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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26 09:26 수정 : 2018.10.26 20:02

[김범준의 인간관계의 물리학] ⑫ 성과 이름
‘영자의 전성시대’는 길어야 30년

# 문학 작가들 중에도 필명을 쓰는 분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활동하는 문학 작가들의 이름을 모아서 이름의 다양성을 일반인과 비교해봤다. 독자도 예상할 수 있듯이 작가의 이름이 일반인보다 더 다양했다. 본명과 다른 필명을 쓰는 남성작가는 약 6.4%, 여성작가는 12% 정도라는 결과를 얻었다.

<너의 이름은> 홍보 포스터. 영화사 토호·코믹스웨이브 필름 제공
북적이는 삼겹살집에서 큰 목소리로 “김 사장님!” 하고 외쳐보라. 장담은 못 하지만, 아마도 적어도 몇 분은 고개를 돌려 쳐다볼 것이 분명하다. 남산에서 돌 던지면 김 서방이 맞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얘기다. 김씨가 워낙 많아 인구의 20%를 넘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이라 하면 전직 대통령 중 누구를 말하는지 다시 되물어야 한다. 우리나라 성씨는 다양하지 않아 성만으로는 누군지 알기 어렵다. 성씨와 함께 이름을 얘기해야 “아, 그분!” 하고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다. 인터넷에서 “김 교수”로는 나를 찾을 수 없지만, “김범준 교수”를 검색하면 내가 보인다. 성씨가 다양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려면 당연히 이름은 다양해야 한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외국은 다르다. 오바마, 트럼프 등 미국 대통령은 굳이 이름을 얘기하지 않고 성씨만으로도 누구를 지칭하는지 쉽게 안다. 성씨가 다양한 서양에서는 성만으로도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 때가 많아 굳이 이름이 다양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가 과거 인구의 절대다수의 종교였던 나라들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예수의 제자나 성인의 이름을 딴 이름이 많다. 내가 아는 ‘피터’(Peter, 예수의 제자 베드로)만 여럿이다.

우리나라의 성씨와 이름에 대한 과학 연구 분야에선 나와 공동연구자들이 세계적 권위자임이 분명하다. 놀랄 필요 전혀 없다. 이 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극히 드물어 누구나 권위자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지금이라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져 연구를 시작한다면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들 수 있다.

그림 1. 1500년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 이름의 분포 꼴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일직선을 따라 줄어드는 지수함수 꼴이다. 우리나라만 이런 가는 꼬리를 보여준다. 김범준 제공
성이 적어 이름이 다양한 한국인

우리나라 통계청에서 발표한 사람들의 성씨 목록에서 관심이 시작됐다. 김·이·박의 순서로 가로축에 각 성씨의 등수를, 세로축에는 그 성씨를 가진 사람의 수를 그래프로 그리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했다. 이런 식으로 그래프를 그려보는 시도는 무척 흔하다. 여러 도시를 인구에 따라 등수를 매겨 그리거나, 셰익스피어 희곡을 모아 등장한 영어단어의 빈도를 가지고 등수를 매겨 그래프로 그리면, 두터운 꼬리를 가진 모습(지난번 연재 글, “부의 편중을 줄이는 방법” 참조)이 나온다. 우리나라 성씨는 달랐다. 지수함수 꼴로 줄어들어 가는 꼬리를 보여준다(▶그림 1). 재밌게도 우리나라만 이렇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의 성씨 분포는 두터운 꼬리를 가진다. 우리나라는 정말 독특하다.

과거의 성씨 분포도 궁금했다. 과거가 어땠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연구원들과 함께 이 주제를 “성씨의 고고학”이라 불렀다. 선조들은 오랜 기간 집안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기록해 후손에게 물려줬다. 바로, 족보다. 물론 한 집안 족보의 남성은 성씨가 모두 같지만, 족보에는 그 집안에 시집 온 여성의 이름도 함께 담겨 있다. 족보에 수록된 며느리들의 정보를 추적하면, 과거 특정 시기의 성씨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조선 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성씨 분포는 지금과 같았다(▶그림 1). 500년 전에도 우리나라 성씨 분포는 지수함수를 따라 줄어드는 꼴이었다. 간단한 수학 모형을 적용해 성씨 분포를 설명할 수도 있었다. 모형과 이론을 통하면 관찰된 현상의 원인을 추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행성이 타원궤도를 따른다는 관찰은, 뉴턴의 법칙에 의해 잘 설명된다. 나아가 뉴턴의 법칙은 다른 모양의 궤도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찬가지다. 고안한 모형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특한 성씨 분포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다른 성씨를 아들이 새로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전통문화가 명확한 그 이유다. 일단 모형을 완성하면, 다른 것도 살펴볼 수 있다. 모형에서 아들이 다른 성씨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일정 확률로 가능하다고 가정하면, 다른 여러 나라와 같은 두터운 꼬리를 가진 성씨 분포가 얻어졌다.

그림 2. 우리나라 여성이름의 유행곡선. 가장 널리 유행했을 때를 가로축의 0으로, 그때의 빈도를 세로축의 1로 하고, 여러 이름을 평균 냈다. 이름의 유행은 약 30년 정도 지속된다. 김범준 제공
관심의 폭을 넓혀 성이 아닌 이름을 자세히 연구하기도 했다. 성씨는 바꾸지 못하니 사람들은 보통 이름을 가지고 자신을 다른 이와 구별한다. 이름도 옷차림과 마찬가지로 유행을 탄다. 이름이나 옷이나, 우리는 누구나 다른 이와 구별되면서도 너무 다르지는 않은 것을 주로 택한다. 나처럼 둔감한 사람은 눈치채기 어려워도, 아마도 옷차림의 유행은 매해 달라지고 있을 거다. 올해 유행은 작년과 비슷하지만 1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럼, 이름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유행이 변할까. 여러 이름을 모아 평균 곡선을 그려 살펴봤다(▶그림 2). 처음 등장한 이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널리 쓰이게 되고, 가장 유행한 시점을 지나면 그 빈도가 시간에 따라 줄어든다. 이름 유행에 관련된 시간도 계산해봤다. 한 세대인 30년 정도다.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에 유행했던 이름을 따라 딸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외국에서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이름의 유행지속 시간이 30년이라는 결과가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다.

그림 3. ‘순’, ‘자’, ‘숙’, ‘희’로 끝나는 여성 이름의 빈도의 변천. 일본식 성명 강요로 40년대 ‘자’로 끝나는 이름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해방 후 천천히 감소했다. 창씨개명은 ‘순’을 줄이고 ‘자’를 확연히 늘렸다. ‘순’, ‘자’, ‘숙’, ‘희’의 차례로 유행한 이름이 변했다. 김범준 제공
여성의 이름을 모아 20세기 초 이후 이름의 다양성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살펴봤다. 1940년대에 들어서 여성 이름의 다양성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1950년대 이후 이름의 다양성이 다시 이전의 수준을 천천히 회복했다. 1940년대의 다양성 감소의 원인을 당시의 유행 이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바로, 일제에 의해 강제된 일본식 성명 강요로 일본식 이름을 사람들이 많이 썼기 때문이었다(▶그림 3). 일제 치하를 살았던, 이제는 돌아가신 아버지께 일본식 성명 강요에 대해 여쭤본 적이 있다. 종이에 적어주신 메모가 지금도 내게 있다. 우리나라가 독립하지 못했다면 지금 내 성씨는 ‘김’이 아닌 ‘金岩(가나이와)’다.

필명으로 다양한 작가명

최근에도 이름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이 있다.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이 많다. 문학 작가 중에도 필명을 쓰는 분들이 있다. 이미 활동하고 있는 작가와 본명이 같은 경우, 새로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 중에는 필명을 본명과 다르게 하는 작가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활동하는 문학 작가들의 이름을 모아서 이름의 다양성을 일반인과 비교해봤다. 작가 중 서로 다른 이름이 몇 개나 있는지를 세고, 동수의 일반인에게서 발견되는 서로 다른 이름의 수와 비교해 보는 간단한 방법을 썼다. 독자도 예상할 수 있듯이 작가의 이름이 일반인보다 더 다양했다. 본명과 다른 필명을 쓰는 남성작가는 약 6.4%, 여성작가는 12% 정도라는 결과를 얻었다. 서로 다른 이름의 숫자를 비교한 결과여서, 작가 중 누가 필명을 쓰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본명과 다른 필명을 쓰는 작가가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연구, 혹은 호기심으로 추동된 연구(curiosity-driven research)라는 얘기가 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나, 남들이 첫손으로 꼽는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서나, 공학적 이용이나 경제적 가치를 목표로 해서가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시작한 연구라는 뜻이다. 오늘 소개한 우리나라 성씨와 이름에 대한 연구가 사실 이런 연구다. 내 연구그룹에서는 또, 학회 추동 연구(conference-driven research)라는 얘기도 재밌게 하곤 한다. 과학 분야의 학회에서는 진행 중인 연구를 미완성 상태에서 발표하기도 한다. 논문이 완결되기 전에 다른 과학자의 비평을 들을 좋은 기회다. 학회에 참석하려면 발표 내용을 요약한 초록을 학회일 한참 전에 제출해야 한다. 연구의 주제는 정해졌고 대강의 결과는 있지만, 초록을 제출하는 시점에 아직 결론이 확실하지 않을 때가, 부끄럽지만 간혹 있다. 이럴 때는 초록을 제출하고 나서 학회 날짜가 다가오면 본격적으로 연구를 서두르게 되는데, 바로 이런 연구가 “학회 추동” 연구다.

이번 <한겨레> 연재 글에서 우리 그룹의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바로 “칼럼 추동 연구(column-driven research)”다. 다가오는 칼럼 마감일에 맞춰 부랴부랴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형을 만들어 계산하는 일이 잦았다. 3C 중 첫 번째 C인 호기심 추동 연구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세 번째 C인 칼럼 추동 연구로 변질하여 진행된 적이 많았다. 궁금한 것 많은 교수의 칼럼 추동 연구에 발맞춰 함께 서둘러 준 이대경, 이송섭, 양성규 연구원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김범준의 인간관계의 물리학’ 연재를 마친다.

<끝>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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