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전남 순천시 연향2지구 호반3공원에 만들어진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에서 아이들이 출렁대는 흔들다리를 건너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뛰어놀고 있다. 그네나 시소 같은 놀이 기구가 없는 이 놀이터는 언덕, 개울, 토관을 활용한 동굴 등 다양한 놀이 공간을 곳곳에 배치했다. 순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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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놀 권리를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1호 개장
그네·미끄럼틀·우레탄 없애고
개울·비탈·동굴 ‘모험 가득’
“스릴 넘치는 놀이터 맘에 들어”
“으아~~~~”, “어어어어~으아악~~~”
지난 2일 오전, 전남 순천시 연향 2지구 호반3공원에 새로 마련된 놀이터에선 아이들의 고함과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이들은 비닐을 몸에 감은 채 물을 뿌려 미끌미끌한 천 위에 몸을 던져 비탈길 아래로 썰매 타듯 질주했다.
“속도가 장난 아니에요. 약간 무서웠는데 그래도 너무 재밌어요.” 잔디 미끄럼틀을 탄 주형준(13)군은 배꼽을 잡고 깔깔깔 웃어댄다. 상기된 표정에선 ‘뭔가 해냈다’는 자부심이 배어났다.
순천시는 오는 7일 호반3공원에서 2년여 작업 끝에 완성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의 문을 열고 공공 놀이터 혁신의 첫걸음을 뗀다. 어린이 200여명이 놀이터 설계 아이디어를 내고 감리를 맡고, 이름까지 직접 지었다. 어린이와 놀이터 전문가, 행정가가 머리를 맞대고 만든 첫 작품인 ‘기적의 놀이터’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놀이터가 아니다. 3000㎡에 달하는 넓은 공간에는 그 흔한 그네도, 시소도 없다. 기존 놀이터는 놀이 기구가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면, 기적의 놀이터에는 놀이 기구가 없다.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한 평탄면을 최소화하고, 우레탄·고무매트 등 충격 흡수제를 깐 바닥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언덕, 가파른 비탈, 계단 등 다양한 위험요인이 공존한다.
놀이터의 모토는 ‘스스로 몸을 돌보며 마음껏 뛰어놀자’이다. 마음껏 뛰어노는 것은 당연하지만, 스스로 몸을 돌보는 놀이터라니. 놀이운동가인 편해문 총괄 디자이너는 “세월호 사건에서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안전 신화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며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건강한 위험’(healthy risk)을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안전만을 강조하면서 위험이 완전히 제거된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깨진 병이나 날카로운 못과 같은 위험은 당연히 제거돼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인식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하고 극복할 수 있는 위험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반드시 필요하고, 놀이터에도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제일’을 모토로 놀이 기구 몇 개 갖춰 놓은 ‘놀이터 패러다임’을 전복한 셈이다.
졸졸졸 개울에서 돌 던지고…펌프질 하며 “하하하”
순천 율산초등학교 50여명기적의 놀이터 감리에 참여 “나무에 타이어도 달아주세요”
“일주일에 4~5번은 오고 싶어요” 바위가 있는 언덕·내리막·계단…
총괄 디자이너 “오로지 안전하면
아이들 상황 대응력 감소시켜”
조약돌 냠냠 2일 전남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에서 저학년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곳은 작은 개울가이다. 학생들은 개울안에 있는 조약돌을 던지거나 먹는 시늉을 하며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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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펌프도 있네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을 찾은 학생들이 놀다가 더러워진 손을 놀이터 곳곳에 설치된 우물펌프에서 나오는 물로 씻고 있다. 순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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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기구 없어도… 지난 2일 오전 전남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에서 율산초등학교 학생들이 7일 개장에 앞서 놀이터 곳곳을 누비며 감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놀이터는 설계 단계부터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순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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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미끄럼틀 타고… 비닐을 몸에 두른 어린이가 비탈진 언덕에 만들어진 ‘잔디 미끄럼틀’ 위로 썰매 타듯 질주하고 있다.순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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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파크로, 키즈카페로…돈으로 사는 ‘가짜 놀이’랍니다
▶‘하루 60분’ 놀 시간 보장한 전북교육청
▶“주말만이라도 아파트 주차장을 놀이터로”
▶구호뿐인 한국과는 달리…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놀이 거품 시대…번지르르한 놀이터 토건 막아야” ※한겨레 임신출산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에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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