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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0 18:57 수정 : 2019.11.21 02:37

허규형ㅣ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제76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코믹스 영화사상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 파란을 일으킨 영화 <조커>의 흥행 수익이 10억달러를 돌파했다고 한다. 역대 코믹북 무비 가운데 제작비 대비 최고의 수익이 놀랍다. 북미를 제외하고 영국, 멕시코 등에 이어 4번째로 흥행몰이 중인 우리나라에서도 조커는 문화 현상이라고 할 정도의 열풍을 겪고 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많은 해석과 관련된 패러디가 터진 봇물처럼 넘친다.

조커의 대사 중 큰 울림으로 가슴에 닿았던 부분이 있다. “정신질환의 가장 나쁜 점은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서가 일기장에 기록했던 이 문장이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조커의 대사처럼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으면서도 자신의 고통을 주위에 밝히지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하는 사람이 많다. 상대가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두려워서 혹은 약점으로 작용하거나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이 돼서다.

그런데 자신의 상태를 숨기는 현상이 꼭 정신질환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진료실을 찾은 분들 중에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아 힘들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는 상담자가 흔하다. 원래 성격이 어떤 편이냐는 질문을 하면 비슷한 대답을 듣게 된다.

“주변에서는 저를 밝고 쾌활한 사람이라고 해요. 저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칭찬도 듣고요. 그런데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밝고 유쾌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다 집에 오면 진이 다 빠져버려요.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 안에 그냥 혼자 누워 있어요. 그것이 편해요. 생각해보니 저는 원래는 어둡고 우울한 성격인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같네요. 언제부터인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저도 싫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어요.” 이렇게 불편함을 토로하는 상담자를 하루에도 여러명씩 만난다.

영어 단어 인성(personality)의 어원은 ‘페르소나’(persona)다. 고대 에트루리아의 어릿광대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라고 전한다. 영화에서 페르소나는 영화감독 자신의 분신이자 상징을 표현하는 배우를 뜻한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 세계를 대변하는 대역으로 특정한 배우와 호흡을 맞춰 작업하는데 이 과정에서 배우는 작가의 페르소나, 즉 가면이 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스위스 정신과 의사였던 카를 구스타프 융이 외면적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자기 모습, 사회적 역할에 따라 변화하는 인격을 뜻하는 말로 ‘페르소나’라는 단어를 가져다 썼다. 규범과 도덕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어두운 자아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그 어두운 자아를 감춰주는 가면이 ‘페르소나’라고 이해하면 된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삶이 꼭 나쁜 것일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싫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위선적인 것, 안 좋은 것, 솔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수단으로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기 위해 적절한 페르소나를 형성하는 것은 발달과정에 획득해야 하는 과업 중의 하나다. 자녀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 연인 관계에서의 나, 친구 앞에서의 나, 직장에서의 나가 절대 같을 수 없다. 어떤 상황, 어떤 관계에서나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된다. 집에서 벗고 있는 것이 편하다고 밖에서도 벗고 다니면 그야말로 문제가 아닌가.

사람들이 나의 가면을 좋아하기에 가면 속의 내 실제 모습을 들킬까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걱정, 사람들이 나를 떠나갈지 모른다는 공포, 낮은 자존감 등이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생각을 바꿔보시기를 권유드린다. 때와 장소, 경우에 따라 맞는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적절히 상황에 맞춰 나를 바꾸는 가면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성숙한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가면을 쓰고 싶다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혼자 있을 때 조용한 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활달한 나, 모두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지금보다 편안해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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