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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31 18:17 수정 : 2019.08.21 14:34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요마는 가장 권위 있는 음악상인 그래미상을 무려 열여덟 차례나 받은 세계적 첼리스트다. 그가 열아홉살 때 뉴욕에서 독주회를 하던 중 갑자기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요요마는 당시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이 문제였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까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깨달은 순간을 ‘해야 한다’를 ‘하고 싶다’로 바꾼 순간으로 부른다. ‘완벽해야 한다’에서 ‘완벽해지고 싶다’로 생각을 바꾸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다.”

요요마의 깨달음처럼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힘들게 받아들일 수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법임을 알게 된다. 같은 연주라 해도 남에게 어떻게 들릴까를 의식하며 완벽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을 때와, 내가 원하는 연주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때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왜곡되거나 과장되어 사건을 힘들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생각을 인지왜곡이라 한다. 인지왜곡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에 강박적으로 몰두하는 것은 ‘당위진술’이다.

30대 남성 ㄱ씨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10년 이상 봉사하는 일을 하며 살던 그는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 삶의 의미였다. 그런데 일을 하며 칭찬이나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자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이전까지 삶의 원동력이었지만 이제 그 생각은 오히려 그를 더 이상 그 행동은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일을 쉬고 지금까지의 삶을 복기하며 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러나 운동을 하고 여행을 하는 등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보내는 시간은 불안했고 그마저도 ‘잘’ 하기 위해 노력했다.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에 대한 당위성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지하면서도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우기 어려웠다.

ㄱ씨는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타인에 대한 당위성으로 힘들어 했다. 자기의 가치나 장점을 보지 못하고 혼자서는 만족하지 못했기에 더욱 다른 사람의 인정을 통해 가치를 확인하려 했다. 독립적인 연인을 만나면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역시 이번에 힘들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면담 시간 중에도 치료자인 나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고 면담 마지막에 항상 횡설수설하지 않고 이야기를 조리 있게 잘 했는지 확인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 구조를 ‘원초아’(id), ‘초자아’(superego), ‘자아’(ego)로 구분했다. 그중 ‘초자아'는 양심, 도덕, 이상, 규범으로 부모와 사회의 기준이나 금기 등을 받아들여 마음속에 간직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초자아와 연결되어 있다. ㄷ씨는 어렸을 때부터 조금만 잘못해도 아버지한테 언어 학대, 신체적 학대를 받았다고 한다. 항상 어떻게 해야 혼나지 않을지 두려움에 떨었다. 두려움은 내재되어 아버지가 혼내지 않아도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자책했다. ㄷ씨는 아버지의 기준을 통해 지나치게 크고 강한 초자아를 가지게 됐고 이로 인해 쉽게 죄책감, 부끄러움, 열등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요요마도 열아홉살까지는 ‘해야 한다’는 당위적 사고방식을 통해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을 유지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취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다. ㄱ씨처럼 자신과 타인에 대한 당위성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반드시’를 빼고 ‘해야 한다’를 ‘하고 싶다’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진료를 마치면서 “이번 한 주는 꼭 잘 지내고 올게요”라는 말씀들을 하신다. 잘 지내시면 좋지만 안 그러셔도 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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