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이 끝나고 태어났다. 스무살이 되던 해, 실력만 있으면 유리천장쯤은 부술 수 있다는 ‘알파걸’이 등장했다. 서른이 되자 직장에선 자책감을, 가정에선 죄책감을 느끼는 ‘슈퍼우먼’ 선배들이 보였다. 여성의 생존과 성공에 대한 서사는 늘었지만,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판의 기울기는 변함이 없었다. 이 판 자체에 균열을 내는 방법은 없을까. ‘알파걸’도 ‘슈퍼우먼’도 주지 못한 답을 찾고 싶어, 또래 여성들을 만나러 나섰다.
전주에서 여성주의 단체 ‘언니들의 병원놀이’를 꾸려 활동하고 있는 박슬기(왼쪽)씨와 최선씨. 사진 황금비 기자
산부인과 전문의 박슬기(38)씨는 6살 때 유치원에서 ‘병원놀이’를 하던 순간을 또렷히 기억한다. 남자아이는 의사를 할테니 아빠의 와이셔츠를, 여자아이는 간호사에 맞는 복장을 준비해오라는 알림이 왔다. “왜 여자는 의사를 하면 안 되냐”며 와이셔츠를 챙겨간 그는 “유치원에서 온종일 나를 이상하고 불편하게 여기던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전주여성인권지원센터 활동가 최선(28)씨는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순종적인 여자아이였다”고 자신을 회고했다. 최씨는 대학생 때 권김현영 여성주의 활동가의 강연을 들은 것을 계기로 삶이 바뀌었다. “새로운 시선으로 내 삶이 해석이 되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두 사람은 2년 전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 성매매 피해 여성을 위한 건강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처음 만났다. 이후 두 사람은 ‘언니들의 병원놀이’ 모임을 만들어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해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분야도, 나이도 다른 두 사람이 자비를 투자해가면서까지 2년 동안 만들어낸 전주의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왜 이런 활동을 하는걸까. 지난달 27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내 주위의 한 명, 한 명이 바뀌다 보면 (결국) 사회가 다 바뀌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고 입을 모았다.
#1. ‘생리’에 대한 터부와 혐오를 깨고 싶었어 ―안녕! ‘언니들의 병원놀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슬기 안녕! 음, 사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었거든. 산부인과 의사가 됐는데 이런 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도 잘 몰랐고. 그러다 2017년 독성 생리대 파동을 거치면서 생리에 대한 온갖 혐오 댓글이 쏟아지는 걸 봤어. 생리컵에 대해서 팩트와 전혀 다른 이야기도 퍼졌고. 여성의 순결이나 ‘처녀막’을 이야기하면서 생리 자체에 대해 (사회가) 갖고 있는 혐오가 물밀듯이 쏟아지는게 느껴지더라고. ‘우리 한 번 붙어보자. 내가 (산부인과) 의사인데 나보다 잘 알아?’ 싶은 마음도 들고ㅎㅎ 그래서 용기를 내게 됐어. 언니들이랑 병원놀이를 하는 것처럼 내 몸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내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생리콘서트’라는 기획을 하게 됐고 ‘썬’(최선)한테 처음으로 같이 해보자고 이야기한 거야 ㅎㅎ 이렇게까지 지속될 거라고 계획하고 작정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해볼래?’ 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2017년 9월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처음 열었던 ‘생리콘서트’. ‘언니들의 병원놀이’ 제공
‘언니들의 병원놀이’가 활동을 본격 시작한 건 2017년 9월 개최한 ‘생리콘서트’다. 같은 해 발생한 독성생리대 파동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전주남부시장 청년몰 마을회관에 40여명이 모였다. ‘생리에 대한 팩트체크’ 코너와 각자의 내밀한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온 남성이나 완경의 시기에 가까워진 50대 학교 보건교사, 영국에서 자란 젊은 여성도 선뜻 자신의 생각을 나눴다. ‘그날’이나 ‘마법’으로 에둘러 말하지 않고 생리 그 자체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편견을 깨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선 생리컵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많이 나올 때였는데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해하니까 처음엔 생리컵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싶었거든. 그런데 고민을 좀 더 발전, 확장해서 생리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게 정말 좋았어. 생리대가 안전하지 않다고 하니 쫓기듯이 “생리컵을 쓰자!”는게 아니라 우리 몸에 대해서 알고, 제대로 된 생리용품을 마련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게 난 되게 좋았던 것 같아. 그래서 같이 하게 됐지ㅎㅎ
슬기 처음 기획단계에선 ‘생리대 콘서트’라고 했다가 이름을 바꿨어. 생리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 자체에 대한 온갖 혐오와 터부가 존재하고, 그게 곧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여성에겐 너무나 당연한 삶의 일부분인 생리가 존중받지 못하고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어디서든 생리대, 생리컵, 탐폰 등 다양하고 안전한 생리용품을 살 수 있는 건 우리의 권리라는 것까지 이야기하고 싶었어. 우리가 어떤 답을 정해놓고 그걸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주체적으로 내 몸에 대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선택도 제한되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건 우리의 권리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언니들의 병원놀이’가 전주를 기반으로 꾸려온 행사들
#2. 살아있는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얘기한다는 것
침묵을 깨는 파동을 만드는 일은 계속 이어졌다. 생리콘서트 두 달 뒤엔 ‘완경’을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를 열었고, 임신중지(낙태·2018년 1월)와 HIV/AIDS(2018년 3월)의 편견을 깨는 자리도 연이어 만들었다. 모두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여겨진, 그래서 제대로 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주제다. 지난해 2월 ‘미투’ 운동이 확산하던 즈음엔 전주 한옥마을의 경기전 앞에서 ‘#미투 필리버스터’를 열었다.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미투’ 고발글을 받아 대독하거나 누구든 직접 참여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함으로써 연대와 지지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밖에도 전북, 전주의 여성단체와 함께하는 ‘젠더정책집담회’(2018년 6월)나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2018년 9월)도 열었다.
2018년 2월 전주 한옥마을에서 열었던 ‘미투 필리버스터’ 행사. ‘언니들의 병원놀이’ 제공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정말 숨가쁘게 많은 활동을 했구나ㅎㅎ 슬기 아무래도 ‘언니들의 병원놀이’ 자체가 ‘페미의학수다’란 콘셉트로 활동을 하다 보니까 토크쇼를 위주로 했어. ‘미투’ 때 ‘미투 필리버스터’를 한 건 ‘미투’가 어느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성폭력을 경험해왔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기획했던 거야.
선 ‘춘향미투뎐’이라는 영상을 직접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어ㅎㅎ 춘향전을 우리가 각색한건데 변사또에게 춘향이가 ‘미투’를 고발하는 내용이야. 춘향이가 이몽룡에게 연대를 요청하지만 알고보니 이몽룡은 변사또가 성균관 직속 선후배라서 ‘형님이 그럴 리가 없다’는 식이지. 그 때 향단이가 나타나 ‘춘향아 내가 네 편이 되줄게’라고 하면서 여성들의 연대가 이뤄진다는 이런 내용이야.ㅎㅎ 대사가 하나하나 정말 주옥같아.
슬기 춘향이한테 “왜 이렇게 저고리가 짧아?” 이런 식이야 ㅎㅎ
선 “춘향이 너가 꼬신 거 아니야?” 이러고.
슬기 “너희 엄마가 기생이었다며?”란 대사도 있고ㅎㅎ
선 이야기가 고증된 것도 아니고 퀄리티도 B급이긴 하지만 그게 원래 우리 콘셉트라서ㅎㅎ
슬기 ‘미투’는 결국 여성들의 연대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이런 핵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ㅎㅎ
이들이 여는 ‘페미의학수다’ 행사에는 언제나 “예상한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늘 환영의 목소리만 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월 낙태죄를 다룬 콘서트를 열었을 땐 지나가던 중년 남성이 행사장에 난입해 “이런 걸 왜 하냐”며 언성을 높이고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경찰이 현장에 와서야 그 남성은 겨우 악다구니를 멈추고 돌아섰다.그래도 이런 소동이 차라리 ‘맨스플레인’에 부닥치는 것보단 낫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또다른 중년 남성은 대뜸 손을 들고 “세상에 나쁜 남성만 있는 것은 아닌데 불편하다”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슬기 토크콘서트에서 ‘남성이 좋다, 나쁘다’를 언급한 적이 없는데도 그러시더라고. 우리는 (단지) “살아있는 여성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거라고 답을 드렸지. 우리는 여성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왜 남성의 이야기로 환원해서 듣는지 잘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
ㅇ고등학교 인권동아리 ‘미쓰리딩’과 함께한 생리콘서트. ‘언니들의 병원놀이’ 제공
#3. 10대 페미니스트와의 만남
‘언니들의 병원놀이’를 하면서 잊을 수 없는 경험 중 하나는 바로 10대 페미니스트들과의 만남이다. ‘병원놀이’ 활동이 알려지면서 인근 학교에서 종종 강연 요청이 들어오는데, 이들과 만나며 오히려 시야를 확장하는 계기도 된다.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번에 걸친 ㅇ고등학교 인권동아리 ‘미쓰리딩’과의 만남도 그 중 하나다.
―슬기는 고등학교에 종종 강의도 간다고 들었어. 슬기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나 선생님들이 초청해주곤 해. 인권동아리 ‘미쓰리딩’에는 진짜 ‘열혈 페미’들이 모여있더라고. 완전 멋졌어.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러 갔는데, 같은 생리라도 연령대마다 다 관심사가 다르다는 걸 알았어. 이 친구들에게는 내가 자랄 땐 없었던 ‘생리공결제’가 화두였어. 학교에서 ‘괘씸하다’는 이유로 생리 공결을 인정 안 하고 결석처리하는 선생님들도 있다는 거야. 생리라는 것이 왜 공식적으로 휴가를 인정받을 만큼의 일인지를 간과하고 단지 학생들이 학교를 안 나오려고 꾀를 부린다는 식으로만 생각한다고 하더라. “여자가 생리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런 것도 못 참아서 나중에 어떻게 살래?”라거나 “여자 몸에 안 좋으니까 진통제는 먹지마”란 말도 들은 경험이 있었어.
ㅇ고등학교 인권동아리 ‘미쓰리딩’과 함께한 생리콘서트. ‘언니들의 병원놀이’ 제공
지금의 10대와 만난다는 건 페미니즘과 그에 대한 백래시(반발·반격)가 가장 치열하게 부딪치는 현장을 마주하는 기회기도 하다. 특히 남녀공학인 학교로 강의를 가면 상반된 반응이 돌아온다고 했다. 남학생들로부터는 “역겹다”, “혐오스럽다”는 반응이, 여학생들로부턴 “오늘 그나마 위로를 받고 간다”, “저희 학교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백래시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숨통이 트인다”는 응답이 온다. 한 학교에선 그의 강연이 끝난 다음날 여학생들이 직접 외모 지적 등 성적 대상화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제작해 1인 시위에 나서는 변화도 일어났다.
슬기 사실 내 주변에 나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친구나 선생님이 있느냐가 정말 중요하잖아.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물론 그렇고. 그런데 교실에선 생각보다 더 백래시의 온도가 굉장하더라고. 같은 반, 같은 공간에서 매일매일 그런 갈등을 경험하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았어. 강연 뒤에 학교에서 1인 시위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내가 그들이 가진 용기를 꺼낼 수 있는 어떤 방아쇠가 됐구나’ 싶어 보람되고 벅차더라고. 페미니스트 청소년들에게도 ‘내 편’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내 주위에 누군가 내 편이 있다는 걸 더 많이 알리고, 그 과정에서 산부인과 의사란 나의 직업이 무기이자 방패였으면 좋겠어.
한 학교에서 강연 이후 박슬기씨가 받은 포스트잇. 그는 더 많은 페미니스트에게 “내 편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4. “서로의 용기가 되는” 변화를 만든다는 것
이들의 활동은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성소수자, 난민 등으로 뻗어나간다. 전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서 활동하는가 하면 지난해 12월엔 다른 단체들과 합심해 지역의 난민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이들의 기억에 유달리 남은 순간이기도 하다.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선 지난해 연말에 난민 이웃과 함께하는 파티를 연 것? 나는 페미니즘은 남성이 아닌 성차별주의와 싸우는 거라고 생각해. 성차별 의식을 가진 누구와라도 싸울 수 있고, 그건 인종이나 계급 차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이 전선에 뛰어든 이상 그런 차별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는 사람이 페미니스트 아닐까.
슬기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억압하고 차별하는 것과 싸우는 게 페미니즘 아닐까. 그래서 난민 이야기가 너무 하고 싶었고 해야할 것 같았어. 난민에 대해서 너무 몰라 서울에 가서 관련 활동가 분들께 이야기도 듣고 도움도 받았어. 정형화된 ‘난민’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옆에 살고 있는 이웃과 함께 만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파티처럼 한 거야. 에스엔에스(SNS) 공지를 보고 다른 지역에서도 후원금을 보내주셨는데 파티 비용을 내고도 후원금이 정말 많이 남아서 봉투에 모든 후원자 이름을 빼곡하게 써서 난민 가족에게 전달했어. 환대의 마음이 느껴지길 바라면서.
선 말은 안 통했는데도 시종일관 밝게 웃으시더라고. 한겨울이었는데도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였어. 눈빛의 온기가 계속 기억에 남아. 나중에는 술도 안 마셨는데 무반주로 노래도 불러주시고ㅎㅎ
전주퀴어문화축제에 함께한 ‘언니들의 병원놀이’
사회의 ‘정상성’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던진다. 올해 5월에는 ‘가정의 달’을 맞아 ‘비정상가족’ 집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비혼여성, 무자녀 기혼여성, 성소수자 커플인 여성, 싱글맘이 모였다. “각각의 여성에게 꼬리표처럼 붙어있는 편견을 떼고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권리,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가족을 꾸릴 권리 또는 가족을 꾸리지 않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박씨는 말했다.
선 사실 ‘정상가족 뿌시기’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가족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야. 나는 “두 아들을 혼자 키우며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는 싱글맘 하늬님의 말이 정말 와 닿았거든. (다양한 가족을 이야기하는 건) 사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이 뭔지, 내 옆에 누가 있을지 내가 선택하고 그 가족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인것 같아.
박씨는 ‘언니들의 병원놀이’ 활동을 통해 비로소 “내가 산부인과 의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했다. 나의 일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을 연결하고 그들의 편이 돼 줄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다. 최씨는 “기획하고 활동하며 만나는 여성들에게 많은 힘을 받아 되려 내가 자신감이 생기고 늘 배우는 느낌”이라고 했다. 개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같이 성장한 경험도 함께 차곡차곡 쌓인다.
선 우리는 지금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고 (행사를 열 때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수십여명 정도지만 나는 이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우리처럼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활동하다 보면 이 사회가 다 바뀔수 있지 않을까. 지치지 않고 나와 옆 사람을 잘 돌보며 활동했으면 좋겠어. 모두가 건강하게!
‘언니들의 병원놀이’란 단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가 있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서로의 용기가 되는”이란 답을 보내왔다. 내가 발딛고 서 있는 곳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하나의 파동일 뿐이지만, 이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고 용기가 전해질 때 비로소 파도가 될 수 있다는 걸 이들은 직접 경험하고 또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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