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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7 09:26 수정 : 2019.09.02 16:58

[토요판] 오은·요조의 요즘은
스쿨 미투 고발자 이황유진

작년 3월 용화여고서 첫 스쿨 미투
전국 중고등학교로 동시다발 확산
한달 뒤 천안 북일고 학생 이황유진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피해 고발

1학년 때부터 알게 된 남학생들의
수위 높은 음담패설과 성적대상화
3학년 때 서지현 검사의 미투 직후
친구와 릴레이 연설로 심각성 알려

스쿨 미투 고발자 이황유진(천안 북일고 졸업)씨가 지난 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돌이켜보니’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은 삶의 궤적을 인과 관계로 파악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의 행동에 이유를 찾고, 일련의 행동이 자신을 여기로 이끌어주었다고 믿는 것이다. 이유가 늘 명쾌한 것은 아니기에 질문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도 한다고 했다. 그들에게 삶은 구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은 삶에 우연적 요소가 많이 개입한다고 믿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삶의 여정에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사건들을 가슴 깊이 새긴다는 것이다. 우연이 늘 유쾌한 것은 아니기에, 마음을 쓸어내리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삶은 변화하는 것에 더 가깝다.

어떤 말을 품고 살든, 우리는 지금 여기 와 있다. 자신의 의지대로 성큼성큼 걸어온 사람도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휩쓸려 여기에 당도한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좋든 싫든 이 현장에서 살아야 한다. 그때 미처 헤아리지 못한 일을 반성하기도 하고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도 하면서 여기를 채워야 한다. 차별과 혐오의 자리에 평등과 연대가 들어설 수 있게 애써야 한다. 삶을, 다름 아닌 여기를 마음껏 긍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2018년 4월 스쿨 미투에 나섰던 천안 북일고 졸업생 이황유진을 만났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고백에 용기를 얻은 이황유진은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연설한다. 학교 내 남학생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성적 대상화와 혐오에 대한 이야기였다. 많은 이들이 놀랐지만 그는 오히려 힘을 얻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같은 해 11월3일, 학생의 날을 맞아 개최된 스쿨 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통해 그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청페모)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자신 외에도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는 활동가가 되었다. 이처럼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 함께 있으면 가능해지기도 한다. 많은 변화가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황유진을 만난 것은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스쿨미투 움직임이 시작된 지 어느덧 1년, 학교와 정부, 시민사회가 그들의 물음에 어떻게 답해왔는지 들었다.

전교생 앞에서 스쿨 미투

―코너 제목이 ‘요즘은’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지난 2월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저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쉬고 있습니다. 미국은 8월에 1학기가 시작되거든요.”

―진학할 학교가 결정된 건가요?

“3월 중으로 발표가 다 날 거예요. 일단은 한 군데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어요.”

―공론화 날짜가 2018년 4월4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3 시절이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시기일 텐데, 어떤 계기로 용기를 낼 수 있었나요?

“실은 피해 사실을 1학년 때 알았어요. 당시에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남자 기숙사에서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알려줬어요. 그때 처음으로 기숙사에서 수위 높은 음담패설이 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 전에도 불쾌한 일들은 있었어요. 얼굴, 몸매, 성격, 매력 등의 항목으로 여자애들을 순위 매겨 그 결과를 당사자가 직접 알려줬거든요. 마치 칭찬하는 것처럼.”

―분노해야 하는 일이네요.

“처음에는 화만 났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했어요. 한 남자애가 말했다고 하는데 걔가 독백으로 한 건 아닐 테고, 어떤 대화의 일부였을 거 아니에요? 그 대화에 누가 참여했는지 알 수 없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선배가 있을지, 친구가 있을지 모르니까. 고발하려고 했는데 증거가 없잖아요. 당연히 누구한테 말해야 하는지도 몰랐고요. 선배들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제가 입학하기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결국 흐지부지 넘어갔다는 거예요. 흐지부지 넘어갈 바에는 차라리 말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을 했죠.”

―혼자서 끙끙 앓는 시간이었겠어요.

“3학년이 되고 3월에 라크로스(끝에 그물이 달린 크로스라는 스틱을 이용하여 상대의 골에 공을 쳐 넣어서 득점을 겨루는 구기 경기) 국가대표로 일본에 가게 되었어요. 저랑 같이 간 우리 학교 친구가 ‘한국에 돌아가서 미투할 거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때가 마침 서지현 검사님이 용기를 낸 직후였거든요. 저희는 수요일마다 전교생이 모여서 어셈블리(assembly)라는 것을 해요. 그 자리에서 그 친구가 먼저 연설을 했어요. 선생님들이 학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아셨지요. 친구의 연설이 끝나고 제가 릴레이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죠. 그날이 4월4일이었어요.”

―친구의 용기가 본인의 용기로 이어진 셈이네요.

“저 말고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으니까요. 혼자 힘든 상태가 아니라 저랑 비슷한 상처가 있는 친구가 제 옆에 있는 거잖아요. 제 얘기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사라진 거죠. 두 명이나 있다, 이것은 나 혼자 오해해서 만들어낸 상처가 아니라 진짜 있는 상처다, 이런 확신이 생긴 거죠.”

이황유진은 ‘두 명’을 힘주어 말했다. 두 명이 있다는 것은 내 말을 들어줄 다른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 끄덕여줄 한 사람, 위로를 건네고 힘을 불어넣어줄 한 사람. 무수한 사람들 속에 있을 때 한 사람은 빛나지 않는다. 반면 결정적인 순간, 다른 사람들이 다 등을 돌렸을 때 발견되는 ‘한 사람’은 정말 귀하다. 그 사람의 힘 덕분에 비로소 삶의 다음 국면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세계여성의날’인 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스쿨 미투 성폭력의 역사를 끝내자’ 기자회견을 마친 이황유진(왼쪽 둘째)씨 등 참가자들이 한국여성의전화가 나눠주는 노란 장미를 받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폭로 이후에 달라진 것이 있었나요?

“어셈블리가 끝난 다음, 남학생들끼리 긴급회의를 했다고 해요.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처음에 연설한 애는 진심으로 한 게 맞는데 이유진은 페미니스트니까 우리를 음해하려고 거짓말로 한 거다, 뭐 이런 얘기도 나왔다고 해요. 제게 직접적으로는 말을 못하니까 자기가 정학을 당할 것 같다는 소문을 내기도 했어요. 정작 저는 학교 쪽과 가해자 처벌에 대한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거든요. 결과적으로 정말 낮은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마치 제가 작은 일을 큰일로 만든 책임자라는 분위기를 조성했죠.”

―학교 쪽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궁금하네요.

“폭로가 있고 한 달이 채 안 되어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어요. 문제는, 제가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당일에 알았다는 거예요. 행정적 절차라고 해서 납득하긴 했는데, 위원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가 만나야 했던 선생님들이 전부 남성이었어요.”

―위원회에 소속된 교사가 전부 남성이었어요?

“진술서 쓰는 걸 안내해주고 사건 관련 상담을 해주는 교사들이 다 남성이었어요. 피해자가 거의 다 여자인 상황에서 여교사가 한 명도 없다는 게 이해가 안 갔어요. 위원회에 변호사와 경찰관이 들어오는데, 심지어 변호사도 남자였고 경찰도 남자였어요. 학부모 위원들도 여러 명 있었는데 모두 다 남학생의 어머니였어요.”

―남학생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가능성이 있었겠군요.

“맞아요. 실제로 2차 가해나 다름없는 질문을 받았어요. ‘지금 가해자의 기분이 어떨 것 같나’와 같은 질문을 들었거든요.”

―처음에 ‘정말 낮은 처벌’이라고 말했잖아요.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어떤 처벌을 내렸나요.

“한 명의 가해자에게 서면 사과를 하라는 처벌이 내려졌어요.”

―대화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아니라요? 가해 규모가 축소된 거네요.

“가해자가 한 명이 되니까 오히려 남학생들이 ‘아 불쌍하다, 걔가 다 덮어썼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마치 음모론에 희생된 사람처럼 말이에요. 그 학생이 국제과 학생회장이었는데, 나중에는 학생회장이어서 괜히 덮어쓴 거라는 말도 돌더라고요. 졸업한 선배들은 이런 말도 했다고 해요. 우리는 운 좋게 이전 시기에 졸업해서 다행이지만 너희는 참 불쌍하다고. 상황 자체를 희화화하면서 운이 아주 안 좋아서 걸린 케이스로 ‘소비’한 거죠. 사과 명목으로 가해자에게 편지를 받았어요. 자신은 별말 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아 미안하다고 썼더라고요. 자신은 상처가 될 만한 말을 하지 않았는데 저 혼자 상처를 받았다는 뜻이잖아요. 제가 처음에 전해 들었던 바와 전혀 달랐죠. 책임 회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사실 아직까지도 가해자가 반성을 했는지는 의심스러워요. 어쨌든 학교 분위기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긍정적이지요. 누군가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분위기가 조금 꺾였을 테니까요.”

힘들 때 ‘내 편’ 돼준 값진 친구들
가해자가 낮은 처벌 받고 끝났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 바꿀 수
있는 힘 만든다는 확신 갖는 계기”

지난 2월 졸업 전후 ‘청페모’ 활동
UN 아동권리위원회 의제 포함시켜
“표본조사는 피해규모 확인 한계
전국의 학교들 전수조사 해야”

”긴즈버그·유관순·서지현 존경해
고민한 뒤 마침내 실천하는 분들”
여성학·젠더학 전공으로 유학 준비

“후회 안 해도 돼” 확신 준 친구들

―졸업한 선배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성적 대상화가 지난 1~2년 사이에 잠깐 불거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네요.

“학교로부터 녹음 자료를 전달받기도 했어요. 그걸 듣고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도 알 수 있었죠. 가해자가 졸업한 학교 선배들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그 선배가 이야기한 것처럼 여자는 삼일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친구가 ‘얘들이 이런 이야기 한대’라고 말하면 ‘당연히 그러겠지, 걔네 원래 이상하잖아’라고 답하곤 했어요. 막상 그 말들을 녹음된 음성으로 들으니 울음이 나왔어요. 남들이 내 상처를 축소하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제가 입학하기 이전부터 죽 그래왔던 거예요.”

―옆에서 지지해준 친구들도 있었지요?

“공론화 이후에 피해 사실이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 같은 게 되었어요. 아무도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동성 친구들이 옆에서 지켜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굳이 그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괜찮아, 다 알아,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하는 눈빛들이 있었어요. 큰 힘이 되었죠. 저와 안 친하거나 가해자와 친한 사람들은 2차 가해를 한다든가 이상한 소문을 내기도 했어요. ‘굳이 왜 이렇게 큰일을 만들었냐’는 시선이 편치만은 않았죠. ‘내가 이 일을 괜히 했나?’라는 고민이 들 때마다 ‘잘했어, 후회 안 해도 돼’라고 확신을 준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자신을 대상화하는 특정 발언들을 떠올리며 이황유진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것은 끔찍한 분노였다가 스스로를 향한 미움이 되거나 세상에 대한 적대심으로 둔갑하기도 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대상화한다는 것은 그의 인간성을 사물이나 물건, 도구의 형태로 재현하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인간의 존엄함을 앗아가는 게 바로 대상화다. 그는 이 시기를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연대의 힘으로 견뎌냈다.

스쿨 미투는 2018년 3월, 용화여고 졸업생들이 재학 시절 교사들에게 당했던 성폭력을 털어놓으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북일고, 신명여고, 정발고, 혜화여고, 충북여중 등 전국 각지에 있는 학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남교사가 지위를 이용해 저지른 성범죄를 폭로하는 데에서 출발해 여성 혐오가 교사들의 입과 눈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는 현상을 고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황유진의 고백은 이 일들이 비단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도, 동급생 사이에서도 성적 대상화는 거리낌 없이 이루어진다. 학교는 이에 대해 그동안 묵묵부답하고 있었다.

―지난 2월25일,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스쿨미투에 주목하는 국제 사회, 대통령만 안 하는 #위드유’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들었어요.

“청페모가 시민단체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어요. 운영위원장인 양지혜씨와 청소년 당사자, 변호사 등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와 사전 미팅을 갖기도 했고요. 그 결과, 오는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82차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본심의 의제에 스쿨미투 운동이 포함됐어요. 국제 사회가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다는 거죠. 아동 권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보통은 어른들이 조치를 취하는데, 스쿨 미투는 학생들이 직접 자기 경험을 고발한 사례잖아요. 정작 정부에서는 미온적인 태도로 대응하고 있고요.”

이황유진씨가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스쿨 미투를 한 이후, 비로소 변화의 물꼬가 트인 느낌이 들었어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피해자 보호나 가해자 처벌 이외에 구체적인 요구 사항이 있나요?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한 대책에는 피해자 신변 보호 및 표본조사가 포함되어 있어요. 저희가 요구한 건 전수조사예요. 한두 케이스가 아니잖아요. 아시다시피 전국에 있는 많은 학교에서 폭발적으로 스쿨 미투 고발이 이어졌어요. 한두 명의 비정상적인 가해 교사나 가해 학생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거죠. 학교가 사실상 이를 묵인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표본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스쿨 미투를 개인적인 사례로 축소해서 인식하겠다는 거잖아요. 2차 가해나 백래시(backlash·반격)가 두려워 고발을 못한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전수조사를 하면 결과적으로 학교 내 문화나 분위기가 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얼마 전 ‘괴물이 아니라 그것을 용인하는 학교 구조의 문제다’라는 문구를 봤어요. 또래 교사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했을 때 그것을 눈감아주는 동료 교사들이 있었을 것 아녜요. 생활기록부나 성적 문제 때문에 고발하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을 테고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문제로 이동해야 하는 거죠.”

―사립학교는 특수한 시스템으로 운영되잖아요. 그에 따른 문제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가해 교사를 같은 재단의 다른 사립학교로 이직시키거나 몇 개월 정직 후에 교단으로 복귀시키기도 해요. 용화여고에서는 10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실명으로 증언했는데도 가해 교사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어요. 이런 식으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는 한, 피해자들의 고발 의지는 자꾸 꺾일 수밖에 없어요.”

용화여고 졸업생들의 증언으로 가해 교사들은 파면당하거나 해임당했다. 정직이나 견책 등 가벼운 징계를 받은 교사도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학교로 복귀한 상태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학교의 기민한 대응으로 연결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제 경우는 그나마 호전이 있었던 사례라고 생각해요. 일단 가해자가 학생이었잖아요. 선생님들도 지지를 많이 해주셨고 데이트 폭력에 관한 성교육을 진행하는 시간도 있었고요. 학교 쪽에서 차후에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약속도 했어요.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고 가해자의 처벌이 이뤄지기도 했죠. 반면, 다른 학교는 가해자가 거의 다 교사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고발 자체가 차단되는 경우도 많았죠. 청페모 활동을 하면서 다른 피해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언젠가 한번은 ‘악몽을 벗어나기 위해 더 끔찍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고발 후에 더 힘들어졌다는 거죠. 내가 다니는 학교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용기 냈는데 학교에서는 네가 어떻게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냐고 압박하는 거죠.”

“페미니스트 자임하는 친구들 많아져”

―스쿨 미투가 1년이 되어갑니다. 지난 1년 동안, 개인 이황유진이 어떻게 바뀐 것 같아요?

“고발 전에도 저는 페미니스트였고 꾸준히 여성학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여성학을 공부하다 보면 종종 유명한 문구들을 마주하게 되잖아요. 이를테면 ‘너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같은 문장이요. 그런데 지금껏 한번도 그걸 실감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저 멀리 있는 말 같았지요. 스쿨 미투를 한 이후, 비로소 변화의 물꼬가 트인 느낌이 들었어요. 비록 제가 다니는 작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어쨌든 저와 제 친구와의 대화가 불씨가 되어 몸담고 있는 학교를 변화시키려는 많은 움직임을 낳았으니까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바꾸려고 하는 게 어떻게 보면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막연히 이공계열을 꿈꿨었어요. 입학 후에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면서 나는 인권에 관심이 많구나, 앞으로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이 생각이 청페모 활동과 연결되면서, 페미니즘이 정말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확신했어요. 대학 전공도 자연스럽게 여성학, 젠더학으로 정했어요.”

―한국에는 아직 여성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많이 없잖아요. 미국의 경우에는 어떤가요?

“거의 스무 군데 넘는 학교에 지원했는데, 한 학교도 빠짐없이 여성학과가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정치 세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페미니즘은 뚜렷한 학문이잖아요. 역사도 꽤 길고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나요? 가족이나 친구들이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 엄마에게 얘기할 때, 구체적으로는 말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자극적이니까요. 남학생들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고 다닌다, 결국 이런 식으로 에둘러 말했지요. 엄마는 ‘걔들이 원래 그런 애들은 아니다’라고 답했어요. 어쨌든 3학년 때까지 함께 지내야 하니까요. 학교에서 폭로를 한 이후에야 엄마도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젠지 깨달았어요. 제게 엄청 미안해하셨죠. 제 얘기를 안 들어준 것에 대해 죄책감도 들었다고 해요. 요즘은 엄마와 함께 책들을 읽고 있어요. 엄마도 지금껏 여자로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점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묻고 답하며 대화를 시작했죠. 공통 관심사가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된 거 같아요. 여성학에 관심을 갖게 된 친구들이 늘어나기도 했어요. 책을 함께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해요. 대화가 진전되는 게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스스로가 페미니스트임을 자신감 있게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최근에 읽었던 책들 중 좋았던 것 추천해줄 수 있어요?

“러네이 엥겔른이 쓴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웅진지식하우스, 2017)가 문득 떠오르네요.”

―꾸밈 노동과 관련된 책처럼 들립니다.

“네. 이 책을 읽고 꾸밈에 대한 강박이 얼마나 많은 뇌 용량을 차지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됐어요. 저는 원래 안 꾸미는 편이거든요. 화장도 잘 안 하고요. 그런데 사회는 교묘하면서도 철저하게 아름다움을 강요하잖아요. 외모 강박적 문화와 개인의 생활이 밀접하게 연결된 책이라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요새는 드라마로부터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아요.”

―소개해줄 수 있어요?

“네, 이건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원 데이 앳 어 타임>(One Day at a Time)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어요. 쿠바계 미국인 가족의 이야기인데, 엘레나라는 딸이 등장해요. 3세대 이민자다 보니 스페인어를 잘 못해서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는, 환경과 인권에 관심이 많은 캐릭터죠. 성적 지향으로 고민하는 내용도 등장하고요. 한국에서는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가지면 ‘PC충(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추구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이냐?’는 질문이 되돌아오잖아요. 드라마 속 엘레나는 ‘내가 이걸 하면서도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친구들이 날 재밌어할까?’ 고민하거든요. 저랑 비슷한 캐릭터라고 느꼈어요.”

―엘레나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겠어요.

“네, 보면서 엄청 울어요. (웃음) 엘레나가 스페인어를 못하는 것처럼, 저도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독일어를 못하거든요. 자신의 목소리를 죽이면서까지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엘레나의 모습을 보며 용기도 많이 얻었어요.”

이황유진씨가 오은 시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학교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곳”

―개인과 주변을 둘러싼 변화 이야기를 했어요. 지난 1년 사이, 사회는 좀 바뀐 것 같다고 느껴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스쿨 미투에 대한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잖아요. 앞으로 사회적 담론이 더욱 활발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겠죠.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성(性)인권 시민조사관’ 제도를 도입한 것처럼 말예요. 교육감과 여성단체에 직접 제보할 수 있는 ‘스쿨 미투 핫라인’도 구축하기로 했고요. 다른 지역에서도 하루빨리 이와 같은 대처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대화를 멈추지 않는 이상, 변화는 반드시 찾아올 테니까요.”

―8월에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잖아요. 학교의 역할은 뭘까요? 학교를 학교답게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 얘기해주셔도 좋아요.

“학교는 학문을 연마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학생 입장에서 봤을 때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크고 작은 ‘앨라이(ally·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당사자가 아니면서 차별에 반대하며 연대하는 사람)’를 형성하는 장인 셈이죠. 취미든, 관심사든, 정치적 성향이든 결국은 네트워크로 인해 힘이 커지잖아요.”

―롤 모델이 있나요?

“여러 명 말해도 되죠?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미국 민주당의 최연소 초선 하원의원으로, 20대 정치 신예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미국 진보계의 대모로 불리는 대법관으로, 트럼프 취임 후 보수화된 대법원에 남아 있는 네 명의 진보 성향 판사 중 한명), 유관순 열사, 그리고 서지현 검사님.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여성의 권리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한 뒤 마침내 실천하는 사람들을 존경해요.”

생각이 결심이 되는 순간이 있다. 결심이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사람은 조금 더 사람다워진다. 행동이 반복되면서 패턴이 생기고 이 패턴은 그 사람의 태도로 인해 빛을 발한다. 태도가 선명해질 때 우리는 그것을 가치관이나 신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로소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돌이켜보니’와 ‘그런데 말이야’의 만남처럼, 인과와 우연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삶을 수놓게 되는 것이다.

이전의 언론 보도에서 이황유진의 이름은 이유진이었다. 인터뷰가 끝날 때 그는 말했다. “이름은 이황유진으로 써주세요. 엄마 성을 같이 쓰기로 했어요.”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들처럼, 그 또한 매일 실천한다.

녹취 원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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