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12 17:41
수정 : 2019.05.1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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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MBC, SBS, CJ E&M 등 주요 방송사. KBS 제공/ 정용일 기자/ 한겨레 자료/ CJ E&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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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과 손흥민, 블랙핑크와 류현진 소식이 간간이 들린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스타의 활약이 당사자나 기껏해야 관계자들한테나 좋을 일일 텐데, 이상하게도 우리들 대중까지도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동일시? 허위의식? 애국심? 몇몇 태그들이 맴돌기는 하는데 썩 마음에 드는 가설이 떠오르진 않는다.
어쨌든 잘나갈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들 대중은 더 나은 대중문화를 향유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요구를 하느냐에 따라 문화산업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국의 문화산업은 정상화될 수 있을까. 한국 대중문화의 겉과 속이 딴판이란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방송콘텐츠가 훌륭하다고? 스태프 노동 착취, 외주제작 원하청 구조, 간접광고, 쪽대본 등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까. 케이팝이 글로벌하게 확산된다고? 연습생 사기와 착취, 대형 기획사 독과점, 아이돌 감정노동과 혹사 등도 확산된다면 어떨까. 관전자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류니 뭐니 해서 호들갑을 떨긴 하는데 그런 식으로 덩치를 키우면 키울수록 리스크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한국 대중문화는 그렇게 비정상적인 한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쪽대본이 없었다면 시청자 반응이라는 시장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현장 스태프 착취가 없었다면 스타 마케팅이 가능했을까. 연습생을 쥐어짜지 않았으면 수준급의 퍼포먼스가 가능했을까. 기획사의 대형화가 없었으면 콘텐츠 융합을 시도할 수 있었을까. 아이돌을 혹사하지 않았다면 팬들과 친밀감을 나누는 게 가능했을까.
천민자본주의라 했던가. 굴지의 기업들이 병영문화를 통해 조직을 관리하고 각종 유착으로 경영 기반을 다져왔던 것처럼, 문화산업 역시 예외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떤 기획사는 부동산을 통해 더 많은 자산을 축적했다 하고, 어떤 기획사는 정관계에 줄을 대느라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여전히 스타는 반짝거리지만 그러는 동안 말단의 문화산업 종사자들은 자기 인생을 갈아 넣어야만 한다. 생각할수록 기이하지 않은가.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문화산업이 가장 전(前) 자본주의적인 요소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렇게 산업 자체가 리스크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정상화라는 과제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단적으로 비정상적인 관행들을 일거에 없애버린다면 고공비행 중인 문화산업 자체가 추락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연착륙을 시도하려 하면 제트기류에 요동이 치곤 한다. 문화산업의 정상화를 요구해야 할 시민·대중의 마음이 바로 그렇다. 연습생 처지가 딱하지만 수준급 아이돌은 계속 배출되어야 한다. 아이돌이 혹사당하는 건 싫지만 ‘덕질’할 ‘떡밥’은 계속 나와야 한다. 스태프들의 사정이야 안타깝지만 스타가 나오지 않으면 섭섭하다. 연예계가 도덕적·성적으로 문란한 건 못 봐주지만 막상 씹을 거리가 없으면 심심하다.
어디 그뿐일까? 보기에 따라서는 어떤 것이 정상인지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경우도 있다. 예컨대 <어벤져스>의 스크린 침공을 막을 수 있을까, 또는 그게 가당키나 할까. 팬덤이 이렇게 활성화됐는데 이들이 가지고 노는 저작권은 어느 정도나 허용해야 할까. 문화산업이 주식시장에 들어가면 전보다 투명해지는 걸까, 아니면 주주자본주의에 휘말리게 되는 걸까.
뜯어고치고 싶지만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상황이다. 한국의 문화산업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떤 정점 위에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이지만 정확히 같은 이유로 기우뚱거리고 있다. 이질적이고 비동시적인 것들이 한데 얽힌 괴물의 형상을 하고서 말이다. 정상화라는 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이 자체가 정상이라고 단념해야 하는 것일까.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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