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09 20:56
수정 : 2018.09.04 17:37
표현 서툰 아이 감정읽기
힘들고 좌절 땐 도움되나
훈육 등 필요시 적용하면
되레 부모·아이에 악영향
“우리 아름이 유치원 가기 싫구나.” “친구가 장난감 빼앗아서 솔이 많이 화났구나.”
엄마들이 ‘구나병’에 걸렸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많은 엄마들이 ‘~구나’체를 구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구나체’는 감정코치 전문가들이 상대방과 공감하는 방법의 하나로 제시하는 어법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행복, 슬픔, 화, 짜증, 즐거움 등 다양한 감정들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감정 표현이 미숙한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른다.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은 부모다. 감정코치 전문가들은 부모가 아이의 행동과 말에서 아이가 현재 느끼는 감정을 잘 읽어내 그런 감정들을 ‘슬프구나’ ‘짜증나는구나’ 등으로 읽어주면서 공감해주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아이가 정서적·신체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계적 가족치료 전문가인 존 가트맨은 수년간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감정코치를 받은 아이가 소변에서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 수치가 그러지 않은 아이들보다 낮게 나왔고, 유행성 감기와 같은 전염성 질환에 걸리는 일도 훨씬 적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학습능력, 사회적응력 등도 좋다고 강조한다. 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원장도 “부모가 아이에게 감정코치를 잘 하면 아이에게서 행복감을 느끼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나오고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과잉 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스트레스 지수가 낮고 면역력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학교폭력 문제와 아이들의 정서적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부모나 교사를 상대로 한 감정코치 교육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감정코치가 모든 상황에 필요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감정코치가 필요할 때가 있고, 오히려 감정코치를 하면 ‘독’이 되는 상황들이 있다고 말한다. 조선미 아주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어설프게 감정코치를 이해한 엄마들이 모든 상황에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려고 ‘~구나’를 남발해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다”며 “감정을 읽어주지 말아야 할 경우에 읽어주면 아이가 엄마에게 의존적이 되고, 엄마도 아이도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아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감정코치가 필요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감정코치가 부적절할까? 조 교수는 마음을 읽어줘야 하는 상황으로는 △아이가 좌절해서 마음이 상했을 때 △무엇인가 하려고 했는데 안 됐을 때 △힘든데 억지로 해야 할 때 △친구가 안 놀아줘서 속상할 때 등을 들었다. 그리고 감정을 읽어주면 안 되는 상황들에 대해선 △부모가 시간에 쫓길 때 △다른 사람이 있을 때 △부모가 너무 피곤하거나 화가 나 있을 때 △훈육이 필요할 때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고 훈육이 필요한 상황인데, 아이가 텔레비전이 보고 싶어 짜증내고 울더라도 그 마음을 읽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감정코치로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은 “아이가 슬퍼 보일 때 ‘아~ 너는 정말 슬프구나’라고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주면 부모의 역할은 거기서 끝인데, 한국 부모들은 슬픔의 원인을 찾아내 아이의 감정문제를 자신이 해결해주려 한다”며 “서양 부모와 한국 부모는 이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서 원장은 “감정코치는 서양에서 들어온 소통 방식의 하나”라며 “서양에서는 아이들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고 민주시민의 한 명으로 키우는 탄탄한 문화의 토대 아래 이런 소통 방식을 적용한 것이지만, 아직 그런 문화가 탄탄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기계적으로 감정을 읽어주고 부모가 아이의 문제까지 해결해주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도움말: 조선미 아주대병원 정신과 교수, 김영훈 가톨릭 의정부성모병원 원장,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감정코치>(존 가트맨 지음, 한국경제신문 펴냄)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 육아사이트 베이비트리 누리집(ibabytree.c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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