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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8 16:13 수정 : 2019.03.01 11:16

백투더 1919 에피소드4: 신승희 죽음의 미스터리

▶영상 바로가기: https://youtu.be/cK_AyHnI390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3·1 독립선언은 인류가 평등하다는 가치와 세계 평화의 의미를, 피지배 민족인 조선인의 육성으로 전세계에 최초로 알린 선구적 행동이었습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100년 전 오늘로 돌아가 1919년판 <한겨레>를 만들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당시에 활약했던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의 삶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3월1일 거사 이틀전 보성학교에 자리 잡은 천도교 소유 인쇄소 보성사에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이종일 보성사 사장과 천도교도들이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찍고 있었죠. 종로경찰서 조선인 고등형사 신승희가 인쇄 소리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신승희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붙잡아 감옥에 보낸 친일 형사입니다.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

종이에 인쇄된 글을 보고 신승희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이종일은 3·1 운동 실무책임자 최린에게 급히 알렸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손병희 선생이 5천원을 신문지에 싸서 내주었습니다. 순사보 월급 40여원, 당시 5000원은 현재 가치로 약 4억여원입니다. 신승희는 돈을 받고 사라졌습니다.

돈을 받고 3·1운동을 눈 감아줬다는 혐의로 검거된 뒤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종로서 고등형사 신승희의 ‘사망진단서’가 최근 발굴됐습니다.

경성헌병대사령부 군의관이 작성한 사망진단서를 보면, 1919년 5월16일 오후9시 경성부 화동 132번지 자택에서 아편중독으로 자살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최우석 독립기념관 연구원은 “뇌물 수수 혐의로 헌병대에서 고문받다 숨지자 아편 중독 자살로 조작한 것 아닐까하는 추측한다. (집에서 자살했다는 건) 전날 체포한 피의자를 하루 만에 풀어줬다는 얘기인데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하세요.

▶영상 바로가기: https://youtu.be/cK_AyHnI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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