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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5 09:50 수정 : 2019.10.07 16:41

[토요판] 오은의 요즘은
29살 레즈비언 김규진

봄에 뉴욕에서 결혼해 유부녀 되고
한국에서도 11월에 결혼식 올려
신혼여행 휴가 회사에서 얻어 내고

블로그 운영하며 커밍아웃 꿀팁 공유
“‘김규진도 커밍아웃했는데
회사 잘 다니잖아’ 용기 얻었으면”

“다 같은 돈 아니에요?”
성소수자 웨딩 예약에 돌아온 답
신부가 둘일 뿐 ‘전형적인 웨딩’ 원해

김규진씨는 성소수자로 사는 일상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한다. “김규진. 29살.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 왜 아무도 내게 레즈비언으로 잘 사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다, 그냥 제 얘기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500회가 넘는 커밍아웃 경험도 담긴 블로그의 자기소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하고 사는 이유가 분명해지기도 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사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그것을 견지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삶의 다양성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어떻게 살고 싶나요?”란 질문에 우리는 으레 이렇게 답하곤 한다. “행복하게요.” 행복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행복한 삶’이라는 말 안에는 사회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그림이 있다. 아빠와 엄마, 자녀들이 화목하게 밥을 먹는 저녁 풍경을 우리는 오랫동안 주말 드라마에서 봐왔다. 그것은 마치 행복의 정형(正形)이나 전형(典型)처럼 각인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저 서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늘 남자와 여자였다.

김규진(28)은 달랐다. 올봄, 그는 동성 연인과 뉴욕 여행 계획을 세웠다. 뉴욕에서는 동성혼이 합법이라는 생각에 이왕 가는 김에 혼인신고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 뉴욕에서는 혼인 상태인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결혼을 할 수 있다. 시민권자 증명서나 거주 기록을 제출할 필요도 없다. 결혼에 결격사유가 없다는 결혼면허증을 받고 24시간 안에 식을 올리면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결혼으로 인정하는 관습과 법원의 판례 때문에 혼인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

김규진은 11월 한국에서 할 결혼식을 앞두고 9월2일, 회사에 신혼여행 휴가를 신청했다. 그가 바란 것은 단순히 축하가 아니었다. 그것은 승인이었다. 내가 만들 가족과 꾸릴 가정에 대한 수용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답게 살아야겠다는 포부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결재권자인 직속 상사, 재무부 담당자, 인사부 담당자의 승인이 떨어졌다.

9월 중순, 김규진의 결혼과 관련한 기사를 접하고 그의 블로그에 방문했다. 그는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글을 올리고 있었다. 행복을 드러내고 만끽하는 삶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9월 말,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김규진을 만났다.

29살 유부녀 레즈비언의 커밍아웃 꿀팁

―코너 제목이 ‘요즘은’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회사에 잘 다니고 있어요. 저녁 때는 퇴근을 먼저 한 사람이 와이프를 기다리죠. 행복하다고 자주 느끼고 있습니다.”

―와이프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나요?

“네. 와이프(wife)라는 단어도 고대 독일어wibam’(‘여자’라는 뜻)에서 온 것이라 이성애 관계의 틀에 묶인 호칭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상대방이 와이프면 너는 남편이야?’라는 물음에 ‘저도 와이프죠!’라고 대답할 때 이성애 중심적 사고를 깨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회사에서 신혼여행 휴가 승인이 빨리 났다고 들었습니다. 굉장히 열려 있는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계 소비재 회사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일할 환경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서 퀴어 프렌들리(queer-friendly)한 회사를 찾아 여기 오게 된 거죠.”

―커밍아웃을 하는 게 한국에서는 아주 조심스러운 일일 것 같습니다. 단순히 ‘용기’라는 단어로 집약할 수 없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용기와 대의를 가지고 했다면 오히려 못했을 것 같아요. 제 편의를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죠. 저는 거짓말을 지속적으로 하는 걸 굉장히 피곤해하는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 ‘남자친구는 키가 몇이야?’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여기에 걸맞은 답을 지어내야 하는 거잖아요? 일관적으로.”

그의 블로그에는 ‘프로 커밍아웃러의 커밍아웃 꿀팁’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500회가 넘는 커밍아웃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를 솔직 담백하게 풀어놓은 글이다.

―커밍아웃으로 편견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없었나요?

“‘왜 난 굳이 커밍아웃을 하려고 할까’를 진지하게 생각해봤어요. 자기방어의 일종인 것 같아요. 숨김으로써 스스로를 방어할 수도 있지만, 활짝 여는 것도 방어가 될 수 있잖아요. 활짝 열어서 나를 보여주면, 그게 싫은 사람은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떠날 것 아니에요. 결국 주변에는 우호적인 사람들만 남게 되는 거죠.”

김규진의 목소리는 또랑또랑하고 시원시원했다. 이는 천성이기도 할 테지만, 무수히 많은 고민과 주저함을 거치며 그는 좀 더 분명해졌을 것이다.

―부모님이 가장 큰 산이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한 것은 언제였나요?

“대학교 3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정체성을 깨달았지만, 여자친구를 처음 사귄 것은 22~23살 때였거든요. 그전에 고백하면 ‘너 그래서 여자 사귀어봤어? 안 사귀어봤으면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게 빤하잖아요.”

―명민했군요.(웃음)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할 당시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제가 계산적인 사람이라서(웃음) 설날에 얘기했어요. 제사라는 대의가 있으니 쫓아내시진 않을 것 같았어요.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어릴 적부터 엄마의 꿈이 제가 의사가 되어 재벌하고 결혼하는 것이었어요. 딸이 레즈비언일 가능성이 엄마의 사고체계에는 아예 없었던 거죠. 아빠는 왠지 경상남도 남자라 안 좋아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죠.”

―실제로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어요?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엄마가 안 좋아할 수도 있어’라고 말을 꺼냈는데, ‘너 임신했니?’ 하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도 말을 꺼낸 김에 커밍아웃을 했죠. 아빠가 ‘너무 늦었으니 일단 자자’고 하시더라고요. 실패했다고 생각했죠. 다음날 아빠가 ‘아무래도 너는 결혼은 안 할 테니 결혼 자금으로 엠비에이(MBA)를 보내줄게’라고 말씀하셨어요. 그전까지는 대한민국 평균 부녀 관계였는데 그 이후로 제가 정말 ‘충성충성’ 하고 있습니다. 연락도 자주 하고요.”

11월에 있을 결혼식에 김규진의 아버지는 오시지만 어머니는 오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커밍아웃 이후 6∼7년 동안 두드려왔던 어머니의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처럼 연락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만, 어머니가 오셨으면 하는 바람은 사그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블로그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어요. “김규진. 29살.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 왜 아무도 내게 레즈비언으로 잘 사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다, 그냥 제 얘기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 블로그를 열고 글을 쓰게 된 동기라고 봐도 될까요?

“반 정도는 그렇습니다. 올해 초 여자친구한테 프러포즈를 할 즈음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찾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한국어로 된 정보가 너무 없는 거예요. 한국에도 결혼한 커플들이 있다고 얼핏 듣긴 했는데, 다들 이민을 가셔서 그런지 공유된 정보가 없더라고요. 앞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동성애자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시작한 거죠.”

―나머지 반은 어떤 동기인가요?

“원래는 이렇게 크게 벌일 생각은 없었어요. 저는 제가 좋아서 결혼한 건데 자꾸 주변의 동성애자 친구들이 저보고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뭐가 고마워요?’라고 물어봤더니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생각도 못했는데 가능성을 열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내게 좋은 게 남들에게도 좋을 수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성소수자 웨딩인데 예약 가능하냐고 묻자 ‘다 같은 돈 아니에요?’라고 답했다는 결혼식장 예약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성적 지향보다 중요한 건 ‘자본’이라는 결론이 어떤 점에서는 통쾌하기도 하더라고요.(웃음) 결혼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이었나요.

“예상외로 절차상 불편함은 없었어요. ‘대한민국이 정말 자본주의적이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느꼈지요. 운이 좋았던 건 대학교 때 들어간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사람’ 선배에게 웨딩플래너를 소개받은 일이에요. 이미 퀴어 웨딩을 몇 번이나 성사시켰던 분이었어요. 업체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이라 거절당하거나 마음 상할 일이 거의 없었지요.”

―업체와 직접 대면한 적은 없었던 거예요?

“와이프와 반지를 고르러 갔을 때가 있어요. 습관적으로 ‘신랑분은 어디 가셨어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둘이 낄 거예요’라고 대답했죠. ‘그러시구나! 얘는 가격이 얼마예요!’라고 무심한 듯 프로답게 대답해주시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기쁨도 있었나요?

“제주도 웨딩 촬영을 갔을 때였어요. 아침 7시 촬영인데, 저랑 와이프 둘 다 풀 메이크업을 받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원장님이 새벽 3시에 나오셔야 했어요. 시간이 두배로 걸리니까요. ‘저희가 레즈비언 커플인데 혹시 메이크업 될까요?’라고 여쭤봤을 땐 ‘좋아요!’라는 답변이 왔어요. 그런데 ‘아침 7시 촬영이에요’라고 하니까 ‘아, 그건 좀 어려워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성적 지향은 상관없지만, 자신의 수면은 중요하다는 말씀이었죠. 성정체성이 아닌 일반적인 이유로 거절당하니, 거절당하면서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청첩장에서 웨딩 촬영, 신혼여행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결혼식 절차를 따르는 것 같아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결혼 준비라 마치 기획하신 것처럼 보였어요.

“취향 반 기획 반이었어요, 저랑 와이프가 모두 보수적인 취향이라 웨딩홀에서 결혼하고 싶었어요. 퀴어들은 보통 스몰웨딩을 많이 해요. 하객을 많이 부르지도 못하고요. 도전해보고 싶더라고요. 일상적인 장면인데, 하나가 튀면 눈에 띄잖아요. ‘전형적인 웨딩인데 신부가 둘이야’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동성애자들도 사회의 일원임을 알리는 정치적 선언인 거죠.”

서로를 ‘와이프’라고 부르는 연인과 11월 결혼식을 올리기에 앞서 김규진씨 커플은 웨딩 화보를 찍었다. 이들은 아주 가까운 이들만 모이는 ‘스몰웨딩’이 아니라 보통의 웨딩홀에서 평범한 결혼식을 하려고 한다. ‘전형적인 웨딩인데 신부가 둘이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김규진 제공
“시끄럽게 살고 싶어 결혼한 게 아니에요”

김규진이 건넨 청첩장을 펼쳤더니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저희 두 사람이 사랑과 믿음으로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부디 오셔서 저희의 앞날을 축복해주시고 격려해주시면 더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선택한다는 문구였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결혼임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가장 전형적인 문구를 골랐다.

―현재와 앞날을 고민하는 성소수자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한 레즈비언 커플이 회사에서 경조금을 받았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외국계 회사가 아니라 한국 회사라고 해요.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었어요.”

회사에서 경조금을 받는 일은 개인의 정체성과 직원으로서의 역량이 무관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마땅히 받아야 하지만, 지금껏 요구하지 못했던 혜택을 퀴어들이 알차게 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블로그에 있는 ‘프로 커밍아웃러의 커밍아웃 꿀팁 2’에 달린 댓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글을 찾고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본인이 하는 일과 쓰는 글이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을 듯해요. 어쩌면 이것이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최근에 몇차례 기사가 나간 뒤, 아빠가 제게 문자를 보내셨어요.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하지만 걱정이 된다. 대표성을 띠게 되면 너를 싫어하는 사람과 맞서 싸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네게 투사적인 면이 생길 것 같다. 너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힘들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했으면 좋겠다. 이젠 결혼도 했으니 너 혼자가 아니다. 가정이 있지 않느냐. 그리고 와이프는 너처럼 오픈이 아니지 않느냐. 와이프를 보호해줘야 한다.’ 보자마자 정말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원하는 동성 커플의 가시화와 제 개인의 행복을 균형 있게 챙겨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얼마 전부터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늘었지만, 김규진은 제안이 올 때마다 신중하게 생각한다. 제안을 수락하기 전, 항상 와이프와 상의하고 결정한다. 아빠의 말씀 중 ‘가정이 있지 않느냐’는 말이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많은 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보다 가정을, 와이프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최근 몇년 사이, 비혼주의, 반려동물과의 생활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더디긴 해도 한국 사회가 서서히 ‘다름’을 인정해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변화가 느껴지시나요?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 같으면 ‘동성애 반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겠지요. 지금은 ‘동성 결혼 법제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이 나오잖아요. 제도적 측면에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해요. 동성 커플에 대한 가시화가 덜 되어서 그런 듯해요. 동성애자가 전체 인구의 2~5% 정도라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굉장히 많은 숫자거든요. 한국에만 100만명에서 250만명 정도 되니까요. 생활에서의 가시화, 생활에서의 정치가 더욱 중요해져야 할 것 같아요.”

―성소수자 본인들이 용기를 낼 필요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작지만 제가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커밍아웃을 하면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고민하던 사람들이 ‘김규진도 커밍아웃했는데 별일 없잖아? 회사 잘 다니잖아’라고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커밍아웃 여부를 떠나 무엇보다 스스로가 가장 행복한 선택을 하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해요.”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는 한, 한국에서 ‘가족 공동체’로 누릴 수 있는 실질적인 혜택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뉴욕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어도 한국에서 정식 부부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기사 댓글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너네끼리 조용히 살지 왜 굳이 나대?’ 저는 이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끄럽게 살고 싶어서 결혼을 한 게 아니에요. 일단 전세자금 대출을 저와 와이프, 두명의 월급 대비로 받을 수 없어요. 법적으로는 결혼이 성립되지 않으니까요. 대출에서도 불리하고 신혼부부 청약도 넣을 수 없어요. 수술을 받을 때 서로 보호자 동의도 못 해주고 제가 죽은 뒤 배우자가 유산 상속도 받지 못해요. 이렇게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문제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요. 동성 결혼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죠.”

지난봄 뉴욕에서 연인과 혼인신고를 한 레즈비언 김규진씨가 9월24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한겨레신문사에 왔다. 회사에도 커밍아웃하고 신혼여행 휴가 승인까지 받아놓은 그는 11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선례(先例)가 선례(善例)가 되기를

―블로그에 앞으로 어떤 글이 올라올까요?

“가장 하고 싶은 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성소수자와 관련하여 극적인 콘텐츠는 많은데 오히려 일상적인 콘텐츠가 부족해요. 신혼 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담아 신혼일기를 연재하려고 해요. 책 출간 제의도 받았는데, 접근 방식을 고민 중이에요. 독자층을 퀴어로 한정 짓고 싶진 않거든요.”

―‘퀴어 프렌들리’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커밍아웃한 뒤에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반응은 ‘응, 밥 먹으러 가자’였어요. 자연스러운 대화의 일부처럼 말예요. 용기를 내는 건 퀴어가 할 일이지만,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안전하고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시민들이 할 수 있죠.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운동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일상적인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랑은 특별하지만, 어떤 특별함은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뒤집기 위해 결혼의 디테일에서 보편성을 따졌다. 이 결혼이 여느 결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특수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김규진은 앞으로도 많은 선택을 할 테지만, 그때마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그와 아내의 행복일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환히 웃으며 걸어가는 그를 바라보며 선례(先例)가 선례(善例)가 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았다.

지난 1년 동안 귀한 지면을 내어주신 <한겨레>에 감사드린다. 삶의 결은 다 달라도 인터뷰이들은 모두 지금을 살고 있었다. 덕분에 매달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녹취 김형수

▶오은: 시인. 시를 쓴다.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삶 대신 못하는 것을 채우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 딴청을 부리고 딴생각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딴’에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낀다. 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등을 냈다. 가수 요조와 번갈아 누군가의 ‘요즘은’ 어떤지 물어보려 한다.

*‘요조·오은의 요즘은’을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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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오은·요조의 요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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