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3 07:14
수정 : 2019.07.0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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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 아수라장이 된다. 모두들 정신없이 도망치는 가운데 강두(송강호)는 딸 현서(고아성)를 데리고 달리다 현서의 손을 놓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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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23)괴물
감독 봉준호(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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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 아수라장이 된다. 모두들 정신없이 도망치는 가운데 강두(송강호)는 딸 현서(고아성)를 데리고 달리다 현서의 손을 놓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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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는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장르영화의 팬이자 장르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정말 기쁘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괴물>을 만든 감독다운 소감이다. 하지만 여기엔 빠진 말이 있다. 봉준호의 작품들은 실은 장르적 외피를 입은 뛰어난 정치영화다. 요컨대 그가 <괴물>에 대해 “괴물은 이 영화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괴물과 맞서 싸운 박강두네 가족들이다”라고 밝혔을 때, 그 가족들은 어떤 자들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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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서(고아성)가 살아 있다는 강두(송강호)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양궁 선수인 고모 남주(배두나)와 삼촌 남일(박해일)은 조카 현서를 구하기 위해 직접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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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둔치에서 허름한 매점을 운영하는 박강두네 가족의 면면은 이렇다. 매점을 지키는 아빠 박강두(송강호)는 무능력한 ‘무늬만’ 가장이고, 한때는 열혈 운동권이었던 삼촌 남일(박해일)은 지금은 무기력한 백수고, 엄마 없이 자란 딸 현서(고아성)는 낡은 핸드폰이 부끄러운 중학생이고, 그나마 제일 멀쩡해 보이는 고모 남주(배두나)는 대회에만 출전하면 시간제한을 넘겨 금메달을 놓치는 양궁 선수고…. 이들뿐만 아니라, 매점을 털다 괴물에게 희생되거나 가족들을 도와 괴물과 싸우는 노숙자들도 등장한다. 그러니까 영화가 공들여 바라보는 인물들은 신자유주의적 생존경쟁에서 밀려난 하층계급의 초상이다. 그들은 느닷없이 출몰한 괴물의 피해자지만, 제도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철저히 고립된다. 사회는 괴물을 제거하는 대신 그들을 없애는 데 공력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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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한강에 나타난 괴물한테 중학생 현서(고아성)가 끌려가자 가족들은 절망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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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방류한 독극물이 괴물의 근원이라는 설정은 영화 내내 환기되지만, 그 사실은 사태의 해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오합지졸의 연대가 괴물을 죽였음에도 원인은 남아 있고 제도는 여전히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장르적 쾌감의 순간은 끝내 마련되지 않는다. 영화의 엔딩에서 강두만이 이제 막 어둠을 응시하기 시작하지만 어떤 변화의 가능성도 장담하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의 환부에서 탄생한, 이 암담하고 날카로운 괴수영화에 천만 관객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지금으로서는 놀랍기만 하다. 그때, 극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즐긴 것일까.
남다은/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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