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ㄱ씨가 진료실을 처음 찾아온 것은 지금부터 네달 전이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은 이제 두달 정도 됐다. 일년 남짓 사귄 남자친구가 보이는 쌀쌀한 모습에 불안한 마음이 커지다가 급기야 ‘바람을 피우는 것이 확실하다’는 의심이 떠올라 휴대폰을 몰래 훔쳐보다가 들키고 다툰 뒤 스스로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두달 정도 상담을 하면서 ㄱ씨도 남자친구의 태도에 상처를 받아가면서까지 연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만간 헤어지겠다는 마음을 먹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즈음, ㄱ씨는 갑작스럽게 남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한동안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동안 마음을 정리해왔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뒤 ㄱ씨의 마음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뜸해지던 남자친구의 연락과 쌀쌀맞은 말투에 상처받고 고민하던 시기에도 밤잠을 설치곤 했지만, 이별 통보를 받은 뒤에는 밤새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입맛이 떨어져 두달 새 체중이 7㎏이나 빠졌다. 회사는 겨우겨우 나갔지만 일에 집중을 못 하고 능률이 뚝 떨어지면서 상사에게 불려가 혼나기 일쑤였다. 우울한 마음에 수시로 눈물이 흐르는 것까지는 어쩌면 정말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을 하고 난 뒤니까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상담을 하며 정리한 마음들, 더 이상 본인의 감정 소모를 하면서까지 연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조만간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했던 것들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둘 사이에 일어난 나쁜 일들의 책임을 다 본인에게 지우는 모습이 점점 심해졌다. 심지어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니까 앞으로 다시는 연애를 못 하게 될 거다’라는 생각에 빠져 한참을 더 슬퍼하기도 했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이별이든 힘들지 않은 이별은 없다. 우울한 감정은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고 나서 발생한다는 것은 프로이트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론이기도 하고, 우울한 감정이 심해지면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별 이후에 스스로의 행동을 자책하면서 ‘그때 이렇게만 했어도 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마음은 이별 노래의 가장 흔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모든 사귐이 혼자서 할 수 없는 것,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듯, 모든 이별 역시나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꼭 ㄱ씨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이별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그만큼 좋아했기 때문이고, 그렇게 내가 사랑을 했었다는 건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증거다. 흔히들 지나간 사랑을 잊는 방법으로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동안 못했던 일들에 집중을 해본다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이별 직후의 시간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앞으로의 연애에서는 어떤 부분을 채워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니까, 지나간 연애에서 내가 한 잘못에만 몰두하지 말고 혼자만의 시선에서 차분히 들여다보면 좋을 것이다. 또 한가지, ㄱ씨처럼 일상생활에 심하게 문제가 생길 정도로, 그리고 스스로를 굉장히 못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자책할 정도로 심하게 우울한 감정이 오래 지속될 때에는 단지 이별의 슬픔이라고 넘길 것이 아니라 우울증은 아닌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정신질환의 평가 및 진단에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이 2013년 개정되면서, 명백한 상실 이후에 뒤따르는 우울한 감정,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자책, 후회, 무기력 같은 증상은 예전에는 우울증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일상생활에 심한 영향을 주는 정도라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이라고 진단할 수 있게 바뀌었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ㄱ씨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고 그 감정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큰 괴로움에 빠져 있는 상태라면, 한번쯤 마음을 점검하기 위해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칼럼 |
[뇌부자들 상담소] 헤어진 사람을 놓지 못하는 나 / 윤희우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ㄱ씨가 진료실을 처음 찾아온 것은 지금부터 네달 전이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은 이제 두달 정도 됐다. 일년 남짓 사귄 남자친구가 보이는 쌀쌀한 모습에 불안한 마음이 커지다가 급기야 ‘바람을 피우는 것이 확실하다’는 의심이 떠올라 휴대폰을 몰래 훔쳐보다가 들키고 다툰 뒤 스스로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두달 정도 상담을 하면서 ㄱ씨도 남자친구의 태도에 상처를 받아가면서까지 연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만간 헤어지겠다는 마음을 먹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즈음, ㄱ씨는 갑작스럽게 남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한동안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동안 마음을 정리해왔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뒤 ㄱ씨의 마음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뜸해지던 남자친구의 연락과 쌀쌀맞은 말투에 상처받고 고민하던 시기에도 밤잠을 설치곤 했지만, 이별 통보를 받은 뒤에는 밤새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입맛이 떨어져 두달 새 체중이 7㎏이나 빠졌다. 회사는 겨우겨우 나갔지만 일에 집중을 못 하고 능률이 뚝 떨어지면서 상사에게 불려가 혼나기 일쑤였다. 우울한 마음에 수시로 눈물이 흐르는 것까지는 어쩌면 정말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을 하고 난 뒤니까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상담을 하며 정리한 마음들, 더 이상 본인의 감정 소모를 하면서까지 연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조만간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했던 것들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둘 사이에 일어난 나쁜 일들의 책임을 다 본인에게 지우는 모습이 점점 심해졌다. 심지어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니까 앞으로 다시는 연애를 못 하게 될 거다’라는 생각에 빠져 한참을 더 슬퍼하기도 했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이별이든 힘들지 않은 이별은 없다. 우울한 감정은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고 나서 발생한다는 것은 프로이트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론이기도 하고, 우울한 감정이 심해지면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별 이후에 스스로의 행동을 자책하면서 ‘그때 이렇게만 했어도 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마음은 이별 노래의 가장 흔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모든 사귐이 혼자서 할 수 없는 것,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듯, 모든 이별 역시나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꼭 ㄱ씨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이별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그만큼 좋아했기 때문이고, 그렇게 내가 사랑을 했었다는 건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증거다. 흔히들 지나간 사랑을 잊는 방법으로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동안 못했던 일들에 집중을 해본다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이별 직후의 시간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앞으로의 연애에서는 어떤 부분을 채워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니까, 지나간 연애에서 내가 한 잘못에만 몰두하지 말고 혼자만의 시선에서 차분히 들여다보면 좋을 것이다. 또 한가지, ㄱ씨처럼 일상생활에 심하게 문제가 생길 정도로, 그리고 스스로를 굉장히 못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자책할 정도로 심하게 우울한 감정이 오래 지속될 때에는 단지 이별의 슬픔이라고 넘길 것이 아니라 우울증은 아닌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정신질환의 평가 및 진단에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이 2013년 개정되면서, 명백한 상실 이후에 뒤따르는 우울한 감정,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자책, 후회, 무기력 같은 증상은 예전에는 우울증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일상생활에 심한 영향을 주는 정도라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이라고 진단할 수 있게 바뀌었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ㄱ씨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고 그 감정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큰 괴로움에 빠져 있는 상태라면, 한번쯤 마음을 점검하기 위해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