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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1 20:00 수정 : 2019.05.01 20:16

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충동적인 선택하는 나
언제나 후회 동반

다이어트 차 건넨 회사 차장
기분 나빴지만 마신 나

등단했지만 나아지지 않아
네 번째 퇴사 결심

나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충동적으로 해버리고 마는 습관이 있다. 대학 원서를 쓸 때도, 학과를 결정할 때도, 첫 직장을 구할 때도 나는 언제나 내가 계획하거나 예상한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선택을 해왔다. 다른 모든 성급한 결정들이 그렇듯, 나의 선택은 언제나 후회를 동반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선택들이 줄어든 것은 아무리 한심한 나일지라도 학습 효과라는 게 있어서 충동적인 결정 이후에 무너지는 일상을 복구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깨달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물론, 착각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아무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다시 말해, 마감이 임박한 원고가 있었고, 나는 아침 5시쯤 일어나 눈을 감은 채 샤워를 했고, 정장 바지처럼 생겼지만 실은 고무줄 밴드로 되어 있는 감탄 팬츠를 입은 채 회사 앞 카페에 들어갔고, 샷 추가된 아메리카노에 말린 고구마를 먹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손가락이 가는 대로 계속해서 뭔가를 썼다. 또 어김없이 오전 9시가 되어 사무실로 올라간 나는 엑셀을 켠 채 연신 하품을 하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사무실 비품 구매비로 내가 기안을 올렸던,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타 마시며 갈수록 이가 누레지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10시 반쯤 화장실에 가 칫솔질을 했고, 나는 화장실 거울 귀퉁이에 깨진 부분을 보며 내가 도대체 몇 번이나 이 거울 앞에 섰더라, 생각해보았다.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사무실에 돌아와 내 자리에 앉았을 때 내 뒤에 앉은 최 차장이 갑자기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최 차장이 건넨 것은 핑크 색조의 손바닥만 한 박스 하나. 박스에는 다이어트와 지방흡입으로 유명한 병원 체인의 로고와 살색의 인절미같이 생긴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다이어트 차’라고 써진 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풋, 하고 나왔다.

“차장님 이게 뭔가요?”

“어디서 받은 건데, 상영씨 먹어.”

도대체 이걸 어디서 받아 온 걸까. 아니 그것보다도 사무실에 하고많은 사람 중 왜 하필 나에게 이걸 주는 걸까. 뭐 두 번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내가 가장 살이 쪘기 때문이겠지. 호의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웃을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내 인생 두 번째 직장이었던 광고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인턴이었던 내게 새 캠페인 경쟁 피티(PT)를 준비하기 위한 티에프(TF)팀에 배치됐다는 연락이 왔다. 인턴사원에게는 좀체 없는 일이라, 나는 뭐 내가 대단히 능력을 인정받아 그렇게 된 줄 알고 있었으나, 알고 보니 광고주가 (최 차장이 내게 건넸던 차의 브랜드인) 다이어트 전문 유명 의료 체인이었으며, 사내에서 가장 살이 찐 사람이었던 내가 가장 풍부한 다이어트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라 사료돼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에 나는 지금처럼 고도비만은 아니었고, 그저 평균보다 조금 더 살찐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야근은 필수요 주말근무는 선택인 격무 중에도 다이어트하고 점심시간을 쪼개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는, ‘자기관리’에 미쳐 있는 광고장이 중에서 내 몸매는 단연 다이어트가 필요한 대상이었다. 야심차게 준비하던 경쟁 피티는 실패로 끝났고, 20대의 나는 자본주의를 내 온몸으로 배운 뒤,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괜히, 옛날 생각을 해버렸다.

나는 일단 형식적으로 최 차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후, 박스를 뜯었다. 박스 안에는 길쭉한 스틱이 수십 개 들어 있었다. 나는 박스에 적힌 대로 컵에 찬물을 받은 후 스틱을 뜯어 분말을 털어 넣었다. 곧 투명했던 물이 분홍색으로 변했다. 굉장히 인공적인 빛깔이라는 생각을 하며 맛을 보았는데, 달았다. 그대로 쭉 들이켜 보았는데 예상보다 더 인공적인 방식으로 달고, 시고, 약간은 텁텁한 맛이 났다. 이걸 먹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달고, 시고, 약간은 텁텁한 맛이 나는 시원한 차를 계속해서 홀짝홀짝 마셨다. 신나게 차를 마시다 보니 괜히 최 차장에게 짜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서 받아 온 건지는 몰라도 자기 뱃살이나 신경 쓸 것이지, 이거 정말 신고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싶다가 그래도 공짜로 받은 거치고는 먹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기로 했다. 하긴 안 참으면 뭐 어쩔 건데. 실은 최 차장에게 기분 나쁜 마음은 없고 실은 고맙기까지 하다. 나는 왜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또 나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누가 나에게 아주 작은 호의라도, 무엇이라도 베풀어주기만 하면 왜 고마워하는 걸까. 이것은 지난 동안 내가 모두와 단절된 채 일만 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주 작은 관계의 실마리라도, 티끌만 한 호의라도 요즘의 내게는 뭔가 대단한 일처럼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내가 회사에 다닌 지도 어느덧 만 3년이 지나 있었다. 그동안 외적인 변화(이를테면 살이 찐 것)도 그렇지만 뭔가 본질적으로 내가 변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스물아홉의 끝자락, 등단한 직후였다. 운 좋게 작가가 됐으나 생활비가 모자랐다. 상금은 일부 대학원을 다니느라 부모님께 빌렸던 돈을 갚았고, 또 일부는 지난 카드 값을 갚는 데 다 써버렸다. 주변에 나보다 먼저 등단을 한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작가가 된다고 해도 대단한 비단길이 펼쳐지지 않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청탁이 없어 아예 휴업상태의 작가들이 많은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나, 다행히 등단하고 나서 원고 청탁이 많이 와, 글을 끊임없이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시내에서 홀로 살아가는 나의 생활비를 충족할 정도의 돈은 벌리지 않았다. 또다시 카드빚이 쌓이기 시작했고 나는 급하게 회사를 구했다. 그때는 그냥 급한 불만 끄자는 마음이었는데, 그렇게 시작된 회사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이번 회사는 내 인생 네 번째의 회사. 앞서 다녔던 세 회사는 모두 업종도, 업무의 형태도, 고용방식도, 연봉도 달랐다. 새 직장을 구할 때는 언제나 이전 직장보다 나은 조건, 나은 환경을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매번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모든 일을 그만두곤 했었다. 이번 회사에서 가장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출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글쓰기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만 3년 동안, 책 두 권 분량의 글을 쓰면서 나의 아주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최근에 몇몇 신문 인터뷰에서 이런 나의 생활(새벽 5시쯤 일어나 3시간쯤 작업을 하고 출근을 한다는 것)을 고백했을 때, 나의 성실성이나 의지 같은 것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보며, 심지어는 나로 인해 반성까지 하게 됐다는 댓글을 보며 나는 곤란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성실하지도 않으며 내 생활은 건강하지 않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나는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멍하게 넷플릭스나 텔레비전을 보다 잠든다. 해야 할 빨래는 잔뜩 밀려 있고, 집은 점점 더 쥐굴같이 되어가며, 온몸에 염증이 늘어가고, 살이 찌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뿐,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매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고, 책을 가지게 되었고, 내 글을 실을 작은 지면을 얻을 수 있었으나 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나의 일상을 가꾸는 방법, 내가 나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작가는 거의 다 두 번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전업 작가들도 거의 직장 생활에 준할 만큼 굉장히 바쁜 스케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가정을 가지고 육아를 하며 글을 쓰는 사람도 많다. 나는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도 다른 일들을 저글링처럼 요리조리 굴리며, 삶의 조건들을 적절하게 조절하며 요리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것은 철저한 착각에 불과했다.

도저히 버티기가 힘이 드는 날이면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삶이며, 나는 오랫동안 꿨던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오롯이 내 선택에 의해 지금 이 삶을 살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모니터 앞의 나는 여전히 구부정하게 앉아 거북목을 한 채 엑셀의 빈칸을 채우며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는 감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분홍색 다이어트 차를 다 마실 때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돌아 사무실 가장 구석진 자리 쪽으로 걸어갔다.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면서도 나는 내가 후회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니 지금 이 순간 이미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팀장은 돌이 박힌 지압 슬리퍼를 벗은 채 의자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종이컵 안에는 가래침이 뱉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흘끗 보며,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내 인생 네 번째의 퇴사였다.

박상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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