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30 06:01
수정 : 2019.08.30 20:21
윤비의 이미지에 숨은 정치
⑬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 세상의 지배자(2)
역사에서 인간과 사회를 멍들게 하는 불의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그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바람직한 태도 내지 필요한 지혜에 대한 생각도 다양했다. 종종 운명의 여신에 대한 묘사들 가운데 운명의 여신을 대하는 지혜에 대한 생각을 함께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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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리의 페트루스가 1196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에게 바친 ‘황제를 찬양하는 책’에 등장하는 한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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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행위에는 보상이, 나쁜 행위에는 징벌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정의의 기초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되고 둘에 둘을 곱하면 넷이 되듯 모든 행위에는 그에 합당한 결과가 따라야 한다. 삶에서 그러한 인과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사라졌다고 느낄 때 인간은 세상이 불의하다고 느낀다. 인간이 운명의 여신이라는 존재를 상상하게 된 것도 이러한 실망감과 관계가 깊다. ‘운명의 여신의 지배’란 ‘정의롭지 못한 세상’의 다른 이름이다. 역사에서 인간과 사회를 멍들게 하는 불의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그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바람직한 태도 내지 필요한 지혜에 대한 생각도 다양했다. 종종 운명의 여신에 대한 묘사들 가운데 운명의 여신을 대하는 지혜에 관한 생각을 함께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불의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 가장 존경을 받는 것은 정의의 편에서 싸우는 삶이다. 이러한 삶에는 두 방법이 있다. 한가지는 불의한 세상을 바꾸는 것, 필요하면 아예 리셋하는 것이다. 이는 보통 큰 희생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위인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개혁이나 혁명이 당장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불의한 세상을 주관적인 방식으로 삭제하는 것이다. 불의한 자들과 만나지 않고, 불의한 자들이 주는 것을 쓰지 않으며, 불의한 제도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어려운 생활에도 친일, 훼절 인사들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으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 딸을 일본의 교육을 하는 학교에 보내지조차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어지간한 의인들도 따르기 힘든, 아마도 만해 자신에게도 어려웠을 그 결정도 방금 말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운명의 여신을 좇아서 맞은 운명
우리는 에볼리의 페트루스가 1196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에게 바친 ‘리베르 아드 호노렘 아우구스티’(Liber ad honorem Augusti, 멋스러운 번역이 나오지 않는다. ‘황제를 찬양하는 책’ 정도 되겠다)에 등장하는 한 삽화에서 운명의 여신에게 맞서는 이러한 삶의 이상을 발견하게 된다.(그림) 그림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왼쪽 위에는 황제 하인리히 6세가 대좌에 앉아 있다. 그의 좌우로는 일곱명의 인물이 보인다. 왼쪽의 세 인물의 바로 위, 그리고 오른쪽 네 인물의 위쪽 가운데에는 ‘비르투테스’(virtutes), 즉 ‘덕성들’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 ‘비르투테스’라는 글자와 좌우에 나타난 ‘포르티투도’(fortitudo)와 ‘유스티티아’(justitia)라는 글자로 미루어볼 때 오른쪽의 네 인물은 고대 이래 윤리론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하는 네가지 덕성이다. 포르티투도는 용기를 의미하고 유스티티아는 정의를 의미한다. 여기에 절제를 의미하는 ‘템페란티아’(temperantia)와 지혜를 의미하는 ‘프루덴티아’(prudentia)를 합하면 네가지 핵심 덕성 목록이 완성된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는 커다란 바퀴가 보인다. 그 위에서 하인리히 황제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마치 애원하는 듯한 몸짓을 하고 있는 인물은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다. 포르투나의 왼쪽 어깨 쪽에는 ‘포르투나의 바퀴’(rota fortune)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포르투나의 오른쪽에 쓰인 제법 긴 문장은 ‘포르투나가 덕들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하나 거절당하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포르투나의 바퀴 아래에는 한 인물이 짓눌려 고통받고 있다. 그 아래에는 탕크레드(Tancred)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이 그림에는 12세기 말 서유럽 국제정치의 한 장이 담겨 있다. 포르투나의 바퀴에 짓밟히는 탕크레드, 정확히 레체의 탕크레드는 1189년 굴리엘무스 2세가 죽은 후 남겨진 시칠리아왕국의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원래 굴리엘무스에게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왕위는 굴리엘무스의 고모인 콘스탄체의 남편 하인리히 6세에게 가야 했다. 그러나 탕크레드는 시칠리아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왕위에 올랐다.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194년 이탈리아를 관통하여 남하한 하인리히의 군대는 시칠리아를 유린했다. 하인리히는 얼마 전 사망한 탕크레드를 무덤에서 끌어내었다. 하인리히의 수중에 떨어진 탕크레드의 아홉살짜리 아들에게 닥친 잔인한 운명은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어쨌든 이 사건을 통해 13세기와 14세기를 거쳐 시칠리아를 둘러싸고 벌어질 국제적인 쟁투의 서막이 열렸다.
이 그림이 실린 페트루스의 책은 하인리히의 승리와 업적을 찬양하는 일종의 ‘용비어천가’다. 저 위 왕좌에 꼿꼿이 앉은 커다란 하인리히의 모습과 저 아래 짓이겨진 탕크레드의 왜소한 몸이 이루는 대조는 승자와 패자의 대조이기도 하다. 승자는 자신에게 정의로운 자의 이미지를, 패자에게는 악한 자의 이미지를 투사했다. 하인리히는 진정한 군왕으로서 덕을 가까이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운명의 여신이 지배하는 부와 명예를 함부로 좇지 않으며 그에 대한 경계심을 잃지 않는다. 그림에서 하인리히 황제와 포르투나 사이의 간격은 바로 그러한 심리적 거리를 상징한다. 그에 비해 탕크레드는 이기심과 욕망에 눈이 멀어 운명의 여신이 내리는 신기루 같은 부와 권력을 추구하였다. 그는 한때 군왕의 자리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선택에는 결과가 따랐다. 마지막에 탕크레드는 운명의 여신의 바퀴 아래에서 신음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이 그림은 12세기 말 국제정치의 프로파간다의 한 예이다. 그림에 나타난 생각은 철저히 승자의 자기정당화와 찬양이다. 그런데도 이 그림은 운명의 여신이 지배하는 부당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당시 유행하던 생각의 한 자락을 담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이 세상을 불의가 지배할 수 있다. 그러나 빛이 어둠을 이기듯 결국 정의는 불의를 이긴다. 그러므로 덕을 갈고닦고 정의를 위해 힘써야 한다. 사악한 세력과 사악한 세상은 무너지고 정의가 세상을 채울 것이다. 최후의 승자는 정의의 편에 서서 싸우는 자이다.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인류사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이 간단하지만 힘 있는 생각에 호응하여 피를 흘리고 목숨을 던졌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서 힘의 뚜렷한 열세를 무릅쓰고 독재에 대한 저항을 결심한 이들에게 용기를 준 것도 정의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신념이었다. 하인리히와 그 추종자들은 탕크레드한테 맞서 거둔 자신들의 승리에서 정의의 미래에 대한 이러한 낙관주의를 확인하였던 것이다.
정치지도자에게 정의란?
물론 중세에도, 그 이전과 이후의 세계에도 그러한 낙관주의를 냉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플라톤의 대화 편에 등장하는 몇몇 소피스트는 바른 삶의 윤리를 탐구하려는 소크라테스의 노력을 현실에 별 도움이 안 되고 심지어 해롭기까지 한 수다라고 깎아내린다. 부정의한 세상의 승자는 가장 부정의한 자이다. <국가> 편에 등장하는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라는 것이 사실은 강한 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놓은 것이며, 정의의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결국 남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드시 그런 니힐리즘은 아니더라도 정의로운 행위만으로 정말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에 충분한가에 대해 회의하는 입장은 정치사상의 역사에서 쉼 없이 발견된다. 결국 정의로운 세상은 어느 정도는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용인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뜻을 폭력으로 관철하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때로 그러한 행위도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거짓말은 그 자체로는 옳지 않지만 더 큰 옳음을 위해 종종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기심에 물들어 공화국을 사유화하려는 소수의 유력 시민과 그들의 손에 놀아나는 민중의 변덕에 의해 자신의 시대의 개혁가들이 차례로 파멸당하는 것을 보면서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질문은 그것이었다.
물론 바름과 옳음의 원칙에서 이렇게 필요의 차원으로 내려서게 되는 순간 한쪽에서는 타락의 심연이 열리게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정치란 정말 어렵고 위험스러운 비즈니스라는 것이 막스 베버의 생각이었다. 정치는 영혼의 순수함을 구하는 곳이 아니다. 동시에 정의의 원칙을 벗어나 행동하는 순간에도 정의를 바라보는 의지와 통찰력이 정치가에게는 필요하다. 그런 균형감과 의식이 없다면 정치가는 단지 필요를 위해 악마와 악수하는 것을 넘어 악마 자체가 되어버린다.
오늘은 그림은 적고 말은 길었다. 다음 글은 포르투나에 대한 이야기의 마지막 편이다. 부제는 ‘악인전’이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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