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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21 11:59 수정 : 2018.09.21 14:39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한겨레 · 멜론 · 태림 공동기획 _ 21~30위 공개

한겨레가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와 공동기획으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음악평론가, 음악방송 피디, 음악 전문 기자 등 47명이 투표한 결과를 바탕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한겨레는 8월28일부터 9월28일까지 한 달 동안 순위를 역순으로 공개한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정오에 디지털 기사로 열 장의 앨범을 공개하고, 그 가운데 두 장의 앨범을 꼽아 전문가 리뷰를 소개한다. 전체 앨범을 듣거나 전문가 리뷰를 보려면 맨 마지막에 안내한 멜론 특집 페이지로 가면 된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21~30위

21위 노이즈가든 〈Noizegarden〉(1996)
-소리의 충격으로 기억될 한국 록의 이정표

22위 서태지와 아이들 〈Seotaiji And Boys(1집)〉(1992)
-한국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바꾼 바로 그 앨범

23위 송골매 〈송골매 II〉(1982)
-대중을 사로잡은 하드록 명반

24위 김광석 〈다시부르기 II〉(1995)
-원곡의 인기마저 넘어선, 한국 포크 명곡들의 재해석

25위 조동진 <1집>(1979)
-한국 포크를 묵묵히 지킨 거목의 빛나는 데뷔 앨범

26위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2000)
-조선 펑크 최고작이자 한국 인디신의 걸작

27위 신촌블루스 〈신촌 Blues II〉(1989)
-작품성과 인기를 동시에 거머쥔 한국 블루스 대표 명반

28위 조용필 <조용필 7집>(1985)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응축한 ‘가왕’의 대표작

29위 정태춘 박은옥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
-음반 사전검열제 철폐를 이끌어낸 앨범

30위 이소라 <눈썹달>(2004)
-프로듀서, 보컬리스트, 작사가 이소라의 최고의 성취

22위 서태지와 아이들 <Seotaiji And Boys(1집)>(1992)

전문가 리뷰 | 록 그룹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출신 서태지가 댄서로 활동 중이던 양현석과 이주노를 규합하여 결성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대중음악계에 던진 충격은 대단했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힙합, 유로 댄스, 테크노, 팝 발라드 등 여러 장르가 뒤섞였고, 그 위엔 랩이 얹혀 있었다. 국외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창구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당시 이들의 음악은 대중과 평단을 비롯한 기성 가수들에게도 신선함과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안겼다.

이 모든 충격과 환희의 시작이었던 <1집>은 그해 최고의 화제작이자 문제작이었다. 일단 전면에 부각한 랩부터 엄청난 논란과 환호를 불러왔다. 리더 서태지는 미국 뉴욕의 게토에서 십수 년 전 탄생한 이 혁신적인 보컬 형식을 그들의 음악에 이식하고 대중 앞에 펼쳐보였다. 물론, 스타일적으로나 가사적인 부분에서의 온도차는 컸다.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국내에서 최초로 랩을 시도한 것도 아니었다. 홍서범, 김완선, 신해철 등이 그보다 앞서 랩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에서 랩은 낯선 장르였다. 심지어 랩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도 수두룩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서태지가 택한 노선이다. 그는 미국에서 한창 메이저 장르로 발돋움하던 힙합에서 랩을 가져오되 프로덕션적으론 전혀 다른 방식을 취했다. 리듬 파트와 4마디 루프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던 당대 힙합 사운드와 달리 유로 댄스, 테크노, 뉴 잭 스윙 등의 장르를 랩과 결합시키는 데 주력했다. 더불어 “환상 속의 그대” 한 곡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노래 파트를 삽입하고 멜로디를 부각하면서 대중과의 접점을 꾀한 점이 눈에 띈다.

결과적으로 <1>집엔 그룹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다양한 스타일과 무드의 곡이 담겼다. 돌이켜보면, 넉 장의 정규 앨범 중 제일 대중친화적이기도 하다. 미 올드 스쿨 힙합에서 간간이 들을 수 있었던 일명 ‘랩 러브송’ 특유의 나긋나긋한 랩과 팝 발라드 감성을 버무린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80년대 후반의 뉴 잭 스윙 사운드를 추구한 ‘이 밤이 깊어가지만’, 강렬한 테크노 비트 위로 후렴구까지 랩으로 꽉 채운 ‘환상 속의 그대’ 등은 앨범의 하이라이트이자 서태지의 음악적인 감각이 빛난 곡이다.

다만, 가장 크게 사랑받은 타이틀곡 ‘난 알아요’는 꼭 재평가하고 넘어가야 한다. 방송에서 첫 선을 보였을 당시 현장에 있던 모든 이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을 만큼 파격적인 감흥을 전한 이 곡은 그룹이 해체한 이후, 뒤늦게 특정곡을 베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지목된 곡은 독일 출신의 듀오, 밀리 바닐리가 1988년에 발표한 ‘Girl You Know It's True’다. 실제로 두 곡은 (서태지의) 노골적인 레퍼런스 수준으로 유사하다. 원저작권자의 소송을 비롯한 법적인 절차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표절이라고 할 순 없지만,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손 꼽는 ‘천재 아티스트’로 대우받는 현실을 고려하면, 매우 씁쓸해지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본작이 한국 가요계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추천곡 ‘이 밤이 깊어가지만’ | ‘난 알아요’와 ‘환상 속의 그대’에 이은 후속곡으로 80년대 후반의 뉴 잭 스윙 사운드와 가요 발라드 특유의 감성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 앨범에서 블랙뮤직 장르의 문법을 가장 충실히 따른 곡이기도 하다. 특히, 보컬 샘플과 스크래칭 샘플을 적재적소에 삽입한 것은 당시 매우 신선하고 세련된 시도였다.

강일권/음악평론가

30위 이소라 <눈썹달>(2004)

전문가 리뷰 | <눈썹달>이 나오기 8년 전, 두 번째 앨범 <영화에서처럼>(1996)에는 ‘Produced by 이소라’라는 표기가 있었다. 이소라의 시작엔 좋은 프로듀서들이 있었다. 그가 대중에게 처음 목소리를 들려준 ‘낯선 사람들’에는 고찬용이라는 훌륭한 리더 겸 프로듀서가 있었고, ‘낯선 사람들’에서의 활약을 지켜본 김현철은 프로듀서로 나서 그를 솔로가수로서 성공시켰다. 이런 시작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간과하지만 이소라는 일찍부터 자신의 앨범을 스스로 책임져왔다. 4집 <꽃>(2000)에서 다시 김현철이 프로듀서를 맡은 적이 있지만 2집에서 처음 앨범을 구상하고 기획한 뒤부터 단순히 가수를 넘어 프로듀서 이소라로서도 경력을 쌓아왔다.

프로듀서의 역할은 무척이나 많겠지만 ‘프로듀서 이소라’는 먼저 자신에게 맞는 곡을 줄 작곡가를 찾는 데 집중했다. 3집 <슬픔과 분노에 관한>(1998)이나 5집 Sora's Diary(2002)는 일종의 징후였다. 신대철과 김태원 같은 ‘헤비메탈’ 밴드 출신과 작업하는 이소라를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른바 ‘고급가요’의 범주에서 벗어나 이한철, 김민규(스위트피), 조윤석(루시드폴) 등 새로운 얼굴들에게 곡을 받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소라는 자신이 구상하는 앨범에 필요한 인물을 찾고 거기에 맞는 곡을 받았다. 신대철과 이한철, 김민규는 이후에도 이소라의 앨범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이 작업은 계속해서 당대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인디신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의 음악과 경력을 갱신해나갔다. 그 음악과 경력의 가장 빛나는 지점에 <눈썹달>이 있다.

<눈썹달>에서 이소라는 앞서 언급한 신대철, 이한철, 김민규 말고도 이승환(스토리), 강현민, 정재형, 정지찬 등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이승환과 강현민이 만든 훌륭한 팝 발라드 사이에서 김민규와 이한철은 신선한 정서를 앨범에 불어넣었고, 신대철과 정재형은 마치 트립합이나 영화음악 스코어 같은 트랙으로 분위기를 환기한다. 익숙한 형식의 발라드로 시작해 더 넓은 세계를 그려나간다. 각기 다른 스타일과 정서를 갖고 있지만 ‘앨범’의 범주에서 튀는 곡은 없다. 이소라는 단 한 곡의 노래도 만들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노래를 배치하고 앨범을 통제했다.

여기까지가 프로듀서 이소라의 역할이었다면 ‘보컬리스트 이소라’는 실질적으로 이 다양함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든다. 이소라의 목소리는 ‘호소력’이라는 쉽고 뻔한 수식을 뛰어넘는다. <Fortuneteller>에서 이소라는 마치 샹송처럼 노래하기도 하고, <Siren(세이렌)>에선 허밍만으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바람이 분다>에서 들려주는 극적인 절창과 쓸쓸히 운 듯 노래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는 이별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듯하다.

이별이라는 주제 아래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품 있게 적어 내려간 ‘작사가 이소라’의 역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덕분에 우리는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같은 아름다운 이별의 문장을 얻을 수 있었다. 프로듀서 이소라, 보컬리스트 이소라, 작사가 이소라는 각자의 자리에서, 또 하나가 되어 <눈썹달>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다. “가늘게 솟아오른 눈썹달”과 “이렇게 여윈 나”는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추천곡 ‘바람이 분다’ | 나직이 “바람이 분다”로 시작하던 노래는 “사랑은 비극이어라”란 회한으로 마무리된다. 극적인 곡의 구성과 악곡도 뛰어나지만 이를 더 빛나게 하는 건 이소라가 ‘서러운 마음’으로 써내려간 노랫말이다. 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랫말로도 꼽히는 이 노랫말은 보편적인 언어로 이별마저도 기품 있게 그려냈다. 최고의 노래이며 동시에 최고의 노랫말이다.

김학선/음악평론가

정리/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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