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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백승진의 지속가능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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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칼럼(
미국은 ‘파괴적 혁신’, 독일은 ‘점진적 혁신’에 강한 이유)에서 선진 자본주의의 다양성에 대해 살펴보며 미국은 ‘파괴적 혁신'에 독일은 ‘점진적 혁신’에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그럼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민주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는데, 민주화 이전의 한국경제는 조정시장경제 체제에 가까웠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이도 ‘국가주도’와 ‘합의제’ 이렇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는데 우리는 전자였던 것 같다. 이른바 ‘발전주의형 조정시장경제’ 체제라 말하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합의제 유형은 앞서 설명했던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 국가(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로 볼 수 있다. 이 국가들에서는 시장의 협의와 조정이 주로 ‘노사정(노동자·사용자·정부)’ 중심의 사회조합주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합의제 조정시장경제’ 체제라 불린다.
민주화 이후 특히 김영삼 정부부터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우리 사회는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점점 가까워졌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최근까지도 정쟁의 중심에 자리했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상징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다른 건 몰라도 이 대외 경제정책만큼은 충실히 계승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 문제는 국가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시민사회의 극렬한 저항의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이외에도 공교육과 사교육 간 무한경쟁, 물과 전기 등의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 등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민주사회의 공공성 간의 치열한 담론적 논쟁은 언제나 그랬듯 현재 진행형이라 하겠다.
어찌됐건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 속에 발전주의형 조정시장경제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해오며 전후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세계 7대 수출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너무도 빨리 달려온 탓일까. 오늘날 우리의 시대정신은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문제 등 오랜 기간 우리 경제의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누적된 수많은 경제·사회적 폐해와 부작용을 해결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혹자는 우리 사회가 이미 심각한 사회통합의 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근래 학계나 전문가 집단 특히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신자유주의의 대안모델을 찾아야 한다며, 다시 말해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경제를 전환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건 아마도 합의제 조정시장경제 체제 혹은 그와 유사한 체제로의 전환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차기 대권주자들이나 유력 정치인들이 독일이나 스웨덴 등지를 다녀오면서 “무언가 배웠다”고 언론과 인터뷰하는 장면은 그리 낯설지 않다. 아마도 그들의 고민의 핵심은 이런 것 같다. 우리 경제 저변에 깔려있는 제도 장치는 자유시장경제에 특화된 제도적 상호보완성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몸소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경험하고 이어서 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니 합의제 조정시장경제로 대변되는 독일 등 일부 유럽 선진 복지국가가 눈에 띄었고 그들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니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의 긴밀한 생산협력 관계, 노동자의 안정된 고용계약 등 오늘날 우리 사회가 절실히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미국과 같이 파괴적 혁신이 창조될 수 있는 제도적 근간도 당연히 필요하다. 특히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그려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지난 십 년간 끊임없이 반복됐던 ‘창조경제’니 ‘혁신성장’이니 하는 슬로건이 <무한도전>의 유행어만큼이나 친숙하다.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창조경제와 혁신성장, 이 두 가지는 정치 풍자 코너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지 않던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필자 역시 우리 사회에는 파괴적 혁신을 담아낼 수 있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와 노사정 상생을 가능케 하는 합의제 조정시장경제 체제 둘 다 절실하다고 믿는다. 현재 우리의 자본주의 체제는 아직까지는 자유시장경제에 가까워 보이지만 조금씩이나마 자본주의의 견고한 틀 안에서의 ‘조합주의적 복지국가’ 내지는 ‘사회민주적 복지국가’ 특히 합의제 조정시장경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최소한 의지는 강하다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산업 구조는 사실 일부 첨단산업과 서비스산업 등에 제도적 비교우위를 갖는 미국식 자본주의보다는 IT 등 첨단제조업 분야 등에 강점을 보이는 북유럽 강소국들의 자본주의 유형에 좀 더 가까워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가 중화학 공업이나 IT 산업에 특화된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일이나 스웨덴 역시 동일한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들은 협력적 노사관계와 노동의 안정적 확보가 보장돼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씁쓸하다고 할까.
과거 여러 사례를 돌이켜 볼 때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 전환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 세기에만 해도 세계 최고의 자유화 사례로 불렸던 뉴질랜드의 경제체제는 21세기를 넘어서면서 조세, 노동, 복지 등 여러 공공부문에서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신자유주의의 본산지이기도 한 영국에서도 한때(1998년)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에 자리할 법한 이른바 ‘사회투자국가론’이 각광을 받기도 했다.
어찌 보면 오늘날 신자유주의 즉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미국식’이라기보다는 ‘미국에만 존재하는’ 체제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우방국들 가운데서도 기존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변형하거나 또는 새로운 체제 즉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포착되는데, 이는 소득불평등이나 양극화 등 사회 격차 해결에 특화된(?) 자본주의 체제를 찾아보려는 각국의 노력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의 다양화라는 세계적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는 개별 국가만의 역사적 특수성과 시장기제의 제도적, 사회적 배태성 그리고 제도적 상호보완성 등을 반영하며 아주 서서히 진화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전환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잡음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우리 경제는 자유시장경제 체제 아래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우리만의 제도 배열 구조가 강력한 경로 의존성을 띠기 때문에 이를 거스르는 새로운 제도의 형성과 배열에는 여러 가지 혼란이 불가피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소득주도성장이니 혁신성장이니 하며 ‘성장 대 분배’ 또는 ‘낙수효과 대 분수효과’ 간의 케케묵은 담론 논쟁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경제체제의 전환 노력에 수반되는 경제·사회적 혼란과 정쟁 등은 우리가 감내해야만 하는 경제의 체질 전환 비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분명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합의제 조정시장경제 체제는 혁신성장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므로 특정 분야에서는 고용의 유연성이 강조돼야 할 것이고 또한 세계적 추세에 맞게 사회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제, 이른바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여야만 한다. 또한 형평성과 효율성 간의 합의, 복지의 정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이 모두는 동등한 파트너십 아래 사회 구성원 스스로가 직접 합의하는 구조여야만 한다. 국가는 이러한 합의 과정에 깊게 관여하지 말고 단지 이 모두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진행되는지만 관찰하길 바란다.
유엔 경제사회위원회 정치경제학자
<※본 칼럼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소속 기관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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