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지난 1월28일, 일본 이카타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시코쿠전력 사장이 에히메현청을 방문해 사고 통보 지연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날 시코쿠전력은 재발방지대책 보고서를 통해 시코쿠전력 회장, 사장, 원자력본부장의 임금 20%, 부본부장 임금의 10%를 자진 반납하고, 부장·과장 등 총 86명의 임직원에게 계고나 엄중 주의 처분 같은 징계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 뉴스는 지역 언론은 물론이고 일본 중앙지, 티브이 등을 통해 널리 보도되었지만 국내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얼마나 큰 사건이 있었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월18일 아침 8시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핵발전소 부지 내부에서 철근을 하역하고 있었다. 트럭에 달린 크레인으로 철근을 하역하던 중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트럭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고, 핵발전소나 송·변전 시설과는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들 시설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작업하던 하청업체는 사고 발생 20분 뒤 이 사실을 시코쿠전력에 보고했다. 하지만 시코쿠전력은 이 사실을 10시54분에 에히메현에 보고했다. 사건 발생 3시간 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하지만 이는 너무 늦은 보고였다. 시코쿠전력과 에히메현은 이카타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정상 상태가 아닌 모든 상황’을 ‘즉각 통보’하는 내용을 담은 안전 협정을 맺고 있다.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와 핵발전 사업자가 협정을 맺는 일은 많지만, ‘에히메 방식’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핵발전소와 지자체, 지역주민의 신뢰를 나타내는 상징 같은 것이기도 하다. 부상자나 시설 피해는 없었지만 3시간의 보고 지연은 에히메현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 지사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졌고, 여론도 시코쿠전력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사고가 크든 작든 안전 협정을 준수하는 것은 서로의 신뢰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중대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일본 특유의 완벽주의가 포함돼 있기도 하다. 또한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통보 지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시코쿠전력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처음 시코쿠전력은 통보 지연에 대해 즉각 사과했지만, 에히메현과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시코쿠전력 내부 조사를 통해 현장 확인이 늦어졌고, 인적 피해나 핵발전소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내부 보고로 인해 초동 판단이 잘못되었다며 임직원 86명에 대한 징계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에히메현에 제출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핵발전소 건설 과정은 물론 운영 과정에 지자체의 역할이 거의 없다. 현행법상 핵발전소 건설 여부는 중앙정부가 모두 결정한다. 지자체장이나 의회가 의견을 밝히긴 하지만, 이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 지자체가 갖고 있는 권한은 고작 건축허가나 공유수면 점용·사용허가 같은 하위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 따라서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이 지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곤 한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안전 협정은 법적 강제력이 약한 일종의 ‘신사협정’ 같은 것이다.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 징계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핵발전 사업자 입장에선 법적 징계보다 더 큰 비난을 받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이카타 핵발전소의 사례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너무 과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핵발전소 안전과 직결된 사안이라기보다는 ‘명문화된 협정’ 준수만을 강조하는 고리타분한 사례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이런 태도가 핵발전소에 대한 투명성, 안전성과 신뢰를 높이는 데는 큰 기여를 한다. 고리 1호기 정전 은폐 사건처럼 한달 뒤에야 소식을 접하거나, 새벽에 일어난 일을 저녁 뉴스를 통해 접하는 우리나라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의 상황을 비교하면 일본 상황은 여전히 부럽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지자체나 국회는 지역주민들을 대신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는 없을까? 찬핵·탈핵 논쟁에 빠져 있는 것보다 이게 더 생산적일 텐데 말이다.
칼럼 |
[우리가 잘 몰랐던 에너지 이야기] 핵발전소와 신뢰관계 / 이헌석 |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지난 1월28일, 일본 이카타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시코쿠전력 사장이 에히메현청을 방문해 사고 통보 지연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날 시코쿠전력은 재발방지대책 보고서를 통해 시코쿠전력 회장, 사장, 원자력본부장의 임금 20%, 부본부장 임금의 10%를 자진 반납하고, 부장·과장 등 총 86명의 임직원에게 계고나 엄중 주의 처분 같은 징계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 뉴스는 지역 언론은 물론이고 일본 중앙지, 티브이 등을 통해 널리 보도되었지만 국내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얼마나 큰 사건이 있었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월18일 아침 8시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핵발전소 부지 내부에서 철근을 하역하고 있었다. 트럭에 달린 크레인으로 철근을 하역하던 중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트럭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고, 핵발전소나 송·변전 시설과는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들 시설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작업하던 하청업체는 사고 발생 20분 뒤 이 사실을 시코쿠전력에 보고했다. 하지만 시코쿠전력은 이 사실을 10시54분에 에히메현에 보고했다. 사건 발생 3시간 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하지만 이는 너무 늦은 보고였다. 시코쿠전력과 에히메현은 이카타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정상 상태가 아닌 모든 상황’을 ‘즉각 통보’하는 내용을 담은 안전 협정을 맺고 있다.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와 핵발전 사업자가 협정을 맺는 일은 많지만, ‘에히메 방식’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핵발전소와 지자체, 지역주민의 신뢰를 나타내는 상징 같은 것이기도 하다. 부상자나 시설 피해는 없었지만 3시간의 보고 지연은 에히메현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 지사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졌고, 여론도 시코쿠전력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사고가 크든 작든 안전 협정을 준수하는 것은 서로의 신뢰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중대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일본 특유의 완벽주의가 포함돼 있기도 하다. 또한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통보 지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시코쿠전력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처음 시코쿠전력은 통보 지연에 대해 즉각 사과했지만, 에히메현과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시코쿠전력 내부 조사를 통해 현장 확인이 늦어졌고, 인적 피해나 핵발전소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내부 보고로 인해 초동 판단이 잘못되었다며 임직원 86명에 대한 징계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에히메현에 제출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핵발전소 건설 과정은 물론 운영 과정에 지자체의 역할이 거의 없다. 현행법상 핵발전소 건설 여부는 중앙정부가 모두 결정한다. 지자체장이나 의회가 의견을 밝히긴 하지만, 이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 지자체가 갖고 있는 권한은 고작 건축허가나 공유수면 점용·사용허가 같은 하위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 따라서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이 지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곤 한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안전 협정은 법적 강제력이 약한 일종의 ‘신사협정’ 같은 것이다.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 징계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핵발전 사업자 입장에선 법적 징계보다 더 큰 비난을 받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이카타 핵발전소의 사례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너무 과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핵발전소 안전과 직결된 사안이라기보다는 ‘명문화된 협정’ 준수만을 강조하는 고리타분한 사례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이런 태도가 핵발전소에 대한 투명성, 안전성과 신뢰를 높이는 데는 큰 기여를 한다. 고리 1호기 정전 은폐 사건처럼 한달 뒤에야 소식을 접하거나, 새벽에 일어난 일을 저녁 뉴스를 통해 접하는 우리나라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의 상황을 비교하면 일본 상황은 여전히 부럽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지자체나 국회는 지역주민들을 대신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는 없을까? 찬핵·탈핵 논쟁에 빠져 있는 것보다 이게 더 생산적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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