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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9 14:31 수정 : 2019.05.09 14:42

선진국 지도자,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donkeyhotey/40843325710

Weconomy | 백승진의 지속가능 한국사회

선진국 지도자,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donkeyhotey/40843325710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 선진국들이 어떻게 진화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예컨대 하나의 유사한 자유시장경제 체제 하에 이들의 경제시스템이 획일화되었는지 아니면 다양화되었는지를 말이다. 이를 통해 우리 대한민국에 주는 함의가 무엇인지를 고찰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해보면 획일화될 것으로 보였던 이들의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오히려 다양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에스핑 엔데르센은 ‘탈상품화’, ‘사회계층화’, ‘국가와 시장개입여부’ 등을 기준으로 선진국의 복지체제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 지었다. 첫 번째 유형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소득조사에 의한 공공부조 정책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복지국가’이고 두 번째 유형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사회보험을 강화해 사회적 지위 차이를 유지하는 것을 강조하는 ‘조합주의적 복지국가’, 그리고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탈상품화의 효과로 인한 사회적 평등과 사회연대성을 강조하는 ‘사회 민주주의적 복지국가’를 그 세 번째 유형으로 정의했다.

에스핑 엔데르센의 유형화 연구는 세계화의 거센 압박 하에서 개별국가의 국가·시장·가족이라는 사회제도의 삼각 틀은 지속적으로 변화했고 결국 개별국가 만의 독특한 사회체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후진국의 발전과정 속에서 흔히 관찰되는 ‘전통성’과 ‘근대성’ 간의 충돌 논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체계를 통한 복지국가의 유형화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21세기 들어서야 비로소 경제 생산체계의 관점에서 유형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어찌 보면 오늘날 비교정치경제론의 경전으로 인정될 법한 홀과 소스키스의 이론, ‘자본주의의 다양성’이다. 이는 그동안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다소 분산적으로 전개되어온 논의들을 신제도주의라는 하나의 이론 틀로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학문적 가치는 크다 평할 수 있겠다.

홀과 소스키스는 나라별로 상이한 ‘생산레짐이 있다고 보았고 이를 기준으로 선진국의 자본주의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을 ‘자유시장경제’로 분류했고 독일과 북유럽국가 그리고 일본 등은 ‘조정시장경제’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생산레짐이란 기업의 생산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다양한 제도들의 조합을 말한다. 좀 쉽게 설명해보면 기업은 내적으로는 피고용자, 외적으로는 부품공급자, 고객, 협력기업, 노조, 정부 등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기업활동은 수많은 ‘협의와 조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협의와 조정의 영역으로는 노사관계와 고용체계, 기업지배구조, 기업 간 관계 등이 포함될 수 있는데 기업이 이 영역들을 ‘시장적’으로 해결하는가 아니면 ‘비시장적’으로 해결하는가에 따라 위 두 가지 자본주의의 모델이 출현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각국의 역사적 특수성과 시장기제의 제도적, 사회적 배태성 그리고 제도적 상호보완성 등에 기반해 기업들의 대응 스타일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고 이는 경로 의존성을 띄게 된다고도 설명한다.

예컨대 자유시장경제로 분류된 국가의 기업은 위계조직과 경쟁적 시장제도, 공식적 계약을 통해 협의와 조정의 문제에 접근하는 반면 조정시장경제의 기업은 광범위한 관계적 계약, 내부자들 간의 정보교환에 기반한 네트워크 감독, 협력적 관계구축 등 비시장적 방식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을 띤다.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이고 후자의 대표는 독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미국과 독일로 각각 대변되는 자유시장경제와 조정시장경제 체제는 각기 차별적인 ‘제도적 비교우위’를 갖는다.

전자 자본주의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부문이나 연구개발에 기반한 신속한 제품개발이 요구되는 분야 더 나아가 생명공학, 반도체, 소프트웨어, 통신, 군수, 항공, 금융, 엔터테인먼트 등 ‘급진적 혁신’이 요구되는 분야에 유리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윤에 바탕을 둔 금융제도, 유연한 노동시장, 기업 간 시장 경쟁적 관계의 제도 배열을 갖추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 자본주의는 예컨대 기계, 공장설비, 내구 소비재, 엔진, 전문화된 운송설비 분야 등과 같이 생산과정의 지속적 개선과 제품의 경쟁력 강화, 다각화된 품질생산방식 등 ‘점진적 혁신’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제도적 비교우위가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후자로 구분된 국가들의 시장경제시스템은 노동자의 안정된 고용, 기업(또는 산업) 특수적 기술에 기반한 지속적인 숙련학습체계, 하청기업과의 긴밀한 생산협력과 같은 제도 배열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급진적 혁신과 점진적 혁신은 기업인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워딩이다. 경영학에 ‘존속적 혁신’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시장의 리더가 된 기업은 우월적 지위를 유지코자 동일 혹은 연관 분야에 투자를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기술혁신은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향상되지만 가격 또한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이 되면 소비자는 필요치 않을 정도의 높은 기술에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기를 꺼리게 된다. 급기야 이 기업의 상품은 시장으로부터 외면받게 되는데 이때 시장은 새로운 혁신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파괴적 혁신’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존속적 혁신에 상대되는 뜻으로 전에는 보잘것없는 수준의 기술력이었지만 예상치 않던 분야와의 기술융합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장에 재등장하고 결국 시장 전체를 장악하는 혁신을 말한다. 예컨대 한때 DVD 대여서비스를 하던 넷플릭스는 비디오 스트리밍 시장을 만들어내며 지금은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얼마 전 넷플릭스의 시장가치는 월트디즈니를 넘어서기도 했고 최근 유고브라는 여론조사업체에 따르면 미국 내 브랜드 호감도 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런 독특한 특색이 제도 저변에 내재되어있기에, 미국은 파괴적 혁신을 창조하고 있는 장본인이자 신속한 제품개발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 등에 눈부신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반면 독일은 제조업에서의 존속적 혹은 점진적 혁신을 통해 오늘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을 꾸준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독일경제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 즉 ‘히든챔피언’의 존재로도 뒷받침될 수 있다.

유엔 경제사회위원회 정치경제학자

<※본 칼럼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소속 기관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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