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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7 08:58 수정 : 2019.10.10 09:45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72)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감독 임순례(2008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핸드볼팀의 이야기를 다룬 스포츠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뒤에는 힘들게 삶을 개척해 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숙·혜경·정란·수희 등 팀원들은 성별·계급·나이·해고 등의 현실 장벽 앞에서 악전고투하면서도 결국 연대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핸드볼팀의 이야기지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고통스러운 훈련과 치열한 경기 장면이 있으며, 캐릭터들도 전형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은 코트 뒤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미숙(문소리)은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에 시달린다. 혜경(김정은)은 이혼한 싱글맘이다. 정란(김지영)은 운동 때문에 복용했던 약 탓에 불임 상태다. 수희(조은지)는 집안의 가장이다. ‘국가대표’라는 영예는 그들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의 장르적 클리셰와 실화 영화의 리얼리티 사이에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성별, 계급, 나이, 실업과 해고 그리고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혹독한 성과주의와 여기에 수당처럼 붙는 연금. 그들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자들이 맞닥뜨릴 법한 장벽들에 부딪히며 악전고투한다. 그럼에도 ‘최고의 순간’이라는 역설이 성립한다면, 그들은 결국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육체의 투쟁으로 얻은 연대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 이것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가장 큰 미덕이며 의의다. 여성은 시스템의 차별과 폭력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가. 한국 영화가 오랫동안 무시해왔던 이 질문에 대해, 비로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처음으로 대답한다.

익히 알고 있듯 결승전은 승부 던지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한국의 패배로 끝난다.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은 여기서 영화를 끝낼 생각이 없다.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 장면이 삽입되며, 임영철 감독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임에도 정작 뛸 팀이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카메라 밖으로 사라진다. 잊을 수 없는 저릿한 엔딩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00위(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안에 여성 감독의 영화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유일하다.

김형석/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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