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9.01 09:48 수정 : 2019.09.01 10:24

〔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사법부
⑪ ‘세월호 7시간 보도’ 재판 개입

‘세월호 7시간 의혹’ 보도 ‘산케이’ 기자
명예훼손 재판에 법원행정처가 개입
형사수석부장이 주심 초고 손본 뒤
동료 법관 재판장에게 이메일로 전달

“명예훼손 단정 어렵다”는 첫 판단이
“대통령 사인의 명예훼손”으로 바뀌어
직권남용 혐의 심판받는 임성근 부장
“누구도 재판 관여 못하기에 무죄” 주장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산케이신문>의 ‘세월호 7시간 의혹’ 보도와 관련한 재판에 깊숙이 개입해, 주심판사가 쓴 판결문 등을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장을 통해 고쳤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2015년 12월17일 1심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의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이 부장! 수정판을 보내드렸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2015년 11월17일 임성근(55)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현 서울고법 부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의 재판장 이동근 부장판사에게 이런 제목의 이메일 한 통을 보냈다. 당시 재판부는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을 맡고 있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관련 기사를 작성했다. 첨부된 파일명은 ‘카토_말미(수정판).hwp’. 선고 날 재판부가 낭독할 판결 요약본(구술본)을 직접 ‘첨삭’한 것이었다. 갖가지 문장 부호 등을 사용해 보충하거나 삭제할 대목, 그 이유를 적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적 존재인 이상, 대통령을 피해자로 하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함부로 인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이 공적 사안에 관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대통령이 피해자라고 해서 명예훼손죄를 ‘함부로’ 인정해서 안 된다고 하면 그쪽에서 약간 또는 매우 서운해할 듯…)

“피고인의 행위가 적절하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오히려 이 사건 계기로 언론 자유도 무제한이 아님을 인식하고, 개인의 인권과 공익이 서로 조화되는 언론 풍토가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런 문구를 보충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만…)

판사 개인은 독립된 하나의 법원으로, 동료 판사의 재판에 참견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임 부장판사는 형사수석부장이라는 직함을 빌려 동료 판사의 재판에 ‘빨간펜’을 들었다. 4년 뒤, 그는 가토 재판 등 일선 재판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로 ‘피고인’이 돼 법정에 섰다.

형사수석부장 이메일로 바뀐 법리

지난 29일 대법원 판단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사실상 일단락됐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다. 청와대와 사법부의 부적절한 유착은 사법농단 의혹을 남겼다. ‘가토 다쓰야 재판 개입 사건’도 그중 하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 텅 비어버린 박 대통령의 ‘7시간’은 그 자체로 무능한 정부를 상징했다. 전 국민적 공분이 일었고, 각종 의혹과 소문이 난무했다. 그해 8월3일 가토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추측성 기사를 일본 <산케이신문>에 실었다. 박 전 대통령 지지단체는 그를 고발했고,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시각에 따르면, 양승태 사법부의 법원행정처는 가토 재판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지렛대’로 여겼다. 검찰 수사를 살펴보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판결 선고가 나기도 전에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보도가 허위라는 중간 판단을 내려달라’(2015년 3월), ‘명예훼손이 인정되지만, 비방의 목적을 인정할 수 없어 부득이 무죄를 선고한다’, ‘선고 말미에 가토 다쓰야를 질책해달라’(2015년 11월 초순)고 요구했다. 이는 형사수석부장이었던 임 부장판사를 통해 담당 재판부에 전달됐다. 지난 23일 임 부장판사의 첫번째 정식 재판에서 공개된 당시 구술본·판결 초고와 수정본 등을 종합하면 임 전 차장의 지시는 일부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물론 개인으로서의 피해자 박근혜의 명예도 훼손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2015년 10월21일 이메일에 첨부된 판결문 초고)

당시 주심이었던 임아무개 판사는 최초 구술본, 판결문에 이같이 적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라는 공적 사안에 대한 보도는 제한이 완화돼야 하고, 다소 부적절한 표현이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최고 공적 존재인 대통령은 이를 감내해야 한다고 봤다. 이는 공인 박근혜든 사인 박근혜든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고 비방의 목적도 없어 가토에게 무죄를 선고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가토에게 적용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명예훼손)'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하게 돼 있다.

그러나 임 부장판사가 재판장에게 보낸 이메일을 기점으로, 그 내용은 변화했다. 2015년 11월17일에 이어 다음날인 18일 오전 임 부장판사는 구술본을 재수정해 다시 메일을 보냈다. 그날 오전 임 부장판사가 재판장에게 보낸 이메일 일부다. “존경하는 이 부장님! 어제 보낸 파일을 다시 보니, 추가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어 표시해 다시 보내드립니다. (중략) 이 사건 기사의 허위성, 이로 인해 피해자의 명예훼손 부분이 인정된다는 점을 먼저 상세히 설시하고, 비방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시하는 것으로 다시 한번 전체 설명자료를 정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이 사건은 워낙 민감한 사건이어서 전체 설명자료와 보도자료를 제가 한번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메일에 첨부된 ‘카토_말미(재수정판).hwp’ 파일을 살펴보면, 이 사건 기사가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문장 곳곳에 ‘삭제’를 의미하는 가운뎃줄이 그어졌다. 또 “이 사건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달라고 주문했다. 법리상 무죄를 선고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의 심기를 경호하기 위해 명예훼손은 인정하는 묘수를 짜낸 것이다.

임 부장판사의 지시는 재판장을 통해 주심 판사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오후 주심 판사가 이메일을 통해 수정된 판결문을 재판장에게 전송했다. 유무죄 결론이 뒤바뀌진 않았지만, 결론으로 가는 법리 구성이 바뀌었다.

“대통령 지위에 있는 개인의 측면에서 본다면 매우 내밀한 사생활 영역의 문제다. (중략) 이 사건 기사가 개인 박근혜의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점을 종합하면 (중략) 개인 박근혜의 수인의 범위를 넘은 것으로서 명예훼손에 해당된다.”(2015년 11월18일 이메일 첨부된 1차 수정 판결문)

공인이든 사인이든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공인인 박근혜의 명예는 훼손하지 않았어도, 개인 박근혜의 명예는 훼손했다는 판단으로 바뀌었고, 범죄 구성요건인 비방의 목적이 없어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수렴됐다. 그로부터 한달 뒤인 2015년 12월17일 재판부는 가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취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판장은 이례적으로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았다”고 가토를 질책하면서, 피고인석에 선 채로 3시간여 선고를 듣게 했다.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 시국회의'와 국회의원 박주민(왼쪽 넷째), 윤소하(왼쪽 둘째), 김종훈(맨 왼쪽) 의원 등이 지난 3월11일 오전 국회에서 3월 임시국회에서 사법농단에 가담한 법관들을 탄핵소추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재판 신성불가침’론 뒤에 숨는 부장판사

임성근 부장판사는 직권남용의 법리를 근거로 무죄를 항변한다. 23일 재판에서 임 부장판사 쪽 변호인은 직권남용 법리상 문제 행위가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해당돼야 처벌이 가능한데, 사법행정권자 본인에겐 재판 개입의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현재 진행 중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재판장의 신성불가침한 영역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피고인들이 꺼내드는 공통된 주장이다.

임 부장판사의 이메일이 판결 내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막 시작될 참이다. 당시 재판장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한 판사는 “재판 개입 권한이라는 게 따로 있지 않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해서 재판 개입이라는 결과까지 초래하는 것이다. 재판 개입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재판 독립을 침해해놓고, 이제 와서 재판 개입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건 모순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사법부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