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5 11:05
수정 : 2019.07.1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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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연인’이었던 화영(김지미)과 동진(신성일)은 한국전쟁으로 헤어져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는 여의도광장에서 기적처럼 만난 두 사람은 강원도 어디에 살고 있다는 아들(한지일)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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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25)길소뜸
감독 임권택(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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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연인’이었던 화영(김지미)과 동진(신성일)은 한국전쟁으로 헤어져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는 여의도광장에서 기적처럼 만난 두 사람은 강원도 어디에 살고 있다는 아들(한지일)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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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어느 날 문득 천둥처럼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여기서 그날은 통일의 날이다. 물론 정말 기쁜 날이다. 그런데 그날 다음 날을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된 것일까. 1983년 6월30일부터 그해 11월14일까지 138일 동안 <한국방송>(KBS)은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을 453시간45분 동안 생방송하였다. 카메라 앞에 서지 못한 이들은 여의도 ‘만남의 광장’에 나가 이름을 쓴 팻말을 들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무작정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남한에 흩어져 살던 이산가족이 재회하였고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엉엉 울었으며, 그걸 지켜보던 또 다른 이산가족들도 울었고 그렇게 울고 있는 부모를 바라보던 자식들도 울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다음 날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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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화영(이상아)은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는 아버지 친구의 아들 동진(김정석)과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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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내내 울었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다음 날을 찍었다. <길소뜸>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지명이다. 어린 날 동진(아역 김정석)과 화영(아역 이상아)은 사랑을 나눈다. 생각지 않은 임신을 하고 그들은 잠시 헤어져 지내게 되는데 그만 한국전쟁이 터진다. 그리고 한국사의 우여곡절이 두 사람 각자를 고스란히 통과한다. 동진(신성일)과 화영(김지미)은 각자의 가정을 가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의도광장에 나갔다가 기적처럼 마주친다. 그러므로 해피엔딩? 여기서 영화의 절반이 끝났을 뿐이다. 동진과 화영은 수소문 끝에 강원도 어디에 살고 있다는 그들의 자식을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강에 빠져 죽은 시체를 건져내며 하루하루 먹고사는 석철(한지일)이라는 사내를 만난다. 세 사람은 각자의 환멸을 안고 그냥 헤어진다. 아마 앞으로도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다.
꿈결 같은 고향의 풍경이 펼쳐지는 앞부분과 달리 남은 시간 내내 임권택은 단 한방울의 눈물도 허락하지 않는다. 역사는 멜로드라마가 아니며 삶은 추억이 아니다. 그걸 정일성은 내내 차갑고 무미건조하게 찍어나간다. 아마도 당신은 마지막 장면에서 얼어붙을 것이다. 진행 중인 우리들의 역사. <길소뜸>은 지금 오늘도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영화이며, 지나간 영화가 아니라 다가올 그날 다음 날의 영화이다.
정성일/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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