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20 20:04
수정 : 2018.09.04 17:48
언어능력 좋은데 감정표현 적고
사회성 떨어지며 집착 강하다면
방치 말고 초교 입학즈음 치료를
뇌 회로상 문제…자폐증 연장선
초등학교 3학년 석진(가명)이는 학교에서 별명이 ‘자동차 박사’인데 친구들에게 괴짜로 통한다. 선생님은 석진이에 대해 “착하지만 특이하고 다른 아이들이 놀리는 것에 대해 과하게 화를 낸다”고 평가했다. 3살 무렵부터 말이 완전히 트인 석진이는 동화책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고, 유치원에 다닐 땐 친구들과 놀기보다 혼자서 레고나 블록을 맞추기 좋아했다. 또 석진이는 다른 아이들과 놀 때 게임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석진 엄마는 속상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석진이는 기차에도 관심이 많았다. 기차와 관련된 장난감, 책은 거의 외우다시피 했고, 초등학교 입학한 뒤로는 수업시간에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노트에 기차에 대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다 선생님께 걸리기 일쑤였다. 석진이 엄마는 “애가 친구들이 하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여 벌컥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 최근 친구들과 다툼이 잦아졌다”며 “친구들에게 왕따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석진이가 보이는 행동은 단순히 자동차나 기차를 광적으로 좋아해서 나타나는 행동일까? 석진이처럼 언어 능력은 문제없지만, 사회적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아이들이 ‘아스퍼거 증후군’에 해당된다. 김영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은 타인과 눈맞춤이 적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표현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또 독특한 관심이 있거나, 반복적인 행동이 있으며, 한 가지 주제에 지나치게 파고들어 전문가 수준을 보인다고 한다.
석진이와 비슷한 사례를 두고 육아 사이트에서는 엄마들끼리 종종 논쟁이 붙기도 한다. 어떤 엄마는 “아이가 천재성을 가지고 있으니 문제가 없고 아이의 천재성을 살리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엄마는 “친구들과 잘 사귀지 못하면 커서는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전문의와 빨리 상담을 해보라”고 말한다. 또 일부 엄마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에 해당되면 천재나 영재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어떤 이유로든지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을 부모가 그냥 방치하면 아이에게 오히려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은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느껴 늘 집단에서 겉도는 느낌,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기에 피해의식이 많고 별것 아닌 일에도 분노가 쌓이기도 한다”며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은 흔히 집착이 강하고 강박적인 성향이 있으므로 학령기 초기에 치료를 해줘야 청소년기에 생기는 이차적인 우울증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는 놀이치료, 사회성 기술훈련, 마음읽기 훈련 등이 있으며, 꾸준히 치료할 경우 많은 도움이 된다. 천 교수는 “사회성 치료를 하는 데 있어, 매우 어린 학령전기보다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며 “고학년이 될수록 단순한 사회성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하고 세련된 대인관계 기술들이 요구되며, 이미 초등 저학년 기간 동안 따돌림 당하면서 생긴 우울이나 불안 등의 합병증을 함께 치료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스퍼거 증후군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자신이 ‘직장인 엄마’라 아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또는 양육방식이 잘못돼서 이런 병이 생긴 것은 아닌지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모가 제공한 환경이나 잘못된 양육방식 때문에 이 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천 교수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회성을 관장하는 뇌 회로상의 문제가 있어 발생한다”며 “안와전두엽, 편도체, 해마, 뇌량, 측두엽 등 대뇌 영역 사이의 연결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유전적인 원인이 가장 근거있는 가설이고, 많은 전문가들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관련 유전자를 찾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다시 말해 자폐증의 연장선상에 있는 병인데, 이들 동일선상에 있는 일련의 병을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 부른다. 내년부터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진단명 자체가 사라지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는 자폐증의 진단기준이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수정되는 것인데, 세계적으로 정신질환 진단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을 미국정신의학협회가 개정하면서 자폐증 부문도 개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 좀더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 육아사이트 ‘베이비트리’ 누리집(babytree.hani.c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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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 증후군 아이에겐
인사법·친구와 대화법 차근차근 알려주세요
사회적 상호작용 이해 못하니 아이의 마음 읽어주는 게 중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은 특이하고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매우 고지식한 면이 많아 일상에서 부모와 많이 부딪힐 수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은 상대방과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고,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화가 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가도 자신이 아버지를 화나게 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이는 보이는 것의 ‘움직임’을 해석하는, 뇌의 ‘측두엽’이란 부분에 장애가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대체로 말투가 약간은 건방지고 잘난 척하는 경우가 많아 어른들의 심기를 종종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특성들 탓에 눈치 없는 아이처럼 보일 가능성이 많은데, 그런 특성들을 부모가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건방지다는 식으로 오인하면 부모와도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가 이 병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한 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법이나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상식에 대해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줘야 한다. 학교에 가서 수업 시작하기 전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안녕~ 오늘 날씨 진짜 덥다”고 말하도록 하거나, 그날 주요 뉴스와 같은 인사말을 가르쳐주는 식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에 대한 교육, 자연스러운 대화 주고받는 연습 등도 포함된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가장 좋지 않은 태도는 부모가 아이에게 늘 훈계하려 하고, 고집을 꺾으려다 아이를 체벌하고 혼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상황에 따라 ‘이런 일이 있어서 네 마음이 이렇겠구나’라고 알아주는 것이, 아이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게 해주는 바탕이 된다”고 조언했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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