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1 16:01
수정 : 2019.11.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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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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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백승진의 지속가능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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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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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미국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잖아!” 이럴 때마다 북한은 중국을 찾곤 한다. 과거 김일성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김정일이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김정은이 시진핑을 찾아가는 모습은 우리에겐 그리 낯설지 않다. 심지어 중국 지도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북한 지도자의 방중 시 극진히 대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 원조는 말할 것도 없이. 그렇기에 우리는 중국과 북한을 마치 우리의 한미동맹 정도의 깊은 관계라고 보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북한 입장은 어떨까.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꽤 친숙할 법한 김계관(당시 북한 외무성 부부상)이 2007년 방미 당시, 북한은 중국이 아닌 미국 편에 설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적이 있다. 이어 2009년에는 리근(당시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역시 북한이 중국에 종속되는걸 원치 않으며,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수립할 의향까지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좀 더 과거로 거슬러가 보자. 1960~7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발발 시, 중국은 김일성을 자본주의 노선을 따른다는 ‘주자파’로 매도했던 적이 있다. 이에 너무 화가 난 김일성은 한국전쟁 시 전사한 중국군의 묘비를 모두 파내버렸다는 소문까지 들리기도 했다.
또한 1992년 한중수교 때 북한이 느꼈을 중국에 대한 배반감을 상상해봐라. 당시 덩샤오핑이 김일성에게 했다는 말이다. “모든 나라는 상황에 따라 나름의 문제가 있다. 모든 이슈에 대해 똑같은 입장을 요구할 순 없다.” 심지어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통보를 하지 않고 6.25전쟁 일으켰다는 풍문까지 있을 정도니, 최근 김정은이 ‘중국은 배반자’라는 문구를 북한 육군사관학교에 내걸었다는 소문도 그리 터무니 없는 가짜뉴스인 건 아닌가 보다.
이런 북한이 갖고 있는 적대심을 중국이 모를 리 만무하다. 특히나 중국 젊은이들에겐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북한과 같은 집단(패거리)으로 여겨지는 데에 굉장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한때 ‘조선을 기피하는 정책’이란 의미의 ‘기조(忌朝)정책’이 강조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중국 관리들 사이에서는 번견론(番犬論)이란 표현이 있기까지 하다. 번견은 집을 지키거나 망을 보는 개를 말한다.
양국 간에 신뢰 결핍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을 절대로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오래전, 북한은 중국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말했던 마오쩌둥의 말이 21세기 오늘날까지 유효한 듯 보인다. 미국과의 패권전쟁 하의 지정학적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는 일종의 지정학적 애증(愛憎)의 관계라고나 할까. 환구시보에 실린 주목할 만한 글이 하나 있다. 요즈음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북한붕괴론’은 중국의 장기적인 전략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이라 경고한다. 즉, 중국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대미전략 차원의 전략적 가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기에, 한반도 통일에 대해 중국이 몹시 우려하는 건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과 자본주의 침투에 대한 두려움이라 하겠다. 특히나 (물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북한이 미국의 편에 서게 될 경우를 대비한 것일까. 중국의 대북투자는 지난 십년간 공격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오늘날 북한의 대중국 경제의존도는 90퍼센트에 육박하게 되었다. 즉, (중국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어떠한 상황이 발발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대북 레버리지는 상당 부분 유지될 공산이 크다 하겠다.
만약 대한민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 진행 된다면, 한반도 북쪽 국경지대에서 미국과 직접 맞닥뜨리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였을까. 시진핑이 주석 취임 후 북한보다 우리 대한민국을 먼저 방문했던 건, 우리를 미국의 대중국 연합 동맹(일본-필리핀-호주 등)으로부터 이탈시키고자 했던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중국이 적극적이었던 한중FTA 역시 그 맥을 함께하는 걸로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은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를 자국 영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우리 대한민국이 통일 한국에 이르게 된다면 고구려 역사에 대한 재논의가 서서히 진행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현재 중국의 흑룡강(헤이룽장)성, 길림(지린)성, 요녕(랴오닝)성 등 동북3성이 자리한 곳이 바로 고구려의 영토이니 말이다. 특히나 이 지역에는 대규모의 조선족들이 거주하기에,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막고 이들 간의 통합과 안정을 정치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통일 한국 상황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즉, 이 모든 중국의 우려에는 미국과의 국제정치적 패권전쟁과 긴밀히 연결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한반도 통일이 미국의 개입 없이 이뤄질 수만 있다면 중국의 거부감이 조금은 덜할지도 모르겠다. 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의 감독하에 통일이 진행될 경우도 중국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상임이사국이기에 자국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해방 직후 신탁통치 논의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라 우리가 오히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한편으로 미국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최고의 ‘린치핀(linchpin)’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21세기 세계 패권 다툼 하의 동북아정세, 더 나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가 간 이해관계는 우리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자, 풀어내야만 하는 시대적 소명인 것이다.
백승진 유엔 경제사회위원회 정치경제학자
<본 칼럼은 필진 개인의 의견이며 소속 기관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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