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마찰 땜에 잘 터지는 바지
총체적 난국인 내 몸
맞는 바지 없어 힘겹게 수선 역시나 5시가 되어 내가 가게 입구에 들이닥치는 순간 사장님은 마치 처음 겪는 일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대답했고, 옷 무덤에서 내 청바지를 건져 올리셨다. 내가 덩치에 비해 너무 작은 스툴에 앉아 핸드폰으로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사이 너무나도 어정쩡하고 기장이 긴 레귤러 핏 블루진이 비로소 내 몸에 맞게 고쳐졌다. 주말, 나는 무사히 그 청바지를 입고 국제 작가 회의에 참가했다. 한 세션 당 3시간이 넘는 기나긴 행사였는데, 실은 허벅지가 사정없이 조여서 힘들었던 점을 밝힌다. 나와 함께 참석한 동료는 내 귀에 대고 “너 왜 이렇게 스키니 진을 입고 왔어. 요즘엔 레귤러 핏이 대세래”라고 말했고 나는 빙그레 웃으며 “이거 레귤러 핏으로 나온 거야”라고 대답했고 친구는 터져나갈 듯한 종아리를 보며 빵 터졌다. 레귤러(Regular)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보통의, 평상시의 , 균형 잡힌……. 레귤러 사이즈. 보통의 사이즈. 균형 잡힌 사이즈. 도대체 누굴 위한 레귤러 핏이란 말인가! 행사와 옷 사이즈에 관련된 굴욕(?)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번은 출판사를 통해 한 유명 의류 브랜드의 매장에서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행사에 참여하면 거마비와 더불어 해당 브랜드의 아우터 한 벌이 지급된다고 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해당 브랜드의 옷을 입고 언론 노출을 늘리는 조건이라고 했다. 어차피 입을 옷이 마땅치 않던 나로서는 땡큐였다. 피팅을 위해서 행사 시작 시각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오라는 행사 담당자의 말을 듣고 나서는 그러나, 조금 불안해졌다. 백화점이나 아웃렛에서 그럴듯한 옷을 구매하려고 해도 국내 브랜드의 경우 아예 사이즈가 없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중년 남성을 주고객으로 하는 브랜드인 만큼 희망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매장에 들어서자 출판사와 의류 브랜드의 직원들이 나를 반갑게 마주해주었다. 그중 유달리 표정이 어두운 사람이 한 분 계셨다. 출판사 홍보 담당자는 그분을 이 매장의 매니저님이라 소개하며, 얼른 옷을 입어 보자고 했다. 나는 쭈뼛쭈뼛해진 채 가방을 내려놓으며, “아이고 저한테 사이즈 맞는 옷이 잘 없을 텐데……”라고 말했다. 표정이 좋지 않던 매니저가 나에게 성큼 다가와 대답했다. “네. 없을 것 같네요.” “네?” “맞는, 아우터가 아예 없을 것 같은데요.” “아, 네……. 역시 그렇죠. 종종 그래요. 그럴 수 있죠.” 몹시도 단호한 매니저의 표정 앞에서 나는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 민망한 냉기가 감돌았다. 나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얼른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들어 무대 연단 쪽 의자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주변 구경을 하고 오겠다고 매장 밖으로 나섰다. 기분이 나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왜 기분이 나쁘지. 대단한 모욕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적당한 옷이 없다는 것뿐인데. 그래, 매장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 그저 사이즈가 없다는 팩트를 전달한 것뿐이겠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말자,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유명 의류 브랜드 홍보 행사에 초대돼
옷도 주는 행사인데 담당자 날 보더니 난색 나는 내 몸을 긍정하지 않는다.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작가로 데뷔하던 초반에는 질겁하던 부하게 나온 사진도 요즘은 그냥 그렇구나 한다. 이전에 나는 내 자신의 몸과 정신이 고유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내 스스로가 레귤러 핏 블루진이 될 수 없음에 자주 절망해왔던 것 같다. 지금의 내 변화가, 나의 무뎌짐이 싫지도 좋지도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만 느껴진다. 나는 요즘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내가 운동하는 것을 알리지는 않는다. 운동을 한다고 하면, 심지어 웨이트 트레이닝을 배우기까지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종의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다소 방어적인 미소를 지으며, 오직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생존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그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애초에 그토록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밤 굶고 자야지 다짐하면서도 폭식을 일삼지는 않겠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기성복이 무엇인지, 레귤러 핏이 무엇인지, 건강이 체형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는 채 나의 인생은 오늘도 똑같이 흘러간다. 글 박상영(작가), 일러스트 윤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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