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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01 19:24 수정 : 2018.06.29 11:25

김범준의 인간관계의 물리학
(4) 법안 공동발의로 본 국회의원 연결망

연결망 안 커뮤니티 구조는 극소수의 예외를 빼면 거의 완벽하게 소속정당에 따라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원들이 주로 같은 정당 소속 의원과 법안을 공동 발의하며, 다른 정당과의 법안 발의 협력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이다. 예상할 수는 있었지만 아쉬운 결과다. 의원들이 소속정당을 넘어 자신의 전문영역이나 관심 분야에 따라서도 커뮤니티가 나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2월 현재, 20대 국회의 재적 의원은 모두 293명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21석, 자유한국당 116석, 국민의당(21석)과 바른정당(9석)이 합당한 바른미래당 30석, 합당에 반대한 의원들의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 민중당 1석, 그리고 대한애국당 1석이다. 무소속 의원은 모두 4명이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입법 활동이다. 공개된 법안 발의 자료를 잘 살펴보면 의원 개개인이나 정당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켈로그 경영대학원에서 일하는 조우성 박사와 우리 연구실에서 일하는 이송섭 연구원과 함께 20대 국회의 법안 발의 자료를 내려 받아 분석해 봤다. 2월 초까지 접수된 의안 중, 발의자가 정부, 의장, 위원장, 혹은 기타인 경우를 제외한 1만363개의 법안 자료를 이용했다. 참여연대의 의정감시센터 누리집(watch.peoplepower21.org)에 의정활동 자료가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되어 있다.

20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의원이 공동 발의한 법안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무려 209명이 발의했다. 이런 법안은 예외적이다. 법안 당 평균 발의자 수는 13.4명에 불과해, 발의에 필요한 최소 의원 수 10명에 가깝다. 최소요건을 딱 아슬아슬하게 맞춘 법안은 4383개로 무려 전체의 42%다. 10명을 어떻게든 채워야 발의할 수 있으니, 서로서로 상대 의원의 법안에 이름을 올려주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부상조는 두 의원이 친밀할수록 더 자주 일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법안 발의→공포 5%도 안돼

의원 1인당 발의 법안 수 평균은 456으로 상당히 큰 값이다. 가장 많은 법안에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의원은 1940개 법안에 참여한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이다. 황주홍(민주평화당), 김해영, 김정우, 박정(이상 민주당) 의원이 뒤를 잇는다. 가장 적은 수는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의 경우인데, 20개의 법안 발의에 참여했다. 그 바로 위를 순서대로 적으면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 정세균 국회의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진영 민주당 의원이다. 흥미롭게도 하위권엔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분들이 많다. 법안 발의수를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 지표로 쓰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가 앞으로의 정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만큼 이미 지명도가 높은 의원은 굳이 법안 발의를 할 필요가 없나보다.

한편, 의정활동 지표로 발의 법안수가 중요한 대부분의 의원들은 많은 법안에 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려 노력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발의된 법안 전체수 1만363개를 야구의 전체 타석수로, 모든 절차가 완료되어 공포된 495개 법안을 안타로 하면, 전체 의원의 평균 타율은 0할4푼8리(0.048)다. 의원 전체로 보면 별로 훌륭한 선수들인 것 같지는 않다. 대표발의자의 소속 정당으로 나눠 살펴보니, 평균 타율은 정당별로도 달랐다. 민주평화당이 8%,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이 6%로 평균타율보다 조금 높았다. 바른정당이 5%, 더불어민주당은 약 4%, 한편 정의당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소수정당인 정의당은 다른 당의 협력을 얻어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듯하다. 통과되지 못한 법안은 20대 국회 임기 종료 때 자동 폐기된다. 빛을 못보고 자동 폐기될 법안이 너무 많다. 국회의원이면 그래도 정치에서는 프로들인데 전체 평균 타율이 3할은 되었으면 좋겠다.

소속당·친밀함…‘초록은 동색’

법안 발의 자료로 의원들의 연결망을 만들 수 있다. 두 의원을 잇는 연결선의 유무와 강도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두 의원 A와 B가 여러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함께 올렸다면 당연히 둘 사이의 연결강도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함께 발의한 법안 수를 둘을 연결하는 연결선의 강도로 정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른 방법도 있다. 자, 100명이 발의한 1번 법안에 함께 이름을 올린 A와 B, 그리고 10명이 발의한 2번 법안에 함께 이름을 올린 C와 D를 보자. 당연히 A와 B보다 C와 D가 더 가까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번 법안에서의 A와 B 사이의 연결강도는 발의자 수 100의 역수인 0.01로, 그리고 2번 법안에서의 C와 D 사이의 연결강도도 마찬가지로 계산해 0.1로 정의하자. 즉, 한 법안을 공동 발의한 두 의원 사이의 관계의 강도는 그 법안의 발의 의원수의 역수로 정의했다. 물론 두 의원 사이의 전체 연결강도는 한 법안에 대해 위의 방법으로 계산한 값을 법안 전체에 대해 모두 더한 것으로 하면 된다. 살펴보니 둘 사이의 관계가 가장 강한 분은 황주홍-김종희(민주평화당) 의원이다. 그 다음으로는 김해영-이찬열 의원이다. 이분들은 발의한 법안의 수도 많고, 또 이 중 함께 발의한 법안도 많다는 뜻이다.

<그림 1>. 20대 국회 법안 발의 자료로 만들어본 의원들의 연결망. 제공 김범준
<그림 1>은 위의 방법을 이용해 만든 국회의원 전체의 연결망이다. 상당히 복잡한 모습이라 사실 아무런 정보도 눈에 띄지 않는다. 참고로, 개원 이후 직을 상실한 의원도 일부 연결망에 들어있다. 이처럼 복잡한 모습의 연결망에 어떤 정보가 숨어있는지 보려면 연결망 안 커뮤니티를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발견된 한 커뮤니티 안에 함께 속한 의원들은 공동발의가 많고, 다른 커뮤니티에 각각 따로 속한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공동발의가 적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림 2>는 <그림 1>의 전체 연결망에서 적절한 알고리듬으로 모두 네 개의 커뮤니티를 찾아본 그림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의원들은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다. 최근 만들어진 바른미래당의 경우 어떤 의원들이 합당에 참여했는지 보고자, 이전 소속정당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으로 나누어 표시했다.

<그림 2>. <그림 1>에서 네 개의 커뮤니티를 찾아 다시 그려본 연결망. 거의 대부분의 의원이 소속정당별로 명확히 구분되는 커뮤니티로 나뉜다. 바른정당과 대한애국당은 자유한국당 커뮤니티에 속하고, 정의당과 민중당도 함께 한 커뮤니티를 이룬다. 더불어민주당의 강창일, 이개호 두 의원이 국민의당 커뮤니티에, 거꾸로 국민의당의 이찬열, 최명길 두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커뮤니티에 들어있는 것이 재밌다. 이 네 의원의 법안 발의 패턴은 소속정당보다 다른 정당에 상대적으로 더 가깝다는 뜻이다. 제공 김범준
연결망 안 커뮤니티 구조는 극소수의 예외를 빼면 거의 완벽하게 소속정당에 따라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원들이 주로 같은 정당 소속 의원과 법안을 공동 발의하며, 다른 정당과의 법안 발의 협력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이다. 예상할 수는 있었지만 아쉬운 결과다. 의원들이 소속정당을 넘어 자신의 전문영역이나 관심분야에 따라서도 커뮤니티가 나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림 2>의 구조라면 국회의 입법 활동을 위해 굳이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아야 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개별 의원의 법안 발의 활동이 소속정당에 따라 거의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림 2>에서 확인할 수 있는 어쩌면 당연한 다른 결과도 있다. 먼저, 정의당과 민중당은 같은 커뮤니티에 속하는데, 자유한국당과의 연결은 아주 약한 반면, 더불어민주당과는 상당한 강도의 연결이 보인다. 즉, 정의당/민중당과 가장 가까운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가장 먼 정당은 자유한국당이고, 국민의당은 그 중간이다. 커뮤니티 구조만 보면,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그리고 국민의당과 민주평화당은 각각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다. 즉, 기존의 법안 발의 패턴만으로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합당하는 배경을 설명할 수 없다. 의원들의 이합집산이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바탕한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니면, 정치 성향과 법안 발의가 아무 상관이 없든가. 둘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알고리듬을 더 작은 규모에 적용하면, 각 정당 내부의 커뮤니티 구조도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각각 세 개의 커뮤니티로, 그리고 다른 정당은 두 개의 커뮤니티로 나눠보았다(<그림 3>). 누군지 모르는 의원이 훨씬 더 많은 나 같은 물리학자가 <그림 3>의 의미를 알기는 어렵다. 정당 안 계파거나, 아니면 의원들 사이의 개인적 친밀함이 반영된 것으로 짐작해본다.

<그림 3>. 법안 발의 자료로 구해본 각 정당 안의 커뮤니티 구조.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의원들이 공동 발의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석하면 된다. 한 정당 안 커뮤니티의 개수는 알고리듬으로 얼마든지 바꿔볼 수 있음에 주의할 것. 제공 김범준
이번 글에선 20대 국회의 법안 발의 자료를 분석해보았다. 엄청난 수의 법안이 발의되지만 모든 과정을 마쳐 공포되는 법안은 5%도 안 되고, 지명도가 높은 의원의 법안 발의는 오히려 적다는 것이 흥미롭다. 사실, 법안 발의의 정보로부터 분당이나 창당 시 의원들의 당적변경을 예측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연구를 시작했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내 결론이다. 법안 발의로 그려본 연결망의 구조가 소속 정당별로만 명확히 나뉘어, 의원 각자의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소속정당이 어디인지가 훨씬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다른 정당 의원과도 더 많이 협력하면 좋겠다. 난, 소속정당이 아닌 전문영역이나 관심분야의 커뮤니티로 나뉜 국회의원 연결망이 보고 싶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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