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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07 11:59 수정 : 2018.09.20 16:31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한겨레 · 멜론 · 태림 공동기획 _ 61~70위 공개

한겨레가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와 공동기획으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음악평론가, 음악방송 피디, 음악 전문 기자 등 47명이 투표한 결과를 바탕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한겨레는 8월28일부터 9월28일까지 한 달 동안 순위를 역순으로 공개한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정오에 디지털 기사로 열 장의 앨범을 공개하고, 그 가운데 두 장의 앨범을 꼽아 전문가 리뷰를 소개한다. 전체 앨범을 듣거나 전문가 리뷰를 보려면 맨 마지막에 안내한 멜론 특집 페이지로 가면 된다.

――――――
한국 대중음악 명반 61~70위

61위 패닉 <밑>(1996)
- 이적의 음악적 광기와 실험정신이 마침내 폭발한 앨범

62위 김두수 <자유혼(自由魂)>(2002)
- 한국 포크계 은둔자의 저주받은 걸작

63위 이정선 <30대>(1985)
- ‘이정선’표 블루스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앨범

64위 공일오비(015B) <The Third Wave>(1992)
-한국 팝의 찬란한 진일보

65위 루시드폴 <루시드폴>(2001)
- 21세기 한국 모던 포크의 본보기

66위 정태춘 <시인의 마을>(1978)
- 한국적인 포크의 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앨범

67위 브라운 아이즈 <Brown Eyes>(2001)
- 동양인의 ‘브라운 아이드 소울’, 한국형 R&B의 시작

68위 전인권 허성욱 <1979-1987 추억 들국화>(1987)
- 들국화 시절 다하지 못한 말을 풀어낸 후일담 같은 앨범

69위 서태지와 아이들 <Seotaiji And Boys III>(1994)
- 거친 사운드 위로 작정하고 토해낸 날선 메시지

70위 못 <비선형>(2004)
- 예측이 불가능해서 더 아름답고 우울한 앨범

64위 공일오비(015B) <The Third Wave>(1992)

전문가 리뷰 | 1988년 MBC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그룹사운드’ 무한궤도는 모두의 기대와 달리 단명했다.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돋보인 1989년 첫 앨범은 그들의 마지막 앨범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무한궤도의 역사는 순식간에 과거에 묻혔다. 하지만 멤버 중 신해철(보컬, 기타), 정석원(건반), 조형곤(베이스)은 계속 음악계에 남아 눈부신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포스트 무한궤도’의 역사는 1990년부터 본격화한다.

그해 신해철이 솔로 가수로 데뷔해 아이돌 스타로 거듭난 사이, 정석원과 조형곤은 그룹 공일오비를 진수해 확실한 신고식을 치렀다. 정석원의 친형 장호일(기타)이 고정 멤버로 힘을 보탰다. 공일오비는 처음부터 독특한 활동방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보컬의 대부분을 외부 인사로 채우는 ‘객원 가수 시스템’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노래마다 고유의 색을 입혔을 뿐 아니라 신인 가수 등용에도 쏠쏠한 역할을 했다. 윤종신, 이장우, 김태우, 김돈규, 조성민 등 여러 해 동안 공일오비가 배출한 보컬리스트들은 하나같이 걸출했다.

이러한 보컬에 눈부신 후광을 입힌 주역은 그룹의 핵심인 정석원이다. 정석원은 무한궤도에서 채 뽐내지 못한 창작력을 새 팀에서 마음껏 발휘했다. 대중성 있는 멜로디, 다채로운 스타일, 공감과 흥미를 자극하는 노랫말은 그의 특장이자 팀의 정체성으로 자리했다. 그 덕에 공일오비는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이상의 모든 요소를 거의 완벽한 형태로 드러낸 작품이 팀의 세 번째 앨범인 1992년 작품 <The Third Wave>다. 저마다 개성을 뽐낸 수록곡들은 당시 한국 팝의 진일보한 현태(現態)를 대변한다. 대표적인 예가 타이틀곡이자 히트곡인 ‘아주 오래된 연인들’. 타성에 젖은 연인들의 ‘웃픈’ 이야기와 긴 인트로를 내세운 감각적인 하우스 양식이 동시대 가요의 클리셰를 거부한다.

이러한 재기는 다른 트랙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내레이션, 보컬, 스캣이 관능적인 조화를 이루는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공일오비 보컬의 모든 양태를 아우른 ‘수필과 자동차’, 무공해 아카펠라에 친환경 가사를 얹은 ‘敵 녹색인생’ 등 신선함이 줄을 잇는다. 절창의 듀엣(‘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 가슴 저미는 팝 발라드(‘5월 12일’), 톡톡 튀는 록 넘버(‘현대 여성’) 등 빤한 공식마저도 공일오비라서 빤하지 않다. 여기에 유일한 연주곡 ‘Santa Fe’는 앨범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힌다.

한마디로 이 앨범은 1990년대 초반 한국 팝의 보고다. 당시 한국 대중음악을 구성하던 다양한 스타일을 담은 ‘모범 전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앨범으로 공일오비는 1990년대 가요계의 대세로 떠올랐고, 작사 작곡의 대부분을 맡은 정석원은 후배 창작자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이후 공일오비의 고공행진은 1996년에 나온 여섯 번째 앨범으로 아쉽게 마무리되었지만, 그 달콤한 후유증은 지금도 유효하다.

추천곡 ‘수필과 자동차’ |

이 곡에서 ‘음악 감독’ 정석원은 1) 한국에 레게 열풍이 채 불기도 전에 레게를 직수입해 왔고, 2) 영화, 수필, 자동차 등 흔한 소재를 끌어다가 세속화한 어른들의 모습을 재치 있게 묘사했으며, 3) 김태우, 윤종신, 이장우 등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자연스럽게 엮어 냈다. 이로써 ‘수필과 자동차’는 공일오비의 모든 특장을 아우른 대표 예시가 되었다.

김두완/음악평론가

70위 못 <비선형>(2004)

전문가 리뷰 | 중독적 우울함의 지도. 처음 못의 앨범을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던 이미지다. 이리도 우울하고 어두운 색채를 지닌, 포근함이나 따사로움, 역동적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음악에 왜 이렇게 빠져들게 되는 걸까? 강한 도취를 전하며 오래도록 반복해 듣게 하는 이토록 매혹적인 중독성의 정체는 뭘까?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 낸 기계적이고 차가운 전자음악, 터져 나오는 감정을 애써 감추는 듯 살짝 떨리는 나른하고 무표정한 읊조림, 신시사이저와 피아노, 강렬한 혼돈을 표출하는 듯한 노이즈와 때로 몽롱하게 아련한 감성을 자아내고 때로 세차게 내달리는 기타, 담담한 어쿠스틱 베이스와 가끔씩 맹렬하게 폭발하는 드럼 등이 얽히고설킨 현란한 소리의 조합. 켜켜이 쌓여가는 그 치밀한 잿빛 사운드의 층 사이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던 내 감정은 어느 순간 소리에 동화되어 불규칙하게 넘실대는 음의 파도를 타기 시작한다.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사랑의 상실로 인한 깊은 상처와 고통을 안은 채 깨질 듯 불안한 정서를 지니고 있지만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몸부림친다. 그의 내면은 음울함으로 가득 차 있고 치유하기 힘든 공허함에서 오는 참담한 외로움만이 그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다. 그의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스스로를 외부 세계와 고립시키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툴툴 털고 희망을 가져 보려고도 하지만, 마침내 자학하듯 그 끝 간 데 없는 절망 속에서 자조하고 체념하며 모든 걸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가 노래하는 뒤틀린 ‘What A Wonderful World’의 노이즈를 비집고 나오는 ‘멋진 세상’이란 말은 지극히 역설적이다.

싱어송라이터 이이언(eAeon)과 기타리스트 지이(Z.EE)로 구성된 듀오 못이 완성한 데뷔작의 사운드는 그 전까지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스타일을 특징으로 한다. 물론 이들의 음악에는 우울한 서정과 실험적 일렉트로니카를 절묘하게 뒤섞어 독창적 세계를 펼친 라디오헤드나 몽환적 트립합의 선구자 포티셰드의 짙은 영향과 흔적이 배어 있지만, 못은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 자신들의 섬세한 그림을 그려 냈다. 앨범 타이틀로 쓰인 ‘비선형’이라는 용어는 수학에서 사용되든 전기나 건축에서 쓰이든 1차 결합의 형태가 아니고 직선적 관계가 아니며 비례하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제목처럼 못의 음악은 일반적인 예상 가능 범주에 있지 않다. 불협화음과도 같은 일렉트로닉과 쓸쓸함 가득한 브릿팝의 향기는 교묘하게 어우러져 커버에 등장하는 으스스한 숲속 연못의 이미지처럼 일관된 어두운 분위기를 이루고 있고 결과적으로 보편적 감성에서 한 걸음 비껴 있는 사운드가 되었다.

즉 이 앨범의 정서는 코스모스보다는 카오스에 가까이 있다. 그러나 언뜻 무질서하게 퍼져 있는 듯 보이는 낯설지 않은 다채로운 양식은 각각의 곡마다 빈틈없이 치밀하게 배치되고 특히 탁월한 작곡 역량이 돋보이는 수려한 멜로디와 더불어 이들 특유의 사운드로 거듭났다. 밴드의 명쾌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Cold Blood’와 ‘카페인’, ‘현기증’과 같은 탄탄한 만듦새를 지닌 뛰어난 곡들을 비롯하여 ‘가장 높은 탑의 노래’나 ‘상실’, ‘날개’에 등장하는 재즈의 요소도 무척 인상적이다. 친숙한 서정시에서 벗어난 세련된 은유와 상징 또는 직설적인 감정 표현에 사용된 정제된 시적 언어가 담긴 가사 또한 이들만의 매력이다.

추천곡 ‘Cold Blood’ |

이별이라는 잔혹한 현실 앞에서 마치 체념하듯 냉혈한의 가면을 쓰는 화자의 이야기 ‘Cold Blood’는 밴드의 비범한 역량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곡이다. 이들은 “추억은 투명한 유리처럼 깨지겠지/ 유리는 날카롭게 너와 나를 베겠지/ 나의 차가운 피를 용서해”라는 잊을 수 없는 노랫말과 함께 일렉트로니카와 모던록, 재즈라는 흔한 재료를 매끈하고 능란하게 버무려 밴드의 색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경진/음악평론가

정리/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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