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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2 09:39 수정 : 2019.09.04 13:29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54)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감독 신상옥(1961년)

남편을 잃고 딸 옥희(전영선)와 함께 사는 ‘어머니’(최은희)는 어느 날 죽은 남편 친구인 화가(김진규)를 하숙생으로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지만 사랑이 이뤄지긴 쉽지 않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주요섭의 단편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각색하여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옥희’(전영선)라는 소녀의 눈으로 보이는 ‘어머니’(최은희)와 사랑방으로 하숙을 오게 된 ‘아저씨’(김진규)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영화 속에서 둘은 손 한번 제대로 잡지 못한다.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지 오랜데다가 툭하면 들락거리는 시어머니 역시 과부 출신에 여간 깐깐한 성격이 아니라 전남편의 친구인 사랑방 손님과 개가(改嫁)를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아저씨가 들어오고 난 이후 엄마가 보여주는 미세한 감정변화를 용케 드러낸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옥희의 시선과 독백을 통해서다. 옥희는 아저씨가 이사 온 이후로 허구한 날 사랑방에 들어가 앉아 아저씨의 말벗이 된다. 물론 옥희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예쁜 엄마에 대한 자랑인데 가끔은 아저씨가 좋아할 만한 거짓말(“엄마가 아저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을 섞는 것도 옥희는 잊지 않는다. 그러고는 쪼르르 엄마방으로 달려가 사랑방에서 했던 말들을 주어만 바꾸어(“아저씨가 엄마를 좋아하나 봐”) 엄마에게 말해주면, 엄마는 가슴이 설레어 잠을 설치고는 하는 것이다.

옥희의 고군분투에도, 그리고 스멀스멀 피어나는 어머니와 아저씨의 애틋한 사랑에도 영화는 이들에게 해피엔딩을 주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과부의 수절만큼은 옥희 엄마도 벗어날 수 없는 가치였던 것이다. 영화는 끝내 아저씨의 고백을 가슴에 묻고 그를 떠나보내는 엄마를 비추며 끝이 난다. 지극히 전통적인 결말에도 신상옥 감독의 이 작품은 분명 1960년대를 지배했던 멜로드라마의 황금기를 예고한 신호탄이었다. 이후 비슷한 설정과 결말을 가진 이른파 ‘최루성’ 멜로드라마들이 우후죽순 제작되었지만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여타 다른 작품들과 비교 불가능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 엄마와 아저씨의 감정변화만큼이나 느릿하지만 섬세하고 심미적인 카메라 워크는 전례에 없었던, 한국 영화사에서 길이 남을 만한 성취가 될 것이다.

김효정/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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