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1.06 17:57 수정 : 2019.11.07 14:58

이헌석ㅣ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우리는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얘기는 전부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에 관한 것들이네요.”

지난 9월 유엔 사무총장이 소집한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전세계 국가 정상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만들어진 ‘멸종 저항’이란 단체는 지난달, 런던과 파리, 브뤼셀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도로와 다리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였다. 대멸종의 시작점에 우리가 있고, 지금 기후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멸종’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이상을 꿈꾸는 환경운동가들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과학자들로 구성된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지난해 지구 평균온도가 2도 올라가면 산호의 99%가 소멸하고 고위도 지방의 최저 온도가 6도나 상승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또한 곤충의 15%, 식물의 16%가 서식지의 절반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이후 0.87도나 올랐는데, 지금 추세를 고려하면 금세기 말에는 오름폭이 3도 이상이 될 것이라는 다양한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다.

그럼 과연 멸종은 어떻게 나타날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대규모 폭풍이나 혹한이 찾아와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한순간에 멸종하는 일이 벌어질까? 아마 그러진 않을 것이다. 생물체의 적응력은 정말 다양하다. 핵전쟁에서도 살아남는다는 바퀴벌레나 영하 20도에서 30년을 버틸 수 있는 곰벌레 같은 종은 아마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생물체는 이런 막강한 적응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가장 약한 생명체, 서식 환경이 가장 먼저 파괴되는 생명체부터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또한 생태계의 주요한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 종이 사라지면, 연쇄 효과가 생겨 멸종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산호가 멸종하면, 산호초 주변에 살던 해양생물들이 서식지를 잃어버리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일은 자연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비슷한 규모의 태풍이 상륙해도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 대도시보다는 농어촌,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약자가 더 많은 손해를 보는 경우를 목격했다. 폭염과 혹한, 미세먼지가 심할 때도 고생하는 이들은 언제나 부실한 주거 환경에 놓인 이들과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질병이 있는 이들, 대비할 정보를 갖지 못한 이들부터 재난은 시작된다. 기후위기는 전지구적으로 벌어지지만, 재난은 언제나 불평등하게 우리에게 찾아온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산업구조 전환과 에너지 전환을 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나 내연기관 자동차를 퇴출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게 될 문제가 더 심각하게 드러날 것이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퇴출하는 나라는 많지만, 사회안전망이 괜찮은 국가들과 우리나라처럼 ‘해고는 살인’으로 취급받는 나라의 상황은 결코 같지 않다.

대멸종의 시작점에 선 지금, 우리는 단순히 ‘멸종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태계뿐 아니라, 기후위기로 발생할 다양한 ‘위기’와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 저효율, 화석연료 대량소비 사회인 한국을 고효율, 탈탄소 사회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기후위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 이런 고민이 없다면 ‘기후위기 대응’은 돈벌이 수단을 찾는 자본들의 잔치판이 될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고민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전세계적인 저성장이 계속되자, 최근 경기 부양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한 논의가 많다. 미국에서는 ‘그린 뉴딜’에 대한 논의도 매우 활발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재정확대나 경기부양이 아니다. 인류 최대의 위기인 ‘기후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가장 힘없고 고통받는 이들과 생명체들에게는 ‘재난’을 막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우리가 잘 몰랐던 에너지 이야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