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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20 21:34 수정 : 2018.09.21 13:47

김범준의 인간관계의 물리학
⑪경제 불평등 줄이기

부의 불평등은 농작물과 가축으로 대표되는 농업혁명과 함께 유라시아 구대륙에서 탄생했다. 경제적 불평등의 역사는 1만년이 넘었다는 뜻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어지지 않았으니, 줄이는 노력이 불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마치, 모든 물체가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지니, 모든 사람은 중력을 거스르려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닮았다.

심상정(정의당) 의원실이 근로소득, 배당소득의 천분위 자료를 최근 공개했다. 근로소득이 일하고 받은 연봉이라면, 배당소득은 주식의 형태로 축적한 재산에 비례한다. 둘 모두 경제 불평등의 정도를 볼 수 있는 자료지만, 그 성격이 다르다. 예를 들어, 재벌 총수라도 월급을 받지 않으면 근로소득 기준 최하위 극빈자로 통계에 잡힌다. 경제 불평등을 살펴보려면 근로소득보다 배당소득이 더 낫다고 내가 판단하는 이유다. 우리 연구그룹의 이대경 연구원과 함께 살펴보니 근로소득 상위 10%가 차지한 비중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약 32% 정도로 큰 변화는 없었다. 한편, 2016년 배당소득은 상위 10%가 약 94%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소득의 불평등보다 부의 불평등이 훨씬 더 심하다.

나와 같은 물리학자들은 숫자 대신 그래프로 정보를 시각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2016년 배당소득의 누적확률분포를 그린 그림 1을 보자. 그래프 보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가로축에서 배당소득액 100만 원을 택하고 그에 해당하는 세로축의 값을 읽으면 10%다. 배당소득이 백만 원이 넘는 사람이 전체의 10%라는 뜻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여기서 10%는 전 인구의 10%가 아닌 배당소득이 한 푼이라도 있는 사람 전체의 10%를 뜻한다. 우리나라에는 배당소득이 단 1원도 없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혹시, “두터운 꼬리”라는 얘기를 들어보았는지. 확률분포의 오른쪽 꼬리 부분이 두터워 천천히 줄어드는 모양을 이야기한다. 바로 그림 1처럼 거듭제곱함수의 꼴(y=Cx-a, a=0.9)로 줄어드는 확률분포다.

그림 1. 2016년 우리나라의 배당소득의 누적확률 분포. 꼬리부분이 직선모양을 따라 전형적인 두터운 꼬리를 보여준다. 배당소득이 1억원이 넘는 사람은 0.1% 정도, 백만원이 넘는 사람은 10% 정도다. 지니계수는 0.96이다.

꼬리가 두터운 그림 1을 보자. 배당소득이 1만원인 사람은 많다. 이보다 열배, 백배인 사람도 상당수 있고, 천배, 만배, 심지어 십만배인 사람도 있다. 꼬리가 두터운 분포에서 흔히 관찰되는 특성이다. 종 모양 정규분포를 따르는 사람의 키는 다르다. 꼭대기에서 오른쪽으로 멀어지면 급격히 높이가 줄어드는, 즉 꼬리가 가는 분포다. 내 키의 열배는 고사하고 두배인 사람도 인류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처럼 꼬리가 두터운 분포는 꼬리가 가는 분포와 확연히 다르다. 꼬리가 두터운 모든 분포는 정도는 다르지만 하나같이 불평등한 분포다. 불평등의 정도를 재는 다른 방법인 지니 계수도 계산해봤다. 근로소득은 0.47, 배당소득은 0.96이다. 완벽하게 불평등해서 딱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극단적인 경우의 지니계수가 1이다. 우리나라의 배당소득은 더 이상의 편중이 불가능할 정도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경제적 불평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원전 6500년 이집트뿐 아니라, 현재 관광지로 유명한 폼페이도 불평등했다. 폼페이의 지니 계수는 약 0.55였다. 오랜 옛날의 부의 분포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재밌는 방법이 있다. 바로, 유적지의 집터의 면적을 재는 거다. 집터가 모두 비슷해 고만고만한 지역은 불평등도가 낮았고, 아주 큰 집부터 작은 집까지 골고루 발견되는 지역은 불평등이 심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연구(doi:10.1038/nature24646)에 따르면 부의 불평등은 농작물과 가축으로 대표되는 농업혁명과 함께 유라시아 구대륙에서 탄생했다. 경제적 불평등의 역사는 최소 1만년이 넘었다는 뜻이다. 이런 연구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어지지 않았으니, 줄이는 노력이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다. 이건 마치, 모든 물체가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지니, 모든 사람은 중력을 거스르려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닮았다. 중력을 알아야 중력을 극복해 달에 갈 수 있듯이, 경제적 불평등의 이해는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의 출발점이다.

우리 연구그룹의 이대경 연구원과 함께 단순한 컴퓨터 모형으로 살펴봤다. 모형은 다음과 같다. 10만 명으로 구성된 집단에서 각 개인은 1이라는 초기 자본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다. 편의상, 사업 성공 확률은 누구나 똑같이 50%라고 가정했고, 성공한 사람은 자본이 두 배가 되고, 실패한 사람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매년 진행하다가 가진 돈이 0.1보다 적어지면 이를 일종의 최저생계비로 간주해, 이 사람은 더 이상 사업을 하지 못한다고 가정했다. 현실이 이렇게 단순할 리는 없다. 하지만,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면, 부의 불평등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변명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 45년 동안 위의 과정을 반복해 결과를 얻어 보니, 꼬리가 두터운 꼴의 부의 분포함수를 얻었다. 부의 불평등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누구나 똑같은 재주를 가지고 있더라도, 누군가는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가난해질 수 있다는 결론이다. 현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그림 2. 간단한 모형으로 살펴본 부의 누적확률 분포. 누구나 능력이 같아도 부의 편중은 자연스럽게 출현할 수 있다. 소득세율 p(위 그림)나 재산세율 q(아래 그림)가 늘어나면 부의 불평등은 줄어든다.

다른 계산도 해봤다. 50%의 확률로 성공한 사람의 소득 중 p%를 소득세로 거두어 자본이 0.1보다 적은 모두에게 똑같은 액수를 나눠주는 방식이다. 이들은 이후에 다시 사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일종의 기본소득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일정액 이상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면,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할 수도, 양질의 교육을 받아 재취업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그림 2의 왼쪽은 이 간단한 모형을 통해 살펴본 소득세와 기본소득의 효과를 보여준다. 모형에서 10%의 사람들이 가진 부의 비율은 소득세율이 p=3%, 10%, 20%로 늘어나면 각각 74%, 62%, 51%로 줄어든다.

소득세는 중산층을 두텁게 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경향이 있다. 모형에 소득세가 아닌 재산세도 넣어봤다. 세금을 매년 소득에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축적된 재산에 비례하게 하는 방식이다. 재산세율 q를 늘려가면서 모형에서 얻은 부의 분포를 그림 2의 오른쪽에 그렸다. 두터운 꼬리를 가져 부의 불평등은 여전하지만, 그 정도는 점점 줄어든다. 상위 10%가 가진 재산의 비중은 재산세율 q를 1%, 3%, 5%로 늘리면, 불평등은 각각 82%, 71%, 62%로 줄어든다.

그림 3. 모형에서 소득세율 p(위)와 재산세율 q(아래)가 늘어날 때 전체 사회의 부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사회 전체의 부는 세율이 높아지면 처음에는 증가하다 결국은 감소한다. 소득세율은 약 p=40%일 때, 재산세율은 약 q=2%일 때 사회 전체의 부가 최댓값이 된다. 단순한 모형에서 얻은 결과라 현실에 직접 적용할 수 없다.
다음에는 세율에 따라서 사회 전체의 부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봤다. 이용한 간단한 모형에서, 세금으로 거둔 부분을 재산이 적은 사람에게 배분하면 이들이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사업자의 수가 늘어나니 이는 전체의 부를 늘리는 긍정적인 방향의 효과다. 하지만, 재산이 많은 사람은 세금을 더 내면 사업에 투자할 자본이 줄어드니, 이후 사업 수익은 줄어든다. 이는 전체의 부를 줄이는 방향의 부정적인 효과다. 이 두 효과의 경쟁은 흥미로운 결과를 준다. 그림 3에 소득세율 p(왼쪽)와 재산세율 q(오른쪽)를 점점 크게 할 때, 모형안 모든 이들의 총자산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려보았다. 소득세율은 40%, 재산세율은 2% 정도일 때 사회 전체의 부가 최대가 된다. 적절한 세율은 전체 사회의 부를 늘릴 수 있다는 상당히 재밌는 결과다. 부유층의 세금을 늘리면 투자가 위축되고 낙수효과가 줄어 사회 전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일부의 주장은 세율이 아주 높을 때만 맞는 얘기가 아닐까 한다. 적절한 세율과 기본소득의 보장은 불평등을 줄일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부도 늘릴 수 있다. 오늘 소개한 단순한 모형은 모형일 뿐이다. 간단한 모형으로 얻은 결과를 실제로 세상에 적용할 수는 절대로 없다. 하지만, 모형에서 얻어진 정성(定性)적인 결론의 일부는 우리 사회 현실의 이해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부의 편중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다. 간단한 모형으로 얻은 결과를 정리해보자. 가진 능력이 모두 고만고만하더라도 누군가는 부자가 되고 대부분의 다수는 그렇지 못해 부의 불평등은 자연스럽게 출현한다. 부의 편중을 없애기는 어려워도 그 정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소득세와 재산세를 적절히 부과하고 빈곤층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거다. 적절한 세율과 기본소득은 중산층을 늘리고 사회의 불평등을 줄인다. 게다가 사회 전체의 부도 늘어난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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