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정의행동 대표 2011년 9월15일, 전국적인 정전이 있었다. 9월 중순이었지만 이상기후로 날씨가 더웠고, 이에 따라 준비된 발전소 용량보다 전력수요가 급증했다. 결국 전력망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지역의 전기 공급을 중단하는 ‘순환 정전’이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블랙아웃’(광역정전)이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2011년에 일어난 정전은 블랙아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블랙아웃이 일어난 것은 48년 전이다. 1971년 9월27일 정오 무렵 서울화력발전소 5호기가 고장으로 갑자기 멈췄다. 서울 당인리에 있던 서울화력발전소 5호기는 1969년에 준공된 최신형 발전소였다. 발전용량도 250㎿급으로 당시 발전소 중 가장 커서 서울 전체 전력의 80%를 담당했고, 우리나라 전체 발전용량의 18.5%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렇게 규모가 큰 발전소가 갑자기 가동을 멈추니 전력이 부족해지고, 연쇄반응이 일어나 전국적인 정전, 즉 블랙아웃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언론은 ‘전력과잉 속에 공급이 불안하다’며 전력당국을 질타했다. 1971년 7월, 한전은 발전설비를 계속 늘리며 ‘무제한 송전’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발전용량이 전력수요보다 최대 700~800㎿나 남아도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전국적 정전이 생긴 것이다. 전력공급은 수요와 공급이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줄다리기를 하다가 한쪽이 손을 놓아버리면 아무리 힘이 좋은 장사라도 넘어지는 것처럼, 아무리 발전소가 많아도 갑자기 대규모 발전소가 멈춘다거나 송전선이 끊어지면 그 충격으로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1971년 정전은 아무리 발전소를 많이 지어도 블랙아웃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래서 대규모 발전소를 몇 개만 운영하는 것보다 적정 규모의 발전소 여러 개를 운영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력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동해안과 충남에 대규모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했다. 그리고 이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대용량인 765㎸ 초고압 송전탑을 건설했다. 외국의 경우 송전탑 1개에 송전선을 1회선만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용량 전력공급을 위해 우리나라는 송전탑 1개에 2회선을 걸어 공급 능력을 늘렸다. 이에 따라 765㎸ 송전탑에 문제가 생기면 수도권 전력공급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6일 밤 10시30분께, 신태백변전소에서 신가평변전소를 잇는 765㎸ 송전탑이 벼락을 맞았다. 이날 낙뢰로 송전선 2회선이 모두 고장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4년 우리나라에서 765㎸ 송전탑이 운영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정부와 한전은 765㎸ 송전선 2회선이 모두 고장 날 확률은 ‘100년에 1번 일어날 수준’이라고 했지만,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다행히 요즘은 전력수요가 많지 않은 때다. 또 다른 안전장치가 적절히 작동해 블랙아웃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력수요가 많은 겨울이나 여름철에 이런 사고가 난다고 가정해보면 아찔하다. 특히 겨울철 혹한기 정전으로 보일러 가동이나 난방이 중단될 경우, 피해는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문제가 제대로 이슈화되어서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십년째 전력이나 에너지 정책의 최대 이슈는 발전소를 더 많이 건설하는 것에 국한돼왔다. 지금도 동해안에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있고, 건설이 백지화된 신울진(신한울) 핵발전소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 발전소의 전력은 모두 765㎸ 송전탑을 통해 수도권으로 들어온다. 이처럼 발전소가 집중화될수록 블랙아웃의 공포는 더욱 커진다. 발전소가 더 건설되면 전력공급이 더 안정적일 것 같지만 밀집된 발전소 단지는 사고에 취약하고 오히려 안정성을 해친다. 그렇다고 추가로 송전선을 놓는 것은 더 많은 사회적 갈등을 낳을 것이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직류 송전 같은 것은 망의 복잡도만 늘릴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블랙아웃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사고를 복기하고 대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칼럼 |
[우리가 잘 몰랐던 에너지 이야기] 아찔한 블랙아웃 위기 / 이헌석 |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2011년 9월15일, 전국적인 정전이 있었다. 9월 중순이었지만 이상기후로 날씨가 더웠고, 이에 따라 준비된 발전소 용량보다 전력수요가 급증했다. 결국 전력망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지역의 전기 공급을 중단하는 ‘순환 정전’이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블랙아웃’(광역정전)이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2011년에 일어난 정전은 블랙아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블랙아웃이 일어난 것은 48년 전이다. 1971년 9월27일 정오 무렵 서울화력발전소 5호기가 고장으로 갑자기 멈췄다. 서울 당인리에 있던 서울화력발전소 5호기는 1969년에 준공된 최신형 발전소였다. 발전용량도 250㎿급으로 당시 발전소 중 가장 커서 서울 전체 전력의 80%를 담당했고, 우리나라 전체 발전용량의 18.5%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렇게 규모가 큰 발전소가 갑자기 가동을 멈추니 전력이 부족해지고, 연쇄반응이 일어나 전국적인 정전, 즉 블랙아웃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언론은 ‘전력과잉 속에 공급이 불안하다’며 전력당국을 질타했다. 1971년 7월, 한전은 발전설비를 계속 늘리며 ‘무제한 송전’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발전용량이 전력수요보다 최대 700~800㎿나 남아도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전국적 정전이 생긴 것이다. 전력공급은 수요와 공급이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줄다리기를 하다가 한쪽이 손을 놓아버리면 아무리 힘이 좋은 장사라도 넘어지는 것처럼, 아무리 발전소가 많아도 갑자기 대규모 발전소가 멈춘다거나 송전선이 끊어지면 그 충격으로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1971년 정전은 아무리 발전소를 많이 지어도 블랙아웃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래서 대규모 발전소를 몇 개만 운영하는 것보다 적정 규모의 발전소 여러 개를 운영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력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동해안과 충남에 대규모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했다. 그리고 이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대용량인 765㎸ 초고압 송전탑을 건설했다. 외국의 경우 송전탑 1개에 송전선을 1회선만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용량 전력공급을 위해 우리나라는 송전탑 1개에 2회선을 걸어 공급 능력을 늘렸다. 이에 따라 765㎸ 송전탑에 문제가 생기면 수도권 전력공급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6일 밤 10시30분께, 신태백변전소에서 신가평변전소를 잇는 765㎸ 송전탑이 벼락을 맞았다. 이날 낙뢰로 송전선 2회선이 모두 고장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4년 우리나라에서 765㎸ 송전탑이 운영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정부와 한전은 765㎸ 송전선 2회선이 모두 고장 날 확률은 ‘100년에 1번 일어날 수준’이라고 했지만,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다행히 요즘은 전력수요가 많지 않은 때다. 또 다른 안전장치가 적절히 작동해 블랙아웃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력수요가 많은 겨울이나 여름철에 이런 사고가 난다고 가정해보면 아찔하다. 특히 겨울철 혹한기 정전으로 보일러 가동이나 난방이 중단될 경우, 피해는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문제가 제대로 이슈화되어서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십년째 전력이나 에너지 정책의 최대 이슈는 발전소를 더 많이 건설하는 것에 국한돼왔다. 지금도 동해안에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있고, 건설이 백지화된 신울진(신한울) 핵발전소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 발전소의 전력은 모두 765㎸ 송전탑을 통해 수도권으로 들어온다. 이처럼 발전소가 집중화될수록 블랙아웃의 공포는 더욱 커진다. 발전소가 더 건설되면 전력공급이 더 안정적일 것 같지만 밀집된 발전소 단지는 사고에 취약하고 오히려 안정성을 해친다. 그렇다고 추가로 송전선을 놓는 것은 더 많은 사회적 갈등을 낳을 것이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직류 송전 같은 것은 망의 복잡도만 늘릴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블랙아웃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사고를 복기하고 대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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