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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5 20:12 수정 : 2019.02.15 21:31

엘리자베스 시달, <샬럿의 여인>, 1853년, 종이에 펜과 잉크, 런던 더 마스 갤러리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⑦ 엘리자베스 시달, <샬럿의 여인>

엘리자베스 시달, <샬럿의 여인>, 1853년, 종이에 펜과 잉크, 런던 더 마스 갤러리
1849년 런던의 한 모자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엘리자베스 시달(1829~1862)은 가게를 방문한 남자로부터 갑작스럽게 모델 제안을 받았다. 자신을 화가 월터 데버렐이라고 밝힌 이 남자는 시달의 호리호리한 몸매, 차분한 얼굴 생김새, 타오를 것 같은 빨강머리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으며 모델의 요건을 다 갖췄다고 강조했다. 스무살의 시달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호기심이 동했다. 마침내 모델이 되기로 수락하면서 시달은 순식간에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미술유파인 ‘라파엘 전파’의 뮤즈로 등극한다. 데버렐이 “내가 얼마나 엄청나게 아름다운 창조물을 발견했는지! 맹세코 그녀는 여왕 같다”며 라파엘 전파 친구들에게 열렬히 시달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데버렐의 말에 호응하듯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시달을 이상화된 미인으로 그려냈다. 그녀는 여러 그림 속에서 여리고 우울하며,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됐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가 대표적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중 오필리아가 물에 빠져 죽음을 맞게 되는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은, 사실 시달이 자신의 육체를 갈아 넣다시피 고생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밀레이는 오필리아의 최후를 실감나게 묘사해야 한다며, 시달을 여러 시간 동안 차가운 물을 채운 욕조 속에 반듯하게 누워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달은 폐렴까지 앓아야 했다. 하지만 그림 속에서 시달의 성실함은 찾아볼 길이 없다. 그것이 모델의 운명이지만, 어쩌면 시달은 허탈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주체가 아닌 객체인가. 나는 왜 꽃이며 대상물일 뿐인가. 왜 나는 남성의 욕망을 반영하는 판타지의 대상일 뿐인가.

이 같은 고민 때문이었을까. 1857년 시달은 셰필드의 지역미술학교에서 인물드로잉 수업을 받은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중 <샬럿의 여인>은 의미심장하다.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이 1833년에 발표한 시에 영감을 받아 그린 이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창밖을 직접 볼 수 없고 오직 거울을 통해서만 세상을 봐야 하는 저주에 걸린 ‘샬럿의 여인’. 성안에 갇힌 채 직물을 짜며 저주가 풀리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그녀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려 창밖을 직접 내다보고 만다. 결국 거울은 깨지고 찢어져버린 직물 속 실들이 ‘샬럿의 여인’의 몸을 친친 감는다. 이러한 결과를 감수하고서라도, ‘샬럿의 여인’은 단 한순간만이라도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시달은 ‘샬럿의 여인’의 심경에 분명 공감했을 것이다. 캔버스 속 박제된 뮤즈 신세였던 자신의 모습과 저주에 걸린 ‘샬럿의 여인’이 겹쳐 보였을 테니까.

그러나 1860년 화가 로세티와 결혼하면서 ‘화가 시달’의 꿈은 멈추고 만다. 불행히도 아내로 행복하게 살겠다는 꿈마저도 실현되지 않았다. 남편의 애정은 식어갔고, 설상가상으로 임신한 아이까지 사산했다. 이후 시달은 ‘샬럿의 여인’처럼 집에 갇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결혼한 지 2년도 못 되어 수면제용 아편제를 과다복용해 죽고 만다. 그녀의 시신은 밤새도록 놀다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온 로세티에 의해 뒤늦게 발견됐다.

죄책감에 휩싸인 로세티는 ‘시달의 삶에 영감받아’ 쓴 소네트를 그녀의 관 속에 함께 묻었다. 하지만 7년 뒤, 로세티는 본전을 뽑고 싶었던지 기어이 시달의 묘를 파헤쳐 소네트 원본을 꺼내 출판했다. 남성들에게 영감을 나눠주는 뮤즈로 사는 대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 되겠다고 발버둥쳤던 시달. 하지만 이번엔 그림이 아닌 소네트였다. 운명이라는 실은 시달이 죽음을 맞은 뒤에도 끝끝내 그녀의 몸을 친친 감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리 예술 분야 전문 작가.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검은 미술관> 등의 책을 썼다.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코너에서 ‘여자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sempre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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