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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26 17:48 수정 : 2018.07.27 14:07

조은
사회학자, 동국대 명예교수

남편의 구치소 뒷바라지를 하는 서촌 궁중족발집의 여사장 윤경자씨를 만났을 때 국회에서 새로운 임대차법이 통과돼도 서촌 족발집에는 소급 적용도 안 될 텐데 왜 그렇게 열심히 국회에 증언도 하러 가고 언론 인터뷰도 하러 다니느냐고 했더니, 자기 집 사건으로 문제가 되어 관심이 있을 때 바짝 서둘러 제대로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이라도 만들어 놓아야지 아니면 또 묻히고 잊힐 텐데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우리 집은 요즘 ‘뜨는 동네’ 서촌 맨 끝자락에 있다. 엄정(嚴淨)한 죽음과 마주한 시간에 쓰는 칼럼의 시작 문장으로는 한가한 느낌이 들지만 그냥 그대로 쓰기로 한다. 칼럼의 마감을 알리는 친절한 메시지가 뜬 같은 시간에, 한 정치인이라고만 쓸 수 없는 ‘우리 시대 정치인의 죽음’을 알리는 비정한 메시지를 접했다. 사는 사람은 또 살아야 한다는 변명과 함께 자판을 두드린다.

한동네에서 삼십여년 같은 집에 살다 보니 오랜 단골 가게들이 이 동네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증언할 수 있고, 도시 미화나 중산층화 심지어 신사화라는 냉소적 어의를 가졌다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야만성에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 그럼에도 이른바 ‘서촌 궁중족발집 사장의 망치 사건’은 충격이었다. 사건이 터진 뒤 집에 다니러 온 큰애한테 ‘궁중족발집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바로 튀어나온 말이 “21세기 장발장이죠”였다. 건물주한테 망치를 휘둘러 살인미수 상해와 재물손괴 죄로 구속된 족발집 사장을 한국판 21세기 장발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요즘 대학생들의 생각인지 아니면 그들을 가르치는 본인의 생각인지 묻지도 못했다.

위고의 <레미제라블> 완역판을 독파해볼까 아니면 이웃 족발집 현장을 가보는 게 예의일까 머뭇거리고 있을 때 ‘2018 서울국제도서전’의 한 세션에 가게 되었다. 거기서 <아현 포차 요리책>이라는 포장마차 요리책을 펴낸 황경하 작가를 만나 ‘서촌 족발집 사장’을 면회 갔다 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팔짱 끼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서둘러 황 작가와 함께 궁중족발이 세들었던 건물 현장에 가봤다. 강제집행 뒤 건물주가 트럭으로 입구를 막아놓았고 그 옆에는 가로수길에서 비슷한 퇴거 경험을 한 임차인이 포장마차로 썼던 승합차 한대가 이 사건에 연대하는 공연을 하는 비품들을 실은 채 서 있었다. 궁중족발 간판은 아무렇게나 지워져 글자가 희미한데 그 희미한 글자 사이로 ‘주거니 받거니’라는 덜 지워진 분식집 글씨도 보였다.

족발집 사장 부부는 서촌이 뜨기 전 옛 금천교 시장 골목(현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안에서 분식집 2년, 포장마차 7년, 도합 9년간 하루 열세 시간 이상 일했다. 그렇게 모은 돈과 은행 대출을 받아 포장마차 바로 옆 건물에 2009년 ‘궁중족발’집을 냈다. 건물주와 첫 계약 기간 5년이 지나 2014년에 1년 계약을 갱신했고 계속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다시 몇천만원을 들여 내부 수리도 했다. 2016년 1월에 세를 든 건물이 팔렸다. 새로운 건물주가 나타나 월 280만원이던 원래의 임대료보다 네 배나 많은 월 1200만원의 임대료를 요구했다. 아니면 비우라는 명도 소송을 제기했고 바로 강제집행에 들어갔다. 시기나 임대료 인상 폭 차이는 있지만 장사가 좀 되는 뜨는 지역에서 임차 상가가 내쫓기는 흔한 패턴이다.

‘궁중족발’은 지난 2년 동안 명도이전 강제집행에 시달리면서도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의 도움도 받고 맞소송도 하면서 버텼다. 전 재산을 털어넣은 생존의 터전에서 그대로 밀려날 수 없었다. 2018년 6월4일 새벽 3시 건물주가 동원한 용역이 지게차를 밀고 들이닥쳤다. 열두번째 강제집행이었다. 그 건물 안에는 사장 부부와 자원봉사 대학생들도 있었지만 모두 함께 건물 밖으로 내팽개쳐졌다. 사흘 뒤 ‘서촌 족발집 사장 건물주에 망치 휘둘러’라는 제목의 뉴스가 언론을 도배했다. 일명 ‘서촌 족발집 사장 망치 사건’이다.

새 건물주는 자기자본 11억원에 나머지는 은행 대출을 아 48억5천만원에 궁중족발이 세든 건물을 구입해 현재 70억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강제집행에 성공한 날 페이스북에 “건물 산 지 2년 만에야 겨우 명도 집행했네! 나는 합법적이다”, “궁중족발 근처의 또라이들을 청소해주고 있다. 시세차익 다다익선!”이라는 글을 올렸다. 사건이 이슈화된 뒤에는 “과연 이 나라가 법의 지배가 가능한 문명사회인가?” 또는 “우리에게 계약은 무엇인가?” 등 물음표가 붙은 문장으로 페이스북을 채웠다. ‘합법적’이라는 단어가 느낌표와 물음표가 붙은 문장 사이사이를 누볐다. 이 사건을 탐사 나온 한 기자와 마주쳤는데 “사유재산과 사회 기본질서 유린’이라는 건물주의 ‘합법’ 논리에 숨이 막혔는지 “살 한 근을 떼어가시오 그러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같은 명판결 내릴 법관 없을까요 하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그런 기대가 난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법이란 무엇일까를 물어야 하는 사건이 도처에서 터지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던질 여력조차 없다. 사법권의 수장이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아주 작은 힘도 없는 사람들을 궁지로 모는 ‘사법 거래’와 사법 농단’이라는 희귀 단어를 창출한 사회다.

케이티엑스(KTX) 승무원들이 12년 동안의 투쟁을 끝내고 복직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복직 투쟁 4526일째 그리고 사법 농단에 항의하는 천막농성 두 달 만이다. 그들은 우리 사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 법정에 쳐들어간 기록을 세웠고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을 이슈화하는 발화점이 되었다. 올봄 광화문 3·8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그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절치부심하며 1심 2심에서 이겨서 8천 몇백만원의 밀린 임금을 받고 복직을 기대하고 있던 차 3심에서 뒤집혔던 기막힌 상황을 이야기하다 멈췄다. 대법원까지 함께 소송을 하며 버텼던 34명 중 한명이 대법원 판결에 절망해 세 살짜리 아이에게 빚만 남기게 된 데 대한 자책을 유서로 남기고 세상을 뜬 이야기는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사법 농단의 ‘어떤 거래’ 품목에 케이티엑스 승무원 3심 건이 들어 있다는 뉴스가 터진 날 케이티엑스 승무원 해고 무효 및 복직 투쟁을 이끌던 김승하 지부장이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는 손팻말과 함께 “내 친구를 살려내요” 하면서 울음을 삼켰다. 사법 농단에 항의하는 천막 앞 1인시위를 시작했을 때 그 1인시위는 2인시위로 불렸다. 숨진 친구가 1인시위에 함께 동행하고 있을 것이므로. 우리는 이런 황망한 죽음의 주위를 맴돌며 살고 있다. 아직도 그렇다.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때로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래도 살아낸다. 우리 사회의 레미제라블!

남편의 구치소 뒷바라지를 하는 서촌 궁중족발집의 여사장 윤경자씨를 만났을 때 국회에서 새로운 임대차법이 통과돼도 서촌 족발집에는 소급 적용도 안 될 텐데 왜 그렇게 열심히 국회에 증언도 하러 가고 언론 인터뷰도 하러 다니느냐고 했더니, 자기 집 사건으로 문제가 되어 관심이 있을 때 바짝 서둘러 제대로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이라도 만들어 놓아야지 아니면 또 묻히고 잊힐 텐데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우리를 너무 불쌍한 사람들처럼 쓰지는 말아주세요”라는 부탁도 했다. 생계는 군대에서 제대한 큰아들이 복학하는 대신 취업해서 벌어오는 수입으로 꾸려나가고 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어느 저가 매장에서 진열대를 꾸미는 알바로 최저임금은 받는다는데, 어쩌면 이렇게 폐업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들의 자녀들이 바로 최저임금 인상에 목을 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가난하거나 불쌍하거나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법의 작희에도 불구하고 죽어버리거나 죽여버리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한테 바치는 헌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토록 사람들을 비루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장치와 구조에 부닥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낸 모두에게 바치는 헌사로 읽고 싶어졌다. 우리 사회 레미제라블을 위해서도. 이란의 여성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삶’이라는 시 몇 줄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아, 삶이여 나는 여전히

당신이 없어도 당신으로 넘쳐납니다

그대의 손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대로부터 도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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