘띵동’ 주문콜 잡으려 액정 ‘타다탓’
‘픽업픽업픽업 배달배달배달’ 언제쯤?
콜받기 경쟁·배송 독촉·성과급제에
교통사고 터지는 건 결국 ‘시간문제’
조리시간 15분. 경과시간 17분17초, 18초, 19초….
휴대전화 배달 앱 화면 속 숫자는 야속하게 올라갔다. 조리에 15분 걸렸으니, 배달시간은 고작 2분 지났을 뿐인데 벌써 17분 지났다고 ‘경고’했다. 조급함이 몰려왔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 ○○구이 ‘업장’(배달대행을 맡기는 음식점을 부르는 은어)과 염리동 □□떡볶이에서 음식을 픽업해 각각 공덕동, 도화동에 배달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픽업엔 20분, 배달까지 20분, 총 40분 안에 끝내야 한다. 40분이 지나 자칫 고객이 수령을 거부하기라도 하면 음식값을 고스란히 물어야 한다.
아침 첫 픽업 업장이었던 △△칼국수에서 배달이 늦었다고 벌써 한소리 들은 터였다. 칼국수 가게 사장님은 알려주지도 않은 기자의 이름을 부르며 “수경씨, 우리 음식은 불잖아. 손님 끊기면 어쩌려고. 어제 너무 오래 걸렸더라”고 핀잔을 놓았다. ‘저 사장님이 내 사장님도 아닌데….’ 고민도 잠시, 머릿속엔 서둘러야겠다는 압박만 남았다.
○○구이 음식을 배달통에 넣고 □□떡볶이까지 1.2㎞를 4분 안에 내달려야 했다. 가는 길에 교통신호는 4개. 신호 하나당 최소 1분을 잡아먹는다. 이날따라 빨간 신호등에 두번이나 걸렸다. 불법 유턴을 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150여m 더 직진해 유턴 신호를 기다렸다. 배달 앱에 뜬 경과시간은 21분 43초, 44초…. □□떡볶이 앞 갓길에서 오토바이 브레이크를 허겁지겁 잡았다. 시동을 끄지 않고 왼쪽 발로 거치대를 내렸다.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는데 오토바이가 왼쪽으로 기우뚱했다. 급하게 내린 거치대가 제대로 내려오지 않은 듯했다. 왼쪽으로 70도 정도 기운 오토바이를 세우려고 핸들을 잡고 오른쪽 골반에 걸친 오토바이의 몸통을 밀어 올리던 찰나, 손에 쥐고 있던 핸들 액셀이 당겨진 탓인지 오토바이가 앞으로 튕겨 나갔다. 오토바이는 반쯤 내려온 거치대를 따라 왼쪽으로 돌더니 차로 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앙분리대를 향했다. 핸들을 잡고 있던 기자의 몸도 편도 3차로를 거슬러 함께 중앙분리대로 돌진했다.
“어, 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맞은편 차선으로 오토바이와 함께 고꾸라졌다. 잠갔던 배달통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구이 음식이 아스팔트 위로 쏟아졌다. 떡볶이집 사장님과 그 옆 주유소 직원이 놀라 달려나와 오토바이를 갓길로 옮겼다. 배달음식이 터지진 않았는지 먼저 눈이 갔다. 배달음식을 통에 넣은 뒤 인도 쪽으로 절뚝이며 걸었다. 떡볶이집 사장님이 “괜찮아요? (배달업체) 사장님한테 내가 전화해줄게요”라고 했다. 그제야 오른쪽 허벅지와 정강이가 아려왔다. 왕복 6차로 대로에 빨간 신호를 받고 정차해 있던 운전자들이 기자를 힐끔거렸다. ‘넘어질 때 주행신호가 파란불이었으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왈칵 눈물이 터졌다.
전날 구매한 3만원짜리 오토바이용 충전 거치대에서 떨어져 나온 휴대전화에선 “접수~콜” “접수~콜” 배달 접수를 알리는 신호음이 ‘솔파~라’ 음계로 잇따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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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경 기자가 지난달 2일 서울 마포구 빵가게에서 음식을 받아 배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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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 저 배달일 할게요” 기자는 지난 4월23일부터 5월9일까지 배달대행업체에서 배달기사로 일했다. 첫 2주는 주문과 배달을 모두 대행하는 ㄱ업체에서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0시간씩 주 5일 일했다. 셋째 주부터 배달만 대행하는 ㄴ업체로 옮겨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2시간 주 6일을 일하던 중 5월9일 사고를 당했다. 4주 예정이었던 ‘위장취업’은 사고 탓에 3주째에 막을 내려야 했다.
배민라이더스·푸드플라이·바로고 등 배달대행업체에 속한 기사들은 건당 3000원 안팎의 수수료를 받는다. 배민라이더스, 푸드플라이는 자체 앱에서 주문까지 받고, 바로고·생각대로 등은 위탁계약을 맺은 업장에서 들어온 배달 의뢰만 대행하는 구조다. 수수료는 거리에 비례했다. 기자가 처음 일한 ㄱ업체에서는 음식점과 배송지 거리가 500m 늘 때마다 500원 정도 배달료를 더 받았다. 거리는 직선거리로 쟀다. 실제 달리는 거리를 가장 짧게 뚫어야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배달대행’을 검색하니 700여건이 떴다. 서울 지역으로 한정하면 320여건이었다. 지리가 가장 익숙한 마포·서대문 인근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로 했다. 업체들은 ‘월 500만원 이상 가능’ ‘월 400만~600만원’ 등 고수익을 내걸었다. 배달 경험이 없는 기자는 ㄱ업체, ㄴ업체 3개 지사, ㄷ업체, ㄹ업체 등 6곳에서 면접을 봤다. 전화한 당일에 3곳, 다음날 3곳. 여성 라이더가 거의 없어 구직이 어려울지 모르겠다는 우려는 기우였다. 면접에서 일할지 말지 결정하는 건 구직자였다.
면접은 배달 물량이 가장 적은 오후 2~5시에 이뤄졌다. 6곳 모두 “얼마나 일할 거냐”고 물었다. 기자는 “2개월 정도요”라고 답했지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ㄱ업체 본부장은 기자가 출근한 첫날 “여기 있는 사람들이 오래 일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6곳 중 산재보험에 가입되는 곳은 3곳뿐이었다. 그나마 2곳은 원치 않으면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며 ‘(배달기사 몫의) 수익을 늘리는 팁’까지 말해줬다. 기자가 처음 일했던 ㄱ업체는 산재보험 가입 사실을 동영상까지 보여주며 강조했다. 반면 기자가 3주째에 근무지를 옮겨 일하다 사고가 났던 ㄴ업체 ◇◇지사는 아예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 액정을 두드려라, 콜을 잡을 것이니 “띵동” “띠, 띠, 띵동” ㄱ업체 사무실에 달린 스피커에서 알람이 울렸다. 고객이 앱으로 음식을 주문했다는 뜻이다. ‘띵동’ 두 음절이 끝나기 전에 새로운 주문이 밀고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헬멧을 벗어둔 채 콜을 기다리던 기사들의 손가락이 일제히 휴대전화 액정을 향했다.
“에이~ 쓰레기네.” 일할 땐 연애하지 않는다는 승민님(27·이하 모두 가명. 남성이 많은 배달대행업계에선 동료들끼리 ‘님’ ‘형님’ 등의 호칭을 썼다)이 말했다. ‘40대 초반’ 동훈님이 되받았다. “쓰레기가 어디 있어? 그냥 다 잡는 거지.” 그러자 승민님은 “태평로 쓰레기, 충정로 쓰레기잖아요”라고 했다. 마포구 전역과 신촌·창천 등이 주요 배달지인 ㄱ업체 라이더들은 용산과 충정로 배달을 ‘쓰레기’로 불렀다. 그 지역은 계약된 업장이 적어서 한번 가면 빈손으로 돌아와야 한다. 건건이 수수료를 받는 ‘성과급’ 라이더는 계약 업장이 적거나 외진 곳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대신 기사들은 저마다 ‘전공 구역’이 있었다. 여기저기 널뛰기하다 보면 길바닥에 시간만 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라이더들은 각 구역 베테랑들을 ‘○○의 아들’이라 불렀다. ‘창전의 아들’ 광연(34)님은 건물이 낮고 업장이 많은 창전·서교 일대가 주 무대다. 아파트와 고층빌딩이 많은 공덕동 일대는 기피 지역이다. 아파트 단지는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놓치기라도 하면 5분이 획 지나간다.
쓰레기 아닌 콜을 잡으려면 알람 소리가 나지 않아도 휴대전화 액정에서 손을 떼면 안 됐다. 운행 중에도 한손은 휴대전화에 올려둔다. 휴대전화 액정을 매크로 돌리듯 두드려야 ‘코스’에 맞는 콜을 잡을 수 있다. 코스를 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를테면 업장이 많은 창전동 일대에서 배달음식을 ‘픽업-픽업-픽업’해 주거 지역인 서교동과 연남동 등에 순차로 ‘뿌리는’ 게 잘 짠 코스다. ‘픽업-배송-픽업-배송’ 순으로 배달하면 하루 20개도 ‘칠’ 수 없다. 적어도 ‘픽-픽-픽-배-배-배’는 해야 12시간에 50개 정도를 칠 수 있다. 이렇게 배달하면 건당 3000원 남짓 수수료로 하루 15만원, 주 6일 90만원, 한달이면 360만원을 벌어갈 수 있다. 기자는 3주 가까이 일하는 동안 183개를 쳤고, 110만5000원을 벌었다. 마지막 날 사고 탓에 수리비로 22만원을 썼고,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치료비도 개인적으로 부담했다.
■ ‘공덕의 딸’이 되긴 힘들었다 기자보다 한달 먼저 ㄱ업체에 들어온 민준(31)님이 물었다. “누나, 그 핸드폰으로 앱이 구동돼요?” 2년 전 13만원에 산 보급형 안드로이드폰을 두고 한 말이었다. 민준님은 들어온 지 2주 만에 휴대전화를 최신형으로 바꿨다. 본부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배달일 하면서 휴대전화 파는 일을 투잡으로 하면 돈 잘 벌걸?” 속도가 느려 버벅거리거나 종종 앱이 중단되는 구식 휴대전화로는 콜을 잡을 수가 없다.
ㄱ업체는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들어온 주문을, ㄴ업체는 오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들어온 주문을 배달했다. 알람이 터지는 시각은 평일과 주말이 다르다. 평일엔 오전 11시30분~낮 12시30분에 콜이 가장 많았다. 오후 1시가 넘어가면 주문 목록에 콜이 4개 이상 쌓이지 않았다. 알람이 울려 휴대전화를 보면 이미 누군가 콜을 채가 목록에 없었다. 다시 저녁 6~8시까지 주문이 쏟아졌다. 주말엔 오전 9시부터 바쁘다. 오전 10시30분이 지나면 알람 소리에 내비게이션 안내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앱을 켜면 화면은 세 등분이다. 주문 목록, 배차 목록, 완료 목록. 고객이 주문한 리스트가 주문 목록에 뜨면 기사가 콜을 잡는다. 잡은 콜은 배차 목록에 쌓인다. 배차 목록에 있던 주문들은 고객이 음식을 받아들면 배달 목록으로 넘어간다. 콜을 잘 잡는 요령은 없다. 그저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앱에 주문이 뜨기도 전에 액정을 전투적으로 두드리면 된다. 콜을 받는 위치를 계속 두드리면 남들이 콜을 잡기 전에 내가 먼저 잡을 수 있다. 하루 평균 50개를 치는 ‘용산의 아들’ 준헌님은 왼손엔 햄버거를 손에 쥐고, 오른손으론 액정을 연타로 두드렸다. 과연 손은 눈보다 빨랐다.
5월9일 낮 12시55분 다른 음식을 배달하는 중에 공덕동의 한 떡볶이집에서 800m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콜이 떴다. 이른바 ‘개꿀콜.’ 오토바이 속도를 줄이며 한손으로 부리나케 주문 내역을 터치했다. 화면에 ‘다른 기사님이 먼저 배차받으셨습니다’ 지각 메시지가 떴다. 콜을 잡기 위해 오토바이 속도를 줄이는 짧은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용산의 아들’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기자는 ‘공덕의 딸’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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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분 만에 배달했지만… 김밥집 사장님은 항의, 손님은 짜증
■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배달대행업체들은 기사들과 위탁계약을 맺는다. 배달기사는 엄격히 따져 모두 ‘개인사업자’인 것이다. 하지만 업체들은 라이더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행사했다. ㄱ업체와 ㄴ업체 기사들은 ‘출근’을 하면 업체가 만든 배달 앱을 켠다. 앱에 로그인하는 순간 출근 확인이 된다지만, 실제론 사무실에 들러 본부장에게 얼굴도장을 찍거나 출근카드를 단말기에 찍는 방식으로 출근 확인을 했다. ㄱ업체는 무단결근 3회 시 ‘퇴사’라는 규칙이 있었다. ㄴ업체는 무단결근 시 벌금 20만원, 지각은 30분까지 2만원, 30분이 넘어가면 30분당 1만원씩 추가됐다. ㄴ업체 ○○지사 사장은 면접 때 기자에게 “대행 개념이지만 직원 개념이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식사하겠습니다.” 주문이 잦아드는 오후 2시께가 되면 ㄱ업체 라이더들의 단톡방에 글이 올라온다. 오전 9시 출근자인 광연, 이지우(33)님이었다. 30분이 지나자 “식사 끝났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왔다. ㄱ업체에서는 오전 9시 출근자부터 30분 간격으로 밥을 먹는다. 오전 11시 출근인 기자는 오후 3시가 점심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콜이 없어 사무실에서 쉬고 있는데, 본부장이 “수경님, 왜 콜 안 잡아요?”라고 눈치를 줬다. 주문 목록에 서교동 ▽▽음식점에서 도화동으로 ‘스떼끼라이스’를 배달해달라는 주문이 하나 떠 있었다. 주로 공덕·염리·도화·상수동 안에서만 콜을 잡던 기자는 할 수 없이 서교동까지 갔다. 오전엔 ㄱ업체에서, 오후엔 햄버거 가게에서 ‘투잡’으로 배달일을 하는 50대 경수님이 옆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본부장이 경수님을 보더니 “대박”이라고 말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우님이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지 않는다고 한 이유를 새삼 느꼈다. “콜이 없을 땐 편하게 쉬어도 된다”는 말은 면접 때가 아닌 ‘꿈에서’ 들은 것 같았다.
배달기사들은 스스로 “(프리랜서라) 내가 편한 시간에 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 말은 ‘콜이 없을 때’에만 유효했다. 배달이 많은 ‘금토일’은 무조건 일해야 했다. 대신 평일 하루를 지정해 쉰다. 민준님은 동생 사업을 돕기 위해 수요일이 아닌 일요일에 쉴 수 있느냐고 본부장에게 물었다가 퇴짜를 맞았다. 쉬는 수요일이 하필 ‘빨간날’이던 날, 경수님은 본부장의 “나오라”는 한마디에 휴일을 반납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2016)를 보면, 배달대행업체 직원 89%가 “매 주말 일한다”고 답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응답은 73%, “출근시간만 정해져 있다”는 응답은 9.1%였다. “스스로 정한다”고 답한 경우는 17.8%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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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경 기자가 지난달 2일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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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장님은 누구일까 컴퓨터 한 대와 모니터 둘, 기사들이 라면을 끓이는데 주로 쓰는 정수기, 전자레인지. 배달대행업체 사무실은 이렇게 단출했다. 딱 한 대 있는 컴퓨터는 ‘관제’를 보는 사람들의 것이다. 관제는 배달·주문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배달기사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콜이 쌓이지 않도록 필요시 강제로 콜을 배정하는 등의 업무를 말한다.
관제를 보던 ㄴ업체 사장은 “콜이 없을 땐 어디에서 대기해도 괜찮아요. 대신 ‘나와바리’(배달구역) 안에서만. 망원 이런 데 가 있으면 안 되고”라고 경고했다. 배달기사는 프리랜서라는데 관제는 내가 배달을 하는지 안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주문이 없는 시각, 민준님에게 “커피나 마시자”고 연락했다. 민준님은 “관제에서 어디 있는지 다 본다”며 거절했다. 일이 없는 시간에도 본사 눈치를 보는 ‘개인사업자’라니.
사고 전날인 5월8일, 염리동 ▷▷김밥집 음식을 주문한 101동 고객의 집에 43분 만에 도착했다. 헐레벌떡 현관문 벨을 누르려는 순간, 업장에서 전화가 왔다. 김밥집 사장님은 대뜸 “어디냐”고 물었다. 배달이 늦는다는 항의를 받았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문 앞입니다”를 연발한 뒤 벨을 눌렀다. 노란 잠옷을 입고 나온 남성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했다. 일주일 전 바꿨다는 카드단말기가 말을 듣지 않았다. 현금결제가 가능한지 공손히 물었다. 결제 금액은 2만2300원, 받은 현금은 5만원권이었다. 거스름돈으로 건넬 동전 700원이 없었다.
“혹시 잔돈 있으세요?” 다시 공손히 물었더니, 고객이 “하~, 씨”라고 말하며 고개를 천장으로 돌렸다. 바깥기온이 16도로 떨어진 서늘한 날씨였는데 등줄기에 땀이 또르륵 흘렀다. “괜찮습니다. 그냥 두세요”라며 2만2000원만 받았다. 배달료 3300원 중 수수료 300원을 뗀 3000원이 배달기사의 몫인데 그중 10%인 300원을 날린 것이다.
주문에서 배달까지 43분이 걸렸지만, 기자가 음식을 픽업해 배달하기까지는 17분 걸렸을 뿐이었다. ‘개인사업자’인 나는 사장님일까, 노동자일까? 노동자라면 내 사장님은 배달대행업체 사장일까, 김밥집 사장일까, 그것도 아니면 노란 잠옷의 사나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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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경 기자가 지난달 2일 서울 마포구 빵가게에서 음식을 받아 배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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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통은 뷔페, ‘살려야 한다.’ 기사들이 배달하는 음식은 치킨, 피자, 햄버거, 자장면 등 매장마다 정해져 있다. 하지만 배달대행 라이더들의 배달통에서는 점심·저녁 때마다 여러 음식으로 뷔페상이 차려진다. 기자의 배달통에 처음으로 음식 두개가 들어간 건 배달 첫날 8번째, 9번째 배달 때였다. 서대문구 창천동 ▽▽떡볶이의 2만원짜리 차돌떡볶이 세트와 창천동 한 뚝배기집의 콩비지 계란말이 직화구이 2인 세트가 배달통에 실렸다. ‘픽업-픽업-배송-배송’의 첫 경험이었다. 두번째 픽업할 뚝배기가 조리완료 됐다는 알림이 떴는데 떡볶이는 아직 한창 불맛을 입고 있었다. ‘뚝배기는 따뜻할 때 먹어야 하는데….’ 떡볶이를 기다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5월6일 저녁 7시께, 배달통에서 파티가 벌어졌다. 육개장·라면·광어초밥·막회·등심스테이크 등 한·일·양식 식당 4곳의 음식이 배달통에 차곡차곡 쌓였다. 음식이 많아지면 액셀을 당기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면 요리는 받자마자 뛰어야 한다. ‘면이 불면 안 된다, 불면 안 된다, 살려야 한다….’
ㄱ업체는 배달 주문을 한 번에 4개까지 잡을 수 있다. ‘픽픽픽픽·배배배배’가 한계라는 뜻이다. 주문이 많은 일요일엔 신청자에 한해 5~6개까지 열어줬다. 대신 배달이 지연되면 책임은 기사가 진다는 조건이 붙었다. ‘서교의 아들’, ‘창전의 아들’ 등 각 구역의 ‘아들’들이 손을 들었다. ㄱ업체 본부장은 “ㄹ업체에서 사망사고 2건이 있었어. 우리는 잡을 수 있는 콜수를 제한했는데, 거기는 10개고 15개고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야. 콜수는 열어줄 텐데 조심해야 돼”라고 말했다.
그나마 제한을 뒀던 ㄱ업체와 달리 기자가 두번째로 근무한 ㄴ업체에는 콜수 제한이 없었다. 그곳에서 만난 배달기사 김근식(21)님은 한 번에 8개까지 잡아봤다고 했다. ‘픽픽픽픽픽픽픽픽·배배배배배배배배’ 타자를 치는 것만으로 숨찬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만 것이다. “두시간 동안 20개까지 쳐봤어요.” 근식님은 뿌듯한 듯 말했다.
경험이 조금씩 늘면서 기자도 ‘코스’를 잘 짜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콜당 수수료를 받는 수익구조, 배달기사들의 경쟁, 빠른 배달을 원하는 고객과 업장, 어느덧 익숙해진 오토바이 스피드까지 ‘온 우주의 기운’이 한쪽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칼치기’(한 차로에서 차량과 함께 달림) 운행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게 이 무렵이었다. ‘역주행하지 말자’ ‘신호를 지키자’ ‘인도로 달리지 말자’…. ‘위장취업’ 시작 때 스스로 다짐한 운행수칙이 서서히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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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거리 5만킬로가 넘은 기자의 오토바이 계기판이 비에 젖어 흐릿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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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위 미운오리새끼 “야, 이 새끼야, 배달이 차로 하나 잡고 달리면 어떻게 해. 갓길로 가~.” 4월25일 도화동 업장에 김밥을 픽업하려고 직진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검은색 에스엠(SM)5 운전자가 기자가 있는 차로 쪽으로 끼어들기를 하더니 소리를 빽 질렀다. 같은 날 저녁, 맨 끝 차로로 달리며 이화여대에 배달하러 가는 길엔 갈색 스타렉스가 뒤에서 경적을 울리더니 속도를 높여 왼쪽 차로로 바짝 다가왔다. 보조석에 앉은 50대 남성이 손가락을 흔들며 “갓길로 다녀~”라고 이죽거렸다.
깜빡이를 켜고 차로를 옮기려면 뒤에 따라오던 자동차는 되레 액셀을 더 세게 밟았다. 배달 첫날 세번째 픽업지인 서교동 초밥집에
가는 길에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도로로 나왔다. 차량이 적은 오후 1시께였다. 뒤 차량의 위치를 확인하고 좌측 깜빡이를 켜고 유턴 차로 쪽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속도를 낸 미니쿠퍼가 ‘빵~’ 하면서 오토바이 옆을 약 20㎝ 차이로 지나갔다. 하늘색 미니쿠퍼 뒤꽁무니를 향해 “××의 새끼가 운전 한번 ××같이 하네”라고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머, 내가 이런 욕을?’ 놀란 것도 잠시, 미니쿠퍼가 사이드미러로 내 입모양을 봤길 바라고 있었다.
닷새 뒤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사이드미러로 뒤차와의 거리를 확인하고 2차로에서 1차로로 3분의 1 이상 들어섰다. 1차로에 있던 흰색 티볼리가 경적을 울리지도 않고 속도를 내더니 기자의 오토바이를 앞지른 뒤 차로를 직진차로인 2차로로 옮겼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은 뒤 1차로로 진입하고 보니, 빨간 신호등이었다. 2차로에 정차해 있는 티볼리 옆으로 오토바이를 세운 뒤 운전자를 째려봤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입모양이 보이진 않았겠지만, “××, 운전 더럽게 하네”라고 말했다. 좌회전 신호가 켜져 유턴을 하려는데 티볼리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더니 “뭐 이 ×새끼야” 소리를 질렀다. 혹시나 쫓아올까봐 대거리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됐다. “깜빡이 못 봤어? 눈은 대체 어디다 두고 운전하는 거야?”라고 따졌어야 했다.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거지?’ 이런 위협운전은 배달이 아닌 기자 개인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할 때는 전혀 겪지 않았던 일이었다. 어떤 오토바이에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운전 매너에 신물이 났다.
현석동에 스파게티를 배달하러 가던 5월5일, ‘할리데이비드슨’을 탄 무리들이 일렬로 1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자동차들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기자의 배달 오토바이도 조용히 할리데이비드슨 무리의 맨 뒤에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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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는 ‘자영업자’인 기사들에게 “직원 개념이다”…나 사장 맞아?
■ ‘비 오는 일요일’의 악몽 5월6일, 비 오는 일요일이었다. 출근 한시간 전부터 로그인한 앱에서 ‘띵동 띵동’ 주문이 폭주했다. 오전 11시, 출근하니 주문 목록에 콜이 20개 정도 쌓여 있었다. 카드단말기와 현금결제 때 거슬러줄 잔돈 5만원이 든 꾸러미를 비옷에 욱여넣고 나섰다. 관제를 보는 본부장도 쉬는 날엔 배달에 나섰다. 두번째 빗길 운전이라 처음보다 여유가 있었지만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빗물이 자꾸 인중을 타고 입안으로 들어왔다. 짭짤한 것을 보니 콧물도 섞인 모양이었다. 눈앞을 보호하는 헬멧의 실더를 내리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미끄러운 도로여서 핸들을 꽉 쥐어야 하지만, 왼손은 와이퍼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왼손 와이퍼가 소용이 없어 실더를 올리면, 크지도 않은 눈으로 빗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비옷을 챙겨입었는데 바지 엉덩이 부분이 축축했다. 손가락 마디는 물에 불어 쪼글쪼글해졌다.
배달기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은 휴일이다. 평일보다 콜이 많기 때문이다. 기사가 된 뒤 첫 주말인 4월28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끊이지 않고 알람이 울렸다. ㄱ업체의 경우 평일에 15명 정도, 주말은 25명 정도가 배달에 투입됐다. ㄱ업체 본부장은 “주말 주문이 평일보다 1.5배 정도 많다”고 했다.
배달기사들이 싫어하는 날은 ‘볕 좋은 휴일’이다. 주말에 바짝 벌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죄다 야외로 놀러 나가기 때문이다. 동훈님은 “미세먼지 많은 날” “눈 오는 겨울”이 좋다고 했다. ‘비 오는 휴일’은 애매했다. 주문은 많지만, 대신 미끄러운 빗길이 위험했다. 도로를 내달리지 못하니 콜 치는 개수가 아주 많지는 않다. 준헌님은 “비 오는 날은 팬티까지 젖어서 싫어”라고 말했다.
5월6일은 ‘운수 좋은 날’이 될 뻔했다. 도화동 ○○샌드위치 주문이 3건이 떴다. 목적지는 공덕·대흥·상수동. 도화동에서 픽업해 ‘공덕-대흥-상수’로 가는 코스를 짜고 후다닥 콜을 잡았다. 주문이 18건이나 밀려 있어 짤 수 있는 코스였다. 그런데 그 좋은 코스가 아직 목록에 남아 있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 잡고 보니 모두 현장에서 카드결제였다. 비 오는 날 현장 카드결제는 ‘쥐약’이다. 젖은 손으로, 젖은 비옷에서 축축한 카드단말기를 꺼내 카드를 긁어야 한다.
처음으로 비 오는 날 배달을 했을 때 카드단말기에 빗물이 들어갔다. 용지가 흠뻑 젖어 다 달라붙었다. 카드를 긁으니 ‘용지 부족’이라고 떴다. 현금결제는 더 최악이다. 1만3800원짜리 현금결제를 주문한 고객이 15000원을 줄 거라고 예상하고 거스름돈 1200원을 미리 빼놨다. 고객은 정확하게 13800원을 줬다. 엘리베이터를 놓칠세라 급하게 돌아서던 그 순간, 미리 준비한 동전과 고객이 준 동전이 아파트 복도를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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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갈비탕을 배달하던 중 엘리베이터를 놓치고 쪼그려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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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연대 동문의 여신님 5월6일은 16일 동안 배달기사로 일하면서 가장 많은 콜을 친 날이다. 평소엔 점심시간인 오후 3시까지 평균 8개 정도 배달했는데, 이날은 오후 4시 반까지 15개를, 저녁 9시까지는 27개를 쳤다. 시간당 평균 3개 이상 배달한 셈이다. 화장실에 두번, 2500원짜리 편의점 김밥과 사무실에서 제공하는 라면을 40분 동안 먹은 걸 제외하면 온종일 달렸다.
주문이 폭주한다고 해서 폭주하듯 운전할 수는 없다. 아직 운전이 미숙한 기자에게 도로는 빙질이 불균질한 저수지 얼음 같았고, 지하 주차장은 표면을 잘 고른 아이스링크 같았다. 같은 업체 동료 기사를 도로에서 만나도 인사할 여유조차 없이 차선에만 집중하는 기자에게 승민님은 “경주마 같다”고 놀렸다. 선배 기사들은 기자에게 “비 오는 날엔 차선과 맨홀을 밟지 말라” “주차장에서는 기어가듯 양발을 바닥에 대고 천천히 타라”고 조언했다.
비 오는 날 슬립(미끄러짐)은 배달기사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기자도 첫 우중 배달을 했던 5월2일 경험했다. 연세대 광복관의 한 교수에게 뚝배기를 배달하고 연세대 동문 쪽 △△쌀국수에 가야 했다. 내비게이션은 남문을 빠져나와 성산로를 지나 동문으로 가라고 지시했지만, 기자는 신호등이 없는 연세대 안 일방통행로를 거쳐 동문으로 빠져나왔다. 동문에서 나와 □□□돼지불백 앞 내리막길을 지나야 했다. 경사가 워터슬라이드처럼 가파른데다 급우회전을 해야 해 맑은 날도 조심해야 한다. ‘코너링이 좋아 운전병에 뽑혔다’는 어떤 고위공직자의 아들이 와도 쉽지 않은 코스다. ‘조심조심, 천천히’를 반복하며 브레이크를 살짝 잡았다 풀어가며 크게 우회전하려는데, 직진 차량이 빠르게 다가왔다. 급브레이크를 잡고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졌다.
“쿠과광. 쿵. 쿵.” 배달통이 열리고, 통 안에 있던 에어캡, 생수통, 거치대에 매단 휴대전화가 바닥을 굴렀다. 배달음식이 없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내리막길인데다 도로까지 미끄러워 오토바이를 세우기 어려웠다. 직진하던 차량은 창문을 내리고 기자의 상태를 보더니 그냥 지나쳤다. 무거운 오토바이 머리를 20㎝쯤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 흰 재킷을 입은 여성이 다가와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오, 나의 여신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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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미러가 부러진 기자의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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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만㎞ 탄 오토바이에 내 몸을 싣고 ㄱ업체에서 기사들에게 지급하는 오토바이는 대부분 6만~7만㎞ 이상 달린 오토바이였다. 잔고장이 잦아 2주일 동안 정비사를 3번 찾았다. 운행 중간에 시동이 꺼지곤 하던 ‘548×’ 오토바이는 기사들의 기피 1순위였다. 기자가 탄 ‘617×’ 오토바이는 상대적으로 주행거리가 짧은 5만㎞대였는데도 시속 40㎞가 넘는다 싶으면 핸들이 흔들렸다.
4월29일, 날 좋은 일요일 정오께였다. 신촌 ○○○○병원으로 햄버거 4개와 감자튀김 2개, 음료 3개를 싣고 달렸다. 관제가 강제 배차한 노고산동 ◁◁버거에서 10분 전에 픽업했다. 도로 양옆 이팝나무의 흰 꽃과 초록잎이 바람에 섞여 연둣빛으로 살랑거렸다. 신촌 지하철역을 지나 신촌 기차역 쪽으로 좌회전하기 위해 신호를 기다렸다. 혹시 무리하게 끼어드는 차량이 있나 싶어 오른쪽 사이드미러를 확인하려는데, 미러가 뒤로 휘어져 뒤차가 보이지 않았다. 사이드미러를 조정하려고 목 부분을 잡고 움직이던 중 ‘툭’ 하고 부러졌다. 난 손아귀 힘이 달려 콜라 뚜껑도 제대로 못 열고, 그때마다 ‘연약한 척한다’며 지탄을 받았는데….
어쩔 줄 모르는 사이, 좌회전 신호가 들어왔다.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사라진 건 둘째 치고, 부러진 사이드미러 조각을 왼손에 들고 그대로 달려야 했다. 배달통에 자리 잡은 햄버거 말고도 투썸◇◇◇◇ 신촌점과 코코◎◎◎ 홍대점에서 조리완료 된 주스와 커피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배달이 많은 일요일이어도 사이드미러도 없이 남은 9시간을 운전할 순 없었다. 관제에 상황을 전달했다. 병원 배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해 ‘584×’ 오토바이로 갈아타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584×’ 오토바이에는 휴대전화 거치대가 없었다. 출퇴근 때 타고 다니는 기자 개인 오토바이에 달린 거치대를 빼서 달았다. 크기가 맞지 않아서 덜렁거렸다.
이날 일을 웃으며 이야기했더니 준헌님과 민준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태평했다. 준헌님은 “관제에 얘기하긴 했는데, 관제가 ‘어차피 사이드미러 잘 안 보잖아요’라고 하더라고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흔들리는 두 바퀴는 불안한 삶을 싣고 달렸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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