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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엄마가 잠자리 의식으로 아이와 손유희 동작을 하는 모습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잠자리 의식을 하면 아이에게 내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김영숙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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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하루, 날마다 들쭉날쭉하면
시차 다른 나라 여행하듯 불안
처음부터 너무 거창하게 하지 말고
아주 단순한 행동 한 가지 택해
같은 시간-장소-방법으로
혼자 있기와 부모와 함께 있기나
밖에서 놀 때와 집 안에서 쉴 때 등
적절한 균형과 조화 필요
낮과 밤, 하루 리듬 익숙해지면
긴 호흡의 리듬 위해 가족 축제도
기계적·강압적인 ‘무조건’은 곤란
상황 따라 융통성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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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엄마가 잠자리 의식으로 아이와 손유희 동작을 하는 모습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잠자리 의식을 하면 아이에게 내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김영숙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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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지수를 키우는 김윤정(35·서울 관악구)씨는 저녁 8시 반이 되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잠자리 의식을 시작한다. 그림책 읽기와 아이 이마에 뽀뽀하기다. “지수야~ 잠잘 시간이야. 읽고 싶은 그림책 딱 한 권만 골라 와.” 엄마 김씨가 이렇게 말하면 지수는 그림책을 가져오고, 두 사람은 침대에 앉아 책을 읽는다. 책읽기가 끝나면 딸 이마에 뽀뽀를 하고, 불을 끄고 함께 침대에 눕는다. “자, 꿈나라로 갈 시간~”. 의식은 날마다, 예외 없이, 반복된다.
자장가 부르기, 목욕하기, 이야기 들려주기, 그림책 읽기….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어떤 형태로든 잠자리 의식을 치른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들이 잠자리에서만 중요할까? 육아 전문가들은 0~7살 영유아 시기에는 생활 전반에서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생활 리듬이 중요하다며 생활 리듬을 잘 살리기 위해서 일상의 의식(ritual)을 잘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 덜하게 돼
<천천히 키워야 크게 자란다>의 저자인 김영숙 라이프웨이스 코리아 연구소 대표는 “영유아들은 예측 가능한 생활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크게 느낀다”며 “반복을 통해 아이들은 세상을 알아나가고 주변과의 관계 맺음을 배워 나간다”고 말한다. 부모가 일상을 단순화해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세끼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반복적으로 하면, 아이들은 이후에 일어날 일의 불확실성에 대해 덜 걱정하게 된다. 김 대표는 “어린아이들에게 규칙적인 반복, 리듬이 없는 하루 생활이란 불안 그 자체이다. 마치 어른들이 일 때문에 매일 시차가 다른 낯선 나라를 계속해서 떠돌아다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규칙적인 생활, 말로는 쉽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만만찮다. 현대인의 생활은 하루하루 바쁘다. 영유아 부모들도 예외는 아니다. 또 주변에 부모를 유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텔레비전,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키즈카페와 같은 각종 오락시설과 밤늦도록 운영하는 대형마트까지 부모와 아이의 규칙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것들이 널려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너무 큰 목표,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김 대표는 “아주 단순한 행동 한 가지를 택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방법으로 해나가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권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같은 노래로 아이 깨우기, 밥 먹을 때 같은 노래 부르기, 잠자리에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기 중 하나를 선택해 시도해볼 수 있다. 단순한 행동 하나를 반복하면 아이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부모 또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그만큼 아이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통찰력을 키울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생긴다.
엄마 위한 자유시간 주고 대신…
바쁜 워킹맘이라면 요일에 따라 아침 메뉴를 같은 음식으로 먹거나, 토요일과 일요일의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어 계속 반복하는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 잦은 야근으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 아빠라면, 주말에 반나절 또는 몇 시간이라도 가족의 상황에 따라 ‘엄마를 위한 자유시간’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시간만큼은 항상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일주일에 1~2회 또는 몇 시간만이라도 계획한 날, 계획된 시간에 같은 방법으로 아빠가 아이들과 온전히 시공간을 함께한다면 아빠와 아이의 애착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리듬감 있는 생활이란 규칙적인 생활 외에도 들숨과 날숨의 조화, 아이 혼자 있기와 부모와 함께 있기의 균형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발도르프 육아예술>의 저자인 이정희 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 대표는 “바깥에서 아이가 신나게 놀면서 에너지를 발산했다면, 아이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인 집에서 부모와 조용히 안정을 취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에너지 발산과 안정,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감 있게 하루 일과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또 리듬감 있는 생활을 하려면,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과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뭔가를 하고 있으면 지나치게 과잉 반응을 하거나 간섭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아이가 놀잇감을 가지고 잘 놀면 부모는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 아이 혼자 보내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칫 아이나 부모 서로 짜증 키워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중시한 나머지, 그것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거나 강압적으로 강요하면 곤란하다. 잠자는 시간을 지키겠다고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아이에게 자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든가,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이기 위해 아이를 쫓아다니며 억지로 밥을 먹이는 것은 리듬 있는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밤과 낮의 리듬, 일주일의 리듬, 월의 리듬, 계절의 리듬, 일년의 리듬….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온 영유아들이 세상의 이 모든 리듬에 익숙해지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대표는 “상황 따라 융통성을 가지면서 유사한 것들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낮과 밤의 리듬, 하루의 리듬이 익숙해지면, 차차 월의 리듬, 계절의 리듬, 일년의 리듬을 만들기 위한 우리 가족만의 축제 의식을 치르는 것도 좋다. 월 1회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함께 만들어 나누어 먹기, 계절에 따라 이웃과 소박한 가족 음악회 꾸리기, 연말에 가족 신문 만들어 읽기 등 가족 축제로 기획할 수 있는 소재는 많다.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나 추석은 물론 단오, 하지, 동지 등 주요 절기에 맞춰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고 노래하거나 음식을 만들고, 전통 놀이를 즐기는 것도 리듬감 있는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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