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덕, 백종민씨 부부는 갈등 상황이 발생해도 회피하거나 침묵하지 않는다. 끝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점을 찾아낸다. 잘 싸우는 만큼 평등한 부부가 되었다. 두 사람 중에 주로 밥을 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밥솥은 종민씨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다. 김은덕·백종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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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결혼식 결혼선언문 1항은
‘독립된 개체로서 평등하게’였다 아내는 며느리라는 호칭 거부하고
남편은 남자다움, 가장이란 말 버려 “끝까지 싸우다 보면 건강한 합의
“늘 이혼을 염두에 둬야 상대 배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한번도 싸운 적 없다는 부부를 만난 적이 있어요. ‘정말로 그것이 가능해?’라고 갸우뚱했죠. 저희 부부에겐 싸움이란 ‘서로에게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징표예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노력한다는 증거죠.” 김은덕·백종민 부부는 결혼 7년차다. <사랑한다면 왜>, <한 달에 한 도시>, <없어도 괜찮아>를 쓴 부부 작가인 이들은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사 없이 하객들 앞에서 결혼 선언문을 발표했다. 결혼 선언문 1항은 ‘독립된 개체로서 평등하게 살아갈 것입니다’였다. “어릴 때부터 결혼한다면 고아나 재미교포, 외국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만큼 누군가의 집 며느리라는 역할극에 들어가기 싫었거든요.” 결혼 뒤 2년 동안 지구촌 여행 가부장제 속에서 ‘나’라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김씨다. 백씨와는 평등한 부부 생활이 가능할 것 같아 비혼주의자에서 돌아섰다. 결혼 뒤 김씨는 ‘남의 집에 기생하는 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며느리’라는 호칭을 거부하고 자기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시댁 가족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요리나 빨래·청소 등 가사노동도 공평하게 분담했고, 아이는 낳지 않기로 합의했다. 백씨 역시 ‘남자다움’, ‘가장’, ‘세대주’, ‘장남’과 같은 말들이 부담스러웠다.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꿈을 접고 한 가정의 남편 역할만 강요받는 것이 싫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말을 넘어선 결혼 생활을 꿈꿨고, 결혼 뒤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 가치관이 비슷한 두 사람인데도 막상 함께 생활하니 자주 부딪혔다. “쓰레기는 제발 다용도실에 두자. 하루 전부터 이렇게 내놓으면 냄새나고 벌레도 생기잖아!”(종민) “눈에 보여야 버릴 수 있고, 안 보이는 데 두면 분리배출일을 깜빡하잖아.”(은덕) 쓰레기 버리는 방식부터 빨래를 걷는 시점, 설거지하는 방법, 요리 순서 등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결혼 뒤 각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년 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했는데, 좋아하는 도시도 여행 방식도 달랐다.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 회피하거나 침묵하지 않았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대화 시간이 많으니 서로 속내를 끄집어내는 횟수가 많았어요. 그러니 싸워야 할 때 피하지 않고 잘 싸울 수 있었어요. 싸우고 싸우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합의를 이끌어냈고, 어떤 부분에서 멈추고 안아줘야 하는지 타이밍도 알 수 있었지요.” 부부 싸움은 두 사람에게 부부 관계를 체념의 굴레로 빠지게 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건강한 삶으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특히 가부장제가 여전히 작동하는 현실에서 백씨는 “은덕의 요구가 조금 지나치다 싶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아내와의 길고 지난한 싸움으로 백씨는 입으로만 부르짖는 평등에 머무르지 않게 됐다. 그는 “한평생 기득권자로 살아온 남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남녀평등이 결국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짐도 덜어줄 희망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늘 이혼을 염두에 두며 살라”고 말한다. 너 때문에 혹은 나 때문에 이혼을 준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을 안 하려고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놀이 전문가 권오진, 북 아티스트 박선민씨 부부는 "부부도 잘 놀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편 권씨가 하루에 10분씩 중국어 독학을 한 지 4년째 되는 날 찍은 기념사진이다. 중국어 독학 기념일을 만들고, 해마다 부부가 기념사진을 찍는 놀이를 한다. 권오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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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도 발 닦아주기도 꽃 선물도 놀이 20년간 5천개 넘는 아이들 놀이 개발
아이와 놀듯 아내와 날마다 1분 놀이 “모든 놀이는 쉽고, 재미있으면 놀이
삶 자체가 놀이가 되는 것이 최고” 권씨는 ‘하루 1분만 놀아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며 놀이의 중요성을 알려온 전문가다.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그가 딸이 취업 후 독립하고 아들이 군대에 간 뒤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부부 놀이’에 빠져 있다. 권씨는 “아이와 놀이하듯 아내와 1분 놀이를 한다”며 “아이와의 놀이가 목적이 없고 아이가 깔깔거리고 웃으면 최고의 놀이가 되듯, 아내와의 놀이에도 목적이 없고 그저 매일 아내를 환하게 웃게 하면 성공”이라고 말했다. 권씨가 아내와 하는 주 놀이는 안마 놀이다. 퇴근 뒤 권씨는 아내를 불러 어깨를 안마해준다. 이럴 때 그냥 주무르지 않는다. 아내 어깨 위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으려고 손가락을 움직이다 목을 살짝 스치며 간지럼을 태운다. 아내는 이때 ‘까르르’ 웃으며 정확한 위치를 짚어준다. 5분 정도 안마를 해주면 아내가 “그만 주무르라”고 말한다. 권씨는 그때 아픈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이 굳었다”고 아내 눈앞에 보여준다. 아내는 권씨의 손가락을 주물러주며 또 웃는다. 부부 65%가 하루 대화 ‘1시간 미만’ 권씨는 ‘아내를 하루에 3번 웃기기’라는 놀이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실천한다. 안마 놀이 외에도 등 긁어주기, 아내 몸을 들었다 놓기, 꽃 선물해주기, 발 닦아주기처럼 소소한 놀이를 한다. 권씨는 “놀이는 아이만 하는 것이고, 어디 놀러 가는 것이며, 돈이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러한 생각은 놀이에 대한 오해”라고 지적했다. 20년 넘게 5천개가 넘는 놀이를 개발했고, 수천번의 실전 놀이 강의를 하면서 권씨가 얻은 깨달음이 있다. 모든 놀이는 쉽다. 우리의 삶 자체가 놀이터이며, 재미가 있으면 모두 놀이가 된다는 사실이다. 잘 싸워서 평등한 부부, 잘 놀아서 행복한 부부. 서로 다른 빛깔의 부부지만 마주앉아 대화할 줄 알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공통점이었다. 여성가족부가 전국 5018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5 가족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부부의 하루 평균 의사소통 시간은 전체 응답자의 65.4%가 ‘1시간 미만’이라고 답했다. 2010년 조사 결과에 비교해 대화 시간이 ‘30분 미만’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더 늘었다. 대화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부부 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커진다. 두 부부 이야기를 읽고, 우리 부부의 대화 시간과 질을 따져보면 어떨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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