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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6 16:06 수정 : 2019.04.08 15:06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⑨ 케테 콜비츠,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케테 콜비츠,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1903년, 동판화,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미술관
2년 전 이맘때, 허리가 너무 아팠다. 절룩거리며 걸어야 될 정도였다. 그날도 아픈 허리를 부여잡으며 물리치료를 마친 뒤, 학교와 유치원에 있던 아이들을 데리고 귀가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걸음이 많이 더딘 엄마가 답답했던 거였을까. 갑자기 큰아이가 먼저 간다며 앞서서 저만치 뛰어가 버렸다. 문제는 그다음. 정말 순식간이었다. 평소 3살 많은 언니가 하는 일은 꼭 따라 해야 직성이 풀리는 5살짜리 작은아이가 내 손을 뿌리치고 달려간 것은. 허리가 아파 따라 뛰질 못하고 애타게 이름만 부르며 아이의 뒤통수만 좇는데, 작은아이가 언니 쫓아가겠다며 차도에 뛰어드는 게 보였다.

그 후에도 자꾸 그 장면만 내 머릿속에, 슬로모션으로 되풀이되곤 했다. 저기 차가 달려오는데 그것도 모르고 차도로 돌진하고 있는 내 아이. 분명 그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는데, 나는 그 상황을 멈출 수 없고 내가 어찌해볼 수 없다는 그 속수무책의 무력감. 내 목구멍에서 그야말로 ‘동물적인’ 비명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놀라서 차도 반대편으로 돌아 나왔고, 다시 내게 무사히 안길 수 있었다.

세월호 5주기가 다가오는 요즘, 새삼 깨닫는다. 그 일을 경험하기 전, 나는 내 공감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다. 자식이 탄 배가 가라앉는데, 내 자식이 죽어가는데, 분명 그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는데, 그런데도 막을 수도, 멈출 수도, 구해줄 수도 없다는 것. 그때 뇌가 하얘진다는 것. 그동안 나는 그걸 겪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했었다. 오만하게도.

어쩌면 독일의 작가 케테 콜비츠(1867~1945)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콜비츠는 1903년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를 제작했다. 그림 속 어머니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아이를 안고 있다기보다 들러붙어 있다. 분신 같은 아이와 헤어져야만 하는 아픔 앞에서 어머니라면 이토록 처절한 모습이 되리라고 콜비츠는 ‘상상’했을 것이다. 그녀 역시 당시 11살, 7살 두 아들의 어머니였으니까. 그런데 콜비츠의 상상은, 11년 뒤 그림 속 어머니가 자신의 모습이 된다는 사실까지는 가닿지 못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콜비츠는 둘째 아들 페터를 전장 속으로 보냈는데, 한 달도 안 되어 다음과 같은 통지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비극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939년 히틀러의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콜비츠는 이번에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콜비츠에겐 죽은 아들과 같은 이름을 쓰는 손자가 있었다. 콜비츠의 장남인 한스가 아들에게 죽은 동생의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 손자 역시 성인이 되기도 전에 제2차 세계대전 전장 속으로 떠나 1942년 러시아에서 전사한다. 가엾은 페터는 두 번이나 죽은 것이다. 이때 콜비츠는 자신의 작품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가 달리 보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내가 자식을 잃는 어미의 심정을 안다고 생각했었구나’ 하며 가슴을 쳤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철거가 완료됐다는 뉴스를 보며 새삼 가슴이 서늘해졌다. 유족들의 마음을 쓸고 갈 헛헛함이 짐작되어서였다. 그들의 슬픔을 어찌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잊지 않겠다’고 새삼 다짐하는 것조차 그들 앞에선 조심스러울 뿐이다. 유족들에게 세월호는 ‘잊지 못하는 것’이기에.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나는 것. 아무리 잊으려 애써도 잊히지 않는 것. 그런 노란빛 4월.

이유리 예술 분야 전문 작가.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검은 미술관> 등의 책을 썼다.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코너에서 ‘여자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sempre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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