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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03 21:09 수정 : 2018.10.05 16:54

아이에게 놀 권리를

아이들이 제대로 못 노는 사회
초등 1학년들도 끝나면 학원행
놀 시간도 함께 놀 친구도 없어
“돈 내고 축구클럽 가서 공놀이”

놀이의 상업화가 ‘격차’ 문제로
“딸 생일파티 이벤트에 50만원 써”
부모 형편따라 놀이격차 벌어져
정부는 공공 놀이터 등 가꿔가고
부모도 놀이에 대한 인식 바꿔야

“지난해 1학년 입학 뒤 아이와 함께 학교 앞을 많이 배회했어요. 함께 놀 친구들이 너무 없었어요.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이 잠시 놀다 모두 학원 버스를 타고 영어, 태권도, 미술, 피아노 학원에 가더라고요.”

이수애(41·가명)씨는 아들 민수(9·가명)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놀 시간과 놀 공간이 없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민수 친구들은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3~4개의 학원을 다니느라 바빴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틈새 시간’을 이용해 민수와 놀았다. 한 친구가 잠깐 놀다 가버리고, 또다른 친구가 잠깐 놀다 가버리면 민수도, 민수 엄마도 허탈감을 느꼈다. 이씨는 끝내 민수의 친구들과 함께 축구팀을 결성했다.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6명이 한 조를 이뤄 한 아이마다 5만원씩 내고 일주일에 한 번 축구 코치를 불러 축구를 배우며 함께 놀았다. 이씨는 “돈을 들이면 놀 시간, 놀 친구, 놀 공간까지 한꺼번에 해결됐다”며 “이제는 돈이 없으면 놀 수도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시대다. 놀 시간과 놀 친구들을 상당 부분 사교육에 뺏긴 상황에서, 그나마 놀려고 해도 아이들이 마음껏 놀 공간이 없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공차며 놀지 않고 축구 클럽에 들어가 축구를 배운다. 생일 파티를 집에서 조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키즈카페나 패밀리 레스토랑, 각종 이벤트 대행사를 통해 그야말로 이벤트처럼 진행한다. 아이들의 생일 파티 장소는 수영장, 축구 클럽, 태권도장, 패밀리 레스토랑 등 장소도 다양해졌고, 갈수록 ‘기획’되고 있다.

김호연(41·가명)씨는 최근 5학년 딸의 이색 생일파티를 진행하면서 50만원을 썼다. ‘레크레이션 도자기 생일 파티’를 여는 업체에서는 장소 제공은 물론 레크레이션 시간과 함께 도자기 만드는 체험까지 제공했다. 딸도 친구들도 만족도가 높았다. 김씨는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고 안 갈 수 없고, 다른 친구들처럼 내 아이도 해주려 하다보면 경제적 부담이 늘 수 밖에 없다”며 “반 모임과 생일 파티가 부모들에게는 최고의 고민”이라고 전했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간 체험전에서 수도놀이 체험을 하고 있다. 부모들은 다양한 체험을 아이들이 통해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은 계획적이고 목적성을 갖는 놀이는 ‘진짜 놀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러한 추세는 부동산투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투자자들은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할 때 의류, 에프앤비(Food & Beverage) 브랜드 등을 우선순위로 꼽았지만, 요즘에는 키즈카페, 키즈테마파크 등의 입점 유무를 중요시하는 추세다. 유안타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키즈산업은 지난 2002년 8조원대에서 2012년 27조원으로 2000년대 초반 이후 연평균 13%의 성장률을 보였다. 2015년엔 39조원 규모로 확대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아이들의 놀이가 상업화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놀이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지난해 ‘놀이터를 지켜라’라는 캠페인을 진행한 세이브더칠드런의 김은정 권리옹호부장은 “키즈카페같은 놀이 공간을 일정 시간 사서 놀이를 누릴 수 있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다”며 “격차를 아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격차를 줄이도록 정부가 놀이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력들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놀이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지자체에서 방치된 공공 놀이터뿐만 아니라 민간 주택단지나 아파트에서 폐쇄되거나 방치된 놀이터까지 정부·지자체 차원에서 잘 가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놀이에 대한 부모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정희 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 대표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대로 노는 것은 ‘진짜 놀이’가 아니라 ‘가짜 놀이’”라며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려면 아이들의 자유 놀이 시간 확보가 최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진짜놀이’와 ‘가짜 놀이’ 구분법

보육 전문가, 교육학자, 놀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어른들의 놀이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를 구분하고, 놀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또다른 사교육을 시키거나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뺏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짜 놀이‘란 무엇일까?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아이들에게 진짜 놀이는 3가지는 없고 4가지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없어야 하는 3가지는 계획성(계획하지 않는다), 목적성(마무리하지 않는다), 강제성(강제하지 않는다)이다. 많은 엄마들은 `엄마표 놀이’로 놀이를 주도하려 한다. 아이는 인형 놀이를 하고 싶어하는데, 엄마가 다른 놀이 계획을 세워 아이의 놀이를 중단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놀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행위다. 또 아이들에게 `진짜 놀이’는 목적이 없어야 한다. 아이가 체험전에서 종이로 멋진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하자. 아이는 멋지게 만든 자동차를 부수면서 놀고 싶어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은 애써서 만든 자동차를 아이가 부수며 놀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가짜 놀이‘다.

그렇다면 ‘진짜 놀이’에 있어야 하는 4가지는 무엇일까? 즐거움, 자유로움, 도전성, 자기주도성이다. 아이 스스로 재밌어야 하고, 스스로 계획하고 참여하고 하고 싶어야 한다. 특히 자기주도성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변경 가능해야 한다. 아이와 놀면서 어른들이 “이렇게 말고 이렇게 해봐~”라고 하는 것은 벌써 놀이가 아니다.

편해문 놀이운동가는 “전래놀이 등 각종 체험전 돌기가 놀이가 아니다”며 “아이가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때 비로소 놀이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놀 권리뿐만 아니라 놀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두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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