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3 08:14
수정 : 2019.06.0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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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방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 마을이지만, 마냥 어둡고 절망스럽지는 않다. 동네 어른의 생일을 맞아 동네 사람들이 함께 잔치도 연다. 인간문화재 공옥진씨가 특별출연해 ‘병신춤’을 추며 흥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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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⑩꼬방동네 사람들
감독 배창호(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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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방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 마을이지만, 마냥 어둡고 절망스럽지는 않다. 동네 어른의 생일을 맞아 동네 사람들이 함께 잔치도 연다. 인간문화재 공옥진씨가 특별출연해 ‘병신춤’을 추며 흥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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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꾸러기 어린 아들 준일(천동석)을 데리고 태섭(김희라)과 재혼해 사는 명숙(김보연). 억척스러운 명숙은 서울의 변두리 빈촌에서지만 마침내 야채 가게를 내고 보란 듯이 살아가려 한다. 가게를 열던 날, 준일의 친부이며 전남편인 주석(안성기)이 가게를 찾아온다. 지금은 택시 운전을 하는 주석이지만 과거 소매치기였고, 신혼 시절부터 주석의 잦은 감옥행으로 결국 명숙이 떠나면서 두 사람은 헤어졌던 것. 저마다 사연을 지니고 모여 사는 꼬방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국 영화계 거장 중 한명인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은 그 싹부터 남달랐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수작이다. 이 영화를 함께한 사람들의 면면만 봐도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동철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이장호 감독이 기획, 신승수 감독이 조감독을 맡았고, ‘병신춤’의 명인 공옥진이 특별출연해 그 독특한 춤사위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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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를 안방 드나들듯 하는 남편 주석(안성기)을 떠나 꼬방동네에서 새 남편 태섭(김희라)과 살고 있는 명숙(김보연)은 오래전 헤어졌던 주석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 태섭은 ‘같이 떠나자’고 말하는 주석의 이야기를 듣고 명숙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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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80년대 도회지 빈민촌을 배경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숨 막힐 듯 사실적인 롱숏으로 담아낸다. 머지않아 다가올 도시개발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순박하면서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주인공 명숙. 아들을 보호하려다 화상을 입은 탓에 항상 ‘검은 장갑’을 끼고 있는 명숙의 손은 오로지 고난으로 점철된 그의 삶을 상징한다. 198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과 당시 생활 풍속도를 리얼하게 담은 장면들은 시대의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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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꼬방동네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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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당시 사회를 풍자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계몽적인 요소 또한 매우 강하다.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의 사전 시나리오 심의와 프린트 검열이라는 엄혹한 이중 검열을 비켜나가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대목이다. 배창호 감독이 “실패하면 영화계를 떠날 각오”로 치열하게 찍었다는 이 작품은 당시 검열관들마저 감동하게 해 가위질을 면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영화의 내용뿐 아니라 이런 제작기 자체가 시대의 분투를 증명하는 기록인 셈이다.
정지욱/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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