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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14 14:44 수정 : 2018.09.04 17:39

아이들 돌봐주시는 재중동포 이모님께서 중국에 있는 딸에게 치파오를 부탁해 민지 생일 선물로 줬다. 이모가 선물해준 옷을 입고 좋아라 하는 딸의 밝은 모습.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양선아 기자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미안해 딸, 네 마음 몰라줘서”

아침마다 나와 딸은 동시에 눈을 뜬다. 나는 자동적으로 딸의 입을 먼저 본다. 그 입에서 또 “엄마, 오늘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라고 물을 것 같기 때문이다. 딸의 어린이집 부적응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민지가 아침마다 울고간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민지는 아직도 아침마다 “엄마~ 어린이집 가기 싫어~엄마 선생님한테 전화해줘~”라고 말한다.

하루는 달래고, 하루는 화내고, 하루는 짜증내고, 하루는 무시하는 등 그날 내 기분 상태따라 내 컨디션따라 아이에게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마음 한 구석에선 ‘이렇게 대해선 안되는데... 좀 더 공감하면서... 좀 더 이성적으로...’라는 말이 들려오지만, 울먹울먹하는 딸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화가 불끈 솟아오른다.

‘어린이집 가기 싫으면 어쩌란 거야? 어쩌자고! 왜 이렇게 넌 아침마다 내 속을 뒤집니?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다. 아이에게 내색하기 싫어 얼굴을 돌리고 ‘휴~’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반복한다. 자꾸만 우는 아이 때문에 출근 시간이 늦춰지는 것도 짜증이 난다. 옆반 선생님과의 일이 해결됐는데도 여전히 힘들어 하는 민지를 보면서 도대체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아이 때문에 속상했다가도 회사에 출근해 글을 쓰고 취재원을 만나다 보면 어느순간 까맣게 그 일은 잊어버린다. 어떻게 보면 무심한 엄마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타고난 낙천성 탓이려니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던 중, 취재때문에 수원에 가서 조선미 아주대병원 정신과 교수를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선생님께서 내게 아이 얘기를 물었다.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 자신있게 아이 잘 키우고 있노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문제 많은 엄마들’ 얘기를 듣다 나도 그 엄마들 속에 포함되는 것 같아 뜨끔했다.

  

조선미 교수에게 들은 요즘 엄마들의 걱정되는 육아 양태는 이렇다. 요즘 엄마들 중엔 ‘공감할 줄 모르는 엄마’가 많다고 한다. 방송을 하면서 특히 그런 엄마들을 많이 만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문제 엄마가 아이 문제로 의뢰를 해와 “방에 들어가 아이랑 신나게 놀아주세요~”라고 하고 CCTV로 밖에서 조 교수가 지켜본단다. 엄마는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장난감 가지고 뭔가를 한다. 그러나 정작 아이와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말 그대로 ‘엄마 혼자 신나게 논다’고 한다. 그 엄마는 공감을 모르는 엄마라고 조 교수는 말한다.

조 교수는 “공감은 쉽게 가르칠 수 없을 뿐 아니라, 공감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며 “가장 좋은 공감의 방법은 눈을 마주보며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요즘 각종 박물관이나 체험관 등에 사람들로 북적인다”며 “아이랑 함께 할 때 꼭 어딘가에 데려가고, 무언가를 체험시켜주고, 각종 교구에 노출시켜 주는 것이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다”고 말했다.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다”라는 그 말. 그 말에 나는 그만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갑자기 아픈 곳을 찔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며 눈물을 보이는 일은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나는 순간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나는 선생님 말을 들으며 느낀 점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선생님... 사실 저희 딸이 어린이집 가는 걸 너무 싫어해요. 옆 반 선생님과의 문제가 있었고, 그 일로 오줌을 찔끔찔끔 싸면서 계속 긴장된 상태지요. 그래도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옆 반 선생님도 만나봤고, 담임 선생님도 만났고, 최대한 아이 마음도 이해하려 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 번씩 월차를 내서 친구들과 함께 키즈카페에 가서 신나게 놀아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 제가 아이와 많은 시간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이벤트’로 해결하려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생각해보면 둘째가 너무 예뻐 첫째와는 눈도 안마주치고 퇴근하자마자 둘째를 안고 있었던 것 같고요. 둘째가 애교도 참 많거든요.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저도 모르게 둘째를 더 편애했던 것 같고, 첫째랑은 한번씩 월차 내서 신나게 놀아주면 된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걸로 애한테 충분히 사랑을 주고 있다 생각했어요.”

 

가만히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조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오줌을 싸는 것은 엄마에게 지금 말을 걸고 있는 거네요. 아이의 문제 행동을 엄청난 문제로 바라보지 않아도 돼요. 그건 아이가 말로는 설명 못하고 몸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엄마랑 함께 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고, 엄마 사랑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거죠. 단순히 어린이집 문제가 전부는 아닐 거예요. 요즘 엄마 퇴근 시간은 어때여?”

 

(머뭇거리며) “늦을 때도 있지만 항상 늦는 편은 아녜요… 지금은 스트레이트 부서도 아니라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죠...”라고 말하는데, 옆에서 같이 일하는 선배가 “좀 늦는 편이죠. 보통 8시 정도 하고 늦으면 10시, 12시 정도.”라고 대답했다. 사실 내가 많이 늦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지켜본 선배 말대로 최근 퇴근 시간이 많이 늦었다.  

“생각해보니 좀 늦었던 것 같아요. 최근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늦는 횟수가 잦아 월차를 내서 아이와 신나게 놀아줬거든요.”

 

“사실 그렇게 월차 내서 한번씩 신나게 놀아주는게 좋은 게 아녜요. 아이에게는 ‘차이’이 크잖아요. 엄마랑 함께 있는 시간이 엄청 많았다가 갑자기 엄마는 늦게 들어오고. 아이랑 함께 하는 시간을 그렇게 고무줄 늘렸다 줄이는 식으로 하는 건 좋지 않아요. 오히려 일정하게 퇴근 시간을 당겨보세요. 오후 7시면 7시, 이런 식으로. 아이에게는 주양육자랑 일정한 시간 지속적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 중요해요. 그리고 눈을 보면서 아이와 얘기 많이 하세요.”

 

취재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계속 선생님의 그 말이 귓가를 멤돌았다.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다”

흔히 육아서에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라”는 원칙을 많이 봤다. 그런데 책에서 그 구절을 읽었을 땐 그 의미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조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그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절절히 맘 속에 와닿았다. 많은 엄마들은 아이에게 뭔가를 해줘야만 그것이 아이와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교구로 놀아주고 책이라도 읽어줘야 아이에게 뭔가를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꼭 아이가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정말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아이의 눈을 보고 대화하는 것.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랑은 관심과 공감이기 때문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 이 글은 한겨레신문 4월30일자 프리즘 칼럼 `기자 엄마의 반성문' http://babytree.hani.co.kr/?mid=media&category=38804&page=2&document_srl=61818>을 바탕으로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추가해 썼습니다.

칼럼이 나간 뒤 주변 선후배들이나 독자들로부터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어린이날이 오기 전 평소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말해줘서 좋았다는 사람도 있고, 주로 남자 선배들은 그 칼럼을 자기 아내에게 꼭 보여줘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독자는 "우리 부부도 아이 둘 키우는 맞벌이 부부죠. 저역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벤트가 아니라 아빠 엄마 자체가 이벤트라는 생각을 종종해요.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놀이 연구가 편해문 선생님께 배운 중요한 가르침 하나가, 아이에게 가장 소중하고 최고의 장난감은 부모래요! 최대한 힘내서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요. 같은 부모로서 기사 읽고 공감이 가서 무대뽀로 메일 보냅니다."라는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리고 상당수 많은 사람들은 내 육아기를 읽고 "아이는 괜찮아요? 빨리 좋아져야 할텐데... 이제부터 고생 시작이다"라고 걱정했다.

걱정하는 분들의 걱정도 덜어드리고, 이 글에 덧붙여 눈물을 왈칵 쏟은 뒤 내 생활의 변화와 아이의 변화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조선미 선생님의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다"라는 말은 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그러나 그것을 막상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눈물을 왈칵 쏟은 뒤 몇 주 정도는 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하고 저녁 약속을 무리하게 잡지 않으려 했다. 또 되도록 일정한 시간에 퇴근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정말로 아이 눈을 많이 봤다. 아이가 내게 말을 할 때 좀 더 아이 눈을 보며 대화를 많이 했고, 아이가 말할 때의 뉘앙스, 태도, 표정 등을 살폈다. 그렇게 하려고 하니 자연스레 아이와 대화할 시간이 늘었다. 또 민규보다는 민지를 더 많이 안아주려 애썼다. 민지와의 스킨쉽을 늘려나갔고, 내 머리를 믿지 않고 메모를 해가며 아이에 관한 스케줄을 관리하려 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두 달 넘는 시간이 지나 이제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많이 친해져서 적응이 된 것일까?

공교롭게도 그렇게 내가 노력을 하고 난 지 몇 주일 만에 아이는 많이 좋아졌다. 오줌을 찔끔찔끔 싸던 일도 사라졌다. 최근 일주일 새 일이다.

아침마다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라고 묻던 아이가 "엄마 선생님한테 3시 차 타고 온다고 전화해주고, 밥 적게 달라고 전화해줘"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한 주일 정도 지나 "엄마, 이제는 선생님한테 전화 안해줘도 돼"라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 다섯 번 어린이집 가고 두 번 어린이집 안가는거야? 나 그런데 어린이집 안가는거 싫어. 사랑반 선생님 보고싶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여전히 아이는 그날 기분 따라 "엄마가 어린이집 데려오면 안돼? 이제까지 차도 타고 왔고, 이모가 데리러 오기도 했으니까. 이젠 엄마가 나 데리러 오면 안될까?"라고 말하기도 하고, 갑자기 울먹울먹하며 엄마랑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린이집 안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쏟은 약발이 이젠 서서히 떨어지는 것 같다. 다시 퇴근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고, 민지와 눈 마주치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다시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다. 관심과 공감, 그리고 행동과 실천"이라는 말을 되뇌여본다.

죄책감에 짓눌린 불행한 엄마가 아니라, 일도 즐겁게 열심히 하면서 아이들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엄마 기자가 되고 싶다. 나중에 딸에게 엄마는 이렇게 살았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퇴근 시간이 늦게 마련인데, 가장 필요한 것은 일을 효율적으로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사 마감 시간처럼 데드 라인을 정해 놓고 일정 시간이 되면 집으로 향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

만약 일을 하지 못했다면 집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일한다. 저녁 약속도 가급적 일주일에 두 번을 넘기지 않으려 애쓴다.

이런 식의 노력을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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