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인간관계의 물리학
(3) 나와 친한 사람 알아내는 법
같은 데이터로도 방법이 달라지면 서로 다른 결과를 얻는 것이 과학이다. 답이 하나가 아닌 경우도 부지기수다. 과학자가 결과를 보여주면 그냥 믿지 마시라.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가 얻어진 과정도 항상 의심의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다.
많은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많은 과학자의 관심거리다. 물리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연과학의 정량적인 방식을 적용해 여러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가지고 연결망을 만들어 보고, 그 구조적인 특성을 분석해 보는 것도 당연히 인기 있는 주제 중 하나다. 누구나 자유롭게 인터넷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익명의 커다란 연결망 데이터도 있지만, 아무래도 내겐 내가 직접 속한 사회 연결망이나, 내가 속하진 않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사람들이 이루는 내 주변의 연결망이 더 재밌다.
|
‘ESC 어른이 실험실 탐험’에서 진행한 즐거운 실험 장면. 김범준 제공
|
같은 사회 연결망에 속한 두 사람이 있다 하자. 이 둘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우리는 누가 자기와 친한지 직관적으로 잘 알고 있다. 물론 가끔 오해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성공에는 이런 사회적 판단 능력이 큰 도움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제삼자가 둘 사이의 친밀함의 정도를 객관적인 관찰만으로 알아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둘의 친밀함을 다른 이에게는 살짝 숨기는 것이 도움이 되는 상황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설문을 통해 직접 친밀함의 강도를 물어보는 방식도 있지만, 대규모의 익명의 온라인 데이터를 이용한 정량적인 연구가 최근에는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예를 들어, 두 사람 사이의 전화 통화 지속 시간을 이용해 둘 사이의 관계의 강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해서 생애주기 중 친한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살펴본 연구도 있다. 가장 친한 사람은 남녀 모두 주로 다른 쪽 성이었고, 남성은 31세, 여성은 27세에 그런 경향이 가장 두드러졌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결과다.
다른 연구도 있다. 벨기에는 여러 언어가 통용되면서도 집단 간 갈등이 크지 않은 나라다. 사람들이 다른 언어 사용자와 활발히 소통하면서 서로 이해해 갈등을 줄이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언어 사용자와는 거의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아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 둘 중 현실이 어디에 더 가까운지를 사람들 사이의 통화 패턴을 가지고 연구한 논문도 있다(결과는 후자에 가까웠다). 과학자 둘 사이의 관계의 강도는 또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둘이 함께 저자로 참여한 공동 논문의 수를 세면 된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두 사람 사이의 친밀도의 강도를 재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페이스북 공통친구 많으면 가까운 사이
나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ESC)의 과학문화위원회에서는 ‘ESC 어른이 실험실 탐험’이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어른이’는 어른과 어린이, 둘의 조합으로 만든 단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린이 같은 과학적 호기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어른이라는 뜻이다. ESC의 회원 과학자가 실험실 탐험대를 초청해 자신의 연구 주제를 알리고, 또 가능하면 간단한 실험도 탐험대원과 직접 함께 해보는 그런 행사다. 얼마 전 여덟 번째 행사는 우리 연구실의 양성규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내가 주관한 바 있다. 여러 사람이 박수를 칠 때 모두의 박자가 하나로 맞춰지는 ‘때맞음’ 현상을 같이 실험해보고, 이 현상의 이론 모형을 함께 수학적으로 이해해 보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온갖 미적분 기호가 난무해 탐험대원들을 고생시키긴 했지만, 통계물리학 분야에서 이론적인 연구가 진행되는 방식을, 그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
‘ESC 어른이 실험실 탐험’에서 진행한 즐거운 실험 장면. 김범준 제공
|
실험실 탐험 당일에 짤막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다른 데이터도 모았다. 바로 페이스북의 친구관계에 대한 조사였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면 난 내 친구가 현재 몇 명인지 알 수 있다. 페이스북의 다른 사용자 한 명과 내가 몇 명의 공통의 친구가 있는지도 알 수 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이 친구 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수락 여부를 판단할 때 그분과 나 사이에 공통의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지 살피고는 한다. 만약 나와 공통친구가 몇 백 명인 분이 친구신청을 했다면 전혀 망설임 없이 수락 버튼을 누른다. 이런 분과는 여태 친구가 아니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ESC 어른이 실험실 탐험 때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각자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가 몇 명인지, 그리고 당일 행사에 온 다른 분들 한 분 한 분과 몇 명의 공통의 친구가 있는지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페이스북 친구 관계 설문 조사를 통해 얻은 데이터로는 둘 사이의 관계의 강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딱 하나 고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생각해본 것은, 두 사람 사이에 공통의 친구가 많다면 둘이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A와 B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현재도 같은 직장에 다니는데, 같은 직장의 C는 다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해보자. A와 B 사이의 공통친구 수는 아무래도 A와 C 사이의 공통친구 수보다는 클 것으로, 그리고 아마도 A와 B 사이의 관계가 더 돈독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즉, 공통친구의 수가 관계의 강도의 한 지표가 될 수 있다.
|
그림 1. 페이스북의 공통친구 수를 이용해 그려본 내 주변의 연결망.
|
<그림 1>은 이런 방식으로 둘 사이의 공통친구 수를 이용해서 관계의 강도를 정의해 우리 연구실의 이송섭 연구원이 그려본 연결망 구조다. 그림에서 두 사람을 잇는 선이 굵을수록 공통친구가 많은 거다. 나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분은 아니나 다를까 직장이 같은 원병묵 교수였다. 교내외의 여러 사회관계에서 나와 중첩이 많은 분이니 당연해 보였다. 그림에는 또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화된 알고리즘으로 찾은 커뮤니티를 각 노드(node, 관계연결망에서 선으로 이어지는 각 개체)의 색으로도 표현했다. 모두 세 개의 커뮤니티를 보여주는데, 나와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다고 알고리즘이 알려준 분들의 면면을 보니, 원 교수를 제외한 다른 분들과의 공통점은 그리 명확하지 않았다.
우리의 친구 관계는 얼마나 비슷할까
같은 자료로 둘 사이의 관계의 강도를 다르게 정의해 연결망을 그려볼 수 있다. 여기 A, B, C, D, 네 사람이 있다고 하자. A와 B 사이에는 공통의 친구가 많다고 한다. A는 C와는 공통친구가 많지만, D와는 그 수가 적고, 거꾸로 B는 C와는 공통친구가 적고 D와는 많다고 또 가정해보자. 이 경우 두 사람 A와 B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공통의 친구가 많을 수는 있지만, 그 밖의 다른 사회관계는 서로 많이 다를 수 있다. 즉, 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패턴을 이용해서도, A와 B가 각자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여러 층위가 얼마나 중첩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A, B 각자가 C, D, E… 등의 다른 사람과 가진 공통친구 수를 일렬로 죽 늘어놓고, 이 두 수열이 얼마나 서로 비슷한지를 측정해보자는 아이디어다. 설문에 참여한 전체 13명 중 A, B 둘을 뺀 11명과의 공통친구 수를 가지고 A, B 각자에 대해 11차원의 벡터(크기와 방향으로 표시된 물리량)를 생각하고 이 두 벡터가 11차원 공간에서 얼마나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는지 재보는 방법이다. 이렇게 얻어진 A, B 사이의 연결의 강도는 둘이 얼마나 서로 잘 알고 있는지를 측정한 것은 아니다. 각자가 맺고 있는 사회관계의 패턴이 얼마나 중첩되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그림 2>가 바로 이 방법으로 이송섭 연구원이 그린 연결망이다. 사회관계가 나와 비슷한 패턴인 사람들이 네 개의 노란색 노드로 내 주변에 표시되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와 가까운 세 명 모두 실제로 나와 비슷한 분들이었다. 한 분은 바로 <그림 1>에도 등장한 원병묵 교수이고, 나머지 둘은 물리학자면서도 ESC 등 다른 활동에서도 나와 겹치는 것이 많은 분들이다.
|
그림 2. 페이스북의 공통친구 분포 패턴의 유사성을 이용해 그려본 내 주변의 연결망 구조. 내 주변의 세 분은 모두 물리학계에 있는 사람이다.
|
오늘 함께 살펴보았듯이 같은 데이터로도 방법이 달라지면 서로 다른 결과를 얻는 것이 과학이다. 답이 하나가 아닌 경우도 부지기수다. 과학자가 결과를 보여주면 그냥 믿지 마시라.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가 얻어진 과정도 항상 의심의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다.
|
김범준 교수
|
ESC 어른이 실험실 탐험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이런 행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저곳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면 좋겠다. 당장 이번 주말에 신청만 하면 찾아갈 수 있는 실험실 탐험이 워낙 여럿이라 어디를 고를지가 고민인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과학은 책보다는 경험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다. 과학은 지식의 총합이라기보다는 대상을 바라보는 사유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