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와 공동기획으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음악평론가, 음악방송 피디, 음악 전문 기자 등 47명이 투표한 결과를 바탕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한겨레는 8월28일부터 9월28일까지 한 달 동안 순위를 역순으로 공개해왔다. 마지막으로 1~10위 앨범을 공개하고, 그 가운데 두 장의 앨범을 꼽아 전문가 리뷰를 소개한다. 전체 앨범을 듣거나 전문가 리뷰를 보려면 맨 마지막에 안내한 멜론 특집 페이지로 가면 된다.한국 대중음악 명반 1~10위1위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1987)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 올라가는 마스터피스
2위 들국화 <들국화(1집)>(1985) -세월과 세대를 뛰어넘는 한국 대중음악의 절대적 걸작
3위 신중현과 엽전들 <신중현과 엽전들>(1974)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역작 ‘미인’이 수록된 앨범
4위 김민기 <김민기(1집)>(1971) -시대의 변곡점, 대중음악사의 갈림길이 된 앨범
5위 산울림 <아니벌써(1집)>(1977) -세상에 파격을 선사한 한국의 첫번째 펑크 앨범
6위 어떤날 <어떤날 I>(1986) -조동익, 이병우 듀오가 남긴, 잔잔하게 오래가는 전설
7위 산울림 <제2집>(1978) -실험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한국 록의 도약
8위 한대수 <멀고 먼 길(1집)>(1974) -한국 포크 역사의 특이점
9위 넥스트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1994) -신해철이 꿈꿔온 밴드 음악으로 세상에 던진 충격파
10위 이상은 <공무도하가>(1995)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걸작이 된 앨범
1위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1987)전문가 리뷰 | 유재하에 관해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는 게 이제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의 상대적으로 짧은 인생과 절대적으로 짧은 이력은 단 한 장의 앨범으로 남았을 뿐이고, 우린 그걸 지난 30년 동안 거듭해서 청취하고 반복해서 논의해 왔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유재하의 음악이 끊임없이 새로운 관객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니, 어쩌면, 관객들이 유재하의 음악에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발견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비평가 척 클로스터먼은 로큰롤 즉, 현대 대중음악이 작가의 의도보다 관객의 반응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렇게, 다른 뛰어난 작품들이 그렇듯,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관객으로부터 새로운 평가를 획득하며 훌륭하게 연륜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랑하기 때문에>에 대한 평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유산들을 선정한다는 취지로 지난 20년 사이 평균 10년 간격을 두고 진행된 세 차례 조사에서 이 앨범은 1998년 7위(음악지 〈서브〉 조사)를 거쳐 2007년 2위(〈경향신문〉 조사)에 선정됐고, 여기 2018년에는 집계결과 목록의 맨 윗자리를 헌정받았다. 물론, 여론조사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다시피, 저기서 순위란 불변의 가치가 아니라 가변적 위치로 보는 게 맞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변화한 세상은 변화한 기준으로 대두하기 마련이니까. 그게 별볼일 없는 숫자놀음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건 특정한 시점의 지표로 기능한다는 의미다. 요컨대, 이 또한 여론조사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다시피, 순위를 지정하는 숫자들의 작은 차이는 당대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유효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여기서라면 <사랑하기 때문에>가 한국 대중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단일 작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기본적으로 훌륭한 노래들의 집합이다. 앨범 전체가, ‘Minuet’의 우아한 일탈을 제외하고, 팝 송라이팅의 새로운 전범이라기에 모자람이 없다. 클래식으로 훈련된 이성과 팝으로 경사된 감성을 아우른 작곡가로서 유재하는 뛰어난 만큼이나 달랐는데, 조용필이 부른 ‘사랑하기 때문에’와 김현식 버전의 ‘가리워진 길’이 무미한 범작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에 대한 반증인 셈이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를 당대의 수작쯤에서 멈춰 세우지 않고 시대의 걸작으로까지 견인한 가장 강력한 동인은 편곡자로서 유재하의 능력이다. 작곡가로서 유재하의 재능과 짝을 이룸으로써 궁극의 시너지를 발휘한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에>가 요즘의 젊은 관객들에게도 신선하게 들리도록 만든 보이지 않는 손이다. 예컨대, 기타 솔로가 마치 의무처럼 삽입되던 시대에 기타 연주를 완전히 배제해버린 ‘가리워진 길’이나 재즈의 연주 구조와 클래식의 악기 구성을 통해 통속가요로 오인될 만한 선율에 차별성을 부여한 ‘우울한 편지’는 그에 대한 증거와 다름 아니다. 모던한 발라드의 어법을 완성형으로 제시한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과 ‘그대 내 품에’, 그리고 타이틀 트랙 ‘사랑하기 때문에’는 말할 것도 없다.
혹자는 이 앨범을 가리켜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한 사람의 가수가 작사와 작곡과 편곡을 ‘혼자서’ 완수해낸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재하가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성취해냈다는 측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다. 음악적 감동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들리는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가 앞으로 십 년쯤 뒤에도 변함없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건 관객들이 여기 담긴 노래들에서 여전히 감동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와 다름 아닐 테니까.
추천곡 ‘텅 빈 오늘밤’ | 냉정히 말해서 이 노래는, ‘우리들의 사랑’과 더불어, <사랑하기 때문에>의 수록곡 가운데 세월의 그늘이 가장 짙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뉴 웨이브 풍의 사운드 프로덕션 때문이다. 당대의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한 노래의 숙명적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곡에서 유재하의 세련되고 정교한 편곡작업이 만들어냈을지도 모르는 가상의 매그넘 오퍼스를 상상하게 됨을 거부할 수 없다. 그가 계속해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재즈의 농도를 희석한 스틸리 댄 혹은 클래식의 터치를 가미한 토토 정도의 음악을 만들지 않았을까 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를 통해 브루스 혼스비 앤 더 레인지까지 육박했던, 유재하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렇게 나의 질문은 응답의 가능성을 잃었다.
박은석/음악평론가
7위 산울림 <제2집>(1978)전문가 리뷰 | 첫 곡이 흐른다.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기타 노이즈가 살아있는 듯 꿈틀거린다. 절로 고개를 흔들게 만드는 절묘하고도 끈끈한 3분30초가 지나면 독창적인 가사가 독보적인 목소리를 통해 발산된다. 여러 가지 의미로 충격이다. 들을 때마다 그렇다. 그 만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언제 들어도 놀라운 곡이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산울림의 2집을 대한민국 명반에 올리는 것에 어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이 앨범의 발표일을 확인하면 더욱 그렇다. 1978년.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런 실험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걸까? 작곡, 작사, 편곡, 연주 등 앨범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지금과 비교해도 여전히 압도적이다. 이렇듯 산울림 2집은 외국 영향도 거의 받지 않은 순수한 대한민국 록 음악이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가치가 더욱 올라가는 진정한 명반이다.
산울림. 우리 대중음악 역사에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지금 활동하는 우리나라 음악인 대부분이 많든 적든 간에 산울림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돌연변이의 등장에 가까웠던 파격적인 음악 스타일은 한국 대중음악의 패러다임 자체를 뒤흔들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우리 음악계가 폭넓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산울림이 더욱 대단한 것은 실험성이 강한 음악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함께 살던 대중들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고 함께 호흡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뭘까? 그 당시 사람들의 음악적 소양이 지금보다 특별히 높았다기보다는, 산울림 2집이 담고 있는 정서 자체가 한국 고유의 것이었다는 점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산울림을 실험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한국 록’의 시작으로 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산울림의 2집은 1977년 1집 <아니벌써>와 비교해서 사운드와 연주 부분에서 큰 발전을 이룬 앨범이다. 그것도 5개월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산울림 멤버의 비범함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파격적인 등장이라는 상징성에서는 1집이 뛰어나지만, 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완성도 자체는 2집이 높다. ‘나 어떡해’, ‘노래 불러요’, ‘둘이서’ 등의 재기발랄함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안개 속에 핀 꽃’, ‘어느 날 피었네’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사이의 균형도 잘 잡혀있다. (‘나 어떡해’는 샌드페블스의 곡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김창훈이 만든 곡으로 산울림 2집에도 실렸다.) 특히 산울림 특유의 오르간과 기타가 함께 주도해나가는 사운드도 2집 들어서 확고하게 틀이 잡혔으며, 이는 향후 발표되는 산울림의 초기 음악은 물론 더 나아가 한국형 밴드 사운드의 뿌리가 되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는 앨범이다.
추천곡 ‘어느 날 피었네’ | ‘어느 날 피었네’는 산울림 2집 수록곡 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함께 연주의 비중과 밀도가 가장 높은 곡이다. 주어가 없는 제목이지만 곡의 분위기를 단번에 장악하는 인트로 부분의 사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연상시킬 정도로 무게감이 있고, 이후 본 멜로디로 진입하는 전환도 매우 매끄럽다. 곡의 중심부에서 펼쳐지는 악기들의 인터플레이도 완성도가 높으며, 멜로디를 한층 부각시키는 연주 주법도 훌륭하다. 또한 이 곡에 입혀진 김창완의 가사는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사운드와 하나로 수렴되어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산울림은 이렇게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렇게 복잡미묘한 것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김홍범/KBS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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