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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1 10:48 수정 : 2019.03.22 08:20

강남 클럽 잠입 취재 주원규 작가 인터뷰
‘콜카’ 대리기사 하며 정보 수집
물뽕 같은 마약 공공연히 유통돼
클럽 내 크고 작은 성폭력 빈번하지만
출동한 경찰, 관계자 말만 듣고 돌아가
‘설계자’ 변호사들이 사건 조작 역할도
“경찰은 걸림돌 아니고, 검찰 잡자”말까지
“‘버닝썬’은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마약·성매매 알선·경찰유착...

올해 초 강남 유명 클럽 ‘버닝썬’에서 벌어진 폭행사건은 ‘게이트’의 도화선이 되었다. 가수 승리와 정준영 등이 대화하는 단톡방에서 성매매 알선이 의심되는 대화가 포착됐고, 연예인들이 성관계 장면을 불법촬영해 돌려보는 실태까지 폭로됐기 때문이다. 버닝썬 실소유주로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 승리는 25일로 예정되어 있던 입영을 연기했다. 성관계 장면을 불법촬영한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은 21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다.

강남 클럽의 강간문화는 이번 버닝썬 게이트를 통해 처음으로 공론화됐다. 주원규 작가는 이미 3년 전 이런 문제를 감지하고 취재를 위해 6개월 동안 클럽에 잠입했다. 최근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을 통해 그때의 경험을 풀어냈다. 주 작가를 19일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다.

-<메이드 인 강남>은 어떤 내용의 소설인가?

“강남의 한 펜트하우스에서 10명의 남녀가 살해되는 사건에서 시작한다. 이 사건은 한 ‘설계자’ 변호사에 의해 개별적인 단순 사망 사건으로 처리된다. 도박과 술에 절어 있던 한 형사도 이 사건을 알게 되지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보단 사건의 규모에 편승해 설계자 변호사가 받는 수임료를 나눠가지려고 한다.”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부터 현실인가?

“살인사건 모티브 같은 소설적 장치를 제외하면 모두 현실을 그대로 옮겼다. 경찰 초동수사에서 ‘설계자’ 변호사가 혐의를 무마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사람들은 엄연히 존재했고, 클럽 문 앞까지 와서 조사하지 않고 돌아가는 일부 경찰도 있었다. 포주 밑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하는 ‘가드’는 스스로 주민등록증을 말소시키거나 실종신고를 내고 ‘무적자’가 됐다. 모두 확인한 내용이다.”

■마약·성매매·경찰 유착·불법촬영…“3년 전 이미 버닝썬을 봤다”

-강남 클럽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나?

“2016년 3월부터 조명 설비기사, 주류 배달원, 콜카(‘콜걸 카풀’의 줄임말로 성매매를 하는 남성과 여성을 호텔로 데려다주는 차량) 대리기사로 일했다. 주류배달원이나 설비를 고치는 알바를 한 이유는 클럽 안에 있는 구조나 현장과 전체적인 플로잉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강남 쪽에 정식으로 등록된 클럽이 21곳으로 기억하는데 그곳을 전반적으로 다 다녔고 구청에 신고가 되지 않은 무허가 클럽에도 접근할 수 있었다.”

-직접 일을 해도 내밀한 사정을 파악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이야기를 들었나?

“가출 청소년 등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과 관계를 쌓았다. 가까워진 뒤에는 그 친구들이 먼저 하소연하듯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가 허언이거나 피해의식으로 과장되진 않았을까 싶어 ‘콜카’ 일을 하면서 계속 지켜봤다. 그렇게 현장에서 듣게 된 구술, 목격한 정황을 취합해 봤을 때, 최근 드러난 음성적 행위가 상위 0.1% 세상에서는 3년 전에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음성적 행위’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먼저 마약이 있었다. 잠입취재를 하는 동안 ‘한국은 마약청정국으로 알려저 있는데 물뽕(GHB)이나 향정신성 약물이 이렇게 공공연하게 있어도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강남 클럽에선 마약이 일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화장실 등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약을 흡입했고 나와 눈이 마주친 뒤에도 마약 흡입을 멈추지 않았던 모습도 봤다. 마약이 양성화 되어 있다는 것이 3년 전에 목격한 실태였다.”

-승리의 단톡방 멤버들은 ‘경찰총장이 뒤를 봐준다고 했다’는 대화를 나눴다. 현직 경찰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도 받고 있다. 3년 전 강남에서도 클럽 쪽과 경찰의 유착이 있었나?

“있었다. 클럽 안에서는 크고 작은 폭력, 성폭력 미수 사건이 일어나는데, 하루는 술이나 GHB에 취했던 사람들이 일반 여성 고객을 성추행하려고 시도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안으로 들어와 피해자 진술을 듣거나 CCTV를 확인하지 않고 클럽 밖에서 클럽 관계자 말만 듣고 다시 돌아가더라.”

-소설 속에는 경찰뿐 아니라 사건을 조작하고 설계하는 변호사도 등장한다. 변호사는 어떤 식으로 클럽 사건에 가담하나?

“그런 변호사들은 ‘설계자’라고 불린다. 설계자 변호사들은 경찰 초동수사 단계에서 혐의 없음 혹은 기소유예 등을 처분을 받아낼 수 있게 법의 맹점을 짚어주고 사건을 조작하는 역할을 한다. 설계자 변호사의 명함을 하나 갖게 되어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다. 거짓 명함이었다. ‘명함의 연락처가 거짓이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궁금했지만 그 조직망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까지 파악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공권력인 경찰이 클럽과 유착해 마약, 성매매 등 범죄를 무마해 준 것이 ‘버닝썬 게이트’의 핵심 줄기이지만, 사실 공분을 크게 일으킨 부분은 승리와 함께 단톡방에 있던 가수 정준영씨가 여성들과 성관계 장면을 몰래 찍고 이를 유포했다는 점이다. 클럽의 불법촬영 실태는 어땠나?

“성관계 장면을 불법촬영하는 행태는 너무나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런 영상물은 크게 두 가지 용도로 쓰였다. 먼저 피해 여성을 협박하려는 용도였다. 여성이 동의하지 않은 사이에 GHB나 향정신성 약품을 술에 타서 먹이고 성관계를 맺은 건데, 촬영하는 쪽에서는 동영상을 가지고 ‘너도 마약파티의 당사자가 된 것’이라며 약점을 잡아 피해 여성을 협박했다. 이런 목적으로 동영상을 필수적으로 썼고, 최근 연예인 단톡방에서 드러난 것처럼 ‘돌려보는 유희거리’로 진화했다.”

■‘2016년 정준영 불법촬영 무혐의’에 환호한 이들이 있었다

-유명 아이돌이나 연예인은 큰 인기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큰 부를 쌓는다. 아쉬울 게 없는 이들이 왜 클럽 사업에 손을 댈까?

“잠입 취재를 했던 2016년은 클럽 관리자들이 유명 아이돌이나 연예인에게 사업 지분을 나눠주며 파트너로 영입하려는 시도가 활발했던 시기다. 세상물정은 잘 모르는데 갑자기 유명해진 이들이 대상이었다. 유명 연예인이 클럽에 상주하거나 클럽을 홍보하면 국내뿐 아니라 중국, 일본, 동남아에서 한류를 즐기는 고객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의 파이를 키우려고 했던 게 당시 최대 목표였다.”

-‘버닝썬 게이트’의 실체는 승리가 아닌 다른 이들이 쥐고 있다는 얘긴가?

“이번 사건은 당연히 공인이라고 불리는 연예인들의 도덕적 해이가 부른 참사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붙잡아서 자신들의 판을 키우고 자신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배후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배후는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던 조직폭력배처럼 일사분란한 조직을 가지고 움직이는게 아니라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고 그들만의 인맥으로 형성된 카르텔이기 때문에 추적이나 근절이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 정도로 매우 모호하고 흐릿하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2016년이면 가수 정준영씨가 불법촬영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던 때다. 당시 클럽 관계자들 반응은 어땠나?

“쾌재를 불렀다. 일부 경찰들의 비호라고 판단될 수밖에 없는 결정이 나자 그들은 경찰을 뜻하는 은어인 ‘곰’을 부르며 ‘곰을 잡았다’, ‘곰 타임이다. 이제부터 이 사업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클럽 관계자들에게 경찰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곰’을 자신들의 장난감, 자신들의 생태계 안에 있는 보호막이나 보험으로 인식하고 있던 것 같다. ‘곰을 잡았으니 이제는 안경을 잡자’는 얘기도 했다.”

-‘안경’이 무슨 뜻인가?

“검찰을 뜻하는 말이었다. 경찰은 이제 걸림돌이 되지 않으니 검찰을 잡자는 분위기가 클럽 관계자들 사이에 생겨났다.”

-클럽 쪽이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과도 유착된 정황도 확인했나?

“검찰과의 유착을 직접 의심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설계자’ 변호사들이 대개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들이라고 들었다.”

■하나 둘 사라진 소년원의 아이들은 '강남'으로 갔다

-목사이자 소설가인데 어떻게 클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소년원에서 가출청소년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었는데 3년 전부터 그곳의 아이들이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유를 알아보니 아이들이 강남, 그것도 클럽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구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단순히 한두번의 실태 파악이나 사람들 말만 들어서는 정확한 파악이 어려울 것 같아 ‘잠입 취재’했다.”

-미성년자가 어떻게 클럽에서 일을 할 수 있나?

“정식으로 취업하는 게 아니라 클럽에서 놀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발을 들인다. 나이는 역설적으로 어릴 수록 환영받는 분위기다. 성매매를 알선하는 포주 엠디인 ‘스카우터’들은 가출 청소년에게 ‘강남에서 조금만 일을 하면 기획사를 붙여 연예인을 시켜주겠다’고 유혹한다. 가출 청소년들에게 고리의 사채를 떠안게 하거나 원치 않는 마약을 흡입하게 하고 ‘미성년 성매매자’ ‘불법 마약 중독자’라는 굴레를 씌운다. 이후 강제적이고 원치 않는 성매매를 알선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자 아이들은 성매매에 동원되는 ‘콜걸’이 되고 남자 아이들은 성매매를 알선하는 ‘포주 엠디’가 됐다”

-소년원에서 만났다 연락이 끊긴 아이들도 만날 수 있었나?

“많이 봤다. 사실 잠입취재에 들어간 목적이 그 친구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처음엔 서로 알아보고도 모른체했다. 끄나풀을 데리고 들어왔다는 얘길 들을까봐. 시간이 지나면서 암호처럼 말을 주고 받기 시작하면서 소통했다.”

-성공했나?

“아니다. 저한테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며 30만원만 달라고 했던 아이가 있었다. 돈을 줄 수 없었고 그 친구에게 ‘쌍꺼풀 수술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결국 아이는 강남의 스카우터 도움으로 쌍꺼풀과 코 등 성형수술을 받았다. 그게 검은 돈의 고리가 됐다. 쌍꺼풀과 코 수술을 시켜주고 옷을 사주고, 강남의 오피스텔을 주는 대가로 엄청난 빚을 얻었다. 빚을 갚기 위해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했다. 가장 안타까운 기억이고, 그 친구를 돌려세우지 못한 자괴감이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제2, 제3의 버닝썬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6개월 동안 잠입해 수많은 범죄를 목격했다. 신고나 제보를 하지는 않았나?

“물론 했다. 취재한 내용을 가지고 경찰과 기자를 찾아갔지만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나 또한 한계를 느꼈다. 여전히 그 계통에서 일하던 당사자들(취재원)이 원치 않아 르포나 에세이로 쓰는 것도 힘들었다. 공익제보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소설로 쓰기로 했다.”

-3년 전 홀로 주목했던 문제에 이제 사회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어떤 심경이었나?

“절반의 희망과 절반의 우려를 느꼈다. ‘인간다움 상실’에 같이 공분할 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다는 점에서 희망을 느꼈다. 하지만 일부 연예인들의 개인적 탈선에 머물며 용두사미에 그치면 오히려 우리를 더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절반의 우려다.”

-한국 사회가 개선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천민자본주의와 여성혐오다. 엄격한 조사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이와 별도로 ‘강남’으로 대표되는 천민자본주의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문화적, 정서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제2, 제3의 강남이 생길거라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여성을 상품화 하고 돈으로 매수할 수 있다고 여기는 뿌리 깊은 남성중심주의와 여성 혐오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깊고 넓지만 지난한 작업을 해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취재·연출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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